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당시 2900억원에 불과하던 STX를 강덕수 회장은 단 5년 만에 무려 6조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웠다. STX그룹은 5년 새 4개의 회사를 설립하고 3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매출은 20배, 자산규모는 10배로 각각 성장했다. 올해는 8조1000억원의 매출과 경상이익 4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지난 5년간 펼쳐진 STX그룹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면 그의 경영스타일인 속도경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뒤처지다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내외 환경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기 때문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는 강 회장의 평소 지론처럼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과 이에 기반을 둔 STX그룹의 성장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2001년 인수한 STX조선의 경우 경영정상화를 조기에 이루어내고 불과 2년 만에 거래소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도, 17년간의 법정관리를 끝낸 STX팬오션을 국내 기업 최초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것도 모두 속도경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빠르다는 것만으로 지금의 STX그룹을 설명할 순 없다.
바로 곁눈질하지 않고 해운·조선·에너지 전문기업으로서 한우물만 파겠다는 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오늘의 STX를 만든 원동력이다. 이는 강 회장이 오랜 기간 동안 구상해 온 사업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동안 무수한 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에만 급급하다 사라져간 것과 비교하면 STX그룹의 미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강 회장도 최근에는 숨고르기에 나섰다. 그는 올 초 신년사를 통해 2006년 그룹 운영방향을 ‘균형성장’으로 설정하고 그룹 전체의 내실 있는 균형발전을 최우선 경영과제로 실천해 갈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STX그룹은 그동안의 급속한 성장에서 잠시 숨을 고를 것으로 전망된다.
‘멸치와 가물치론’의 경영철학
잠시 숨고르기에 나섰지만 그의 리더십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평가다. 강 회장은 리더로서 솔선수범을 중요시 한다. 이것이 직원들을 열정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발휘한 사람은 연령과 출신에 관계없이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중용하고 권한을 부여한다. 물론 이와 함께 책임도 강조한다. 또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서울에서 싱싱한 멸치회를 맛보려면, 가물치 몇 마리가 꼭 필요하다. 멸치란 놈은 성질이 급해 이동하는 과정에 대부분 죽어버린다. 그렇지만 가물치 한 마리만 수조에 풀어 놓으면, 바닷가에서 서울까지 옮겨와도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강 회장은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강인한 핵심인재가 필요하다고 항상 말한다. 좋은 인재는 잘못된 전략조차 좋은 효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은 좋은 전략조차 실패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동안 강 회장의 이력에서도 이 같은 지론은 드러난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어떤 일이든 스스로 오너라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일해 왔다.
“일에 있어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신명나게 일하면 건강도 좋아진다. 하지만 일 중독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일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일하면서 사는 것이고 일을 취미로 만들면 자연히 성과가 생기고, 성과가 나면 여유가 생기며 인생을 즐길 수 있다.”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한 일처리로 쌍용중공업 전무자리까지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 쌍용그룹이 몰락하면서 당시 쌍용중공업의 대주주였던 한누리컨소시엄은 자신들을 대신해 회사경영을 맡아줄 적임자로 강 회장을 택했다. 그는 2000년 11월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강 회장은 이때 받은 스톡옵션과 평소 모아둔 자금 등을 동원해 한누리의 지분을 매입, 최대주주가 됐다.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그는 2001년 5월 사명을 STX로 바꿨으며, 이후 대동조선(현 STX조선),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등을 잇달아 인수해 화제가 됐다.
그를 따라다니는 ‘샐러리맨의 신화’, ‘M&A의 귀재’라는 수식어는 이때 등장한 것이다. 현재 그는 10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STX그룹의 CEO 위치에까지 올랐다.
특히 재계는 강 회장의 M&A 능력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그는 2004년 금호를 제치고 STX팬오션을 인수했으며, 지난해 10월말에는 1600여억 원을 투입해 대한통운 지분 21.3%를 사들여 인수전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조선·물류·해운·에너지가 그의 M&A의 주요 흐름임을 알 수 있다.
