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만에 위치한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단일 제철소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돌섬을 허물고 바다를 메운 제철소 부지만 518만평. 이곳에서 포스코가 생산하는 철강의 절반 이상인 54.6%(2003년 판매량 기준)가 생산된다. 광양만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안고 제철소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량은 조성이 잘된 공원길을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도 고열의 용광로가 시뻘건 쇳물을 토해내는 광경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광양 시민의 자랑이라는 전남드래건즈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광양축구장의 우람한 위용을 지나쳐 차로 한참 달려도 당혹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제철소 건설의 총 투자액의 8.7%에 해당되는 1조3460억원이 환경 분야에 투자됐어요. 현재 제철소 면적의 23.5%에 해당되는 90만평이 녹지대로 조성돼 있습니다. 제철소 안에는 해송, 단풍나무, 편백 등 수목만 164만그루입니다. 아마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할 거예요. 지금도 나무를 계속 심고 있어 녹지율은 계속 올라갈 겁니다.”(강현수 광양제철소 행정지원부 총괄직)

 입구에서부터 본관이 있는 건물까지만 자동차로 10분 이상이 걸린다. 해안에 자리한 제철소 전체가 조망되는 야산 중턱에 다다르자 비로소 공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1981년 광양을 제2제철소 부지로 최종 확정한 뒤 1987년 1기 설비 준공 후 첫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광양제철소는 이후 잇단 설비 증설을 통해 2005년 현재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최대의 조강 생산 능력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광양제철소에는 72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공장 규모에 비해 종업원 수가 적은 건 원료 야적에서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설비와 공정이 자동화된 덕분입니다.”(김용수 홍보팀 리더)

 광양에는 모두 5개의 고로(高爐)가 있다. 흔히 용광로라 불리는 이 고로에선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4조3교대로 끊임없이 철을 생산해내고 있다. 조강 능력은 1702만t(2004년 기준), 조강 생산량은 1623만t(2003년)에 달한다. 광양제철소에선 자동차용 강판 등에 주로 쓰이는 부가가치가 높은 열연, 냉연 코일이 주요 생산 품목이다.

 원료를 하역하거나 완성된 철강 제품을 배에 싣는 전용 부두는 광양만 바다와 접하고 있다. 25만t급(길이 330m, 너비 54m) 초대형 선박 2대를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광양제철소 전용 부두 옆에는 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코크스)을 쌓아 두는 원료 야드가 접해 있다. 32만4000평 부지의 24개 야드에 쌓여 있는 원재료들은 25일 작업량을 비축해 놓았다. 원료 야적장 둘레만 2.4km나 된다. 부두에서 하역된 원료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야적장이나 공장으로 운반된다. 공장 안 컨베이어 벨트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85km에 달한다.

 제철소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 바로 고로다. ‘높은 곳에 매달린 용광로’라는 말뜻만큼이나 웅장한 고로는 무려 110m에 이른다. 이곳에선 하루 9000t의 쇳물(용선)이 생산된다. 소형 승용차 1만2000대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5기의 용광로가 있는 광양제철소에서는 하루 6만대의 소형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쇳물이 생산되는 셈이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공정을 제선 공정이라 한다.

 제선 공정을 통해 생산된 쇳물은 럭비공처럼 생긴 용선운반기차(TLC)에 실려 제강공장으로 운반된다. 섭씨 1500도가 넘는 쇳물의 고온을 견딜 수 있도록 내화 벽돌로 만들어진 용선 운반 차량은 한 번에 300~320t의 쇳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 뜨거운 물을 보관하는 보온병과 같은 셈이다. 이곳에 담긴 쇳물은 48시간 동안 동일한 온도로 유지된다. 광양제철소에는 모두 106대의 TLC가 용광로와 제강공장을 오가고 있다.



 1개 용광로 근무 인원 ‘달랑’ 9명

 “용광로 하나에 평균 9명의 직원만이 근무합니다. 원료 하역에서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모든 과정이 생산종합관제센터(PCO)의 컴퓨터를 통해 일괄 통제됩니다. 공장 안에서 운행중인 기관차의 조정, 에너지 흐름, 환경 감시 기능도 모두 이곳에서 제어됩니다.”(이태규 행정지원부 직원)

 제강공장으로 옮겨 온 쇳물은 불순물을 제거한 액체 상태의 강철로 때를 깨끗이 뺀 뒤 일정한 틀에 부어 서서히 냉각시키게 된다. 두께 23cm, 길이 5~12m의 두꺼운 널빤지 모양의 철판(슬래브)으로 철강 본연의 고체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공정을 연주 공정이라 한다. 연주 공정은 마치 방앗간에서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는 과정과 흡사하다.

