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들 중에는 향후 5년 이내 매출 1조원을 노리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땅에 벤처기업이란 개념이 등장한 지 10년. 1990년대 후반을 강타한 벤처 열풍과 몰락, 그리고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선 대표적인 벤처기업을 통해 미래 대한민국을 대표할 글로벌 기업의 가능성을 엿보자. 분석 대상 기업들은 지난 4월 <이코노미플러스>가 기업신용평가사인 D&B코리아와 함께 선정한 ‘한국의 100대 벤처기업’ 중 매출과 경상이익, 총자산 항목을 합산해 10위 안에 든 기업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조사 대상 1만70개 기업들 중 기업의 외형(매출), 손익구조(경상이익), 기업 규모(총자산) 등 주요 항목 별로 고른 점수를 얻은 ‘최우수’ 벤처기업들이다.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별로 보면 휴맥스, NHN, 넥슨, 엠텍비전, 메디슨, 세원이씨에스, 디엠에스, 코아로직, 네패스, 케이씨텍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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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 CEO의 공통 및 특이 사항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대졸’이상, 기업체 근무 경험, 이공계 강세

산업화를 통한 고도 성장기를 이끈 성공한 기업인의 조건은 불굴의 추진력과 끈기, 성실성 등이 주요 덕목이었다. 여기에다 강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장악하고 군대와 같은 일사분란함으로 회사의 외형을 키워나갔다.

2006년 현재 미래의 글로벌 기업을 꿈꾸며 우량 벤처기업을 키워나가고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산업화 세대와는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10대 우량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 모두 최소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녔다. 박사가 3명(변대규, 이승우, 황기수), 석사가 3명(이해진, 김정주, 이성민), 학사가 4명(박용석, 엄병윤, 이병구, 고석태)이었다. 이공계 출신이 대부분으로 인문계 전공은 2명에 불과하다. 인문계인 경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병구 네패스 회장도 LG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으로 생산기술센터장까지 역임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사회생활은 이공계라 할만하다. 10대 우량 벤처기업 중 비(`非) 이공계 경력의 소유자는 엄병윤 세원이씨에스 회장이 유일하다.

고학력과 이공계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 10대 우량 벤처기업의 CEO들은 대부분 관련 업계의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10대 회사 중 직장생활을 거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한 사례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 김정주 넥슨 대표이사, 이승우 메디슨 대표이사 등 3명에 불과하다.

직장생활을 경험한 CEO들의 전 직장은 삼성, LG가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 출신으로는 이해진 NHN CTO(삼성SDS), 황기수 코아로직 사장(삼성반도체)이 있고 LG 출신으로는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LG반도체), 박용석 DMS 사장(LG필립스), 이병구 네패스 회장(LG반도체)이 있다. LG 출신들은 창업한 분야도 반도체나 LCD 분야라는 특징이 있다. 고석태 케이씨텍 사장은 대성그룹 계열사인 대성산소에서 근무했고, 어병윤 세원이씨에스 회장은 대한일보, 서울경제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10대 벤처기업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승우 대표이사를 제외하고는 현재 대표이사가 창업주라는 점이다. 이 대표이사도 메디슨 창업 멤버라는 점을 감안하면 10대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 모두 창업부터 현재까지 기업을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인연도 있다. 10대 벤처기업에 선정된 이해진 CTO와 김정주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입학동기. 둘은 KAIST대학원의 전산학과도 함께 다녔다. 김 사장은 가장 친한 CEO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CTO를 꼽는다. 두 사람은 비즈니스 관계도 맺고 있다. NHN의 2대 주주인 엠플레이는 사실상 김 사장의 영향력 아래 있다. 넥슨이 엠플레이 지분 72%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회사가 합병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종종 돌았다. 하지만 넥슨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대 벤처기업 반열에 오른 기업 CEO의 연령대는 40~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정주 사장이 39세로 유일하게 30대 CEO를 기록 중이다, 이어 이해진 CTO가 40세, 이성민 사장 44세, 변대규 사장 47세, 박용석 사장과 이승우 사장이 48세로 동갑이다. 고석태 사장은 52세, 황기수 사장은 54세다. 60대 벤처기업 CEO도 2명이나 있다. 이병구 회장은 올해 60세이고 엄병윤 회장은 64세로 10대 벤처기업 중 가장 연장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나이와 창업년수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벤처 1세대 대표기업 메디슨은 1985년 창업, 10대 벤처기업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창업멤버이자 현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 회장의 나이는 48세. 나이로만 보면 10대 벤처기업 중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 고석태 사장이 1987년 창업으로 그 뒤를 이었고, 변대규 사장이 1989년 창업, 올해로 18년째를 맞고 있다. 이병구 회장은 1990년에 창업 벤처 1세대의 범주에 속한다. 가장 연장자인 엄병윤 회장의 창업은 1993년에 이뤄졌다. 올해로 14년째를 맞고 있다. 벤처 창업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8년과 1999년 코아로직, NHN, 엠텍비젼의 창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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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일어선 기업이 더 단단하다 


휴맥스·NHN·메디슨

벤처기업으로 등록된 업체 중 가장 많은 매출액(6181억원, 2005년 기준)을 기록하고 있는 휴맥스는 핵심제품인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셋톱박스) 제작 기술에 관한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유럽과 중동, 일본에 이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한 휴맥스의 셋톱박스는 휴맥스를 중소기업 규모를 벗어나 대기업 반열에 오르게 한 효자 종목이다.

