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탕과 같다. 달콤함에 빠져 자꾸만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화가에게 사랑은 하나의 작품과 같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듯이 화가는 새로운 사랑을 항상 품에 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잠재된 성적 욕망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20세기 대표적인 화가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가그렇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적 욕망은 출발부터 다르다.
섹스 탐닉가 피카소
피카소에게 사랑은 창의력의 수단이다. 그래서 그가 그린 여성 누드는 관능적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1881~1973)는 프랑스 파리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같이 하던 모델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그는 특히 ‘남근’이 발달해 섹스에 유난히 강했다. 피카소가 첫 번째로 사랑한 여인은 페르낭드다. 집에서 알몸으로 다녔던 페르낭드와 알몸으로 작업을 했던 피카소, 두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섹스를 탐닉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린 드로잉을 보면 얼마나 뜨겁고 정열적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피카소는 또 다른 여인 에바와 열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애인이자 피카소가 하는 모든 작업의 후원자였던 그녀는 병으로 죽어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나고 만다. 이때 피카소의 작품은 침울한 청색시대를 빠져나와 장밋빛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피카소에게 나타난 여인은 러시아의 발레리나인 올가다. 사교성이 뛰어난 귀족 혈통의 그녀에게 매료당한 피카소는 그녀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한다. 하지만 올가의 출산으로 인해 피카소의 성적 관심은 멀어지고, 질투가 심한 그녀는 그를 자유분망한 생활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애쓴다. 삶의 방식이 달랐던 그들의 결혼생활은 파경으로 치달았지만, 피카소는 위자료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는다.
“나는 피카소라고 하오. 당신과 나는 앞으로 굉장한 일을 하게 될 거요.”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17살의 여인 마리 테레즈를 보고 반한 피카소는 아내 올가 모르게 사랑을 키워 나간다. 30년 연상인 피카소는 그녀를 독점했다. 그러나 마리 역시 아이를 출산하는 사이 열정이 식어 버린 피카소는 또 다른 여인을 만난다.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다.
올가, 마리, 도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의 중심에 서 있던 피카소에게 새로운 여인이 등장하게 된다. 후랑소와즈 지로다. 다른 여인들처럼 피카소에게 매달리기 싫어했던 자립심이 강한 그녀였지만, 피카소의 집요한 유혹으로 만난 지 3년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피카소는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갖는 일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딸을 낳았지만, 피카소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을 느껴 그녀 스스로 피카소를 떠난다. 올가가 병사를 하자, 피카소는 자신을 버린 유일한 여인 지로에게 복수를 한다.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그녀를 이혼하게 만들고는 언론을 통해 마지막 여인 재클리느와 결혼 발표를 했던 것. 말년에 피카소를 따뜻하게 보살핀 여인 재클리느는 독점력이 강해 다른 여인들과 만남을 통제했다.
화가에게 멈춤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피카소에게 사랑은 그림의 연장선에 있었다.
성불능자 달리
미술사상 가장 스캔들이 많았던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충격적인 행위를 좋아했고, 사람들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다르게 그는 정력과는 거리가 먼 성불능자였다.
달리는 평생 동안 성적인 욕구가 일 때마다 자위행위를 했고, 그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는 오르가즘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내포하는 작품을 많이 제작한다.
여자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성적 호기심이 컸던 어린 시절에 이미 자신의 불능을 알게 되었던 달리는 파리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 갈라를 만난다. 친구의 아내였던 갈라는 달리의 이상형이었다. 갈라와의 만남에서 운명을 느끼게 된 달리는 그녀에게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그녀야말로 나를 치유해 줄 것이다.”
