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전을 마친 한·미FTA 협상이 9월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한다. 1, 2차 협상이 양국의 입장 및 주요 제도에 관한 의견 교환 자리였다면 향후 협상은 기존 입장을 반영해 교환한 양허안을 토대로 품목별 관세 인하 등 진검 승부가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농업 분야’는 우리측이 수세적일 수밖에 없어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체 인구의 7%가 종사하고 있고 식량 안보, 식탁의 안전 등 다른 분야보다도 파급력이 큰 데다, 무엇보다 가장 취약한 분야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플러스>는 국내 농가는 물론 소비자에게까지 파급효과가 가장 큰 7대 농축산물의 품목별 경쟁력을 분석한다.

곡물(쌀)

육류(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청과(사과, 배, 감귤 )

난 7월,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FTA 2차 협상은 파행으로 끝이 났다. 양측의 노골적인 신경전이 이어진 2차 협상만으로 전체의 성패를 가늠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제 겨우 샅바싸움 1합을 겨뤘을 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9월(3차), 10월(4차), 12월(5차)로 예정된 협상이 진행되면 비로소 한·미 양측이 감추고 있는 패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이다. 특히 양허안 및 관심 리스트를 교환하는 9월 3차 협상은 양측의 본격적인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농업 분야 협상은 가장 큰 주목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가깝게는 한·칠레FTA를 비롯해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된 각종 협상에서 농업만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민감한 분야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미FTA 협상에서도 축산물인 쇠고기 부문은 스크린쿼터, 의약품, 자동차 배기가스 등과 함께 ‘4대 선결요건’에 포함돼 있다. 그만큼 양국이 비중을 두고 있는 분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농림부가 발표한 ‘농업 분야 협상 전망과 양허안 작성 방향’을 보면 협상은 이미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배종하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은 “미국의 FTA 체결 사례와 미 무역대표부(USTR)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등을 보면 미국은 예외 없는 전 품목 관세 철폐 등 강력한 시장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9월부터 시작되는 3차 협상에서 미국은 자국 관심 품목을 중심으로 관세 철폐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 우리 측 협상 전략은 품목별 중요도에 따라 관세 철폐 대상 품목과 예외적 취급 품목을 나눈다는 방침이다. 배 국장은 “주요 민감 품목은 대부분 예외적 취급 범주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에 건넬 양허안에 국내 생산단체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작성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쌀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고, 축산물, 과일 중에서 민감도가 높은 품목은 다양한 양허 전략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단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혀 일부 농산물의 경우 관세 인하 및 철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농업 분야는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 식탁의 안정성, 농업 종사자의 생존권 등 파급효과 면에서 여느 분야를 압도한다. 더구나 이번 FTA 협상 대상국이 세계 최강국 미국이라는 점에서 협상에 쏠리는 관심이 한층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강대국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 있는 2006년 현재 한국 농업의 경쟁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동국대 권승규 교수는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음식 재료만큼이나 품목도 다양하고, 서비스, 위생 시스템 등 협상 대상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농업 경쟁력이 얼마나 된다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대외 개방 협상에서 농업 분야는 언제나 ‘가장 취약’으로 분류돼 왔기 때문에 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공공연한 금기사항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번에도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농업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격과 품질, 수입품의 증가 추이 등을 분석, 주요 생산 품목별 경쟁력을 체크하는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코노미플러스>는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요 농축산물이 수입품들과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수입산과 국내산의 가격과 품질, 소비자 선호도를 척도로 삼았다. 유통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이유는 생산자 사정과 해외 시장의 흐름,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에 밝고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점검대상은 농가의 주요 작물인 동시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품목인 쌀(곡물),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육류), 사과·배·감귤(청과)로 했다. 대상 선정은 2006년 1~6월 사이 이마트 전국 매장에서 집계한 판매액을 기준으로 삼았다.

곡물(쌀)

칼로스보다 품질은‘능가’가격은‘글쎄’

지난 2005년 11월,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 속에 국회 비준 동의안을 통과한 ‘쌀 관세화 유예 협상’ 결과에 따라 지난 3월부터 밥쌀용 미국 칼로스, 중국 쌀, 태국 쌀 등이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쌀 관세화 유예를 10년간 더 연장하는 대신 외국쌀 의무수입물량(TRQ)을 2004년 4%에서 2014년까지 7.96%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쌀 관세화 유예 협상’의 결과다. 그동안 쌀과자 등 가공용으로만 사용됐던 수입 쌀의 밥쌀용 일반시판을 허용한 것이다. 수입 쌀의 시판물량은 2005년 의무수입물량의 10% 유통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30%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다.

