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최초 전직원 아웃바운드 영업 실시 파생 상품 등 특화 전략 구사로 대형사와 승부 국내 대표적인 중형 증권사인 메리츠증권이 최근 지점 영업 방식에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수동적이었던 ‘기다리는 영업’에서 직원들 개개인이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영업’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변화의 핵심. 메리츠증권은 이를 위해 지난해 증권사마다 대규모 구조 조정을 진행하는 가운데서도 80여 명의 신규 영업 직원들을 뽑았다. 또 고객 관계 관리 시스템(CRM) 등 각종 전산 시스템과 직원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등 변화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 모든 변화의 선두에는 김한(52) 대표이사 겸 부회장이 있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가 변화의 씨앗을 뿌린 시절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열매를 거둬들일 단계”라며 변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남다른 각오로 2005년을 맞이한 김 부회장의 포부를 들어 봤다.

 “최근 증시가 호전되면서 증권사의 브로커리지(brokerage, 주식 위탁 영업) 수수료 수입도 조금 나아졌지만 전반적인 수수료 인하로 더 이상 브로커리지는 장기적인 비즈니스가 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변화를 통한 수익 다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증권사들도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메리츠증권 김한 부회장은 최근 증권산업 전체가 변화와 도전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외부적으로는 새로운 증권 관련 제도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수익원 부재에 따른 고민이 한층 심화되면서 더 이상 천수답식 구조로는 버틸 수 없게 됐다는 것.

 이에 김 부회장은 “자본 규모가 크고 자산 건전성도 좋은 증권업은 그 특성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열악한 수익원에 대한 위기의식은 서로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마다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향후에는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규모 변화를 시도했다. 김 부회장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모두 뒤집는 일대 혁신적인 변화를 꾀했다. 바로 영업점의 아웃바운드 도입이다.



 “영업직원, 밖으로 나가라”

 그동안 증권사 지점 직원들은 인맥을 통한 영업이나 자리에 앉아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수동적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영업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 김 부회장은 이 같은 지점 영업 관행을 완전히 뒤엎었다. 매일 직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직접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 거래나 금융상품 판매를 시도하게 한 것이다. “컨설팅 결과 과거 수동적인 영업 관행으로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십년 몸에 익힌 영업 방식을 모두 뜯어 고치도록 했죠. 직원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김 부회장의 이 같은 변화는 초기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익숙하지 않았던 직원들은 ‘영업이 안 된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놨고, 노조도 ‘방향이 잘못됐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의 아웃바운드 영업을 위한 교육체계를 마련했고 CRM(고객관계관리시스템)을 개발해 효율적인 고객 마케팅을 가능하게 하는 등 변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초기에는 참 힘들었습니다. 저보다는 직원들이 더 힘들었을 겁니다. 영업 시간에 매일 3시간 동안 20명의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영업을 한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더욱이 증권사 직원을 사기꾼처럼 여기는 풍토에서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가 욕만 먹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꿋꿋이 참고 견뎌 이제는 익숙해졌고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노력의 대가죠.”

 아웃바운드 영업은 영업 개시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점차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한 직원은 치과의사를 자신의 고객으로 모셔오기 위해 멀쩡한 이를 내놓는 모험까지 감수했고, 또 다른 직원은 빵집 사장을 고객으로 모셔오기 위해 매일같이 빵을 사먹는 고충도 마다하지 않았다. 직원 개개인이 전문성에 적극적인 영업 정신까지 무장하면서 점차 모셔오는 고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직원 개개인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고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개발에 힘쓰면서 영업 경쟁력이 질적으로 향상됐다”며 “특히 자신이 직접 지점을 찾아온 고객보다 직원이 발로 뛰어 모셔온 고객이 한층 로열티가 높아 회사의 이익 기여도도 크다”고 설명했다. 아웃바운드 영업이 올 한 해 열매를 맺는다면 회사가 크게 달라지게 될 것으로 김 부회장은 전망했다. 공통비를 감안한 지점 전체 수익이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아웃바운드 영업으로 플러스로 전환된다면 수익 구조가 크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 “현재 메리츠증권의 지점 수익 구조는 90% 이상을 브로커리지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전반적인 수수료 인하에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죠.

