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 업둥이를 안고 온 부산 큰언니와의 싸움을 생각하며 이경호의 아내 한공녀는 추석날 꼭두새벽에 남편을 재촉하여 우이동 집을 나섰다. 그의 품에는 6개월 된 갓난 아들이 안겨있었다.
남편 이경호는 이날의 처가행을 위하여 차 점검을 미리 해둔 터였다. 그의 유백색 아반떼는 중고이기는 하지만 가속기를 밟는 대로 듬직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쌩쌩 초가을 이슬 머금은 새벽바람을 갈랐다. 서편 하늘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놓은 듯싶은 달이 떠 있었다. 그 달빛으로 인해 하늘은 은회색이었다.
한공녀는 이를 단단히 물었다. 지난 설날 부산 큰언니와 주고받았던 말들이 귀속을 맴돌았다.
“아니, 언니! 어째서 근본도 모르는 아기한테 한씨 성을 달아서 우리 아부지 밑에 입적시킨단 말이여? 안 돼. 아버지 피를 받은 딸 가운데 누구인가가 낳은 아들로 입적을 시켜야 돼.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합당해.”
“이 가스나 시방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얼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집에 들어온 이상 내가 내 배로 난 자식이나 다를 바 없어. 어떤 고추 달고 있는 자식한테 한씨 성을 달아 우리 아부지 밑에 입적을 시키려면 반드시 큰 딸인 내 속으로 낳은 자식으로 해야 돼.”
이 싸움이 벌어지자 동서들과 자매들이 두 패로 갈라졌다. 광주 둘째와 장흥 넷째는 부산 큰언니편이 되고, 나주 다섯째와 보성 여섯째는 한공녀 편이 되었다. 이권을 두 언니에게 빼앗긴 대전 막내는 아무편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 심각한 싸움을 말리고 판결지어야 할 친정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냥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허허허허…”하고 웃어대기만 했다. 슬픈 웃음이었다.
그에 아랑곳없이 부산 큰언니와 셋째인 한공녀 사이의 입 다툼은 겉잡을 수없는 고성으로 변했다. 마침내 큰언니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고, 이어서 한공녀가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었다. 부산 큰언니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다음 들어온 업둥이로 인해 간신히 삶의 희망을 얻은 설움을 토해냈고, 한공녀는 자기 자궁 속에 아기를 잉태시키기 위해 사투하듯이 한 고생을 늘어놓았다.
“이 아이 얻기 위해서 도선사에 가서 백일기도를 했어. 그리고 시방 정성을 다해 태교를 하고 있고, 이 아기를 위해서 경호씨는 하루 한 차례씩 전복죽을 쒀주고, 태교에 좋다는 음악 사다가 틀어주고, 동화책 사다가 읽어주고…”
자매의 다툼을 지켜보던 아버지 어머니가 마침내 끼어들었다. 부산 큰딸 부부와 한공녀 부부를 앞에 불러 앉혀놓고 말했다.
“너희들의 효성에 감개가 참으로 무량하다. 그런데 내 후계자의 문제로 인해서 형제간인 너희들의 다툼이 이렇듯 무섭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없이 슬프구나. 너희들의 다툼은 이쯤 해두고, 나하고 너희 어머니가 생각할 틈을 좀 주라. 깊이 생각해보고 가장 합당한 쪽으로 결정을 해서 알려주도록 하마.”
지난 설날은 슬픈 날이었다. 부산 언니는 업둥이를 안은 채 울면서 돌아갔다. 부산 언니는 그 아이에게 한씨 성을 붙여주고 아버지의 후계자로 삼는 일을 절대로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공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서울로 돌아와서 건강한 아기를 낳으려고 애를 썼다. 태교도 열심히 하고, 과일이든지 생선이든지 모양새가 완전하고 잘 익은 것을 먹었고, 태교 음악을 들으면서 한사코 밝고 명랑한 생각만 했다. 그러면서 우울해 있는 남편을 위로했다.
“당신 좀만 참아. 우리 아이가 당신들 밑으로 입적되고 나면 장흥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달라질 거야.”
한공녀, 득남에 성공하다
한공녀의 몸은 나이 탓인지 자궁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으므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는 마흔 살 된 몸으로 아기를 낳는 며느리를 위해서 장독대에다가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남편은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을 순산했음을 알렸고, 이튿날 친정어머니는 미역을 사가지고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눈물을 훔쳤다. 한공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태몽이 무지무지 좋아. 이 아이 큰 사람 될 거야. 바다에서 해가 둥둥 떠와서 내 속으로 들어갔어. 우리 한 씨 집안의 미래 정말, 정말 밝을 거야.”