대학원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모여 창업한 휴맥스가 사업 초기 대박을 터뜨린 건 가요반주기. 그러나 가요반주기 히트에 만족 못한 변대규 사장과 창업 멤버들은 국내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제품개발에 눈을 돌렸다. 그 결과 1996년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 최초로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적잖은 개발비와 인력, 시간을 쏟아 부은 끝에 수신기 개발에 성공했지만 품질 결함과 시장 경험 미숙으로 애써 제작, 수출했던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연구원을 현지로 급파하고, 일부는 수리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수출물품의 절반이 불량이었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상장까지 한 마당이라 직원들은 물론 회사를 믿고 산 투자자들의 원성이 불 보듯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보니 그는 거래 기업 해태전자의 부도로 담보 하나 건지지 못하고 24억원을 물려 있었다. 급기야 한국 경제에 외환위기가 몰려오기에 이르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 사장은 오히려 정공법을 택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던 OEM(주문자 상표 생산방식)을 탈피해 휴맥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방송사를 통하지 않는 일반 유통시장을 악착같이 파고들었다. 또한 외국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나서 유럽과 중동에 휴맥스라는 상표를 단 셋톱박스 수출을 이뤄냈다. 그 결과 휴맥스는 2000년대 들어 급신장을 거듭,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셋톱박스 부문에서 영업이익이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 2002년 991억원, 2003년 437억원, 2004년 41억원으로 급락했다. 위기를 느낀 변 사장은 생산 주력품을 셋톱박스 중심에서 TV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가전으로 재편했다. 셋톱박스 제조업체라는 이미지가 강한 휴맥스의 가전시장 진출을 쉽사리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난 2004년 하반기부터 디지털 위성방송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며 휴맥스의 멈췄던 성장 엔진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 디지털 영상녹화기(PVR)와 디지털TV의 매출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고 효자 종목인 셋톱박스는 미국 시장 진출 등의 호재로 옛 영화를 되찾게 된 것이다.

두 차례의 큰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휴맥스는 R&D 중심의 벤처기업에서 제조업체로 탈바꿈했다. 연구 중심 회사에 안주했더라면 오늘날 대기업 진입을 눈앞에 둔 매출 6000억원대의 벤처기업 매출 1위 회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절대 강자 NHN은 검색광고, 게임, 배너광고를 통해 2005년 3574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국내 검색 포털시장에서 네이버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다음, 엠파스, 야후 등과의 경쟁에서 절대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코스닥 황제주 NHN이 있게 된 건 절체절명의 위기 속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0년 2월 말, 강남역 인근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김범수와 이해진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컴 합병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김범수의 한게임은 하루에 10만 명씩 회원수가 늘어나는데도 이를 소화할 준비가 안 돼 있었고, 이해진 네이버는 1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한 상태였지만 수익모델 부재와 다음, 야후, 라이코스에 밀려 골머리를 앓고 있던 것이다.

삼성SDS 입사동기이자 친구인 둘은 소주잔을 기울인 지 한 달 만에 합병에 합의했다. 회사를 합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부도 후 법정관리 들어간 메디슨도 힘찬 부활

1년 뒤인 2001년 3월 말, 한게임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 달 만에 7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네이버 배너광고 매출을 앞지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기 때문. 자신감을 얻은 NHN은 2001년 6월, 네이버 검색 서비스 유료화를 개시, 또 한 번 탄탄한 수익모델 발굴에 성공한다. 합병 이후 두 번에 걸친 유료화 성공으로 NHN은 2001년에 매출 목표치(120억원)의 두 배가 넘는 2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일부 서비스만 돈을 받는 프리미엄개념의 유료화를 도입한 탓에 이용자들의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합병의 잠재력은 해가 바뀐 2002년 폭발했다. NHN은 76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250억원을 기록하며 수익모델 부재, 거품의 진원지로 꼽히던 닷컴기업의 무용론을 일거에 잠재우며 코스닥 황제주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몰락한 벤처 신화하면 첫머리에 떠오르는 기업이 메디슨이다. 아니, 이제는 ‘메디슨이었다’는 과거형으로 표기를 해야 옳다. 2002년 1월, 메디슨은 최종 부도를 냈다. 1조원대 기업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던 메디슨의 부도에 대해 대기업 문어발식 확장을 흉내 내다 몰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코스닥 시장이 무너지면서 메디슨이 투자했던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고 해외법인이 낸 막대한 결손을 메우지 못한 결과였다.

