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요지
건강관리 매일 체육관서 스트레칭, 수영
재임 시 가장 잘한 일 MS에 시정명령과 330억원 과징금 매긴 일
재벌관 경제 성장 기여 인정(공)/지배구조 개선 멀었다(과)
출총제 입장 순환출자 폐해 방지책 없는 폐지 반대/대체 입법 필요
국민+외환 합병 심사 전망 모르겠다/공정위
판단은 옳을 것
한·미FTA 찬반 찬성/국민 설득 필요
성장론 대 분배론 균형이 중요/그런 논쟁은 아마추어나 하는 일
경기부양책 인위적 부양책 반대
학현학파 모임 계획 앞으로 나가볼 생각
참여정부 내 강성 재벌개혁파로 불렸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재임 기간 중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재벌계열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으로 재벌들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던 그는 12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기 3년을 채운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는 노땡큐”라고 벽을 쳤지만 기자 질문에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재임 중 가장 잘한 일로 재벌 개혁보다는 “MS 끼워 팔기에 시정명령을 내린 일”을 꼽았다.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며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출총제 논란과 관련해서는 “순환출자 폐해를 막지 못하는 한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현재 논란중인 한·미FTA 체결에 대해서는 원론적 찬성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최근 성장론이냐 분배론이냐 하는 말은 아마추어나 하는 것”이라며 “성장과 분배의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정부의 경기부양책 도입 논란과 관련, “인위적 부양책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3년간 고생 많으셨죠.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3월9일 퇴임식을 가졌으니 이제 100일 조금 넘었습니까. (대학에) 복직하고 나니 고향에 온 느낌이네요.
-이제 환갑도 지나셨는데 건강관리도 신경 써야겠습니다.
공무원 생활하기 전엔 15년간 등산을 했죠. 요즘도 집 앞잠원동) 체육관에 가서 스트레칭도 하고 수영도 합니다. 건강은 좋습니다(이쯤에서 취재수첩을 꺼내니까 그는 “그냥 차나 한 잔 하자”고 말했다).
-12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3년 임기를 채운 위원장으로는 최초로 알고 있습니다. 재임 중 가장 우선순위를 뒀던 분야는 어느 쪽입니까.
공정위는 4대 기능이 있습니다. 경쟁정책, 재벌정책, 중소기업정책, 소비자정책입니다. 바깥에 알려지기는 재벌정책을 많이 편 것으로 아는데 사실 담합이나 독점력 남용 폐해를 막기 위한 경쟁정책에 최우선 순위를 뒀어요. 담합은 정말 근절돼야할 구악입니다. 미국은 과징금만 물리는 게 아니라 징역까지 살게 할 정도로 근절 의지가 강합니다. 얼마 전 반도체 담합 때문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관계자가 구속되지 않았습니까.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었던 건 하도급 분야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엔 한계가 많았습니다. 1차 하도급업체는 그나마 괜찮은데, 2, 3차 하도급 업체들이 ‘희생’ 당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재임 시 가장 잘 한 일과 아쉬운 일은 어떤 게 있습니까.
MS사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매긴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여섯 차례 심사를 통해 과징금 330억원을 물린 일이죠. 그때 심사보고서만 1500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공정거래 업무에 있어 ‘2005년 세계 10대 사건’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지난 3월 이·취임식 때 공정위 직원들이 저의 10대 업적을 뽑았는데 MS건은 2위였고, 1위로 소비자보호원을 재정경제부에서 공정위 소관으로 이관시킨 것을 꼽더라는 거죠(그는 6월29일 한국건설문화원이 주최한 건설문화포럼에서 ‘선진 시장경제와 공정거래제도’란 제목으로 강연할 때 이 사례를 심도 깊게 언급했다. 그는 “이 사건은 2001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MS사가 PC서버 OS와 미디어서버 결합 판매 행위에 대해 신고를 했고 MS가 이재웅 사장에 300억원을 주고 소송 취하를 합의했지만 공정거래법이 공법인 이상 (공정위가) 조사를 해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매겼다”고 소개한 바 있다.)