밥상용 쌀의 판매 위탁을 담당하고 있는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8월11일 현재 국내에 수입된 밥상용 수입 쌀은 2156만4000톤에 달한다. 중국산이 1276만7000톤으로 가장 많고, 미국산이 550만4000톤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태국에서는 329만3000톤이 수입돼 있는 상태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측은 “1등급 쌀과 3등급 쌀이 각각 50%씩 반입돼 있다”고 덧붙였다.

판매도 순조롭다. 미국과 중국에서 들여온 쌀은 현재 전량 시중에 풀려나간 상태. 수입 쌀은 국가가 수입해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공매 형식을 거쳐 업체를 통해 도매→소매→개별 소비자나 식당으로 유통된다. 이들 쌀의 시판 가격은 4만3000원(20㎏ 기준) 안팎으로 국내산 쌀과 비슷하거나 10% 정도 싸다. 문제는 향후 수입 물량이 늘어나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입 쌀의 생산 가격은 국내산의 25~30%에 불과하다.

2006년 수입분 대부분 팔려

그렇다면 수입 밥쌀 시판 원년인 2006년,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롯데마트 곡물 구매 담당자인 김종환 팀장은 “(수입 쌀의) 가격 경쟁력은 국산 쌀에 비해 높지만 품질 경쟁력 측면에서는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롯데마트가 수입 쌀 시판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실시한 식미 테스트(농림부가 정한 항목별 밥맛 테스트) 결과, 미국의 칼로스는 1차 합격, 중국 쌀은 1차 불합격 뒤 2차 합격, 태국 쌀은 1, 2차 모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식미 테스트는 소비자의 기호를 알아보는 중요한 잣대다. 수입 쌀의 판매량 증가 여부를 가늠할 쌀의 외관,향기,맛,찰기,부드러움 등 5대 항목에 걸쳐 테스트가 이뤄진다. 김 팀장은 “가장 관심이 높은 미국산 칼로스는, 따뜻한 상태에서의 밥맛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면서도 “그러나 식은 상태에서는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전했다. 중국산은 1차 테스트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을 만큼 아직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다만 1, 2차 모두 불합격한 태국 쌀에 대한 보다 정확한 평가는 유보한 상태다. 우리나라의 식미 테스트 기준은 자포니카 계열의 쌀이지만 태국 쌀은 인디카 계열로, 이에 대한 판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현재 정식 통관된 수입 쌀을 통관액으로 환산하면 4만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금액이나 수입량을 볼 때 국내 시장 영향력은 아직은 미미하다. 김 팀장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만큼 밥맛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향후 태도가 수입 쌀의 판도를 가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식자재업체나 외식업체 등은 원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싼 수입 쌀 역시 지속적인 판매 증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육류(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완전 개방 시 닭고기만 경쟁력 있어

한·미FTA 4대 선결조건에는 스크린쿼터, 의약, 자동차 배기가스 부문과 함께 농업 분야에서는 쇠고기가 포함돼 있다. 대(對) 한국 쇠고기 수출 재개에 대한 미국 측의 비중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은 금지된 상태다.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졌고, 아직까지 풀지 않고 있는 상황. 국내 시장에서는 미국산 대신 호주·뉴질랜드산 쇠고기가 유통되고 있다. 때문에 한·미FTA 본격 협상을 앞두고 축산 부문(혼합분유 포함)은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는 지난 8월 초 발표한 ‘주요 품목별 파급 영향’ 보고서를 통해 축산물의 경우 최대 1조원(40%에 달하는 관세가 즉시 철폐되었을 경우)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품목별로 5년 후 관세가 철폐된다고 해도 연간 생산 감소액은 쇠고기 2400억원, 돼지고기 1460억원, 닭고기 770억원, 혼합분유 380억원 등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쇠고기는 한·미FTA 개방 품목에서 제외할 방침”이라는 입장이지만 미국 역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8월9일 미 연방 상원의원 31명은 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신속 처리하지 않으면 한·미FTA 진전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협상 초반부터 미국 측은 한·미FTA 선결 4대 조건에 쇠고기 수입 재개 항목을 포함시킬 만큼 쇠고기 수입 재개에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유통 전문가들이 보는 미국산 육류 수입의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GS리테일의 육류 구매를 담당하는 김성용 축산팀장은 “미국산 육류 수입이 재개된다고 해도 당장 국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육을 비교적 많이 다루는 육가공협회의 반응도 비슷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당시에도 수입 쇠고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35%선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영진 부회장은 “이미 호주·뉴질랜드산이 들어온 영향도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쇠고기 소비량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여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다고 해도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기적으로 크지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한우는 일본의 화우가 될 것