 반제품 상태인 슬래브는 필요에 따라 압연공장으로 각각 옮겨진다. 쇠를 눌러 철판을 만드는 압연 공정은 열연, 압연으로 나뉜다. 슬래브는 섭씨 1200도 정도의 고온 상태에서 여러개의 거대한 롤러 사이를 통과하며 철판으로 만들어지는데, 편리한 운반을 위해 두루마리 휴지처럼 둥글게 만다. 이런 모양새 때문에 ‘열연코일’, 또는 ‘핫코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3개의 열연공장에선 평균 90초에 1개씩 하루 1800개 정도의 열연코일이 생산된다. 100% 주문에 의해 만들어지는 열연코일 1개의 무게는 평균 20t. 2005년 3월 기준으로 개당 판매 가격은 1190만원 정도다. 주로 파이프, 컨테이너, 건축재로 사용된다.

 “열연코일의 절반이 넘는 53%는 다시 냉연공장으로 이동되어 냉연강판으로 만들어집니다. 열연 제품을 화학적으로 처리해 표면의 녹을 제거한 뒤 일상 온도에서 다시 한 번 압연 작업을 해요. 열연 제품에 비해 두께가 얇고(0.15~3mm) 표면이 깨끗하며 가공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동차나 가전 제품, 가구, 건축물 등에 사용됩니다. 가격도 열연 제품보다 20% 가량 비싸지요.”(이태규 행정지원부 직원)

 3개의 열연공장과 4개의 냉연공장은 광양제철소의 주요 생산품인 열연·냉연 코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냉연공장은 연간 850만t 가량을 생산중인데 이는 세계 최대 생산량이다. 품질 또한 우수해 이곳에서 생산된 냉연강판은 일본 자동차업체인 닛산, 미쓰비시 등에서 구입해 가고 있다.

 철광석, 유연탄 등의 원료가 하역되는 부두부터 최종 생산품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둘러보는 데만 3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공장을 가로지르는 중앙로 길이만 2.6km에 이른다고 했다.

 “2003년 포스코가 판매한 철강이 모두 2820만t입니다. 이 중 광양제철소에서 생산된 양이 1541만t으로 54.6%를 차지합니다. 제1제철소인 포항을 이미 넘어서 광양제철소가 포스코의 제1 생산량 지위를 넘겨받은 셈입니다.”(김용수 홍보팀 리더)



 팀워크 중시 전통과 신세대 창의성 ‘조화’

 2003년 포스코의 전체 매출 14조3309억원 중 광양제철소가 절반 가량인 6조7986억원을 기록했다. 포항의 제1제철소와 함께 한국 산업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직원들은 포스코의 ‘제철보국’이란 전통적인 의식과 글로벌 그룹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여느 회사와 비교하면 예절과 끈끈함이 남다르다고 할까요? 팀 파워가 지금의 포스코를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김용철 계측정비기술팀 과장)

 공장내 모든 작업장의 장비 수리를 맡은, 일종의 ‘애프터서비스’ 부서 소속의 김용철씨는 ‘공장에서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부서’의 일원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현업 이외에 광양 제철소내 소식지를 발행하는 ‘기자’이기도 하다. 소식지를 통해 광양제철소 ‘식구’들은 넓은 공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동료들의 얘기를 접한다. 냉연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성호 대리(41)도 김용철씨처럼 소식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직원간의 전령(傳令)이란 의미에서 ‘커뮤니케이터’란 직함을 별개로 갖고 있다.

 “공장 연혁이 포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보니 직원들도 젊어요. 젊은 세대의 직원들은 개성이 강하죠. 개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니까요. 포스코 탄생의 특성상 조직의 수직 구조, 위계 질서를 중시하는 경향이 예전에는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평적 구조로 변했어요. 우리 냉연부만 해도 1???개 팀제로 운용되는데 팀 리더(팀장) 이외에는 모두 팀원입니다.”

 벌판에 공장만 달랑 들어섰을 때 입사했다는 이씨는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광양까지 오려면 꼬박 한나절이 걸릴 정도로 오지였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기반 시설이 갖춰졌지만, 그는 “스스로 광양 사람이라고 인식하기까진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근무 이외에 자기 계발을 위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회사가 뭐든지 지원해 줍니다. 요즘 직원들 사이에선 자격증 따기가 유행입니다. 명장(明匠) 제도가 있는데, 합격하면 신문에도 크게 실어 줍니다(웃음). 회사에서 지원해 주니 외국어 공부를 비롯, 직원들이 한두 가지 정도는 뭘 해도 다 해요. 그러니 일도 더 열심히 하는 거죠.”(이성호 대리)

 따뜻하게 내리쬐던 봄볕이 사그라들고 어둠이 찾아왔지만 제철소는 밤낮의 경계를 모르는 듯했다. 각 공정은 변함없이 돌아갔고, 근무를 마친 사람과 근무에 투입되는 사람들은 정연하게 공정에 투입되거나 빠져나왔다. 2005년 3월 25일 광양제철소의 밤 풍경은 그러했다.



