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본 시합을 앞두고 스파링이라도 하듯 부슬부슬 내렸다. 청량리쪽에서 양평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구리시는, 서울과 연결되는 경전철 개통 등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도시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빙그레 도농공장은 구리에서 양평 방면으로 가는 6번 국도에서 슬쩍 비껴난 곳에 있다. 공장쪽으로 들어가는 삼거리 이름이 ‘빙그레 삼거리’. 공장이 이 지역 터줏대감이란 사실을 짐작케 한다.
“본격 개발되기 전만 해도 이 인근에서 제법 눈에 띄는 건물은 도농 공장이 유일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쯤부터 급격하게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이제는 아파트 건물 숲에 가려 우리 공장이 이곳에 있는 줄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공장 주변이라 아파트가 없었는데 수년 전부터는 도로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더니 이제는 공장이 점차 아파트에 포위되는 형국입니다.”(권수득 생산부장.49세)
빙그레는 빙과류를 포함한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한때 라면 등에도 손을 댔지만 사업성이 악화된 후로는 경쟁력 있는 유제품 전문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다. 1974년 출시돼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투게더’, ‘바나나맛 우유’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떠먹는 요구르트 ‘요플레’, 메론맛 빙과의 신화를 이룩했던 ‘메로나’, ‘더위사냥’ 등의 대표적인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외부 손님이 공장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내놓는 상품도 빙그레 공장이 막 생산해 낸 이 같은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그 중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나나맛 우유’는 얼마 전 멸균 팩에 몸을 담고 미국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장승윤 홍보팀장에 따르면 “미국 교포들이 옛날 그 맛을 잊지 못해 미국에서도 맛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와 일정량을 보냈던 것. 항아리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로는 장거리 이동이 용의치 않아 궁리 끝에 멸균 팩에 담아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바나나도 아닌 바나나맛과 향이 첨가된 바나나맛 우유는 몽땅 팔려 나갔다. 장 팀장은 “정식 수출 루트를 통해 고정적인 미국 수출도 생각하고 있다. 멸균 팩 등 비용이 부담은 되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한껏 고무돼 있었다.
성수기엔 휴가증 반납하고 특근
아이스크림과 유제품 생산량은 각각 1124억원과 1253억원(2004년 기준)으로, 비율로는 47 대 53 정도. 계속되는 내수 경기 침체에도 최근 3년간의 생산량을 보면 2002년 2056억원, 2003년 2175억원, 2004년 2377억원으로 평균 7.6%의 안정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불황에 강한 업종’이란 사실이 수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이스크림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모양에 따라 바-튜브류, 콘류, 카톤류로 나뉩니다. 바-튜브류는 공장에서 ‘물뼈다구’라고 부릅니다. ‘캔디바’, ‘메로나’, ‘더위사냥’ 같은 제품이 여기에 속합니다. 나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막대기에 꽂거나 튜브 용기에 담는데, 우유가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공장에서는 ‘물뼈다구’라고 부릅니다.”
콘류는 원뿔 모양의 아이스콘을 말한다. ‘투게더’라는 상품명으로 더 익숙한, 떠먹는 아이스크림은 카톤류로 분류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으면 히트 상품으로 오랫동안 롱런도 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면 1~2년 안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 가지 제품이 맛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되기도 하기 때문에 도농공장에서 생산되는 빙과류는 바-튜브류만 20~30여 종에 이른다. 연간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스크림만 1년에 5~10가지. 신제품 개발은 제3공장 지역에 위치한 식품연구소가 담당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흔히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어 좋겠다’거나 더운 줄 모르고 지낼 거라고 부러워합니다. 성수기에는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하는데 다들 그런 생각으로 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 물론, 2차 동결 과정을 거치는 냉동 창고 근무자 같으면 한여름에도 최하 영하 40도 이하의 작업장에서 일합니다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온(常溫)에서 땀을 흘려 가며 일합니다. 자장면집 사람들이 날마다 자장면을 안 먹는 것과 같은 이치죠.”