이때부터 갈라는 달리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의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치유한 것은 그녀였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하지 못했던 고백서>에서 “나는 내가 남자임을, 그 동안의 공포와 불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기분을 가졌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녀에 대한 달리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달리의 그림을 보면 성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과 다르게 달리는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지 못했다. 성불능이라는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갈라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다른 애인을 만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달리에게 갈리는 예술적 영감의 근원지였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날이 선 칼같이 그의 폭발적인 그림의 세계와는 다르게 달리의 성격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 뒤에 숨어 있던 도전적인 태도는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광기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내면세계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해방시켜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괴이한 행동은 비상함 속에 감추어진 끊임없는 욕망을 내재하고 있으며, 달리의 몽환적 예술세계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신앙, 전설, 꿈, 영웅들을 매도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
피카소에게 사랑은 창의력의 수단이다. 그래서 그가 그린 여성 누드는 관능적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1881~1973)는 프랑스 파리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같이 하던 모델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그는 특히 ‘남근’이 발달해 섹스에 유난히 강했다. 피카소가 첫 번째로 사랑한 여인은 페르낭드다. 집에서 알몸으로 다녔던 페르낭드와 알몸으로 작업을 했던 피카소, 두 사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섹스를 탐닉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린 드로잉을 보면 얼마나 뜨겁고 정열적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피카소는 또 다른 여인 에바와 열렬하게 사랑을 나눈다. 애인이자 피카소가 하는 모든 작업의 후원자였던 그녀는 병으로 죽어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나고 만다. 이때 피카소의 작품은 침울한 청색시대를 빠져나와 장밋빛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피카소에게 나타난 여인은 러시아의 발레리나인 올가다. 사교성이 뛰어난 귀족 혈통의 그녀에게 매료당한 피카소는 그녀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한다. 하지만 올가의 출산으로 인해 피카소의 성적 관심은 멀어지고, 질투가 심한 그녀는 그를 자유분망한 생활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애쓴다. 삶의 방식이 달랐던 그들의 결혼생활은 파경으로 치달았지만, 피카소는 위자료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는다.
“나는 피카소라고 하오. 당신과 나는 앞으로 굉장한 일을 하게 될 거요.”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17살의 여인 마리 테레즈를 보고 반한 피카소는 아내 올가 모르게 사랑을 키워 나간다. 30년 연상인 피카소는 그녀를 독점했다. 그러나 마리 역시 아이를 출산하는 사이 열정이 식어 버린 피카소는 또 다른 여인을 만난다.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다.
올가, 마리, 도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의 중심에 서 있던 피카소에게 새로운 여인이 등장하게 된다. 후랑소와즈 지로다. 다른 여인들처럼 피카소에게 매달리기 싫어했던 자립심이 강한 그녀였지만, 피카소의 집요한 유혹으로 만난 지 3년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피카소는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갖는 일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딸을 낳았지만, 피카소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을 느껴 그녀 스스로 피카소를 떠난다. 올가가 병사를 하자, 피카소는 자신을 버린 유일한 여인 지로에게 복수를 한다.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그녀를 이혼하게 만들고는 언론을 통해 마지막 여인 재클리느와 결혼 발표를 했던 것. 말년에 피카소를 따뜻하게 보살핀 여인 재클리느는 독점력이 강해 다른 여인들과 만남을 통제했다.
화가에게 멈춤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피카소에게 사랑은 그림의 연장선에 있었다.
성불능자 달리
미술사상 가장 스캔들이 많았던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충격적인 행위를 좋아했고, 사람들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다르게 그는 정력과는 거리가 먼 성불능자였다.
달리는 평생 동안 성적인 욕구가 일 때마다 자위행위를 했고, 그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는 오르가즘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내포하는 작품을 많이 제작한다.
여자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성적 호기심이 컸던 어린 시절에 이미 자신의 불능을 알게 되었던 달리는 파리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 갈라를 만난다. 친구의 아내였던 갈라는 달리의 이상형이었다. 갈라와의 만남에서 운명을 느끼게 된 달리는 그녀에게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그녀야말로 나를 치유해 줄 것이다.”
이때부터 갈라는 달리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의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치유한 것은 그녀였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하지 못했던 고백서>에서 “나는 내가 남자임을, 그 동안의 공포와 불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기분을 가졌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녀에 대한 달리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달리의 그림을 보면 성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과 다르게 달리는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지 못했다. 성불능이라는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갈라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다른 애인을 만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달리에게 갈리는 예술적 영감의 근원지였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날이 선 칼같이 그의 폭발적인 그림의 세계와는 다르게 달리의 성격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 뒤에 숨어 있던 도전적인 태도는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광기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내면세계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해방시켜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괴이한 행동은 비상함 속에 감추어진 끊임없는 욕망을 내재하고 있으며, 달리의 몽환적 예술세계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신앙, 전설, 꿈, 영웅들을 매도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