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지난 상반기 68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기불황으로 가라앉은 내수시장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선 잇달아 내놓은 신차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더 컸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쌍용차를 인수한 상해기차집단고분유한공사(SAIC)가 뚜렷하게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쌍용차의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인가.
 10월13일 워커힐호텔에서는 소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인 액티언(Actyon)의 신차 발표회가 있었다. 박스형 차인 코란도의 후속 모델이라고 하지만, 쌍용차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형 SUV시장에 진입하는 첫 모델이다. 액티언은 차체는 SUV이지만, 디자인 스타일은 쿠페형이다. 새로운 개념의 SUV인 것이다. 액티언에는 쌍용차가 독자개발한 배기량 2000cc의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동급 차량 가운데 145마력으로 스포티지, 투싼의 115마력보다 월등히 앞선다. 쌍용자동차 직원들은 액티언의 성공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장환경은 만만치 않다. 올해 9월까지 국내 SUV 판매량은 약 16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량 줄었다. 반면 5인승 소형 SUV시장은 성장세에 있다.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 명성을 이어받은 뉴스포티지, 이 둘의 쌍둥이차인 현대자동차의 투싼이 소형 SUV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스포티지는 지난해 8월 출시 이후 7만대 이상 팔린 동급 최고 판매 실적의 차종이다. 현대차 투싼은 이런 스포티지를 지난 8월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1~9월 스포티지와 투싼의 판매량은 7만2161대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2% 늘었다.

 지난 6월 선보인 카이런의 중급 SUV시장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아의 쏘렌토가 가격 대비 품질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 SUV시장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전통의 싼타페가 버티고 있다.

 카이런의 판매 부진과 관련,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카이런은 판매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다”면서, “대우자판에서 의욕을 가지고 카이런을 판촉할 계획이었으나, 쌍용차가 공급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쌍용차 관계자는, “쌍용차가 2000년 대우계열사에서 분리, 채권단 관리 아래 들어가면서부터 쌍용차와 대우자판이 계약 관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찌 되었건 카이런은 소진관 사장 체제 아래서 개발이 진행된 차다. 연구개발 기간 30개월, 투자금액은 약 2500억원으로 금년도 하반기 판매 목표가 2만9000대이고, 내년은 7만대가 목표이다.

 신차 로디우스, 카이런의 연이은 판매부진으로 고전한 쌍용차는, 소형 SUV인 액티언마저 실패할 경우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의 모 간부는 “액티언이 실패한다면 대규모의 구조조정도 각오해야 된다”고 말했다. 물론 SAIC가 쌍용차 인수시 임직원들의 고용을 3년간 보장했지만, SAIC가 이를 지키려면 엄청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판매부진에 시달려 온 쌍용차의 딜러들은 잇단 신차 판매부진으로 동요 조짐을 보이면서도 액티언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액티언은 무쏘부터 디자인을 담당해 온 영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캔그린이 책임을 맡은 마지막 작품이다. 향후 나올 신제품들은 ‘이탈 디자인’에서 주도한다. 그 첫 번째가 BMW의 X5, 벤츠의 M클래스를 겨냥한 럭셔리 MPV이다.



 쌍용차 인수한 SAIC

 통칭 SAIC로 불리는 쌍용차의 새주인 SAIC Motor Co.,Ltd(상해기차집단고분유한공사)는 외형적으로는 경영에 깊이 개입하고 있지 않다. 쌍용차의 경영권이 SAIC에 넘어간 뒤 외형적으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경영진 10여명이 쌍용차에 머물고 있고, 회사가 금융권으로부터 차입을 하려면 고이자에 시달려야 했는데, 회사가 주인을 찾고부터는 평균금리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달라진 것뿐이다.

 쌍용차 직원들 사이에서 ‘회장님’으로 불리는 소진관 사장의 영향력 역시 여전하다. 지난해 말, SAIC와의 인수합병을 결정적으로 성사시킨 모 임원이 부상하는 듯하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SAIC는 국내시장 상황보다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소형승용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역시 SAIC가 인수한 영국 로버의 플랫폼을 활용해 쌍용차에서 어퍼바디(Upper body)를 개발해 얹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개발은 쌍용, 생산은 중국의 SAIC, 플랫폼 제공은 로버의 3자 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한다.

 SAIC의 소형승용차 개발과는 별개로 연초 중국에 진출한 쌍용차 중국 현지 판매법인(쌍용기차상해유한공사)은 2007년을 목표로 카이런을 완전조립(CKD)방식으로 중국에 출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외에는 SAIC가 제시한 뚜렷한 프로젝트가 없다. 지난 3월 소진관, 짱쯔웨이 공동대표는 “빠른 시일 내에 재정립된 중·장기 발전 전략을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한 뒤 7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SAIC는 쌍용차 인수 이후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 없었던 것 같다는 것이 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왜 인수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정부가 난립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을 정리하기 위해 독자모델을 가진 업체만을 집중 육성한다는 정책에 따라, SAIC가 손쉬운 해외 M&A 방식을 택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알려진 대로 SAIC그룹은 GM 및 VW(폴크스바겐) 등과 별도의 자동차 사업을 하고 있으며, 총 계열회사 수가 126개에 이르는 세계 자동차 생산 4위, 판매는 3위인 빅브라더이다. 7개의 완성차업체, 32개 부품업체, 9개 서비스업체, 3개 R&D업체와 합자 관계를 맺고 있다.

