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는 이제 크고 작은 행사의 단골 프로그램이 되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놀이는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을 준다. 순간의 예술 ‘불꽃놀이’에 휴일은 물론 가족도 잊은 사람들, 그 땀의 현장에 갔다.
 (주)한화의 인천공장은 한화그룹의 모태로 군사용은 물론 광산 및 각종 토목공사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이너마이트를 주품목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 공장 한쪽에 연화(煙花)사업부가 자리하고 있다.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30일, 연화사업팀은 다음날 개최될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전야제 막바지 준비로 부산했다.

 “오늘 재료들을 다 준비해 놓고 내일은 해상에서 하루종일 설치작업을 해야 합니다. 기초 재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지만 연화의 크기와 모양, 쇼의 진행 전 과정은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과정이 꽤 복잡합니다.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 한 발 한 발을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거든요.”(생산2부 김술환 부장, 49)

 생산2부 소속으로 연화팀을 맡고 있는 송호연(38) 과장은 국내외 주요행사의 불꽃놀이 축제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불꽃놀이에 관한 한 국내 일인자.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입사 이후 14년째 연화팀에서 불꽃놀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비교적 작은 체구인 그의 얼굴은 1년 내내 계속되는 현장근무로 검게 그을린 상태였다. 그는 “남들이 놀 때 주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다른 책임감 없이는 오래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연간 매출액이 20억원 정도 됩니다. 현재 연화팀은 모두 10명인데, 매출이나 이윤을 생각하면 결코 유지할 수 없는 조직이에요. 그러나 화약을 만드는 회사에서 사회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계속 운영하고 있는, 일종의 서비스팀입니다. 물론 완전한 공익사업은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이윤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니죠.”

 한화 인천공장은 약 72만4000평 부지 위에 위치해 있다. 위험천만한 화약을 주로 제조하는 공장인 만큼 공장 내부 건물과 건물 사이는 충분히 떨어져 있고, 그 공간을 울창한 나무들이 대신 메우고 있다. 내년 3월, 충정북도 보은으로 완전 이전이 결정된 인천공장은 50년 역사를 끝으로 아파트단지로 새롭게 변신하게 된다. 연화공정이 이뤄지는 공실(工室)로 이동하던 송 과장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화사업팀은 내년 1월까지 모두 이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슬레이트가 얹어진 1층짜리 오래된 벽돌건물에 도착하자 김윤배 계장이 취재진을 맞았다. 1978년 입사 이후 28년째 연화사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팀의 최고참인 그는 한화 연화사업팀의 역사이기도 하다. 김 계장의 주요 임무는 프로그램에 맞는 불꽃의 제작과 현장 설치. 송 과장은 “김 계장님 같은 분이 있어 아무리 큰 행사라도 차질 없이 치를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3명의 생산직원이 다음날로 예정된 행사에 쓸 연화 제작으로 분주했다.

 공정은 크게 디자인→연화 제작→현장 설치→발사로 이뤄진다. 디자인과 발사를 제외한 제작→현장 설치는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웃 일본만 해도 연화 제작은 전통적인 가내수공업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어요. 중국은 화약을 발명한 나라답게 오래 전부터 연화 제조가 이뤄져 왔지만, 연화기술은 세계적이라 할 수 없어요. 그 대신 재료는 무척 싸서 원재료는 대부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대량의 중국산 연화가 싼 가격에 들어오기 전인 1993년까지만 해도 한화 연화사업팀도 별도의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게 되어 원재료는 중국에서 수입하고, 디자인과 최종 연화 제작 및 설치에 필요한 10명으로 인원이 줄어든 것이다. 예산이나 인력은 줄었지만 불꽃놀이 수요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연화사업팀은 1년 내내 국내의 크고 작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다. “내일만 해도 아침부터 연안부두로 재료들을 싣고 나가 해상에 바지선을 띄워 놓고 포와 연화를 장착하는 작업을 하루종일 해야 한다”고 했다.

 원재료를 가지고 둥근 공 모양의 연화에 다양한 색상과 불꽃 모양을 내는 여러 종류의 화약을 채워 넣고 이를 도화선으로 연결한다. 다양한 시간차에 따라 불꽃이 연쇄폭발할 수 있도록 만든 도화선의 길이는 길거나 짧았다.

 “가장 먼저 불꽃놀이를 할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그 시간에 맞춰 연화를 준비합니다. 세계적으로 불꽃놀이에 음악을 맞추는 추세이기 때문에 주어진 불꽃놀이에 맞는 음악을 선정합니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 클래식부터 팝 음악까지 다양하게 쓰입니다.”

 음악이 선정되면 특수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의 강약과 시간을 뽑아낸다. 송 과장은 “귀로 듣는 음악을 악보로 그려내는 작업을 연상하면 된다”고 했다. 악보에 해당되는 음악의 강약을 보면서 어떤 시간대에 어떤 불꽃을 쓸지 전체적인 디자인을 한다. 연화사업부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엄소원(28) 대리는 홍익대학교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을 직접 표현하고 싶어 한화 연화사업팀에 입사했다.

 “행사 성격과 시간에 맞춰 음악이 선정되면 어떤 불꽃을 언제 쓸지를 결정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불꽃놀이 공연을 참고하기도 해요. 디자인이 끝나면 행사에 필요한 불꽃을 만듭니다. 디자인 작업은 모두 컴퓨터를 통해 이뤄집니다.”(엄소원 대리)

 불꽃은 강한 박자에서는 큰 불꽃이, 약한 박자에서는 작은 불꽃이 터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 번에 터지거나 큰 불꽃 안에서 작은 불꽃이 터지게 하거나 마치 불꽃이 흘러내리듯 하게 하는 등의 다양한 기술이 복잡하게 사용된다. 이 같은 ‘마술’은 화약의 종류와 성격, 그리고 도화선의 길이 등이 빚어낸 과학이다.