Plus INTERVIEW

박기덕 품질기술부장

"중국 추격뿌리치고 세계1등 품질 제품 생산이 목표"



1978년 입사해 27년째 포스코에 몸담고 있는 박기덕 부장(53). 그는 광양제철소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다. 포항에서 9년, 이후 광양에서만 18년째 일하고 있다. 광양제철소의 탄생과 현재를 함께 하고 있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포스코가 갖고 있는 품질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열연과 냉연 코일의 품질은 일본의 NEC 등과 동등한 세계 정상 수준이다. 자동차 외판용으로 사용되는 표면 처리 강판은 다소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광양제철소는 자동차용 강판 MEGA Y(수주·생산·판매·연구 과제 통합)를 구성, 고급강의 품질 향상에 주력했다. 이 결과 자동차용 GA 강판을 일본의 혼다, 미쓰비시 등에 확대 공급하고 있다. 향후 광양제철소는 자동차용 철강재 생산에 주력할 계획인데, 자동차 부품용 고강도 강판 일관 생산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2006년까지 중점 전략 제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고품질 전략의 청사진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목표는 세계 최고의 고유 기술 개발이다. 올해는 ‘3S(Speed, Sixsigma, Study)’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고유 제품 개발은 2007년까지 31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독자적인 선진 기술을 확보하고 고객 중심의 품질 보증 체제를 재정비함으로써 후발 철강사 추격에 대비, 품질과 기술력을 차별화할 것이다. 과거 포스코는 고객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우선 공급하는 서비스 정신으로 변환됐다. 지금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고객들이 참여, 제품 생산까지 함께 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특성상 환경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 경영 등이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친환경 설비와 제품 생산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바이오 웨이브 강판이란 게 있다. 인체에 유해한 수맥과 전자파를 차단해 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이 제품은 환경, 인체에 직접적으로 유익하다. 간접적으로는 자동차 경량화를 가능케 하는 고강도강, 송유관의 수명을 연장시켜 줌으로써 기름 유출에 의한 오염을 사전에 방지하는 API 강재 등을 생산하고 있다.

 제철 과정에서 부식 방지를 위해 크롬을 사용하는 게 환경에 문제였다. 크롬을 사용치 않은 크롬프리 제품을 개발했지만, 국내 고객의 사용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생산량이 적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고객사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제품도 적극 개발, 현재 국내와 일본 등 해외 유수 업체로부터 공식 품질 인증도 받았다. 2006년부터는 크롬 처리 제품을 생산하지 않을 계획이다. 친환경 제품은 경쟁사와 맞설 고유 기술 확보에도 직결된다.



 자동화율은 어느 정도인가.

 설비와 공정 자동화로 나눌 수 있다. 무거운 중량의 재료를 사용하는 철강 공정에서 생산성, 품질,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100% 설비 자동화는 필수다. 설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동화된 상태다.

 중요한 것은 소재부터 최종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일련의 연속 작업을 자동 제어하는 공정 자동화다. 제선, 제강, 압연 등 모든 부문의 공정 자동화율이 95% 이상이다. 거의 모든 일을 자동화 설비와 제어시스템이 담당하고 있다. 각 부문의 직원들은 설비와 제어시스템의 오작동 등 돌발 상황에 대한 응급 조치 등 보다 고도화된 업무를 한다. 또 설비의 지속적인 유지 및 보수를 위해 고장을 사전에 감지, 예방할 수 있는 설비 진단 시스템도 운용중이다.

 그동안 자동화가 어려웠던 단위 공정간 물류 이동, 제품 보관, 출하 과정에 사용되는 이동기기(크레인 등)의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2008년까지 약 70%의 이동 기기를 무인화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최첨단 정보기술(IT)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전파 식별:소형 반도체 칩을 이용해 사물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 기술이 적용된다.



 최근 자동차 차체를 물로 성형하는 하이드로 포밍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

 복잡한 형상의 자동차 부품을 만들 때 기존에는 여러 형태의 성형 프레스(Forming Press)를 따로 가공해 용접했다. 그런데 하이드로포밍 공법은 강판을 튜브 형태로 말아 바깥에 프레스를 대고 튜브 안으로 물을 강한 압력으로 밀어 넣어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기법이다. 형태가 복잡해도 액압이 고르게 작용해 두께와 강도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용접 부위를 최소화할 수 있어 원가 절감은 물론 무게도 줄일 수 있다. 자동차의 엔진을 지탱하는 받침대를 예로 들면 원가는 15%, 무게는 25~30%까지 낮추는 게 가능하다. 자동차회사에 올해 10만여개의 부품을 공급키로 했다. 철강회사가 부품까지 만드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객이 원하는 최고 기술의 제품을 만들어야 세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우리의 노력이 결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중국 등 후발 주자의 추격이 거세다. 대응책은 무엇인가.

 상해보강 같은 중국 제철사는 ‘추월 POSCO'를 공개적으로 내세우고 역량을 강화할 정도다. 현재 가장 시급한 부분은 원가 경쟁력이다. 우리의 전략은 품목별 선택과 집중이다. 이를 통해 제품의 고급화,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국제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점 전략 제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고객 지향의 기술 개발 체제와 글로벌 연구 개발(R&D) 네트워크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