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is beatiful. why?
비결은 ‘틈새시장’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1973).’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가 세상에 던진 명제다.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에 과감히 도전한 것이다.
이를 기업에 대입해 보자. 분명 ‘덩치’가 크면 싸움에 유리하다. 대기업이 점점 더 영토를 넓혀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이 항상 ‘공룡’에 미소를 짓는 건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들이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10년 불황을 이겨낸 원동력도 강한 허리에 있다. 2006년 12월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가 선정한 아시아 1000대 기업에 일본은 662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물론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상사 등 거대 기업들도 있지만 이름이 낯선 중소기업들이 상당수다. 2005년 69개였던 한국은 67개로 줄어들어 3위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87개사를 올린 대만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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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만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다. 기자가 두 번 다녀온 타이베이 인근엔 미국 실리콘밸리를 연상시키는 ‘신추과학공원’이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이 공원을 ‘타이완의 자존심’이라고 부른다. 2004년 말 현재 384개 입주사의 매출액 합계가 총 325억달러(약 30조원)로 당시 대만 전체 GDP(2003년 말, 2888억달러)의 11.3%에 이르기 때문이다.
세계 수출 1위국이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미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답은 독일이다. 2005년 말 수출 금액은 9699억달러(약 900조원)에 이른다. 2003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수출액 세계 1위를 달성한 독일의 힘도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이 쓴 <숨은 강자들(Hidden Champions)>을 보면 수긍이 간다. 세계 1위 고속담배제조기업체 ‘하우니’, 세계 열대어먹이 시장 50%를 점유한 ‘테트라’, 세계 생선처리장비 시장 90%를 점유한 ‘바더’, 세계 자동차 선루프 1위 ‘베바스토’ 등이 독일 수출의 첨병들로 꼽고 있다. 코트라 베를린 무역관 관계자는 “독일은 1952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무역적자가 없는 국가”라며 “여기엔 세계시장 5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 중소기업만 500개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들려줬다.
‘강한 허리’가 세계 경제 강국의 공통점인 셈이다. 연간 수출액 3000억달러를 돌파한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세계 11번째로 수출 3000억달러 고지를 밟은 뒤안길엔 대기업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출 실적을 기록한 중소기업 수는 2005년 말 현재 2만8542개다. 이는 2004년의 3만645개 보다 2103개 감소한 수치다. 중소기업 수출 비중도 5년 전 43%에서 32%로 떨어졌다.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 선박,석유제품 등 빅5 수출 비중이 1998년 32%에서 2005년 말 42%로 확대된 데 따른 반대 급부다.
그럼에도 묵묵히 ‘마이웨이’를 걸으며 세계 1위로 우뚝 선 한국의 강소기업들은 늘어나는 추세다. 자본력은 달려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 틈새를 뚫은 ‘숨은 챔피언’들이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에서 성공한 그들만의 비결이 뭘까. 국내선 중소기업으로 ‘찬밥’ 신세이지만 해외선 ‘명품’ 대접을 받는 노하우는 따로 있지 않을까. 세계 1위에 오른 중소기업들의 ‘1위 등극 스토리’를 엮었다.

“남들과 생각이 달랐다”
파세코 | 중동에 ‘난로’ 팔아 세계 1 위
유병진(66) 파세코 회장은 “1등은 남들과 달리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해준 기업인이다. 그가 세계 1위를 차지한 품목은 석유난로. 이미 국내에선 사양 산업으로 ‘한물 간 물건’ 취급을 받는 아이템.
특히 판로가 압권이다. 열사의 땅 중동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아프리카 원주민에 밍크코트를 파는 세일즈맨’에 곧잘 비견된다.
지난 2003년 12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미군에게 잡힐 때 옆에 있던 난로가 파세코 제품이었다. 1974년 석유 심지 회사로 출발한 파세코의 연간 수출액은 약 6500만달러(약 600억원). 전 세계 난로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세계 1위의 글로벌 회사다.
그가 세계시장에 노크를 한 것은 90년대 초반. 1994년 미국의 대형 유통회사에 7만 대 대량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게 신호탄. 그러나 넘어야 할 벽이 높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안전규격인증인 ‘UL마크’를 따야했기 때문이다.