 “불꽃의 모양과 크기가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연화를 제작합니다. 포탄은 흔히 종이로 만드는데 ‘옥피’라고 부릅니다. 유럽에서는 플라스틱으로도 제조를 합니다. 라면상자를 만드는 재질의 종이로 옥피를 만드는데, 옥피를 두껍게, 혹은 얇게 하는 것으로 불꽃의 터지는 크기와 모양이 결정됩니다.”

 가장 흔히 보는, 국화꽃 모양으로 터지는 불꽃은 15번 정도 압축을 하고, 하늘에서 터진 뒤 흘러내리듯 작게 터지는 것은 압력을 약하게 한다. 송 과장은 “이때 화약을 소량을 넣는 것도 노하우”라고 귀띔한다.

 주재료인 화약은 흑색 화약이 주로 사용된다. 가격도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안정성도 겸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에 젖으면 불이 붙지 않기 때문에 행사 당일 비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를 점검하는 일이 제작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제조공정에는 20대 초반 남자 직원 3명이 행사에 쓰일 연화 제작에 몰두해 있었다. 특정시간대에 꼭 그 시간만큼만 터지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정 도중에는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김 과장은 연화 제작 전 과정을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는 일을 맡하고 있다. 그는 “요즘 힘든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없어서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남들 다 놀 때 일해야 하는 직업을 젊은이들이 기피한다는 것이다.

 제작이 완료된 연화는 도화선과 함께 비닐봉투에 넣어 일일이 봉했다. 비록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송 과장은 “이렇게 꼼꼼하게 방수장치를 해도 가끔 불량이 발생한다”고 했다. 흑색 화약이 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연화의 크기는 3, 4, 5, 6, 8, 10, 12인치가 보통 쓰입니다. 그 중 5~6인치짜리가 주로 쓰이는데 12인치는 큰 효과를 낼 때 사용됩니다. 한 발당 가격은 통상 1만~2만원 선이에요. 4~5분짜리 곡이라 할 때 보통 1분에 100발 정도 사용됩니다. 큰 행사에서는 20분 정도 불꽃행사를 하는데, 그럴 땐 약 2000발 정도가 소모되죠. 내일 행사에는 약 640발 정도의 연화가 사용될 예정입니다.”

 연화가 포탄이라면 연화를 쏘아올리는 추진장치는 포다. 한 발의 연화는 1문의 포에서 발사되므로, 640발의 불꽃을 쏘려면 640문의 포가 있어야 한다. 송 과장의 연화사업팀은 약 4만개의 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쇠로 만든 포로 구경이 50인치에 달한다. 지난 2004년 한화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김승연 그룹회장의 특별 지시로 만들어진 이 포는,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연화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에서도 48인치가 가장 큽니다. 48인치 불꽃이 터지면 1km 상공에서 약 400~500미터 가량 퍼집니다. 연화의 무게만 해도 500kg에 달해요. 불발이 되거나 오발이 되면 안전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거의 쓰지 않죠. 저희는 50인치 포와 연화를 만들어 시험발사에는 성공했는데, 행사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미루고 있습니다.”

 이튿날,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전야제 및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할 연화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작업현장 온도는 섭씨 30도를 웃돌 정도였다. 현장에는 연화팀의 홍일점인 엄 대리도 긴소매옷과 사파리 모자, 목장갑으로 중무장하고 나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화사업팀 역사 이래 여사원은 저 하나뿐이에요.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지금까지 여직원이 없었어요. 저도 작업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모르고 불꽃놀이의 화려함에 반해 지원했거든요.(웃음) 준비한 불꽃이 제 때 멋지게 터지는 걸 지켜보는 보람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어요.”

 연화 제조 과정은 물론이고 설치도 하나에서 열까지 직원들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그늘 한 점 없는 부두에서 폭발 위험을 안고 있는 연화와 포를 설치하는 직원들의 옷과 얼굴은 금세 땀으로 뒤범벅되었다.

 “처음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는 생산1부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불꽃축제를 보고 관심과 흥미가 생겨 연화사업팀으로 옮겨왔어요. 힘든 작업이지만 불꽃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고생한 스트레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져요.”(송만용, 25)

 오후로 접어들자 640개의 불꽃을 발사할 포가 바지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이 완료되자 가로 18m, 세로 50m의 바지선은 부두를 떠나 월미도 앞바다로 향했다. 이제 어두워지고 불꽃놀이를 알리는 신호가 오면 이들 불꽃이 화려하게 하늘을 장식하는 일만 남았다.

 연화사업팀에서 28년째 근무한 김 계장은 일에 대한 열정과 보람이 없으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어린이날, 애들 입학식·졸업식은 물론 크고 작은 가족 행사에도 거의 참석해 본 적이 없어요. 일 년 내내 주말에는 대부분 행사장에서 일해야 했으니까요. 지금까지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을 둔 송 과장도 아들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린다. 올 여름 ‘딱 한번만 수영장에 같이 가자’고 한 약속을 여름이 다 가도록 끝내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이런저런 근심과 미안함을 땀과 정성으로 빚은 연화가 불꽃으로 터질 때의 보람으로 잊는다.

 저녁 7시30분, 바다 건너 행사장에서 신호가 왔다. 송 과장은 점화스위치에 손가락을 얹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 이윽고 첫 불꽃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꽃이 되어 번쩍였다. 약 10분 동안 월미도 앞바다의 하늘 위에서는 형형색색의 불꽃이 음악에 맞춰 무수히 만개하고 사라졌다. 번쩍이는 불꽃을 올려다보는 연화사업팀원들의 미소 위로 가을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