수입육은 소매시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거나, 식자재업체나 식당 등을 통해 유통된다. 김 팀장은 “식자재업체나 식당 등은 아무래도 가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이 개방되면 구매가 늘 것”이라면서도 “그 폭은 5%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이 보는 품목별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한우의 시장점유율은 40%선에 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횡성 한우 등 브랜드화에 성공한 업체는 개방 이후에도 충분히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화우(和牛)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토종 쇠고기인 화우의 일본 내 점유율은 5%선.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지만 이미 쇠고기 공급의 95%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전 미국육류수출협회 한국지사장을 지낸 브래드 박씨는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은 외국산을 이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쇠고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초지(草地)와 주곡인 콩, 그리고 자연환경인데 70%가 산지인 한국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 비해 열악한 자연환경은 물론 원자재인 초지와 콩의 공급 능력에서도 절대 열세일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화우는 국내 시장점유율은 낮지만 품질 개선과 브랜드 관리를 통해 전 세계 육류시장에서 가장 비싼 고기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 부회장은 덧붙였다. 화우의 정자는 해외 반출이 허용돼 해외에서 50% 축산이 가능한 한편, 다른 종자의 소에 비해서도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전체 육류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품목인 돼지고기는 2005년 한 해 동안 5억9105만달러어치가 수입됐다. 이는 2004년 3억3361만달러에 비해 77.2%나 증가한 수치. 김 팀장에 따르면 대부분 국내 축산 농가에서 공급되고 있지만 성수기인 6~8월에는 공급이 부족해 수입을 통해 수요에 맞추고 있다. 수입 돼지고기는 삼겹살과 목살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부위 중심으로 수입이 이뤄지고 있다. 업계는 돼지고기의 국산 비율은 86%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팀장은 광우병 파동 등으로 소비자들의 국산 선호도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며 “식자재업체나 식당 등에 공급되는 수입육을 제외한, 가정에 공급되는 육류는 당분간 국산 선호 추세가 강세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으로 볼 때 국산 육류는 수입산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내놓았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이 수직계열화를 이뤄야 비로소 경쟁력이 있는데, 현재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제대로 된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과 품질 측면에서 점차 수입육에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수입 관세를 감안해도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가격은 국산에 비해 50~75%선밖에 되지 않는데, 관세가 낮아지거나 없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닭고기는 사정이 다르다.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이 수직계열화에 성공해 개방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산물 개방 이후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입육의 공세가 덜한 측면도 있었지만, 양계 농가나 업체들이 시장개방에 대비해 수직계열화를 이루는데 성공한 것이다.

닭고기를 포함한 가금류 전체 수입 규모는 2005년 8665만달러. 2004년 5184만달러에 비해 67%나 증가했다. 그러나 칠면조, 오리 등을 포함한 수치인 데다 생고기 상태는 물론 훈제, 염장 등 가공 상태로 수입된 규모라 닭고기만의 수입 규모는 이보다 작다. 특히 닭고기 생산은 거의 전량을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도 하다.