UL 조건은 ‘난로가 넘어졌을 때 10초 안에 불이 꺼져야 하고 내구성이 6000번 불을 껐다 켜도 고장이 나서는 안 된다’는 것. 유 회장은 “당시 약 3000번째에서 작동이 멈춰 2번이나 ‘퇴짜’를 맞았다”면서 “결국 납기를 며칠 앞두고 극적으로 합격 통보를 받고 눈물이 났다”고 회고한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파세코는 현재 미국 시장에서 50%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제 2의 수출 시장인 중동은 ‘극일(克日) 스토리’의 과정이다. 당시 중동 시장을 석권 중인 일본 업체를 따돌리고 현재 70%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은 일교차가 심해 영상 10℃만 되도 추위를 느껴 석유난로 수요가 높은 지역. 2000년 일본산을 따라잡은 후 현재까지 시장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현재 세계 시장점유율 면에서 세계 2~4위 업체인 일본 센고쿠(16%), 토요토미(8%), 코로나(4%)를 압도하고 있다. 현재 세계 5위는 국내 중소기업인 태서전기. 파세코는 현재 미국과 중동을 비롯, 유럽 등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1995년 1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은 파세코는 2000년 3000달러, 2004년 5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2005년 말 기준 매출액은 1282억원, 순익은 56억원 수준이다.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
에센시아 | 부도 딛고 칫솔 살균기 세계 1 위
신충식(47) 에센시아 사장의 성공은 ‘인생 역전 드라마’에 비견된다. 회사 다니며 제품 개발→월세로 옮기며 사무실 창업→부도 후 100일 된 아들 병원에 부탁→방송 출연 후 ‘재기’→세계발명대회 수상 후 ‘대박’으로 이어진 스토리다.
그가 부도 후 ‘봉고차 노숙생활’ 3년을 하면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첫째 비결은 ‘기어코 세계 최고의 칫솔 살균기를 선보이겠다’는 고집 덕분이었다. 그가 칫솔 살균기 시장에 눈을 뜬 건 그 자신이 치과 치료를 달고 살았기 때문. 치과의사로부터 칫솔에도 세균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살균기를 만들면 ‘대박’이겠다고 무릎을 친 게 창업 계기가 됐다.
1989년 당시 매일유업 회사원이었던 그는 낮엔 회사, 밤엔 연구에 몰두했다. 1991년 12월 전세를 월세로 옮기고 여동생, 남동생 집을 담보로 7000만원을 마련, 회사를 차렸던 그는 1993년 7월 1억원이 없어 부도를 막지 못했다.
신 사장은 이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자신이 3년간 한강 둔치서 ‘봉고차 노숙’을 하며 건어물 장사를 한 것은 ‘무용담’으로 치부했지만 100일된 아들을 강보에 싸서 병원 응급실에 맡기고 줄행랑쳤던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 아프다(아들을 데려온 건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고 한다).
그에게 기회가 온 건 1995년. 당시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제품 홍보 기회를 잡았던 것. “출연료 300만원은 봉고차를 담보로 빌렸다”는 그는 “5분간 1000개 이상 팔린 것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고 회고한다. 꿈에도 그리던 ‘대박’이 터진 건 2000년 세계발명품대회서 잇달아 수상을 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수출 물꼬가 터졌다.
내수에서 ‘먹고만 살았다’는 에센시아가 유명세를 탄 것도 이 즈음이다. 미국과 스위스, 홍콩, 일본 등 10여 개 국가서 주문이 쇄도했던 것. 17년간 칫솔 살균기 사업에만 올인해 온 에센시아를 칫솔 살균기 전문기업으로 외국서 먼저 인정해준 셈이다.
2006년 1월엔 일본 도쿄에 ‘에센시아저팬’을 설립, 해외 직접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실제 500만달러 규모 일본 수출 계약도 성사시켜 2007년 하반기부터 첫 물량이 나갈 계획이다. 이후 러시아와 미국, 베트남, 태국 수출 계약까지 포함하면 2007년 에센시아 수출액은 10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300만 개 이상, 해외에 100만 개 이상 팔렸다는 게 회사 측 추산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세계 칫솔 시장의 약 40% 점유율을 기록한 1위 업체라는 것이다. 2006년 150억원 매출액을 기록한 에센시아 칫솔 살균기는 2007년 늘어난 수출액 덕분에 250억원 대 매출액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에센시아의 새해 목표다.