도농동에 위치한 빙그레 1·2·3공장은 모두 합쳐 5만여㎡의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직원 수는 성수기 500여 명, 비수기 300여 명 선으로 탄력적이다. 계절에 따라 공급량 차이가 커서 성수기에는 12개 라인에서 하루 200만개 가량이 생산된다. 비수기엔 4분의 1 수준인 50만개의 생산량이 평균이다. 통상 5~9월이 성수기, 11~2월이 비수기, 나머지 기간은 준성수기로 구분된다. 생산량은 이 기간의 소비량 변화에 따라 조절된다. 도농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도에 공급된다.
아이스크림을 주로 생산하는 제2공장으로 들어가려면 알콜 세척과 에어 샤워가 필수다. 고무밴드가 들어간 둥근 모자와 흰 가운은 필수. 알콜 세척기에 손을 대자 알콜이 1~2초간 뿜어져 나온다. 식용으로도 가능한 에틸 알콜(주정)을 주류 회사에서 사온다고 했다. ‘주정(酒精)’에 물을 타서 쓰는데 현금을 줘야만 살 수 있을 만큼 비싸다. 장승윤 홍보팀장은 “식품 회사인 만큼 위생에 대한 집착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라고 회사의 위생에 대한 인식 상태를 설명한다. 생산과정에서의 작은 실수 하나가 제품 판매와 회사 이미지에 큰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위생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사안. 에어 샤워를 마치고 공장 안쪽 자동문이 열리자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음과 습도가 얼굴에 감겨왔다.
“최종적으로 얼리는 공정을 거치지만 재료를 살균하고 포장을 하는 공정처럼 열을 가하는 과정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덥게 느껴질 겁니다. 아이스크림은 통상 10개 정도의 공정을 거칩니다. 원료 배합→살균→균질→냉각→숙성→1차 동결→충전→포장→2차 동결→입고 순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답게 하는 핵심 공정으로는 ‘동결’ 공정이 꼽힌다. 배합과 살균을 거친 후 상온 상태에서 프리저(Freezer)라 불리는 동결기로 옮겨진 원료들은 콘이나 바 등으로 만들 수 있는 반고체 상태가 된다. 반고체 상태의 재료에 바를 꽂으면 ‘아이스바’가 되는 것이고 콘에 담으면 ‘아이스콘’이 되는 것이다. 동결기는 단순히 재료를 반고체로 만드는 기능 외에 또 다른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이른바 ‘오버런(Over Run)’이라 불리는 공정이다.
“재료에 공기를 불어넣어 공기기포가 아이스크림 내부에 형성되게 하는 겁니다. 부드러움의 차이, 실제 온도보다 덜 차게 느껴지는 건 바로 오버런 때문입니다.”
기포 주입은 고급 아이스크림의 경우 30%, 일반 아이스크림은 20% 정도가 가해진다. 기포 주입이 많을수록 먹을 때 부드러운 느낌이 좋다. 녹았던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려 먹었을 때 맛이 떨어지는 이유도 바로 ‘오버런’에 그 비밀이 있다.
“쇠를 만드는 공정처럼 아이스크림 제조 공정도 성수기에는 24시간 연속 생산 체제로 운영됩니다. 반고체 상태로 계속 작업을 해야 하는데, 설비가 서게 되면 동결기 안에 든 재료는 맛이 변해 모두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비가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항상 설비를 정비하고 점검하는 것이 제품 생산만큼이나 현장에서는 중요합니다.”(권수득 생산부장)
고객 요구 수준, 세계 톱클래스
공장에는 모두 27개의 현장 품질 관리 분임조가 있다. 통상 10~20명 안팎의 분임조는 자신들이 담당한 작업 공정에서 개선할 내용을 제안하고 관리하는 1차 책임을 진다. 고석봉씨(36)가 담당한 닥터분임조는 5년간의 품질관리 활동에서 27개 분임조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모범 분임조로 선정돼 수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품질 관리 활동을 통해 내 작업장이라는 애정도 더 생기고, 상금도 받으니 1석2조인 셈”이라고.
