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배우뿐 아니라 많은 소품들이 함께 등장한다. 이 소품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한다. 거의 모든 영화에 자동차가 등장하는데, 자동차가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나 심리·성격을 대변하는 훌륭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자동차가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10편을 골라봤다. 영화로서도 훌륭하지만 그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가 무슨 차인지, 영화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주인공의 성격과 어떻게 비슷한지, 배경과는 잘 맞아떨어지는지 이해하고 본다면 영화의 재미가 훨씬 커지지 않을까?

Auto 01 

<크래쉬>의 링컨 내비게이터

LA라는 미국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실상과 상처를 그렸다. 영화는 우리의 무의식 혹은 현실에 연관된, 그러나 밖으로 끌어내기 쉽지 않은 편견, 불만, 분노, 폭력을 화면 가득 쏟아낸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처럼 별 상관없어 보이는 각각의 인물들이 결국에 전부 조응하게 되는 방식과 비슷한데, 그 짜임새가 예사롭지 않다. 샌드라 블럭, 맷 딜런, 라이언 필립, 브랜든 프레이저, 탠디 뉴튼 같은 호화배역들이 마치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처럼 다양하게 등장하는 모습도 이채롭다.

영화 초반부에 백인과 흑인간의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소품으로 자동차가 등장한다. 백인 검사 부부가 타고 가다가 강탈당하는 차, 경찰에게 치욕을 당하는 흑인 프로듀서 부부가 타는 차가 링컨 내비게이터다. 내비게이터는 포드의 고급차 브랜드인 링컨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큰 고급 SUV이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함께 돈 많은 흑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영화 속에서 성공한 흑인 프로듀서 부부가 파티에 다녀올 때 사용하는 차로 등장하고 있는데, 검은색 내비게이터는 실제 그런 용도로 즐겨 사용된다.

차체 길이가 5.6미터에 이를 만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V8 5.4리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어우러져 엄청난 차체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Auto 02

<엘리자베스 타운>의 머큐리 그랜드 마퀴스

버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로맨스를 그린 <엘리자베스타운>은 아버지 그리고 자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랑에 관한 일종의 성찰을 담은 영화다. <제리 맥과이어>, <올모스트 페이머스> 같은 영화에서 탁월한 이야기 실력을 보여줬던 감독 카메론 크로우는 이번엔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로맨스영화를 완성했다. <반지의 제왕>의 꽃미남 올란도 블룸과 <스파이더맨>의 여주인공 커스틴 던스트 콤비가 이루는 사랑 이야기도 풋풋하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최고작이라 할 순 없지만, 특히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꼭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잡는데 큰 도움을 준다.

공항에 내린 주인공 드루가 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엘리자베스타운으로 향할 때 렌트하는 자동차가 머큐리 그랜드 마퀴스다. 머큐리는 포드의 여러 브랜드 가운데 보수 중산층이 즐겨 타는 차종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 대형 세단에 해당하는 모델이 바로 그랜드 마퀴스다. 포드의 고급차 브랜드 링컨의 타운카와 기본 차체는 같지만, 타운카가 좀 더 고급이다.

머큐리 그랜드 마퀴스는 링컨 타운카 뿐 아니라, 미국 경찰차로 즐겨 사용되는 크라운 빅토리아와도 플랫폼을 공유한다. 다소 구식이지만, 넉넉한 배기량의 엔진과 큰 차체를 지닌 이 미국적인 대형세단을 원하는 이들이 아직은 꽤 존재하는 편. 영화 속에서처럼 미국의 드넓은 도로를 여행할 때 한번쯤 타 봐도 괜찮을 것 같다.

Auto 03

<박치기!>의 혼다 라이프

2004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박치기>는 1960년대 재일교포 고교생들과 일본 고교생들의 대립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담긴 우정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제작자가 재일교포 이봉우인 것을 빼면 거의 모든 출연·스텝진이 일본인이지만, 당시 재일교포 사회가 느꼈을 법한 차별과 분노, 어린 학생들 눈으로 본 일본사회의 완강한 고정관념 등이 강렬하게 묘사돼 있는 게 놀랍다. 오다기리 조와 사와지리 에리카 같은 현재 일본에서 잘 나가는 남녀 청춘스타를 보는 것도 큰 재미다.

영화 마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두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차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 1970년대 일본의 유명한 경차중 하나인 혼다 라이프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생산됐는데, 이전 혼다 경차를 대표했던 N360, N600(1967~1972년)의 후계차다. GM대우 마티즈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로, 공차중량이 520kg밖에 안 된다. 356cc 엔진을 얹어 8000rpm이라는 고회전에서 최고출력 30마력을 낸다.