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은 기업을 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쌍용중공업을 부실기업이라고 모두 외면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해 인수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강 회장의 M&A 철학은 ‘가치경영’.지난해 10월 STX팬오션 중국 상하이법인 설립식에서 그는 “매물로 나온 것을 M&A했을 뿐, 잘하고 있는 기업을 공격한 적은 없다”며 “기업 사냥꾼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돈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인수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인수 후 가치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STX그룹에 시너지가 된다면 투자를 왕성히 할 것이라고 밝혀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속공과도 같은 M&A 일정이나 방침은 경영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 강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중심의 속도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현장을 알아야만 기업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며 한 달의 대부분을 진해 조선소, 창원 엔진공장 등에서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STX팬오션의 해외법인을 연이어 직접 방문해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현장을 알아야 속도경영을 할 수 있다. 현장흐름을 알고 무엇을 뒷받침해야 할지 파악해야 빠르게 전략을 세우고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쌓아온 오랜 현장경험을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강 회장의 현장중심 경영은 회사와 직원이 하나 되는 STX 고유의 상생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강 회장은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차별을 두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는 평소 “종업원이 잘 살아야 회사가 잘 된다”며 “종업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줘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강 회장은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인력감축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노조 때문에 사업 못한다는 말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력조정 대신 영업활성화와 재무구조 개선, 해외시장 개척과 확대 지향적 경영을 통해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집에 회장 명의 화분 보내
강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매섭기로 소문나 있으나, 그 속엔 오히려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있다는 게 내부의 시각이다. 그는 신입사원 전체를 면접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000여 명이 넘는 신입사원 면접을 일일이 치렀다고 한다.
“신입사원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강 회장은 해마다 신입사원들과의 대화시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STX그룹이 월드 베스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신입사원들의 창의와 도전정신, 글로벌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입사원을 애지중지하는 강 회장의 스킨십경영과 감성경영도 눈길을 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2월초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해신(海神) 챌린저 글로벌 워크숍’에 직접 참석했다. 또 최종 합격한 신입사원 전원의 가정에 그룹회장 명의로 ‘입사 축하 화분’을 전달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미래의 신 성장 동력 구축과 지속가능경영의 실현이 우수한 인적자원 확보 및 육성을 통한 인재경영에서 출발하며 창의와 도전정신을 갖춘 직원이 곧 STX의 경쟁력임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강한 인재들이 모인 강한 조직만이 활력 넘치는 기업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만 하면 무조건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경영목표와 지향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인재의 발굴이나 무리한 육성전략은 오히려 회사발전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인재경영에도 전략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그는 인재들이 창의와 도전 정신을 갖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 조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개인은 그 속에서 자신의 인적 파워를 최대한 계발해 다시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상호 간에 윈-윈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STX그룹은 지금까지의 결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수직계열화’, ‘속도경영’, ‘상생경영’ 등으로 대변되고 있는 STX그룹의 성공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STX그룹 각 계열사는 연관사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사업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 국내 1위가 아닌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월드베스트 기업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STX그룹은 지난해 2010년 매출 15조원을 달성해 세계일류기업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확정했다.
이를 위해 STX그룹은 해운·물류, 조선·기계, 에너지·건설 등 3대 전략사업 부문의 균형성장을 도모하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지속적인 캐시카우 모델을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출범한지 5년밖에 안된 젊은 그룹 STX의 미래 청사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강 회장은 2010년 ‘매출 15조원, 세계 5대 선사, 세계 5대 조선소, 3대 엔진메이커 실현’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10년 비전 달성을 향해 힘찬 돛을 올리고 있는 STX호. 한편에서는 강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경영스타일을 통해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하면서 오너에 집중된 지배구조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도 있다. 베테랑 선장 강덕수 회장의 리더십이 이끌어갈 STX호의 항로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