부도 직후 빚잔치를 치르고도 메디슨에는 3500억원의 부채가 남아 있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라 법원에서 제3자 매각을 추진했고, 경쟁사인 GE, 지멘스가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제시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았다. 메디슨 임직원들에게 치욕이었다. 임직원들은 인수될 바엔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초음파 진단기는 고난도 기술과 판로 개척이 어렵기 때문에 연구개발은 물론, 생산과 마케팅 부문도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직원들이 떠난다면 메디슨은 빈껍데기만 남아 파산절차를 밟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임직원들은 채권단에 부도는 났지만 메디슨의 경쟁력은 여전하다며 자력 회생 방안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결국 메디슨은 남아있는 부채 3500억원 중 2000억원은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10년 동안 분할해 갚아나가기로 하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창업주 이민화 회장이 물러났고 창업 멤버인 이승우 사장과 법정관리인이 공동으로 회사 경영을 맡았다.

회사 임원진은 주력 분야인 초음파 진단기 부문을 제외한 사업부는 분사했고, 대신 아웃소싱해 오던 애프터서비스 인력을 오히려 본사로 흡수했다. 이 결과 구조조정이 단행됐음에도 본사 인력이 300명에서 380명으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구조조정을 단순한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이 아닌 핵심사업에 대한 집중한 결과였다.

R&D인력도 부도 이전보다 50%나 늘렸다. 책임연구원들은 자발적으로 강좌를 열어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했다. 그 결과 최신 제품을 잇달아 시장에 내놓았다. 주력 제품 하나에만 집중하는 대신 시장을 세분화해 고가, 중가, 저가 시장을 골고루 공략하기 시작했다. 고가 시장은 제품력으로, 저가 시장은 가격 경쟁력으로 확실하게 차별화한 것이다.

그 결과 2002년까지도 자본잠식 상태였던 회사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2004년 말에는 자본총계가 500억원 수준으로 회복됐다. 2002년 1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지만 2003년에는 13억원까지 줄었고, 2004년에는 마침내 453억원의 흑자로 전환됐다. 2005년 메디슨의 매출은 1706억원에 경상이익은 216억원을 기록했다. 핵심역량에 집중한 결과, 부도를 딛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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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규모도 가파른 성장세

1조원대 기업 2~3년내 쏟아진다

매출액 6000억원을 돌파, 이미 벤처기업 수준을 넘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휴맥스는 지난 2005년 말 경인방송 인수를 통해 지상파 종합방송 사업에 진출할 의욕을 보인 바 있다. 방송사 인수를 위해 여러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휴맥스는, 그러나 사업자 선정에 실패했다. 변대규 사장은 틈날 때마다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방송 산업은 변 사장이 방송통신장비 제조업체에서 도약, 대기업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점찍었던 분야였던 셈이다. 그러나 휴멕스는 기존의 사업 영역만으로 올해 매출 목표를 8000억원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미국 시장 진입에 성공한 LCD TV의 판매가 순조로워 올해는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매출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목표가 이뤄진다면 휴맥스는 2~3년 내에 연 매출 1조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시장은 보고 있다.

한화증권 김지산 애널리스트는 “주요 국가 디지털방송 전환 완료, HD방송 확산 가속화, 국내 케이블 셋톱박스시장 확대, IP 셋톱박스 잠재성장성이 좋고 셋톱박스 업계 상황이 긍정적인 만큼, 업종대표주이면서 시장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는 휴맥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코스닥 황제주로 등극한 NHN의 주가총액은 3조원 정도로 평가받는다. 벤처기업 전체 순위에서도 휴맥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NHN의 미래는 밝다. 최휘영 사장은 시가총액 10조원이라는 목표가 결코 허황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검색업체인 구글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포털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지식 검색 등 사람들이 올려주는 정보의 양을 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자신감의 근거다. 자산 10조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 중국 등에 진출해 있는 해외 파트가 성과를 내야한다. 이해진 CTO가 해외 출장이 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절대강자 NHN의 자산 10조원 달성은 해외 사업 성과에 달린 셈이다.

매출 1400억원대의 회사인데 공공연하게 매출 1조원이 목표라고 밝히는 네패스는 정보전자 부품 및 소재 전문기업이다. 2003년 580억원, 2004년 920억원, 2005년 1122억원의 기록 중인 네패스는 반도체 후공정 전문업체로 LG반도체 생산기술센터장 출신 이병구 회장이 창업한 회사. 궁극적인 목표는 특허기술을 내다파는 초일류 기술집약형 회사. 네패스의 반도체 사업부는 최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인 웨이퍼 범핑 기술과 테스트 및 후공정 패키징까지의 일괄 생산라인을 국내 최초로 구축했다. 이 회장은 “네패스의 목표는 210년 1조원대 매출”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