영화에 라이프가 등장하는 것은 고증 차원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 시대배경은 1968년인데, 1971년 6월부터 발매된 라이프가 등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라이프는 1974년 단종 됐다가 1997년 같은 이름을 가진 5도어 다목적 소형차 스타일의 자동차로 부활한다. 2003년에 모델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일본서 월평균 1만대 이상 팔릴 만큼 인기가 높다.

Auto 04

<이터널 선샤인>의 도요타 카롤라

랑스러운 연인과 근사한 저녁을 먹은 뒤 즐길만한 영화는 아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난 뒤 단체관람용으로도 별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뭔가 허전하게 비어있을 때, 봄날 저녁의 기운이 스산하고 퇴근했는데 딱히 술 한잔할 친구가 없을 때, 조용히 음미해볼만한 영화 한편으로 추천한다.

영화는 ‘자신의 기억 중에서 아프고 괴로웠던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결국 아픔과 상처로만 남아있는 사랑도 인생의 한 부분이며 그 사랑은 물리적 기억을 지우더라도 가슴에 남아있다는 얘기. 코미디 배우 짐 캐리의 기막힌 내면연기의 변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등 할리우드의 젊은 스타들의 연기력 대결을 보는 것도 즐겁다.

영화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러나 주인공의 성격과 상태를 잘 반영하는 자동차 소품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 조엘(짐 캐리)이 운전하는 차 도요타 카롤라다. 북미시장에서 도요타 카롤라나 혼다 시빅은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못한 대학생들이나 젊은 회사원들이 많이 탄다. 대학 캠퍼스에서 많이 보이는 시빅이 조금은 발랄한 이미지라면, 카롤라는 좀 개성 없고 무던한 느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차는 1995년 처음 나온 8세대 모델로, 고장 적고 잘 달리고 기름 덜 먹는 일상용차로는 최고다. 국내에서라면 온갖 고급 편의장치를 달아놓았을텐데, 조엘이 모는 카롤라의 경우는 손으로 핸들을 돌려 앞 유리를 내리는 장면이 나올 만큼 편의장비가 거의 없다. 참고로 국내 소형차들은 대부분 앞뒤 유리창 모두 전동식. 사실 국내 차량들의 편의사양이 과잉인 것이지만, 앞 유리창을 돌려서 여는 영화 속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Auto 05

<도쿄 타워>의 시트로엥 C3

물한 살 청년과 마흔한 살 유부녀의 사랑. <도쿄 타워>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설정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원작자로 국내에 알려진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기혼녀들의 숨겨진 욕망과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내는 대사들이 꽤 매력적이다.

영화에서 키미코와 코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지하주차장에서 키미코가 모는 차를 코지가 대신 주차해주면서부터다. 이때 키미코가 모는 차로 프랑스산 소형차인 빨간색 시트로엥 C3가 등장한다. 프랑스 1위의 자동차회사인 푸조-시트로엥(PSA) 그룹중 시트로엥을 대표하는 소형차로, 푸조 206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형 해치백이다.

프랑스인이 만든 차답게 디자인이 귀여우면서도 꽤 우아하다. 영화 속 C3는 그중에서도 지붕 전체가 유리로 돼 있는 옵션 차량인데 일본차와는 다른 세련된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또 디자인이나 편의장비가 여성취향이라 전체 구매자의 60~70%가 여성 고객이라고 한다. 자신의 개성이나 욕망을 드러낼 수 없는 주부 키미코가 조금이라도 남과 달라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표출하기 위해 선택한 차가 빨간색 C3가 아니었을까.

Auto 06

<인 굿 컴퍼니>의 포르쉐 911 카레라

욕의 직장 풍속도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사전통보도 없이 수십 년 일 해온 직원을 해고하고, 해고된 당사자는 곧바로 짐을 싸 나가버린다. 쉰을 넘긴 잡지사 광고책임자인 댄 포먼(데니스 퀘이드)은 곧 늦둥이가 생기는데다 큰 딸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로 편입하겠다고 우기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구조조정한 데다 자신은 좌천된다. 게다가 아들뻘 되는 26살 청년 카터가 그의 보스로 부임한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처자식 먹여 살릴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가장의 모습은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영화는 좌천당한 중년과 출세지향의 청년이 한 직장에서 역전된 상하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교감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세계적 흐름이라는 능력중심 인사시스템과 비정한 인수합병 풍속도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는데, 직장사회의 이런 비인간성을 꼬집는 쾌감이 영화에 담겨 있다.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주인공 카터는 잡지사 광고책임자로 부임한 뒤 곧바로 포르쉐 911을 뽑는데, 이는 열심히 일 해온 자신에게 내린 일종의 포상이자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그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911 카레라는 포르쉐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모델인 911 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모델. 우리가 ‘포르쉐’ 라고 했을 때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모델이다. 카레라는 스페인어로 경주(Race)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포르쉐는 성공을 향한 남자의 질주본능을 대변하지만, 그렇다고 포르쉐처럼 근사한 차를 모는 영화 속 주인공들 모습이 항상 행복해 보이는 건 아니다. 주인공 카터 역시 마찬가지다.