“경쟁사 약점을 파고들라”
썬스타특수정밀 | 컴퓨터자수기 세계 1 위
현재 세계 컴퓨터자수기 시장을 쥐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시장의 절대 강자는 일본 굴지의 회사, 타지마였다.
이를 물리친 사람이 박인철(54) 썬스타특수정밀 회장이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자수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연간 1억달러 이상씩 수출하고 있다. 2006년 수출액 추정치만 1억2531만달러(약 1150억원)에 이른다.
그의 성공은 ‘청계천 단칸방 신화’로 비유된다. 썬스타의 전신은 1974년 6월 창업한 청계천 인근 단칸방에 있던 영세한 재봉틀 회사 ‘한국미싱공업’. 부친이 설립한 재봉틀 회사를 2대에 걸쳐 세계 1위 자수기업체로 바꿔놓은 셈이다.
현재 6개 국내 법인과 5개 해외 법인, 해외 지사 7곳을 둔 썬스타의 2006년 예상 매출액은 1787억원. 이 가운데 65%가량이 수출 물량이다. 수출 지역은 중국과 미국, 유럽과 중동 등 전 세계 100여 국에 이른다.
세계 최초로 1200rpm 자수속도를 보유한 기술력을 밑천 삼아 회사 매출액은 2003년 954억원에서 2004년 1337억원, 2005년 1544억원으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에선 ‘SUNSTAR’, ‘FORTUNA’, ‘SWF’란 브랜드로 유명하다.
1997년 본격적인 자수기 생산에 돌입한 박 회장이 주목한 건 베트남 시장. 당시 베트남은 세계 유명 브랜드의 하청업체로 몰려드는 자수 시장의 메카였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일본 업체 ‘타지마’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었다.
썬스타의 수출 1호 제품은 제품 값도 안 받고 베트남에 넘겨졌을 정도. 일단 기계를 몇 개월간 써본 후 돈을 낼지, 안 살지를 결정하기로 한 불평등 계약이었던 것.
이때 꺼내 든 카드가 ‘경쟁사 약점을 찾아라’였다. 당시 베트남 소비자들의 가장 불만은 A/S(애프터서비스). 박 회장은 “전 세계 어디서도 문제가 생기면 3일 내 기계를 고쳐줘라” “소비자 실수로 일어난 문제도 무상으로 서비스하라”고 지시했다. 후발 주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초강수를 둔 셈이다.
마음 졸이며 시장 추이를 지켜봤던 박 회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건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공장을 찾아온 이집트의 한 바이어가 자수기를 썬스타 제품으로 전면 교체하겠다는 파격적 제시를 해온 것. 이후 미국 시장까지 진출, 2003년 세계 시장점유율 35%로 일본 타지마 점유율을 2% 가량 따돌리며 첫 역전, 지금까지 세계 1위 컴퓨터자수기 메이커로 군림해왔다.
박 회장은 “허를 찔린 타지마가 한때 특허 시비를 붙여왔지만 특허 분쟁에서도 승리했다”면서 “단순히 마케팅의 승리가 아니라 매년 매출액 10%를 연구개발에 쏟아온 기술력의 개가”라고 평가한다. 2006년 11월30일 제43회 무역의 날 때, 그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남들이 안하는 사업을 하라”
유니더스 | 콘돔 생산 1 위, 점유율 1 위
세계 최대의 ‘콘돔 메이커’인 유니더스의 김덕성(66) 회장. 1973년 서흥산업(유니더스의 전신) 설립 때 그는 “왜 하필 콘돔이냐”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현재 충북 증평 공장과 중국 장쑤(江蘇)성 공장서 1년에 11억5000만 개의 콘돔을 생산해 이중 70%를 미국과 프랑스, 일본, 브라질 등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손가락질’은 ‘코스닥의 유망주’로 변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콘돔과 인연을 맺은 건 1967년 국내 최초의 콘돔업체인 동국물산에 입사하면서부터. 70년대 초 부도가 나자 아예 회사를 차렸던 게 창업 스토리다. 이 때 그는 동국물산 창업주였던 연기식씨의 평소 신념인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을 하라”는 지론을 지금까지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실력’으로 극복했다.
2007년 창업 34년째인 유니더스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65%에 이른다. 콘돔을 써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You Need Us’라는 뜻의 유니더스 제품을 썼을 공산이 높다.
