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고용, 산업 파급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다.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해 광명시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을 1월11일 찾았다.
am 08:40

 서울 금천구를 지나 광명시 하안동, 철산동을 지나면 소하동이 나온다. 사거리에 ‘기아 소하리 공장’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사거리 주변 건물들에 들어선 노래방, 정비소, 세차장, 식당 간판까지 기아 일색. 공장 방향으로 차를 돌려 500미터쯤 가자 공장 남쪽 출입구가 나타났다. 도로 양쪽으로는 협력 업체의 각종 제품을 실은 대형 트레일러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입구 경비원의 교통 정리 신호를 받은 트레일러들은 속속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에는 이 근처에 기아 로고가 아닌 다른 자동차는 얼씬도 못했습니다. 공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아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들은 다리조차 건너지 못했죠. 지금도 공장 출입이 가능한 차량은 ‘현대’, ‘기아’ 브랜드를 달고 있어야 합니다.”

 출입증을 끊어주며 출입 관리소 직원은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넸다. 기아자동차에 대한 자부심의 다른 표현이리라.

 행정구역상 ‘소하리 공장’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781-1번지에 위치해 있다. 총 면적 24만평에 달하는 소하리 공장은 설립 당시 대통령이 직접 방문 격려했을 정도로 산업계에 큰 뉴스였다. 지금은 화성 공장에 생산량 1위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기아자동차의 모태라는 자부심만큼은 어느 공장보다 크다.

 “지난 2004년 총 25만753대의 자동차가 이 공장에서 나왔습니다. 그중 해외로 수출된 물량이 90% 이상으로 24만7000대에 달합니다. 현재 공장에는 7000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고, 190개의 협력 업체가 기아 자동차 생산에 간여하고 있습니다.”(탁원식 전무)

 현대자동차와 함께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의 양대 축을 이뤄온 기아자동차의 성장이 시작된 곳인 만큼 소하리 공장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의미는 각별하다. 32년 전인 1973년, 기아의 소하리 공장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종합 조립공장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브리사와 복사를 생산하던 공장의 조립라인에는 리오와 카니발이 올라 있다.

 “엔진과 미션을 제외한 부품들은 대부분 기술 이전을 받은 협력업체에서 공급받습니다. 차체 등은 일부 공장에서 제작도 하지만 공장은 자동차 조립라인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am 10:00

 차체 생산 → 도장 → 조립 → 품질 검사라는 일괄 공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형 프레스 기계가 굉음을 내며 차체를 찍어내는 차체 생산 공정을 지나면 도장 및 조립라인이 연계가 된다. 조립라인으로 들어서자 LCD로 된 공장 현황판에는 ‘제 1조립라인 점검 중’이라는 붉은 글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립2부 반장을 맡고 있는 정홍랑(43세)씨는 “사람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안전상의 조그만 문제가 발생하면 그 즉시 기계를 세운다”고 귀띔한다.  현장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으로 분주한 사이 뜻하지 않은 휴식 시간을 얻은 조립라인 근로자들은 공장 한 귀퉁이에 마련된 탁구대에 서 탁구를 치는가 하면, 조립라인 가운데 설치된 휴게 시설에서 음료수 등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전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2시간 조업을 하고 15분 휴식, 다시 10시 45분부터 12시 30분까지 작업을 합니다. 12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한 다음,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조업을 합니다. 중간에 15분 휴식이 있습니다. 통상 잔업을 2시간 정도 하니까 업무가 끝나는 시간은 7시 반이나 8시 정도 됩니다.”(정홍랑 반장)

 조립라인에는 560명이 현재 근무 중인데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뉘어 1일 2교대 형태로 작업이 진행된다. 차체 생산이나 도장 등과는 달리 조립만큼은 근로자의 노동력에 절대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도요타자동차도 조립라인만큼은 숙련된 노동자들의 기술에 절대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조립라인은 근로자 노동력의 핵심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만큼 근로자의 안전은 생산성과 직결되므로, 안전을 해치는 작은 요소라도 발견 즉시 라인이 서는 것이다.

