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만드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위스키는 보리, 물, 오크통 등 위스키 제조과정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만든 수십 가지 원액으로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이 블렌딩해야 맛, 향, 색이 조화를 이룬 최고의 위스키가 탄생합니다.”
블렌딩이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증류소에서 생산된 그레인위스키와 몰트위스키의 혼합 기술로, 위스키의 품질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숙성된 원액은 오크통의 특성, 생성 연도, 저장 위치에 따라 각각의 맛과 향, 그리고 색에서 미묘한 차이를 띤다. 따라서 어떤 비율로 어떻게 블렌딩했는가에 따라 위스키의 맛과 향이 결정된다. 버거스 대표는 명품 발렌타인을 만드는 과정을 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비유해 설명했다.
“반 고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발렌타인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30년 산 위스키를 만들었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은 당대에는 모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발렌타인과 반 고흐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조지 발렌타인은 여러 재료를 가지고 오랫동안 실험한 끝에 결국 오래 숙성된 위스키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릴 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명화로 꼽히는 것처럼 발렌타인도 이제는 명품 위스키로 자리를 잡았다. 발렌타인 위스키는 국제증류주경연대회(ISC)에서 2003~2005년까지 3년 연속 최고 위스키에 뽑혔다. 또 연간 약 6000만 병의 발렌타인이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는데, 이는 약 1초에 2병씩 팔려나가는 셈이다.
그는 발렌타인 위스키는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발렌타인을 연산이 같은 위스키와 비교하면 색깔이 약간 옅다는 것. 이는 대부분의 스카치위스키는 유러피언 오크와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시켜 섞지만, 발렌타인은 아메리칸 오크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버거스 대표는 1988년 설립된 비영리 사교 모임인 ‘키퍼즈 오브 더 퀘익(The Keepers of the Quaich)’ 회장도 맡고 있다. 키퍼즈 오브 더 퀘익은 스카치위스키 선발업체들이 창설한 독자적인 국제단체다. 스카치위스키 전문가를 포함한 회원들은 세계 70여 개국에서 스카치위스키의 위상과 명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퀘익은 이 모임의 상징으로 음료 사발을 뜻한다. 옛날 스코틀랜드에서는 술잔이라고 할 만한 도기 잔이 없었고, 목재로 만들어진 것뿐이었다. 17세기가 되어서야 은으로 만들어진 술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키퍼스 오브 더 퀘익의 상징인 그랜드 퀘익은 직경 24인치의 은제 술잔으로 장인정신을 상징한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도 그가 입고 있었던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의 독특한 격자무늬도 키퍼스 오브 더 퀘익을 상징한다. 스카치위스키 원료를 상징하는 색깔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파랑은 물을 의미하고, 금색은 보리를 뜻한다.
키퍼즈 오브 더 퀘익의 회원이 되려면 적어도 5년 이상은 스카치위스키 업계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 스카치위스키에 열정을 가지고 심도 있게 조사하고 연구한 책을 발간한 작가나 언론인도 회원이 될 수 있다. 드물지만 스카치위스키를 위해 업적을 쌓은 정치인들도 회원으로 추대하는 경우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70개국에 1700여 명 정도의 회원이 있는데 영국 회원들이 가장 많습니다. 한국인 회원은 15명입니다. 스카치위스키 시장이 큰 지역에서 회원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지난 행사에서는 아프리카의 앙골라 지역 멤버도 회원으로 추대됐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한국 시장이 전 세계시장에 비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아시아 지역 내에서는 매우 큰 시장이라는 것.
“발렌타인은 유럽 20여 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립니다. 스페인에서만 200만 박스를 팔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이 발렌타인에 보내주는 지지에 깊이 감사합니다.”
분위기 띄울땐 폭탄주도 좋아
그는 발렌타인 위스키의 모조품에 대해서는 한국에는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다. 글로벌한 사업이면서 가격이 높은 제품일 경우 모조품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위스키 업계에도 그런 경우들이 있지만 스카치위스키 업계, 특히 발렌타인에는 모조품을 감시하는 조직이 따로 있어서 항상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적은 양을 매일 마시면 기분도 더 좋아지고, 가정생활이나 일에 있어서도 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아예 마시지 않거나 남용해서 마시는 사람들에 비해 매일 조금씩 마시는 것이 건강에도 더 좋다는 것. 한 번 마셔본 소주의 맛이 일품이었다는 그는 한국의 폭탄주문화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과 같은 섬세한 블렌딩 과정을 거친 술인 만큼 위스키 원래의 맛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스코틀랜드에도 폭탄주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먼저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섞어서 마시는 것이 맛 측면에서는 별로 좋지 않아요. 위스키는 위스키대로, 맥주는 맥주대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섞어 마시는 것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