이처럼 닭고기를 제외한 한국의 축산 부문은 수직계열화 및 브랜드화 등을 서둘러 추진하지 않을 경우, 수입 육류의 공세에 취약한 상황이다. 김 팀장은 “기업형 축산 농가들은 수직계열화 등을 통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영세 축산 농가들은 수입육의 공세에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부의 적극 지원과 축산 농가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도 “지난 15년 동안 축산 농가들은 유례없는 호황기 속에서 시스템 구축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대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나서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신토불이만 믿고 국내 시장에 안주할 게 아니라 동유럽, 남미 등으로 적극 진출하는 역발상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실제 아르헨티나, 폴란드, 헝가리 등의 국가에서는 해외 축산업체의 자국 진출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국내 축산 농가의 노하우 및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에 목초지와 값싼 원자재를 활용할 수 있는 해외로 진출해 오히려 미국 등지로 축산물을 수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과(사과, 배, 감귤)

미국·일본산보다 중국산이 더 위협적

과수산업의 시장개방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우리 시장을 넘보는 외국산 과일은 FTA가 체결된 칠레산을 비롯해 일본산과 미국산, 중국산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국산 과일이 본격 수입될 경우 국산 과일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국내 과수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일본산은 품질면에서, 중국산은 가격면에서 국산 과일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칫하면 과수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이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산 과일의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 배, 감귤 등 3대 과일은 2004년 관세 하에서도 가격경쟁력이 약했다. 관세율이 10% 낮아지면 경쟁력은 2~5% 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들은 국산 과일이 비싸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수입산 과일과의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품질경쟁력도 중국산보다는 다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일본산보다는 떨어졌다. 사과의 경우 중국산은 국산 중품 수준이지만, 미국·칠레산은 국산 상품 못지 않다. 배도 종합적인 품질경쟁력 면에서 칠레·중국산보다는 높지만 일본산에는 뒤쳐졌다. 감귤도 일본산보다 못하다.

수출시장의 경쟁력도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 배의 경쟁력은 중국에게는 가격경쟁력에서, 일본에게는 품질경쟁력에서 한 수 아래였다. 감귤의 수출 가격은 우리나라가 일본, 미국과 더불어 최상위 그룹에 속할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낮다.

수입과일의 ‘대체재’효과 우려돼

이처럼 국내 주요 생산 및 소비품목인 사과, 배, 감귤은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조만간 심각한 경쟁에 처할 것으로 분석됐다. 박성준 이마트 청과팀장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의 주요 수입국은 중남미와 동남아시아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품목과 겹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만 없다. 작황이 저조해 과일 값이 폭등하면 소비자들은 수입 과일을 찾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입과일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팀장은 동일 품목에서 가장 강력한 위협 대상으로 중국산을 꼽았다. 품질경쟁력은 아직 한국이 우위에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지만 중국산의 품질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농업당국의 과수 농가 지원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은 좁은 경지면적의 한국으로선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박 팀장은 “친환경과 품질차별화가 생명인데 중국도 장기적으로 방향을 그렇게 잡고 있다”며 “5년 내에 국산과 비슷한 품질 수준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3대 과일 중 가장 많이 거래되는 감귤은 2005년 1조2768억원어치가 수입됐다. 이는 전년도 1억4310억원에 비해 10% 가량 감소한 규모. 지난해 국내산 감귤 작황이 좋았던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감귤 수입량은 거래량 2위, 3위인 사과와 배(2882억원. 2005년)에 비해 4배 이상 많다. 사과와 배의 2004년 수입량은 2115억원으로, 2005년에는 이보다 36.2%가 늘어났다.

그렇지만 한·미FTA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당장 국산 과일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주희 롯데마트 청과팀장은 “할인점에서 팔리는 수입 과일의 유통 비율은 현재 25~30%선”이라며 “개방이 된다고 갑자기 점유율이 높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농작물에 비해 과일은 수입 품목이 비교적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우 팀장은 “사과, 배, 감귤 등 국내 주요 생산 품목과 겹치지 않는 수입산 과일의 소비 비율은 가격과 비례한다”고 했다. 수입 과일은 대체재 성격이 강한 데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싸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다른 농산물에 비해 낮기 때문에 품목별 경쟁보다는 대체 수입 과일의 소비증가를 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최근 수입업체는 물론 현지 수출업체들은 다양한 프로모션 공세를 펼치고 있다. 과일 유통전문가들은 대체 수입 과일의 소비 증가는 국산 주요 생산 과일의 소비 위축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산 과일의 경쟁력 강화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국산 과일의 품질 편차가 큰 것을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했다. 생산 주체가 대부분 소규모 영세농이다 보니 수익 부문에만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롯데마트 우 팀장은 “재배 농가들을 만나보면 의식전환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품질 향상, 브랜드 관리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박성준 이마트 청과팀장도 “국산 주요 과일의 생존은 결국 품질과 브랜드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았다.

