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이 어디일까. 부동산 포털 ‘닥터아파트’가 최근 제시한 정답은 타워팰리스 2차 101평형이다.
2003년 2월 19억8000만원에서 11월 인근 부동산이 귀띔한 현재 시세는 48억5000만원. 3년 9개월간 무려 28억7000만원이 급등했다. 상승률만 144.95%. 도시근로자 가구 연평균 소득인 3900만원을 71년간 모아야 하는 돈을 불과 4년도 안 돼 번 셈이다.
강남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타워팰리스 등장과 함께 서울 도곡동이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동쪽은 대치동, 서쪽은 역삼동, 남쪽은 양재동, 북쪽은 삼성동을 끼고 있어 도곡동은 ‘강남 황금벨트’의 중심축으로 불린다.
풍수학으로 봐도 도곡동은 길지로 꼽힌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도곡동은 매봉산을 베개 삼고 동쪽으론 양재천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라면서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형국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도곡동이 변모한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난다. 매봉산 아래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독부리’로 불렸던 도곡동.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도라지와 오이, 참외 등이 재배되는 서울 속 농촌의 풍경이었다.
‘시골’이 아파트 단지로 바뀐 건 1978년 동신아파트(474가구)가 첫 삽을 퍼 올리면서부터다. 이어 진달래1차(636가구), 개포우성4차(459가구), 개포한신(620가구) 등이 주거촌을 형성했다.
CEO, 의사, 교수, 변호사가 도곡동의 ‘신진 사대부(四大富)’
그러나 부동산 관계자들은 도곡동이 대한민국 신흥 부촌으로 탈바꿈한 계기는 2002년 10월 타워팰리스의 첫 입주가 시작되면서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개발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던 도곡2동 467번지 일대에 세워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는 도곡동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했던 직접적 도화선. 부동산에 붙여진 타워팰리스 1차의 시세는 평당 3000만원대로 나오지만 실제 시세는 4000만원 대를 훌쩍 넘는다는 게 인근 복덕방들의 전언이다.
평균 60층 안팎의 초고층에 호텔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점은 세간의 관심거리다. 입주자를 분석해보면 왜 타워팰리스가 도곡동을 부촌으로 끌어올렸을까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타워팰리스 1, 2차에는 대기업 임원 등 전문 경영인이 42%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학수·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배중호 국순당 사장,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등이 타워팰리스에 입주해 있다.
재계의 거물급 인사 다음엔 의사(8.3%), 교수(3.9%), 변호사(3.7%)의 순으로 나온다. 말하자면 CEO, 의사, 교수, 변호사가 타워팰리스로 대변되는 도곡동의 신진 ‘사대부’인 셈이다. 이밖에 가수 이효리, 영화배우 안성기, 가수 주현미 등 유명인들도 다수다.
타워팰리스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물어서는 안 될 에티켓’이 있다. 일반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쉽게 물어볼 수 있는 ‘몇 동 몇 호에 사느냐’는 것. 평수가 최대 3배 가까이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같은 평수라도 층과 향에 따라 가격차가 수억원씩 벌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에 따르면 실제 타워팰리스 1차 60평A의 경우 최하 19억원에서 최대 23억원까지 4억원의 시세 차이가 난다. 차액만 강북의 30~4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이다.
일반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뒷말’도 많다. 아파트 보안을 위해 일반 방문자뿐 아니라 우유, 신문 배달원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내야 ‘통과’를 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철저한 보안 관리 속에 그들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도곡1, 2동 평당 3000만원까지 벌어져
그러나 이런 타워팰리스의 아성도 최소한 아파트 값만 놓고 보면 벌써 깨졌다. 올 초 정부가 발표한 공시지가에서 삼성동 아이파크와 서초동 트라움하우스에 밀려난 타워팰리스는 도곡공 내에서도 평당가에선 도곡렉슬에 뒤처지고 있다.
도곡동 부촌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지목되는 도곡렉슬은 2003년 분양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당시 43평형 경쟁률이 무려 4795대 1로 서울 동시분양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던 것.
현재 시세는 평당 5000만원에 이른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 분석이다. 실제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도곡렉슬 50평형의 경우 시세가 22억원에서 25억5000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런 도곡동도 부촌은 행정구역상 도곡2동에 밀집해 있다. 반면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사거리에서 한강 쪽에 위치한 도곡1동은 2동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실제 KB아파트 시세에 따르면 대림 34평형은 6억2000만원에서 7억원(평당 1823만원에서 2058만원), 개포럭키 31평형은 7억5500만원에서 8억1500만원(평당 2435만원에서 2629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같은 도곡동 내에서도 아파트 값이 최대 평당 3000만원까지 벌어진 셈이다.
그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학군 프리미엄, 둘째 대단지 효과, 셋째 입지 여건 등이다. 일단 도곡1동도 학군에선 빠지지 않는다. 은광여고, 숙명여고, 단대부고, 중대부고, 양재고 등을 배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입시 학원이 도곡1동엔 많지 않다는 점. 명문 입시학원은 대부분 도곡2동에 밀집해 있다.
아파트 단지도 도곡1동은 지은 지 15년이 넘은 아파트들이 많다. 게다가 소규모 단지가 많은 반면 도곡 2동은 3000가구가 넘는 도곡렉슬 등 대단지 아파트가 많다. 도곡1동 대림공인 관계자는 “도곡동 내에서도 1동은 양재역 주변 노점상들이 많은 반면 2동은 계획적으로 조성돼 차분한 느낌으로 상반된다”고 평가했고 한신부동산 관계자는 “부자들끼리 모여 살 수 있는 ‘그룹 효과’에 따라 갈수록 1, 2동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압구정동을 밀어내고 ‘신 강남 주거 1번지’로 떠오른 도곡동도 부촌 중의 부촌인 도곡2동과 ‘강남의 보통 동네’ 도곡1동으로 분화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