특히 유니더스 제품은 해외서 더 인기다. 생산량 세계 1위뿐 아니라 UNFPA 조달 실적 기준으로 세계 시장점유율도 2005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 1위다.
매년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인구기금(UNFPA), 국제인구협회(PSI) 등 국제기구에 생산량의 40%가 넘는 5억 개 이상을 공급 중이다. 한국에서 홀대받아 대안으로 찾았던 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2006년엔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2007년 공급 분으로 5000만 개의 콘돔을 유니더스에 맡기기도 하는 등 ‘유명세’가 더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콘돔 3대 메이커 중 한 곳이 최근 도산했고 USAID 공급의 터줏대감이었던 미국 알러테크가 직원 절반을 구조조정하는 후폭풍을 낳기도 했다. 1.5g에 불과한 콘돔으로 벌어들인 유니더스의 2005년 매출액은 220억원, 순익은 26억원에 이른다.
해외시장서 호평을 받은 비결도 품질. 유니더스 제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콘돔의 국제규격 두께(평균 0.06mm)보다 얇은 0.04mm다. 특히 완제품 315개 중에서 한 개라도 작은 구멍이 있으면 탈락하는 국제기구 입찰기준을 통과하는 기술력이 관건이다.
2004년 개발한 ‘유니더스 롱러브’는 콘돔 속에 국소 마취 성분을 넣어 사정 시간을 늦춰주는 기능성 제품일 만큼 기술력에서 앞서있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르몽드>가 1면에 ‘한국산 비아그라 콘돔’으로 표현하기도 했을까. 2006년 6월 김 회장은 유니더스 대표이사를 아들 김성훈 사장에 넘겨줬다.
“기댈 언덕이 든든해야 롱런”
코텍 | 카지노용 모니터로 ‘잭팟’
2000년 6월 탤런트 오연수의 어머니가 미국 카지노에서 105억원 대 잭팟을 터뜨려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때 세간에 널리 알려진 회사가 코텍이다. 그 슬롯머신 모니터를 만든 회사였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 깔린 슬롯머신의 70%가 세계 1위 슬롯머신 제작업체 IGT 제품이고 그 모니터의 60%가 코텍 손을 거치고 있다. 코텍은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인 셈이다. 코텍이 모니터 생산을 중단하면 세계 카지노가 문을 닫아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한구(58) 코텍 대표는 틈새를 뚫는 데 귀재다. 1970년대 초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미군들이 자판기를 쓰는 것을 보고 국내 처음으로 자판기를 들여온 것도 그였다. 그러나 이후 들어온 대기업에 밀려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이후 “대기업이 따라올 만한 시장은 쳐다보지 않겠다”고 판단한 그가 손댄 아이템은 게임용 모니터. 1980년대 불티나게 팔린 인베이더, 갤러그 등 오락실 게임기 모니터의 상당수가 이 대표 손을 거쳤다. 그가 수출에 나선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80년대 ‘엔고’까지 겹쳐 일본 수출은 그야말로 대박.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오락실은 사양 산업으로 퇴조했다.
그가 살 길을 찾아 눈을 돌린 쪽이 카지노용 모니터. 그는 요즘도 “1994년께 미국 IGT 임원들을 찾아갔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첫 마디는 “오토바이어스 기능이 가능하냐”는 것. 영문도 모른 채 “예스(Yes)”라고 답했다. 나중에 알고 본 ‘오토바이어스’ 기능은 모니터가 1년 365일 24시간 밝기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유지하는 기능이었다.
이 대표가 IGT 납품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98년.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몇 대에서 결함이 발생했던 것. 그때 오늘의 코텍을 가능케 한 결단이 있었다.
납품했던 1만2000여 대를 전량 회수했던 것. 그는 “당시로선 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던 결정이었다”면서 “그때 IGT 신뢰를 얻어 살아남았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들려준다.
현재 코텍은 북미 카지노 시장의 60%, 전 세계 카지노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IGT의 핵심 공급업체다. 1987년 회사 설립 후 20년 연속 흑자인 코텍의 2005년 매출액은 806억원에 이른다. 그해 순익은 53억원에 이를 만큼 코스닥의 알짜 회사로 꼽힌다. IGT에 납품하는 터치스크린 모니터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18~19% 수준에 이른다.