Auto 07

<우주전쟁>의 EF쏘나타, 포드 머스탱,

크라이슬러 미니밴


H.G. 웰스가 1898년 출간한 동명 과학소설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한 <우주전쟁>은 기본적으로 재난영화이면서 가족영화다. 스필버그는 ‘생존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엄청나게 큰 사건에 대항하는 인간 본성의 기본적 요소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처음 등장하는 차는 주인공 레이(톰 크루즈)가 타는 1960년대 후반 연식의 포드 머스탱이다. 항구의 컨테이너 하역기사로 일하는 주인공의 지위로 볼 때 적절하지 않은 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정도 연식의 포드 머스탱은 거의 골동품이어서 미국에서 최소 5만~6만달러는 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가 차를 대단히 좋아하고 기계적 지식도 매우 뛰어난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자동차 마니아 차원에서 이 차를 소유하는 게 이해는 된다.

다음 차종은 크라이슬러의 미니밴 보이저. 영화에 등장한 보이저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보이저 초기모델인데, 지금 봐도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스타일이 꽤 매력적이다.

머스탱과 보이저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리 아이아코카라는 미국 자동차 업계 영웅이 만들어낸 2개의 히트상품이라는 것. 머스탱은 1960년대 포드를 이끌던 아이아코카가 만들어냈다. 이후 포드에서 불명예스럽게 축출된 뒤 크라이슬러 CEO로 자리를 옮긴 아이아코카는 1983년 또 하나의 히트상품을 터뜨리는데 그게 바로 미니밴 보이저다. 두 번째는 미국의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차종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 머스탱은 젊은이들이 꿈꾸는 스포츠카의 표상이었다. 1980년대 미니밴은 일본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메이드 인 USA’의 대표선수였다.

영화는 9·11 테러 이후 외부 공격에 극도로 민감해진 미국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머스탱과 보이저 미니밴은 미국의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소품 같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레이가 외계인과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외계인이 쏜 광선에 맞아 산산이 부서지는 차가 현대 EF 쏘나타이고, 추락한 항공기 잔해에 깔려있는 차는 벤츠 E클래스다.

Auto 08

<씬 시티>의 페라리 F348 GTS

국의 유명 만화작가 프랭크 밀러의 동명 만화를 영상으로 옮긴 <씬 시티>는 ‘죄악의 도시’에서 자기들 방식으로 정의를 지키고 싶어 하는 3명의 소외된 남자들 얘기다. 흑백 톤의 어두운 영상과 과장된 캐릭터·액션이 미국만화를 보는 듯하다.

‘씬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등장하는 경찰관들 복장이나 차량들 모델의 연식으로 볼 때 1950년대 미국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1950년대 미국을 달렸을만한 GM, 포드, 크라이슬러, 재규어 같은 차들이 고루 등장한다.

영화 끝부분에서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이 낸시(제시카 알바)와 함께 머물던 호텔에서 차를 훔쳐 타고 갈 때 페라리 F348 GTS가 등장한다. 1950년대 미국 차들과 1989년에 첫 등장한 페라리 F348이 공존하는 것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명백한 증거다. 페라리 특유의 다리 5개짜리 알로이휠을 썼는데 톱날 모양의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F348의 바퀴에서도 이 오리지널 알로이휠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쿠페인 F348, 타르가톱인 F348 GTS, 컨버터블인 F348스파이더가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차량은 지붕만 따로 떼어낼 수 있는 타르가톱 모델 F348 GTS다.

Auto 09

<인사이더>의 아우디 A4

화는 공익과 개인의 안위 사이에서 고통 받는 주인공 모습을 통해 인간이 지닌 용기와 의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또 그 용기를 실천하는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3대 담배회사 브라운&윌리엄슨의 부사장이었던 제프리 와이갠드(러셀 크로우)는 업무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그러나 그가 밀려난 데는 딴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담배회사는 담배를 많이 팔려고 인체 내에 니코틴 흡수를 촉진시키는 암모니아 화합물을 집어넣어 왔는데, 흡연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암모니아 화합물을 첨가해온 회사의 행위를 그가 지적했다가 보복해고당한 것. 회사 조치에 분노한 박사는 비밀엄수 서약을 어기고, 방송에 출연해 담배산업의 비리와 부도덕성을 국민에게 알리기로 결심한다.