전문가 기고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소장  yrkwon@dreamwiz.com

한국 농업의 미래는 대외적으로는 WTO, FTA를 극복해 갈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의 구축에 달려있다. 농업 내부적으로는 지역 내의 물질순환형 시스템의 구축에 달려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농업·농촌·농민을 배려하는 정책적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한·미FTA 보다 우선돼야 한다.

선진국들은 미리 사전에 이러한 정책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그 내용을 국제 협상을 통해 관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제 협상에서 확정된 내용으로 국내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그 충격과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관행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한국의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는 국제 협상의 결과에 달려있다. 이 때문에 한국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를 진정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FTA는 기본적으로 당사국 국내와 역외국에 그 이익이 치우치게 되므로 대외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내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토대로 대외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관행이다.

한·미FTA에서도 협상의 방향은 최소한 WTO 규칙의 기본 틀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FTA는 ‘WTO + α’인데, α는 대부분 새로운 분야이므로 이를 둘러 싼 협상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면, 그 결과는 미래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이 α가 WTO 규칙을 벗어나게 되면 결국 세계무역구조를 왜곡시켜 타국으로부터도 압력을 받게 된다. 농업 협상의 경우, 우리나라는 WTO에서 ‘개도국 대우’를 인정받고 있는데, 한·미FTA에서 이것이 사라져 버린다면 다른 외국도 동일한 대접을 강요할 것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농산물 수출보조금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협상 의제에도 없다.

미국의 ‘덤핑 농산물’ 반드시 문제 제기 필요

미국의 농업정책은 연중, 가격지지정책과 소득지지정책을 배합하여 집행하는 것이 기본구조이다. 농산물의 홍수 출하기에는 가격지지정책을 통해 농산물 가격의 인하를 방지하고, 그 기간 이후에는 소득지지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확기의 ‘융자에 의한 가격지지정책’은 가격 폭락에 대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1933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수확기와 가격이 낮을 때는 수확 작물을 담보로 목표가격의 3분의 2 수준에서 정부로부터 융자를 받는다. 이 융자는 종자, 비료, 농자재비 등의 비용을 보상하는 수준이다. 생산비에는 인건비까지 포함되므로 농업과 농촌 및 농민의 생활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다.

미국의 국내 농업 보호 수준은 UR(우루과이라운드) 합의에서 약속한 수준을 상회한다. 명백한 WTO 협정 위반이다. 따라서 대항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항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협상이나 교섭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된 약속의 이행 문제이다. 브라질만이 미국 면화에 대하여 협정 위반을 WTO에 제소한 상태다.

미국이 수출 작물에 대하여 2002년 농업법에서 가격지지·소득지지를 하기 때문에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대부분 ‘덤핑 수출’이다. 이러한 덤핑 수출에 의해 우리 농민들과 농촌생태계, 환경 및 국민의 먹거리의 안전성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수출보조금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국내 농업정책은 WTO 협정상에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한·미FTA 협상에서도 의제로 다루고 있지도 않다.

미국 농업보조금의 최대 수혜자는 다국적기업과 대규모 기업농이다. 상위 1%의 농가가 전체 보조금의 23%를 차지하며, 하위 80%의 농가는 13% 정도의 보조금을 받는다. 상위 1%의 농가는 1995년에서 2004년까지 100만달러를 받았으나, 하위 80%의 농가는 같은 기간에 7000달러를 받았다.

다국적기업의 먹거리 지배를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국내 농업보호정책과 세계 먹거리시장의 지배를 위한 수출보조금정책이다.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것은 세계 최대의 정미업자인 라이스랜드푸드(Riceland Foods Inc). 이들이 받은 보조금은 1995년에서 2004년까지 총 5억3376만달러로 이중 94.7%인 5억555만달러가 쌀과 관련된 보조금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농산물에서 보조금이 지급된다. 밀은 생산비보다도 28% 낮은 가격으로 덤핑 수출되고, 콩은 10%, 옥수수는 10%, 면화는 47%, 쌀은 26% 낮은 가격으로 덤핑 수출되고 있다. 이 같은 보조금을 받고 있는 다국적기업에 의한 덤핑 수출은 미국 내의 중소농은 물론 수입국이나 미국 농산물의 원조를 받고 있는 국가의 먹거리 생산 근거지를 몰락시키고 있다.