친정어머니는 말없이 한공녀의 손을 다독거려주기만 했다. 한공녀는 친정어머니의 속내를 다 짐작하고 있었다. 부산 언니가 데리고 온 업둥이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말어. 나는 마음 비웠어. 이 아기한테 한씨 성 붙여서 아버지 밑에 입적시켜 놓기만 하고, 우리 부부는 친정 재산 넘겨다보지 않기로 했어. 전에 우리가 한 말, 강남 목 좋은데다가 일식집 하나 내달라고 한 것, 그것 다 잊어버렸어. 우리 경호씨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남의 일식집 주방장 노릇하기로 했다네.”
산후로 인해 얼굴 부석부석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친정어머니는 말없이 그녀의 한 손을 끌어다 두 손으로 감싸 흔들어주고 돌아갔다. 그것이 무슨 뜻이었을까.
일주일 만에 아기를 보듬고 퇴원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보면 볼수록 당신만 닮았어. 잘 찍어놓은 붕어빵이야.”
그리고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친정아버지는“오냐 오냐, 알았다. 우선은 네 건강이 한결같이 좋아야 한다. 좌우간 그 일은 차차 결정하기로 하고 아기나 잘 키워라.”하고 말했다.
한공녀는 광주 언니, 장흥 동생, 나주 동생, 보성 동생, 대전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반드시 자기가 낳은 아들을 아버지의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나주 동생, 보성 동생은 “두 말 하면 잔소리지!”하고 동의를 하는데, 광주 언니와 장흥 동생은 “모든 것을 아버지 어머니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하고 말했고, 대전 동생은 “나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 것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네”하고 말했다.
한공녀는 사촌 오빠 순철에게도 자기편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친정아버지는 순철 오빠를 신뢰했고, 그에게 키조개 가공공장을 맡기고 있었다.
“순철이 오빠, 길을 막고 물어보아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내가 낳은 아들을 우리 아부지 밑에 입적시켜야 한다고 말을 할 것이요. 오빠가 아부지한테 잘 좀 이야기 해주시오. 마흔 살 된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낳은 줄 아요? 정말,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낳았소. 이 아이를 우리 아부지 밑에 입적시켜야 한씨 집안의 앞날에 희망이 있을 것이요. 부산 언니가 안고 온 업둥이는 근본도 모르는 아이 아니요? 안 그렇소?”
사촌 오빠 순철이는 발을 뺐다.
부모님의 결정 “한씨 집안의 후계자는…”
“그 일이라면 나는 모른다. 그 일에 관한 한 나는 절대로 중립이다. 부산 누님편도 아니고, 공녀 동생 편도 아니다. 좌우간, 그 일은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가 결정할 일이다. 너희들도 네 친정아버지 어머니가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
이경호와 한공녀가 장차 한씨 성을 달아줄 아기를 데리고 장흥 율산 친정집에 도착한 것은 추석날 열한시 정각이었다. 그들 부부는 친정아버지 어머니와 여러 동서들과 자매들이 앉은 자리에서 아기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고, 그 아기를 한씨 집안의 후계자로 삼아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할 생각이었다.
친정집 골목과 마당에는 여섯 자매 부부가 타고 온 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방안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부산 언니가 업둥이를 놀리고 있었다.
이경호와 한공녀의 차가 들어서자 자매들과 동서들이 모두 마중을 나왔다. 순철이도 따라 나왔다. 한공녀는 순철이를 보자 이상스러운 예감이 들었다. “어?! 오빠도 와 계시네?” 한공녀는 그에게 머리를 숙여주고 아기를 안은 채 들어가서 친정아버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음식상을 한가운데 놓고 모든 식구들이 둘러앉았다. 여느 때와 달리, 순철이가 가지 않고 안쪽 구석에 앉았다. 친정아버지가 “어흠,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네 어머니는 그 일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나하고 네 어머니는, 우리 집안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고, 그러면서 서로 갈라서버리자고 할 정도로 싸우기도 했다. 좌우간에 어렵게 도출한 결론을, 오늘 우리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발표기하기로 했으니까 잘 들어보고 불만이 있더라도 양해하고 기꺼이 따라주기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효도일 것이다.”
모든 자매들 동서들이 다 숨을 죽였다. 그 가운데 부산 큰언니 내외와 이경호 한공녀는 긴장으로 인해서 얼굴이 굳어졌다. 한쪽 구석에 앉은 순철이는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드디어 친정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부산 순녀, 서울 공녀 대전 막내가 그 동안 이 아버지 어머니의 후계자를 생산해주기 위해서 노심초사한 것을 다 잘 알고 있다. 특히 순녀하고 공녀하고는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하려고 들었는데, 순녀는 실패하고 공녀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부산 순녀가 데리고 온 업둥이와 서울 공녀가 낳은 아들로 인해서 매우 시끄러운 일이 일어났고, 나하고 네 어머니하고는 그로 인해서 아주 많은 상심을 했다. 그 결과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여기 있는 순철이를 우리 집안의 양자로 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