대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와이갠드의 외로운 투쟁에서 박사와 함께 하는 중요한 소품이 있는데, 바로 그가 모는 자동차 아우디 A4다. 1994년 데뷔한 아우디 A4 시리즈는 벤츠 C클래스, BMW 3시리즈 같은 동급의 독일 중소형세단에 비해 좀 더 정통적이고 차분한 스타일을 하고 있지만, 품질이나 주행성능에서는 어떤 독일 차에도 뒤지지 않는다. 영화 속 A4는 현행 A4의 두 세대 전 모델로 1994년 데뷔해 2000년까지 생산됐다.

박사의 은색 아우디 A4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결코 버리려 하지 않는 그의 굳은 의지와 무척 잘 어울린다. 보기엔 얌전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한번 가속페달을 밟으면 중급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공격적인 드라이빙이 가능한 이 차의 특성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빼닮았다. 반면에 그를 쫓아낸 담배회사 쪽 사람들은 모두가 널찍한 검은색 대형 미국세단을 타는데, 이런 모습은 담배회사의 멤버들이 모두가 한통속이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으며 기존 관행에 안주하는 부류라는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해준다.

Auto 10

<미션 임파서블3>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미션임파서블1>에서 첨단과학을 활용해 임무를 완수하는, 그러나 고뇌하는 젊은 요원이었던 이단 헌트(톰 크루즈). 홍콩 느와르의 대부 오우삼 감독의 2편에서는 쌍권총을 들고 공중을 날더니, 3편에서는 초특급 원맨쇼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바티칸 내부, 체사피크만 다리, 상하이 고층건물 등을 돌며 만들어내는 액션 영상이 빼어나지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액션들은 장소만 다를 뿐 새로움이나 상상력이 부족하다. 첩보, 액션, 음모, 서스펜스, 로맨스 모든 면을 건드렸으나 남는 건 이전 영화에서 봤던 액션의 확장 그리고 초강력 슈퍼스파이로 돌아온 톰 크루즈의 일인 활약상뿐이다.

액션이 주력인 만큼 멋진 자동차가 볼거리로 쏟아진다. 그중 최고는 바티칸궁에 들어갈 때 여자요원이 타고 들어가는 오렌지색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다. 페라리와 함께 이탈리아 슈퍼카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람보르기니의 간판급 차종 무르시엘라고를 약간 작게 그리고 ‘저렴하게(미국에서 17만달러쯤 한다)’ 만든 차로 ‘베이비 람보르기니’라 불리기도 한다. 500마력짜리 V10엔진에 4륜구동방식.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하는데 4.1초 걸리며 최고속도는 시속 309km다. 영화에서는 엔진 등 주요 부품만을 빼낸 진짜 차가 폭파됐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헌트가 임무완수 뒤 구출될 때 타는 차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3’다. 1989년 처음 나온 디스커버리의 3세대 최신형. 사각형의 절제된 느낌을 살리면서도 뒤쪽을 비대칭으로 설계한 감각적 디자인이 일품이다. 또 체사피크만 다리에서 악당을 빼앗긴 뒤 여자친구를 구하러 갈 때 모는 검은색 컨버터블은 벤츠 CLK 카브리올레이고, 정보조직의 요원들이 타는 검은색 SUV는 링컨 내비게이터다.

plus tip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노턴 500 

르헨티나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9~1969)가 젊은 시절 남미 종단여행을 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두 젊은이가 큼지막한 모터사이클에 짐을 잔뜩 챙겨 싣고 대평원을 가르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흙먼지 잔뜩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일직선으로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엉덩이가 들썩일 만큼 신난다.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주는 수단으로 등장하는 게 바로 노턴(Norton) 500이라는 1939년식 중고 모터사이클이다. 자동차는 아니지만 세상에 어떤 영화 속 자동차보다도 관객의 ‘달리고 싶은 본능’을 자극한다.

주인공들이 여행에 나선 1952년 시점에서 볼 때 10년도 더 된 고물이지만, 낭만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고전적인 디자인과 혼다 류의 고회전 하이톤 엔진음 대신 밑바닥에서부터 훑고 올라오는 듯 한 우람한 배기음이 매혹적이다. 두 사람이 걸친 가죽재킷, 가죽헬멧과 선글라스도 남미종단이라는 무모하지만 근사해 보이는 여행과 잘 어울린다.

노턴 500은 20세기 중반 고성능 모터사이클 제작으로 이름 높았던 과거 영국 노턴사의 주력상품중 하나다. 500cc짜리 단기통 엔진을 달았으며, 당시 유명 모터사이클 경주였던 TT 경주에서 몇 번이나 우승해 명성을 떨쳤다. 영국은 체 게바라가 남미종단 여행을 떠났던 50년대 초반만 하더라고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일본제 모터사이클이 세계시장을 잠식하자, 영국 업체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 노턴 역시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데, 혁명을 향한 열정으로 넘쳤지만 결국 미완의 인물로 사라진 체 게바라의 인생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