 “자동화는 생산성 향상에 필수인 만큼 현재로선 근로자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동화의 초점입니다. 볼트를 몇 바퀴 돌려야 가장 좋은 상태냐 하는 정도는 기계나 자동 기기에 의존하지만 절대적인 부분은 라인의 근로자에게 달렸습니다.”(정홍랑 반장)



am 11:00

 안전 점검이 끝나고 전광판에 ‘조업 재개’를 알리는 신호가 들어오자 휴식을 취하던 근로자들은 각자의 작업라인으로 돌아갔다. 다시 조립라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진과 배기관류, 서프펜션 등을 장착하는 정 반장의 2반 반원들도 공중에 매달린 차체에 부품들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상 없이 공장이 가동될 경우 1분52초당 한 대꼴의 자동차가 생산된다. 코일 상태에서 조립 완성된 리오가 나올 때까지 거쳐야  할 스테이션(자동차 제조 공정 단위)은 110여개. 시간으로 치면 20여 시간이 걸린다. 2분이 채 안 돼 한 대의 자동차가 나올 수 있는 건 각 부문별로 필요량을 사전에 제작한 상태에서 도장-조립 공정만 거치기 때문이다.

 소하리 공장의 경우 차체 판금-성형부터 최종 검사까지 약 880~900m의 컨베이어 벨트를 걸쳐야 한다. 생산라인에서 자동차 한 대 생산에 관여하는 인원은 1200명 정도 된다.

 “조립라인 설비의 현대화로 작업 환경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 작업을 해야 하는 근로자들의 복지가 공장에서는 가장 신경 쓰이는 문제입니다. 소하리 공장의 경우, 생산 현장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40대여서 형님-아우 같은 사이를 유지하려고 합니다.”(조립2부 김호민 과장)

 기아자동차의 생산 현장으로는 소하리 외에 화성 공장, 광주 공장이 있다. 각각 60만대, 3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소하리 공장에 오기 전에는 화성 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호민 과장은 “화성 공장은 30대, 소하리 공장은 40대가 대부분이라 공장 분위기도 다르다”고 했다. 노사 관계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친밀감이 더 필요한 곳이 소하리 공장이라고 귀띔했다.



am 12:00

 조립라인을 빠져나와 모든 조립 공정을 마친 자동차가 최종 점검을 받는 PDI(Pre Delivery Inspection) 검사장을 향했다. 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만개에서 3만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각 부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상 작동하기까지는 고도의 품질 유지가 요구된다. 그 중에서도 PDI는 모든 검사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

 자동차 생산현장인 만큼 여성 근로자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데 비해 PDI 검사장은 ‘여인천하’였다. 여성의 꼼꼼함과 섬세함이 자동차 완성의 최종 단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자동차 내외부를 오가며 꼼꼼하게 품질을 체크하는 사원들 중에는 20대 젊은 여성도 보였다.

 “조립라인에서도 불량 발생을 체크하지만 이곳이 최종 관문입니다. 이 검사를 통과하면 바로 소비자에게 차가 넘어가는 거죠. 전에는 차량 인도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공장으로 직접 차를 가지러 오는 소비자도 있었지만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총무팀 이승환 사원)



pm 12:30

 공장 내 시계가 어느새 12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하물며 오전 8시 반부터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의 뱃속이야 오죽하랴.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으로 직원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메뉴는 회덮밥. 초고추장을 듬뿍 얹은 비빔밥용 사발 그릇이 눈 깜짝할 사이 바닥을 드러냈다.

 식사를 마친 근로자들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잠깐 낮잠을 잔다. 육체 피로 여부가 작업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휴식 시간을 이용한 낮잠은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고.



pm 1:30

 작업 개시 시간이 되자 공장은 예의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냉연강판 더미에서 풀어낸 철판을 차체의 각 부분의 모양대로 잘라진 뒤 프레스 기계로 옮겨졌다. 차체를 성형하는 프레스 기계의 평면의 철판을 입체감 있는 차체로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쉴 새 없이 굉음을 토해냈다. 절단에서 성형까지 모든 공정은 컴퓨터로 제어되고, 만들어진 차체는 페인트를 입히는 도장 공정으로 향했다. 최근엔 차체 공정도 상당 부분 외부 협력업체에서 만드는데, 일부는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내고 있었다. 프레스 기계와 공장 천정의 대형 크레인이 내는 굉음 소리를 뒤로 하고 막 생산된 따끈따끈한 새 차들이 모여 있는 야적장으로 향했다.