 SAIC는 외국의 다른 기업들처럼 경영권 인수 이후 업무파악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최초에는 통역 전문인력 2명만이 있었다. 쌍용 측 임원들과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국 금융기관 스탠다드 차타드가 제일은행을 뉴브릿지캐피탈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은행 본점에만 무려 25명의 전문통역 요원을 투입시킨 것과는 비교가 된다.

 SAIC 측은 쌍용차 인수 후 조직혁신팀인 PI(Process Innovation)팀을 외부 구조조정 전문 회사와 공동으로 가동했으나, 실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외부 용역회사인 ‘IBM컨설팅’과 쌍용차 IT 부문 중심의 개편안을 마련했으나, 막대한 재원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SAIC는 8월경 조직 및 인사 혁신을 하려고 했으나, 연말로 미루고 있다. 조직 및 개인의 평가는 철저하게 미국식의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원칙만 천명하고 있다. SAIC가 GM과의 사업을 통해 체득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주의국가의 국영기업이 미국식의 성과주의를, 인수한 해외기업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SAIC는 쌍용차 인수 후 중국 내에서 현대자동차와 도요타의 선전으로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고 있고, 쌍용차 역시 내수부진에 시달리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 상반기 쌍용차는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는 경비를 절반으로 줄였다. SAIC는 쌍용차 인수 후 대규모의 구조조정이나 경영 정상화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지난 1월 쌍용차의 인수자금으로 채권단에 5억달러를 지불한 이후, 별도의 투자자금을 투입하지 않았고, 향후에도 별도의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차 내에서는 쌍용차의 핵심 역량을 창원의 엔진공장으로 얘기한다. 1991년 쌍용차가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설립한 디젤 및 가솔린 엔진 공장이다. 커먼레일 Di엔진(2300cc)과 디젤터보 인터쿨러 엔진(2900cc), 가솔린엔진(2300, 2800, 3200cc) 등과 트랜스 액슬(axle), 리어 액슬 등 4륜 구동차 및 승용차용 핵심 구동장치를 생산하고 있으며, 총 36만대 생산 규모이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는 ‘메이드 인 저머니’(독일 내 생산) 전략에 따라 핵심기술인 엔진은 자국 내에서만 생산했다. 벤츠의 세계화 전략인 ‘메이드 바이 메르세데스 벤츠’(벤츠에 의한 생산)에 따라 해외에 엔진공장을 세운 곳은 한국이 최초이다.

 쌍용은 최초로 이전받은 엔진 설계 및 조립 개량 기술을 오스트리아의 엔지니어링 업체인 ‘AVL’사에 용역을 주어 해결하고 있다. 커먼레일 엔진 역시 그렇게 해결했다. 오토 트랜스미션은 지금도 벤츠사로부터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엔진과 트렌스미션의 마운팅 관련 기술 역시 벤츠로부터 이전받고 있다.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기계공업이 발달한 나라에는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용역업체들이 즐비하다. 현대차 역시 커먼레일 엔진기술의 독자개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이들로부터 기술을 도입했다.



 쌍용차의 지존, 소진관 사장

 소진관 사장은 1952년생으로 용산고를 거쳐 서울대 상대를 나왔다. 1986년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직후 마케팅 부장으로 와서 20년 세월을 쌍용에서 근무했다. 그동안 소진관 사장은 판매, 생산, 인사 등 사내 주요 부서들을 섭렵했다. 2000년 상무에서 전무,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장이 되었다.

 사장이 된 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 버스와 트럭 사업 부문을 포기했고, SUV 및 RV부문으로만 특화해 랙스턴 및 뉴체어맨 등 틈새시장을 노렸다. 은행 관리 아래 있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2001년 이후 4년 연속 흑자경영 달성과 부채비율 110%를 기록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 과정에서 채권은행들이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부채를 지분으로 전환시켜 주는 등의 경영 외적인 기여도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전임 사장이 온갖 비난에도 무릅쓰고 대규모 신차 투자를 결정해 일궈 낸 과실을 소 사장이 따 먹었다는 평가도 있다. 소 사장은 지난 5월, 제2회 자동차의 날 기념식에서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완성차업계 CEO로서는 드물게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소 사장에 대한 각종 비난의 소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딜러들은 판매가 악화되고 있는 데다 ‘소 사장 및 측근 임원들이 대치동, 분당 등 요지의 특정 딜러 및 자동차정비사업소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소문에 불과할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쌍용차의 중국 매각이 기술 유출 및 부메랑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소 사장은 “중국은 더이상 해외시장이 아니라 국내시장과 연결된 시장으로 봐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SAIC는 인수자금 외에 정상화를 위한 어떤 뚜렷한 투자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 들여올 신규자금 조달계획 역시 밝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