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레스토랑에서 목격한 일이다. 연세 지긋한 노인에게 웨이터가 와인을 따르면서 뭔가 타이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유심히 보니 그 노인이 와인을 받자 자꾸 잔을 들고  받으니 에티켓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 웨이터는 어디선가 배운 대로 실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 대부분의 한국의 와인 교육기관이나 매너 교육자는 ‘와인을 받을 때 잔을 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교조’란 말은 이런 데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에서야 원래 잔을 들고 술을 받는 문화가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어떤 모임에서 서로 술을 따를 때 소주는 두 손으로 받으면서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르고 받는 것이 옳은 것인 양 회자되기도 한다.

 이런 어색한 상황은 와인 잔을 잡는 모습에서도 종종 연출된다. 와인 잔은 반드시 다리를 잡아야 하고, 둥근 볼을 잡으면 결례인 것처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이유를 그럴싸하게 “손의 열이 와인의 온도를 변화시켜 맛을 버리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갖다 붙이기도 한다. 생각해 보라. 도대체 와인 잔을 잡을 때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는다고 와인의 온도가 올라갈 지경이 되겠는가. 필자는 그래서 서양 영화에서 와인 잔을 잡는 장면이 있으면 유심히 보기도 했다. 결론은 대부분 볼을 잡고 와인을 마시더란 얘기다. 온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에서조차 위태롭게 다리를 잡는 대신 여유 있는 폼으로 볼을 잡고 마시고 있다. 007 영화에는 유독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한 번 확인해 보라. 그 비싼 최고급 샴페인-장면 설정이 대개 어마어마한 사교 파티다-을 떡 하니 볼을 잡고 마신다.

 또 하나. 세계 최고 수준의 에티켓을 보이는 게 분명할 세계 정상 회담장 같은  데서도 서양인들은 흔히 볼을 잡고 마신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정상 회담장 그림은 대개 샴페인이나 와인을 건배하는 장면이 나오니 독자들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와인 잔은 테이블 오른쪽에 놓고, 받은  와인은 두어 번 잔을 돌려 조금씩 음미하듯 마시며, 마시기 전에 한 번쯤 냄새를 맡고 향을 느낀 후, 입안에 조금씩 넣고 굴리듯 맛본다.  이런 식의 와인 매너 강의가 흔하다. 만약 당신이 어떤 외국인과 비즈니스 미팅을 하면서 이런 태도를 보였다가는 상대방으로부터 “저 사람은 와인 구매가이거나 ‘와인 속물’일 거야” 하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비즈니스 하는 자리에서 이런 태도는 곤란하다. 만약 그 와인이 상대방이 고른 것이라면, 아예 비즈니스를 망칠지도 모른다.

 이런 고답적이고 정체불명의 태도가 와인 마시는 문화를 버린다. 즐겁자고, 맛있자고 마시는 와인이 자꾸 어려워지고 불편해진다. 정작 종주국인 유럽 사람들도 지키지 않는 이상한 에티켓을 강요한다. 아니 강요당한다.

 와인 바나 식당에 가면 십중팔구는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남이 하니 그대로 따라한다. 그리고 그게 ‘정석’이거나 에티켓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결단코 그런 에티켓은 없다. 단지 와인 테이스트들의 ‘기술력’방법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와인 잔을 받아놓고 습관적으로 테이블 위에서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그런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만, 이 버릇이 아무 데서나 튀어나온다. 이런 방법은 그야말로 향과 맛을 극대화시켜야 할 와인 시음가들이나 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정말 와인 맛을 좋게 한다면, 똑같은 술인 청주나 소주, 맥주도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이 없잖은가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다른 술의 전문 시음가들도 향을 잘 느끼기 위해 잔을 빙빙 돌려 향을 우려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당신이 시음가가 되지 않는다면 과히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닌 셈이다. (전문 시음가조차도 아무 데서나 와인 잔을 빙빙 돌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와인 에티켓을 잘 아는 사람들일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Plus 이 달의 

 와인바   라비뒤뱅 (LA VIE DU VIN)

 요즘 강남 지역에 술집이 생겼다 하면 와인 바다. 기존의 레스토랑과 카페도 속속 와인 바로 전업하고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와인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가격,과 편안한 서비스를 두루 갖춘 곳은 드물다. 와인은 단순히 ‘가져다 파는’ 술이라고 하기에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는  업종이어서 별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곳이 ‘라비뒤뱅’이다.

 무엇보다 이 집의 장점은 ‘정돈된 리스트’다. 와인 리스트를 짜는 작업은 그저 수입된 제품을 골라 진열하는 것이 아니다. 와인에 대한 이해와 안목, 적절한 지역 배치, 가격까지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종종 신문에서 어떤 바를 소개할 때 “전 세계 500종의 와인을 갖췄기 때문에 매우 좋다”는 식의 기사를 볼 수 있는데, 이런 식의 리스팅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라비뒤뱅의 리스트는 꼭 있어야 할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는 데 덕목이 있다. 소란스러운 장터 같은 분위기의 와인 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고 고전적인 서비스를 받으면서 우아하게 와인 한 잔을 즐기기 좋다. 전문 요리사가 있어 식사를 겸할 수 있으며 안주의 수준도 높다. 6개의 별실이 있어 비즈니스 모임을 특히 추천한다.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2시  문의 02-3446-3375  위치 압구정역 근처



Plus 이 달의  

 와인    샤토 포텅삭 1999 (Chateau Potensac)

 “세상의 와인은 프랑스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프랑스 와인은 보르도산과 그 밖의 지방으로 나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보르도 와인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하나의 전범이며, 와인을 이해하는 최초의 출구 노릇을 하고 있다. 보르도 와인은 대체로 서열이 분명하다. 1855년에 선정된 그랑 크뤼 와인들은 지금도 그 맛과 품질을 믿고 보증할 수 있다. 그러나 5등급으로 나뉜 이 그랑 크뤼 와인들이라고 해서 품질과 맛이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알차지 못하면서도 단지 그랑 크뤼라는 이유로 비교적 높은 값을 받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럴 때 크뤼 부르주아 와인은 당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랑 크뤼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크뤼 부르주아는 490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9개의 와인이 크뤼 부르주아 엑셉시오넬(Crus Bourgeois Exceptionnels)을 받았다. 이 와인들은 명성은 그랑 크뤼에 미치지 못하지만, 한마디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밸류 와인’이라고 할 수 있어 수준 높은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샤토 포텅삭은 그 중에서도 가격이 낮으면서도 품질은 ‘분명’한 와인이다. 보통 보르도 와인, 그 중에서도 메독 지방 와인의 맛이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이다. 풍부한 향과 조화로운 맛, 뛰어난 균형감이 이 와인을 고른 이들에게 고루 만족을 안겨준다. 소비자가 7만원선. 한독와인   02-551-6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