와인을 흔히 음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알코올이 있는 음료라기보다 그 ‘무엇’이 있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무엇이라는 것은 사실 와인이 단순한 알코올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와인은 극단적으로 ‘국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그렇다. 와인을 ‘술’로 대접하는 한국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식사에 곁들이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좋은 술이 있으니 식사나 하자”는 얘기를 들어 보기는 어렵다. 대신 “좋은 음식이 있으니 어떤 와인을 마실까”를 고민한다.

 서양 음식 문화에서는 국물이 없다. 스프라고 하는 것도 식사 중에 하나의 코스로 먹는 ‘요리’일 뿐, 국물은 아니다. 그러니 와인으로 목을 축여 가며 식사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음식과의 조화를 매우 중시한다.

그런데 술과 음식이라는 쪽으로 보면 와인과 음식을 조화시키는 습속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와인을 된장국이나 김칫국 같은 ‘음식’이라고 보면 별쭝난 것도 없다. 조선식으로 잘 차린 음식상에 일본 된장국을 떡 하니 올려놓거나, 중국식 샥스핀 스프를 먹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드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걸 ‘음식의 정체성’이라고 하고, 프랑스식 표현을 빌면 ‘테루아르’(terroir)가 된다. 테루아르는 원래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의 특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인문지리적 특성까지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다시 말해, ‘서울 바닥에서 배추김치에 된장국을 먹는 한국인’을 의미한다. 서울이라는 지리적 환경, 배추김치와 된장국이라는 고유 음식, 거기다가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까지 합쳐져서 하나의 심포지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보자. 맛의 고장인 목포에서 세발낙지를 먹는다 치자. 당연히 목포에서 담근 고추장에 낙지를 찍어 먹어야 제맛이고, 심지어 술까지도 그 지역산을 마셔야 제맛인 거다. 심리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라고 해도 못할 일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지역의 음식 문화가 발달해 오면서 가장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내림으로 사람 손과 마음에 전해졌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검증을 거쳐 하나의 풍습이 형성된 것임에랴. 목포의 삼합이라는 것도 홍어와 묵은 김치, 돼지고기를 뜻하는데 그 세 가지 목포산 음식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을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알아챈 것이다. 물론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목포 사람이어야 제격인 건 당연한 일일 테다.

 그래서 서양에서 ‘고기에는 레드와인’ 하는 식의 와인과 음식 매치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목포 삼합처럼 실제로 서양에서 따지는 부분이다. 예를 볼까. 남프랑스의 유명한 와인인 샤토네프 뒤 파프에 어울리는 음식을 어떤 서양 잡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프로방스(남프랑스 지역)에서 사냥으로 잡은 자고새를 샤토네프 뒤 파프 와인에 하루 동안 절여 두었다가 프로방스산 올리브오일을 뿌려 구워 먹는 게 최고의 조합이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와인과 음식의 매치를 과학적으로 풀어 볼 필요가 생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음식의 향과 맛이 일치되는 와인을 고르면 된다. 다시 말해 달콤한 와인에는 달콤한 음식을, 향이 강한 와인에는 역시 향이 센 음식을 매치시키는 게 좋다. 크레페 롤 같은 디저트 음식에는 독일이나 프랑스 소테른과 알사스 지방산 와인, 이탈리아 빈 산토 같은 달콤한 와인이 어울린다. 독일과 프랑스산은 매우 비싼 편이며, 이탈리아산은 저렴한 편.

 진한 양념의 고기 요리는 어떨까. 단맛이 강한 한국식 고기 요리, 예를 들어 불고기와 갈비찜에는 칠레와 미국산 레드와인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가 잘 어울린다. 물론 향기로운 스파클링 와인도 이런 요리에 잘 어울리며 단맛이 강하므로 디저트 와인과 함께 먹어도 나쁘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프랑스산과 이탈리아산 레드와인은 상대적으로 단맛이 적다. 특히 이탈리아산 레드와인의 대명사인 ‘산 지오베제’ 품종은 시고 떫은맛이 강한 편이어서 양념을 거의 하지 않는 로스구이와 절묘한 궁합이다. 또 오래 묵지 않은 젊은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산 레드와인들과 이탈리아산 지오베제 레드와인이라면 양념을 한 닭찜과 가벼운 양념의 여러 가지 한식 반찬들과도 잘 어울린다. 매치시킬 때 기본적으로 향이 강하지 않고 젊은 와인이라면 대부분의 음식과도 무난히 어울린다는 것을 알아두자.

 필자는 중국 음식과 와인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식 중국 음식은 사천식 모델의 매운맛, 상하이식 모델의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과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신세계 레드와인과 궁합이 좋다. 이들 와인이 비교적 값이 싸고 향도 풍부하며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적어 대중적인 중국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와인과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독특한 향이 강한 쉬라 품종(레드와인)이 많이 팔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품종의 와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등지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고 품질도 좋다. 그런데 향이 매우 강하고 묵직하며, 타닌의 떫은맛이 강한 편이어서 초보자에게 친숙해지기 어렵다. 그러나 맛을 들이면 기막힌 품종의 와인이다. 묵직한 맛이므로 간장 양념을 세게 한 숯불갈비와 매치가 좋을 듯. 또 고추장 양념한 매운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는다면 이 품종의 와인 맛을 더한층 살려준다.

 다시 말하지만, 편안한 한국 음식에는 값싸고 부담 없는 신세계 와인을 두루 매치시켜 보고,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국가의 와인도 비교적 싼 것을 골라 함께 마신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탁이 될 게 틀림없다.



Plus 이 달의 Wine Bar



 꺄브 CAVE

 삼청동은 알려진 미식의 거리다. 와인을 파는 식당도 많고, 와인 전문의 와인바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꺄브는 터줏대감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한국에 호텔풍이 아닌 최초의 프랑스식 식당을 열었다고 볼 수 있는 민혜련 씨가 문을 연 꺄브가 그곳이다. 꺄브는 프랑스어로 와인 저장고를 뜻한다. 구옥의 지하에 둥지를 튼 품새가 꼭 유럽의 꺄브 같다.

 와인 리스트는 매우 충실하다. 와인 리스트란 단지 숫자가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와인 문외한도 ‘돈만 있으면’ 1천 종이라도 갖출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개성 있고, 구체적이며, 주인(또는 소믈리에)의 이해가 높은가다. 그런 점에서 꺄브의 리스트는 제대로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역별로 한국에서 고를 만한 와인은 두루 망라하고 있으며, 특히 숫자는 적지만 이탈리아 와인 리스트가 좋다. 곁들이는 음식도 좋다. 민씨의 동생 내외가 직접 경영하고 있는데, 부인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와인의 맛을 돋운다. 돼지고기 바비큐는 일급 셰프 저리 가라 할 만큼 독보적이다. 저가 와인보다는 중고가 와인을 공략해 볼 것. 삼청동 총리공관 못 미처 있다.

문의 02-739-1788

박찬일 와인 칼럼니스트 / 대담 : 박찬일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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