시대 변화에 맞춰 틈새시장을 개척해온 이 대표는 현재 세계 1위인 카지노용 모니터 외에 최근엔 의료용 모니터 등에도 눈길을 쏟고 있다. 코텍의 성공 비결은 ‘최(最), 지(知), 신(信)’으로 압축된다. 이는 코텍의 사훈이기도 하다.
‘최(最)’는 최고에 대한 집념이다. 오락실 모니터업체를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 업체로 키운 원동력이다. ‘지(知)’는 기술력을 상징한다. 코텍은 연구개발비로 연 40억원을 쓴다. 직원 130여 명 중 26명이 연구소 소속이다. 50여 명에 이르는 생산직을 빼고 나면 최대 조직인 셈이다. ‘신(信)’은 코텍을 키워준 일등공신이다.
“내수보다 세계 시장 먼저 봤다”
아이디스 | DVR 세계 넘버원
미국 뉴욕 지하철에 가보면 곳곳에 CC TV가 눈에 띈다. 이 CC TV에 들어가는 영상저장장치가 국산품. 국내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업체인 아이디스가 주인공이다.
김영달(39) 아이디스 사장은 판로 확보를 내수부터 보지 않은 경영자로 유명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출신인 그는 1997년 9월 창업 후 곧장 외국부터 시장 개척에 나섰다.
국내는 시장이 좁다는 게 이유였다.
2005년 매출액 697억원 중 90%를 해외서 올리는 비결도 여기서 나왔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현재 세계 DVR업계 1위 업체로 국내 업체인 아이디스를 꼽고 있지만 정작 김 사장은 ‘빅3’라고 말한다. 영국의 디디케이티드 마이크로(DM)와 미국의 칼라텔 등과 실력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대놓고 1위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게 김 사장의 겸손이다.
창업 10년도 안 돼 세계 1위에 올라섰지만 정작 내수선 2006년에 와서야 1인자 자리에 오른 것도 ‘해외 우선 전략’ 때문이었다(아이디스는 ‘2006년 1분기 내수 매출액 31억원으로 1위였던 코디콤사의 26억원을 따돌리고 내수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창업 직후부터 세계시장을 노크했던 아이디스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다. 당시 아이디스 DVR이 디지털 첨단 보안 장치 가운데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되면서 호주 전역에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아이디스의 수출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보안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때 미주는 물론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매출액은 2001년 161억원, 2002년 403억원, 2004년 514억원, 2005년 697억원으로 급성장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등 최대 시장인 북미 시장을 발판으로 브라질, 칠레 등 남미와 중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 NASA와 디즈니랜드, 공항 등에 공급하면서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6년 700억원 매출액을 돌파한 김 사장은 2007년이 뜻 깊다. 창업 10년째 되는 해다. 이 때문에 목표도 과감하게 높여 잡고 있다. 1000억원 매출 돌파에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다.
남들처럼 내수서 1위를 한 다음 세계 진출을 노렸다면 어쩌면 글로벌 1위 아이디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게 김 사장이 남들과 다른 경영법이다.
주목해 볼만한 ‘숨은 강자들’
“돈에선 밀려도 기술에서 2등은 없다”
1985년 설립된 디지아이는 세계 잉크젯프린터 분야 1위 업체다. 미국 브로드웨이 대형 간판과 버스 광고도 이 회사의 잉크젯프린터와 커팅플로터로 제작됐을 정도다.
창업 초기 제도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디지털 장비업체로 변신한 건 1997년. 미국과 일본이 독점하던 옥외광고 제작 장비인 잉크젯프린터와 커팅플로터 생산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제도기계가 사양 산업으로 쪼그라들자 재빨리 사업 아이템을 첨단화한 셈이다.
최관수 대표는 일찌감치 내수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국내 광고 제작사가 5000여 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002년 1200만달러를 수출해 세계 1위로 올라선 이후 현재 세계 70개국에 수출 중이다. 특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에 기대지 않고 독자 브랜드로 외국 시장을 공략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브랜드가 없으면 수출 단가 협상이 어렵고 거래기업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5년 매출액 348억원 가운데 80% 이상을 수출로 채운 글로벌 강소기업이 디지아이다.