 아웃바운드 영업을 통해 지점의 브로커 의존도를 50% 이하로 줄일 생각입니다. 지점의 질적인 변화를 시도해 회사 전체적인 수익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이 올 한 해 영업 목표입니다.”



 파생상품 전문증권사로 탈바꿈

 김 부회장은 본사 영업 부문에도 일대 변화를 주고 있다.

 현대증권 김현겸 이사, 도이치증권 추용 사장, 리얼티어드바이저스 설종석 이사 등 거물급 인사를 대거 영입하면서 IB(Investment Bank 투자은행), 부동산, 파생 상품 등 신사업 추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김 부회장은 국내 파생 상품 분야 넘버원을 달리는 추용 상무와 함께 파생 상품에 특화된 전문 증권사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장외 파생 상품 취급을 위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김 부회장은 “고도화된 리스크 관리 능력이 필요한 파생 상품 영업은 사람이 곧 경쟁력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추 상무를 비롯한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영입할 계획”이라며 “메리츠증권의 경험과 전문 인력의 노하우가 결합할 경우 파생 상품 분야에서 대형 증권사와도 충분히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이 밖에도 증권제도 개편으로 새롭게 도입된 사모주식펀드(PEF)나 부동산펀드, M&A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 전담팀을 구성, 복합상품 개발에 나선 상태며, 증권산업 규제 개편과 관련된 데스크포스팀(TF)도 구성해 미래 방향 설정에 대한 전략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증권업 특성살린 PB 영업 필요”

 
지난 2002년 후반 증권업계에 열병처럼 번졌다가 사그라든 종합자산관리(PB) 영업에 있어서도 김  부회장은 보다 현실적인 영업 방식으로 성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타 대형 증권사들이 PB점을 폐쇄하고 번번이 PB 영업에 실패하는 와중에서도 메리츠증권은 지속적으로 PB 영업을 진행하며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도 그의 현실 영업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는 증권사 PB 영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증권업에 맞는 영업을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초기 대부분의 증권사가 은행과 경쟁한다며 대규모 점포를 개설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도 모두 증권업에 맞는 영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0억 원 이상 되는 거액 자산가들은 직접 증권사를 찾지 않는 한 증권사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힘듭니다. 이들은 이미 가질 만큼 가졌기 때문에 일부러 위험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증권사 PB의 타깃은 바로 2억 원 이상 5억 원 이하의 자산가들입니다. 어느 정도 자산은 보유했지만 다소 부족해 노후나 자녀 결혼 등 미래가 불안한 이들이야말로 공격적이어서 증권사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이죠.”

 즉 증권사와 은행의 PB 서비스는 큰 차이가 있고 고객 성향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경쟁한다기보다는 시장을 양분하고 특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김 부회장의 PB 지론이다.

 김 부회장은 메리츠증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올해 외적인 변화에도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우선 동양화재 한불종금 등 관계사와의 시너지 영업을 모색, 영업력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그는 “최근 금융권의 화두는 통합인 만큼 메리츠증권도 동양화재 등 관계사와의 연계 영업을 한층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느슨한 연계 영업을 시작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인수 합병(M&A)도 기회가 오면 할 생각이다. 지금으로선 내부 변화에 주력해야 하고 또 인수 합병 대상 증권사가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규모의 경쟁에서 한층 강화된 증권사로 거듭나기 위해 인수 합병도 유용하다고 김 부회장은 설명했다.

 2004년 회계연도 메리츠증권의 실적은 다소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규모 투자에다 최근  금리 급등락에 따른 채권 부문 손실이 겹치면서 지난 1월 누적 실적이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실적에 연연하는 CEO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CEO로 회사를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포부다. 또 이미 그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만큼 2005년 회계연도에는 실적으로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을 자신했다.

 이에 김 부회장은 "경영진은 물론 주주와 직원들도 투자나 변화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모두가 공감하고 같이 뛰어왔기 때문에 회사의 성장은 시간문제"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