pm 14:30

 야적장에는 최종 검사를 마친 차량들이 고객을 찾아가기 전 열병식을 하듯 도열해 있었다. 소하리에서 제작되는 주력 차종인 리오는 국내보다는 유럽이나 북미에서 호평 받고 있는 차량. 소하리 공장의 대표 생산 차종이었던 리오와 함께 올해부터는 프라이드가 소하리 공장에서 만들어질 예정이다. 80년대 중반 생산되던 기아의 대표적인 승용차 ‘프라이드’의 생산을 앞두고 근로자들과 관리자 모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이미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차량의 외관과 기능이 공개되었는데도 공장 사람들은 JB(‘뉴 프라이드’의 프로젝트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새로운 차종에 대한 기대와 관심, 무엇보다 긴장감이 높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공장 안을 돌아다니는 테스트용 JB의 차체 앞 뒤 부분에는 위장막이 씌워져 있었다. 공장 책임자에게 ‘닳는 것도 아니니 그냥 한번 보기만 하자’고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하기만 했다. 애초 2005년 1월, 국내에 선보일 예정이었던 ‘뉴 프라이드’의 면모는 3월에야 일반에 선보일 예정. 3월 예정에 맞춰 생산 공정부터 기능 테스트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소하리 공장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과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pm 17:00

 짧은 겨울 해는 어느새 소하리 공장 서녘으로 숨 가쁘게 기울어 가고, 소하리 벌판을 휘감아 가는 겨울바람의 위세도 시간이 갈수록 더해 갔다. 오늘날,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오늘의 영예가 있게 한 소하리 공장은 찬 겨울바람 늦은 오후 속에 분주하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Plus Interview



 탁원식 소하리 공장 전무

 소탈한 인상과 눈가 잔주름이 인상적인 소하리 공장의 탁원식 전무. 75년 기아에 입사해 ‘기아맨’ 32년째인 그는 생산직 사원을 제외한 기아차 사원 중 최고참급에 속한다. “소하리 공장이 설립되던 해 입사해 32년 동안 공장에서만 뒹굴었다”며 웃었다. 생산라인의 조업자 얼굴만 봐도 그 심리상태까지 보인다는 그에게 소하리 공장의 오늘과 내일을 물었다.



 공장 운영에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이다. 생산은 근로자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근로자의 사기를 진작하고, 그를 통해 생산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근로자들의 복지와 애로사항을 최대한 듣고, 현장에 반영하려 한다.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2005년엔 프라이드 등 신 사업이 많다. 이에 관련한 2005년 계획이 있다면.

 32년이란 역사만큼이나 소하리 공장은 설비 면에서 다른 공장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그것을 지난 2004년 최신 설비로 새롭게 바꿨다. 이 설비를 통해 ‘뉴 프라이드’, 카니발 후속 모델인 ‘VQ’ 등이 올해 선보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2005년은 소하리 공장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원년이라고 생각한다.



 재도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용자와 근로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자동차는 설비와 좋은 부품,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현장 기술자의 노하우가 잘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한 차가 만들어진다. 과거 기아자동차 하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강성 노조’라는 선입견도 이젠 옛말이다. 노동자와 관리자의 협력 체계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덕분에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공장 전체에 퍼져 있다.



 차를 만드는 입장에서 기아차의 기능과 품질은 어느 수준이라 생각하는가?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는 물론, 미국의 JD 파워와 같은 기관에서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품질과 기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나. 품질이나 기능면에서 솔직히 어디다 내놔도 나무랄 데 없다고 자신한다. 생산 현장에만 있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생산성 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차체 공정 등은 100% 자동화되었는데 사람 손이 필수인 조립라인의 자동화율은 조금 낮은 현실이다. 현재 조립라인의 5% 선인데 자동화율을 8%까지 올리는 것이 올해 목표다. 공장 가동률을 95%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연간 목표 중 하나다.



 소하리 공장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리직은 물론이고 현장 근로자들도 자주 중국으로 연수를 보내고 있다. 중국에는 한국과는 또 다른 열기가 있다.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느낀다. 중국 연수를 다녀오면 현장 근로자들도 눈빛이 달라진다. 중국이 무섭게 따라온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이 현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자발적으로 특근을 하겠다고 하는 근로자도 많다. 함께 잘 협력한다면 과거에도 그랬듯 잘 해 나갈 것으로 낙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