결국 한·미FTA는 종자 및 농축산물 거대 다국적 기업과 한국의 빈소농과의 싸움이다. 농업·농촌·농민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전 국민의 먹거리의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게 되고 결국 국민의 건강권, 생명의 안전성 보장은 허물어진다.

곡물 다국적기업의 세계지배 전략을 위한 중요한 무기는 유전자조작작물(GMO)기술이며, 그것을 보호하는 것은 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다.

세계 시장에서 곡물 유통의 변화를 가져 온 최대의 요인은 GMO의 등장과 GMO작물을 대량 재배한 브라질 등 남미 국가가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초래한 것은 중국이 곡물 소비량의 폭발적 증대로 인해 수출국에서 수입대국으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최대 곡물 수입국들인 일본, 한국, 중국의 시장이 부상하고 있으며, 한·미FTA는 그 전초기지로서 활용될 것이다.

한·미FTA를 비롯한 농업 분야의 대외협상은 농산물 상품협상만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GMO, 종자, 생명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물론 다국적기업의 농산물 운송, 보관, 저장, 항만 서비스를 포함하며, 그들의 투자자 보호를 위한 협상, 검역 및 생태, 환경, 국민의 건강권 등이 농업 협상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plus tip

농촌경제연구원 설문조사

소득 보전 대책에 가장 큰 관심, 수입 쌀 시판 우려

농업인들은 쌀 관세화 개방 유예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하면서도 협상 결과에 따라 ‘수입 쌀 시판’이 현실화된 것을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대책은 소득보전방안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향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농정 분야에 대해서도 ‘소득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005년 말 680명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농민의식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쌀 협상 비준안 국회 통과에 대해 과반수 가까이(48.6%)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현실을 인정했다.

쌀 협상안 비준안 통과로 가장 기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신인도 유지로 향후 국제 협상에서 불이익 최소화(40.5%)’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수입 쌀 시판에 대한 우려감(52.9%)’이 큰 것으로 나타나 향후 수입 쌀 시판에 대응한 우리 쌀 우수성 홍보와 판매 촉진 방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급한 대책으로는 63%가 ‘소득보전방안’을 꼽았다.

쌀 관세화 개방 유예에 따라 어떤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살펴본 결과, ‘정부의 대책에 따라 적절히 대처할 계획(32.6%)’, ‘수확에서 유통까지 철저한 품질과 브랜드 관리(16.5%)’, ‘가격 경쟁력 제고(5.5%)’ 등 적극 대응하거나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 농업인은 54%로 10명 중 5명은 능동적으로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농업인 59.7%는 ‘쌀소득보전직불제’가 농가 소득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정부가 ‘농업·농촌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총 119조원 투융자사업을 추진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41.6%에 달해 투융자사업이 제대로 인지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절반(47%)에 가까운 농업인들이 현 정부의 농업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출범 초기에 비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투융자사업이 확대되기를 원하는 분야로는 ‘다양한 직접지불제 실시(12.3%)’를 최우선으로 꼽았으며, 다음으로 ‘농업인 연금 지원 등 부담 경감’, ‘농업 기계화, 시설 현대화 지원’ 등의 순이었다.

2005년 역점 추진한 쌀산업정책 중에는 ‘쌀소득보전직불제 시행 등 벼 재배 농가 소득 안정 대책'을 가장 높게 평가했으며, 삶의 질 향상 5개년 계획 수립 추진 중에서는 ’복지기반 확충‘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다는 농가는 친환경농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소비자 신뢰 확보(68.7%)’라고 응답했으며,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차별화전략, 환경오염 감소로 지속가능한 농업 실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과 일반농산물의 출하가격 차이의 인식 정도는 64.9%로 높았지만, 소득 변화는 비슷하거나 감소한다는 응답이 74.3%에 이르러 안정적인 소득 기반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와 농산물이력추적관리제도에 대한 인지는 각각 63.2%, 63.1%로 나타났고, 10명중 6명(66.6%)은 김치파동과 같은 식품안전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해 각 부처로 흩어져 있는 식품안전관리를 농림부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