제2공장에는 ‘싸만코’, ‘캔디바’, ‘더위사냥’ 같은 제품들이 열병 중인 군인들처럼 종횡 대열을 갖춰 컨베이어 벨트로 운반되고 있었다. 1차 동결 후 포장지에 담긴 제품들이 향하는 2차 동결 공정은 급속동결실에서 이뤄진다. 한여름에도 최저 영하 40도, 평균 영하 20~30도를 유지하는 급속 동결실 근무자는 모자와 장갑은 기본에, 털 점퍼에 솜바지 차림으로 사시사철 근무한다. 급속 동결실 근무만 27년째인 김형기씨(51)는 “평생 이런 차림으로 근무해서 솔직히 여름이 더운지 잘 모른다”며 웃었다.
급속 냉각실 안의 온도는 평상복 차림으로 들어간 사람은 채 30초도 견디기 힘들 만큼 춥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저온에서 10시간 이상 얼려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아이스크림 제품으로 완성될 수 있다. 나선형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천천히 얼려져 가는 아이스크림 대오를 뒤로 하고 상온의 공장으로 다시 향하자 더운 공장 내 공기가 반갑게까지 느껴진다.
“각 공정별로 위생과 제품 규격별 하자를 검사하지만 최종 완제품도 24시간 동안 출고 대기 상태에서 검사를 받습니다. 통상 2시간에 한 번씩 샘플 검사를 하는데, 이상이 발생하면 같은 재료 배합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들은 전량 폐기합니다. 위생에 대해 요구하는 고객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지만 만드는 사람들도 자존심을 걸고 만들고 있습니다.”(오임택 생산 2팀장)
검사까지 마치고 이제 소비자를 찾아가기 전 창고에서 대기 중인 제품들을 만나기 위해 제3공장으로 이동했다.
“언제나 일정한 동결상태를 유지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출고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보통 우유는 새벽 전에 도착해야 하고, 아이스크림은 휴일에 수요가 많기 때문에 물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이뤄집니다.”
4톤 트럭 1대에 약 10만개의 바류 아이스크림을 실을 수 있다. 통상 하루 100대의 트럭이 도농공장에서 물건을 받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도로 향한다. 분주한 움직임은 성수기가 끝나는 9월말까지는 계속될 예정이다. 시원하게 무더위를 해소시켜 주는 아이스크림의 생산 공정에는 품질과 위생에 목숨을 거는 500명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다.
Plus INTERVIEW 윤정룡 빙그레 도농공장 공장장
“아이스 크림도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정성이 첫 번째 재료”
1952년생으로 54세인 윤정룡 공장장은 제일제당 출신으로 식품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식품인. 지난 봄부터 도농공장을 맡아 빙그레 간판 제품의 생산과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성수기·비수기에 따라 생산량과 투입 인력에 차이가 크다. 원료 수급이나 인력 조달에 어려움은 없는가.
“연간 계획에 따라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아이스크림은 아무래도 여름 한 철 장사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운 날이 많으면 잘 팔리고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판매량이 줄어든다. 날씨가 영업사원인 셈이다.”
아이스크림 중에 특히 히트 상품이 많다. 최근 히트 상품과 소비자들의 기호는 어떤가.
“웰빙 바람을 타고 고급 원료를 이용한 고급 제품이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나온 ‘요맘때’ 같은 제품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 공장은 유제품과 아이스크림을 함께 생산하는 설비를 갖춘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보다 확실하게 유리한 상황이다. 고급 생유를 원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의 품질 수준은 어떤가.
“과거엔 외국에서 기술을 들여와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일본 소비자보다 품질에 있어 더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느껴질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