-세간에서는 재벌 개혁 전도사라는 이미지가 강한데요. 재벌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경제는 사실 압축 성장을 해왔습니다. 남들이 100년 걸렸던 산업화 과정을 한국은 25년 정도에 끝냈으니 4분의 1에 불과하지요. 성장 주도자는 정부와 재벌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선 재벌에 70%의 공을 인정할 수 있어요. 나머지 30%는 문제를 잉태했는데 두 가지를 꼽자면 중소기업 하도급 업체가 발전하지 못하게 했던 점과 개별기업 간 자유경쟁이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소수 지배자가 만들어졌다는 점이죠. 이 재벌들이 IMF쇼크 후 30대 기업 중 16개가 도산했습니다. 그 충격이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물론 IMF 이후 재벌 개혁이 많이 진척되기도 했습니다. 부채비율만 봐도 400%대에서 100%대로 개선됐고 기업 투명성도 상당히 높아졌죠. 그러나 아직까지 지배구조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 결과 총수 개인의 한마디에 모든 의사결정이 끝나버리니까요. 공정위원장 3년간 사실 재벌 총수들 많이 만났습니다. 글쎄요. 그들과 갈등이라면 퍼센티지로 따져 10~15%쯤 될까요. 재벌이 워낙 파워가 세니까 갈등으로 비춰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권오승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정책보다는 경쟁촉진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실 권오승 교수(그는 권 위원장을 교수로 호칭했다)와는 10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입니다. 같이 강의도 했고 책도 공동으로 냈고요. 생각에 큰 차이를 못 느낍니다. 공정위정책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겁니다(책은 포스코경영연구소가 1995년 펴낸 <한국의 대기업, 누가 소유하며 어떻게 지배되는가>이다. 공동 집필자는 정구현 현 삼성경제연구소장, 임웅기 연세대 교수, 소병희 국민대 교수, 최정표 건국대 교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배형 동국대 교수, 권오승 현 공정거래위원장, 김건식 서울대 교수 등이다.).
-공정위는 최근 출총제 개정을 검토 중입니다. 여당에서는 출총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출총제는 재벌의 순환출자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렇다고 출총제가 최선의 방법이냐 하면 꼭 그렇진 않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유지하고 있는 셈이죠. 제가 재임 때 ‘시장 개혁 3개년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 따라 대안이 됐건 폐지가 됐건 결정될 겁니다. 재벌들은 출총제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는데 사실 2004년 18개 그룹 330개사가 출총제 적용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2005년 4월엔 11개 그룹 194개사로 줄었습니다. 출총제 졸업정책을 통해 시장자율규제로 전환하려는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권오승 위원장도 3개년 계획에 따라 현재 민관 TF팀을 돌리고 있고 아예 제도 폐지까지를 놓고 종합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출총제 유지냐 폐지냐는 중요하지 않고 순환출자 폐해를 막을 수 있냐 없냐가 키포인트입니다. 저는 대체 입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도 1977년부터 2002년까지 25년간 출총제를 운용하다 폐지했는데 일본 공정거래법안에 ‘시장 지배력 강화 방지 조항’을 삽입한 것이죠.
-현재 공정위는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건, 신세계(이마트)의 월마트 인수건에 대해 M&A 허가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까.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 입장에서 그 두 합병 심사에 대한 가부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 결정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한국 경제 현안으로 주제를 돌리겠습니다. 요즘 한·미FTA와 관련 찬반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원론적 입장에서 찬성합니다. 경제학자로서 양심껏 말하자면 한·미FTA는 국민 경제 전체로 보면 이익이 더 큽니다. 문제는 피해산업이 분명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찬반 논쟁보다는 대안 마련이 더 중요합니다. 정부에 있어봐서 알지만 항간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정부 준비도 생각보다는 많이 됐습니다. 관건은 협상력에 달렸다고 봅니다. 절차상 문제점은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정부의 대국민 설득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제(7월5일) 학현학파가 주도하는 서울사회경제학회(이사장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미FTA 협상에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요.
(약간 놀란 듯) 그랬습니까? 공무원 되기 전엔 저도 매주 모임에 나갔지만 3년간 안 나갔습니다.
-최근 서강학파가 서강대 내에 ‘시장경제연구소(소장 김광두)’ 개소식을 가졌는데요. 학현 인맥 쪽으로 분류되는 교수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생각이 비슷한 분들끼리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뭉치는 일은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그는 짧게 언급하고 의견을 표시하진 않았다.)
-소위 ‘성장론’ 대 ‘분배론’에 대한 논쟁이 여전한데요. 어떤 입장인지요.
쓸데없는 논쟁이라고 봅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하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겁니다. 성장이나 분배나 어느 한 요소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같이 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균형 잡힌 정책이 중요합니다. 저는 ‘성장’ 자체가 ‘분배’라고 봅니다. 이를 분리해 생각하는 게 갈등을 조장하는 겁니다.
-현재 한국 경제 경기를 진단하고 정부 정책에 조언을 한다면요.
작년 초반까지 경기가 내리 하강하다가 회복세로 반전됐지요. 문제는 그 회복세가 강하지 않고 올해 2분기부터 주춤거리고 있는 겁니다. 원인을 따져보자면 경기 하강기 때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향후 경기를 전망하자면 조금 더 상승하지 않겠냐 하는 의견입니다.
-정부와 여당 간엔 현재 경기부양을 놓고 ‘하네, 마네’ 의견이 많습니다.
경기는 순환의 법칙으로 움직입니다. 경기가 나쁘면 인위적 부양책을 쓰고 과열되면 억제책을 쓰곤 했는데, 이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시장 내부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향후 계획을 묻자 “학계로 돌아온 이상 향후 학현학파 모임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에도 나가볼 생각”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