인쇄회로기판(PCB) 업체인 심텍은 반도체와 통신용 PCB 전문 업체다. 전세호 사장이 회사를 창업한 때는 1987년. 그는 이때부터 국내에선 불가능할 것으로 인식되던 메모리 반도체 조립용 SIMM PCB의 독자 개발에 성공한 95년부터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발판으로 심텍은 현재 전 세계 유력 반도체업체들에 모두 인쇄회로기판을 제공하는 유일한 업체로 유명하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스와 독일 인피니온, 대만 난야는 물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도 심텍에서 물건을 받는다.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한 심텍은 최근 3년간 매출액이 2003년 889억원, 2004년 1472억원, 2005년 2291억원으로 매년 50% 이상의 급성장을 기록 중이다. 2006년 상반기에만 1423억원을 기록, 2006년 3000억원 매출액은 무난히 돌파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세계 D램 PCB 부문 점유율이 25% 수준으로 세계 1위 업체로서 입지가 탄탄하다는 평이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은성코퍼레이션엔 반도체 공장서나 볼 수 있는 클린룸이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반도체 공장 클린룸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데 필요한 극세사 와이퍼. 동양나일론 극세사 개발파트에 다녔던 이영규(49) 사장이 1992년 설립한 회사다.
현재 은성은 극세사 섬유 분야 세계 1위 업체다. 일본의 한 전시회에서 극세사 섬유로 만든 안경닦이 천을 본 후 극세사로 행주와 걸레를 만들어 해외 바이어에게 보여준 게 히트의 서막. 1997년 28억원이었던 매출액이 4년만인 2001년 178억원으로 는 것도 늘어난 수출 덕분이었다.
2000년 미국 3M과 극세사 클리너 독점 공급 계약을 맺은 게 세계 1위로 뛰어오른 발판역할을 했다. 2001년 일본 도레이와 데이진 등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오른 것이다. 현재 40여 개국에 극세사 클리너를 수출 중인 은성은 매출액 중 70%를 수출로 올리고 있으며 현재 세계 물량의 25%를 점유하는 강자로 우뚝 섰다.
수출 역군은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2006년 무역의 날 때 1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은 김영숙 선일금고제작 대표 얘기다. 김 대표는 1972년 창업주 김용호 회장이 을지로에서 시작한 금고회사를 국제적인 기업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수리 상표(이글세이프스)가 달린 금고가 선일금고의 작품. 미국의 최대 금고 판매점에서 가장 비싼 제품으로 꼽히는 게 독수리표다. 현재 매출액 중 80%를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70여 개국에 수출 중이다. 세계 3위권 업체이지만 세계 최고 대우를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불에 타지 않는 내화 금고를 세계 처음 개발한 데다, 지금은 보편화된 외문형 금고, 디지털 잠금장치를 접목한 금고도 선일금고가 가장 먼저 선보인 제품들이다. 이 때문에 선일금고는 세계 금고 시장에서 ‘명품’ 대접을 받고 있는 회사다.
이밖에 개당 단가가 10센트인 손톱깎이를 연간 2억5000만 개씩 수출해 세계 39% 점유율을 기록 중인 벨금속, 세계 오토바이헬멧 분야에서 15% 점유율로 세계시장 1위인 홍진HJC, 1978년 설립 후 세계 헤어드라이기 시장 25% 점유율을 기록 중인 유닉스전자, 휴대용 영상 노래반주기 세계 점유율 1위인 엔터기술, 세계 반도체 전 공정 핵심장비인 애셔(감광액 제거기) 시장 30%를 점유한 2위 업체인 피에스케이, 재생 프린터용 드럼의 세계 시장 25%를 점유한 백산OPC, 미국 봉제완구 시장에서 4위를 달리고 있는 오로라월드, 매출액 237억원(2005년)을 100% 수출로 올렸던 코아주얼리, 국내 체지방 측정기 시장 1위로 세계 1위 일본을 따라잡겠다는 꿈을 가진 자원메디칼 등도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꼽힌다.
산자부 ‘세계일류상품’이란
산업자원부는 2001년 8월부터 세계일류상품을 선정하고 있다. 선정업체들에겐 기술과 디자인, 마케팅을 종합 지원하는 제도다. 세계일류상품이란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5위(‘현재세계일류상품’으로 통칭) 안에 있거나 향후 3년 내 5위권 진입이 가능한 품목과 회사(‘차세대세계일류상품’으로 통칭)를 말한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547개 품목, 637개 사가 선정됐다. 547개 품목 중 현재 세계일류상품이 265개,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이 282개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