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 밤 시내 대통령궁 앞은 붉은 파도가 넘실대는 듯했다. 빨간 모자와 티셔츠 차림의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들의 함성은 쏟아지는 빗속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두 시선은 맞은 편 흰색 건물 위층으로 난 작은 베란다로 향하고 있었다. 또 다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세 번째 ‘커튼콜’이다.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가 한쪽 귀 방향으로 돌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들이여, 이젠 됐으니 그만 가서 잠자리에 들라’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열혈 지지자들은 그렇게 밤이라도 샐 기세였다.
대선 3선(選)이 주는 기쁨은 당선자보다 지지자들이 더한 듯했다. 1200만 유권자 중 720만 표, 득표율 63%라는 대승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으로서는 1992년 쿠데타에 실패한 후 선거로 집권에 나선 이래 선거·국민투표 등을 거치는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이다. 다음날 이곳 양대 일간지인 <엘 나시오날>과 <엘 우니베르살>은 전국이 붉게 칠해진 지지도 분석 그래프를 실었다. 23개 주 중에서 야당이 이긴 곳은 두 개 주뿐이었다. 오래전부터 국내외 분석들이 그의 승리를 점치긴 했지만 그로서는 이날의 승리에 감개무량한 기색이 역력했다.
양분된 카라카스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베네수엘라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소비 중심인 ‘산 이그나시오’ 쇼핑센터에서는 값비싼 스카치위스키와 화장품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대개가 외제인 승용차도 구매 대기자가 줄을 섰다. 성형수술도 붐이라고 한다. 도시 변두리는 해가 지면 칠흑같이 어두워지지만 시내 중심가는 은행들이 장식해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불야성을 이뤘다. 모두가 오일머니 덕분이다.
투표 바로 전날까지도 붉은 모자와 셔츠 차림의 차비스타들은 곳곳에서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 이에 맞서 파란색으로 차려입은 야권의 마누엘 로살레스 후보 진영 운동원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도시의 지지 판세는 극명하게 갈렸다. 대표적인 중산층 지대인 쿰브레스 데 쿠루모. 사이먼 도이치씨(27)는 누굴 찍을 거냐는 물음에 “(대통령이) 정신 나갔다”는 말부터 앞세웠다. “국가를 찬반론자들로 양분시키고 부패 범죄는 더 키워 놨다. 나 같은 젊은 사람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성토했다.
역시 부자 동네인 알타미라 공원 인근. 택시기사 루이스 로하스씨(34)는 “석유 때문에 경제가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나라가 이렇게 양분된 적이 없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미 제국주의를 적으로 내몰지만 자신이 제국의 황제처럼 군림하려 한다”고도 했다.
차베스의 지지층은 도처에 깔려있었다. 하루 3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인구의 34%에 이른다는 나라. 우리로 치면 명동 같은 사바나 그란데의 노점상들은 대부분 차비스타들이었다.
루시 마르티네스씨(50)는 “집도 얻고 밥도 먹게 됐다”며 “그가 아니었으면 없었을 일”이라고 했다. 도시 외곽 빈민촌도 마찬가지다. 남부 교외 엘 바제의 산기슭 동네를 찾았다. 트리나 카뇽고씨(54)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무료로 진료를 받았다”며 “차베스가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야당의 선전, 하지만 ‘대세는 차베스’
야당 후보 마누엘 로살레스 진영은 유세에 나선 지 3개월 만에 상당한 세 결집을 이루고 있었다. 그전까지 지리멸렬했던 야당에 비하면 괄목할 진전이다. 막판에는 차베스 진영도 ‘긴장’하는 기색이 보였다. 과거에는 야당은 ‘무시 일변도’로 나갔지만 이번에는 야당 후보의 과거 전력 등 약점을 거론하고 나올 정도였다. 시내 도로 곳곳에는 자신의 치적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오리노코강 유전지대 다리 건설’, ‘발렌시아 지하철 5호선 사업’. 아직 채 끝나지도 않은 공공사업이나 사실은 이전 정부가 시작한 사업도 선거 홍보에 등장했다. 차베스 진영은 선거전을 반미로 몰아갔다. 일찌감치 ‘악마와의 싸움, 제국주의와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투표 전부터 대세는 차베스 편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의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들도 ‘누가 이길 걸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어쨌든 차베스가 이길 것”이라는 대답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했다. “차베스가 돈이나 조직 면에서 월등하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중고가구점 주인 헤수스 바스케스씨(67)의 설명이었다.
지문 인증을 요구하는 투표 시스템도 유권자들에게 불안 요인이었다. 2004년 차베스 국민소환 찬반투표 때 찬성했던 이들은 공직이나 정부 관련 사업에서 배제되는가 하면 대출까지 지장을 받는 등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우려가 있다고 적잖은 이들이 답했다.
시민들은 오히려 투표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시내 슈퍼마켓에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대형마켓의 선반에 물건들이 빠져나가고 빈자리만 남아있는 사진이 이곳 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다.
차베스 정부는 야당이 근거 없이 선거 부정 시비로 몰아가 소요사태를 일으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선관위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출구조사 등을 발표하는 민영TV에 대해서는 폐쇄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지자자들에게는 민영방송이 야당이 앞서고 있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방송하면 방송국 앞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라고 다짐까지 했다. 야당은 야당대로 정부가 공포 분위기에서 부정을 조장하려 한다고 그럴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벼렸다. 이들의 태도를 보면 ‘한 판’ 크게 벌어질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결전의 날을 앞두고 정작 부자들은 ‘소란’을 피해 외국이나 지방으로 떠나 있다는 소문도 시중에는 파다했다.
차베스의 승리
차베스의 승리는 사회주의 이념보다는 민생에 대한 요구의 반영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곳 여론조사 전문가인 루이스 레온씨는 “국민들은 공공기금을 많이 쓰고, 석유 수익의 상당 부분을 분배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지했다”고 풀이했다.
보다 심층적인 설명은 이 지역에 누적돼 온 빈부격차다. 남미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미주간개발은행(IDB)에 따르면 상위층 5분의 1이 소득의 5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층 5분의 1이 4.5%를 차지한다. 4명 중 1명꼴로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산다. 이들이 민주화와 함께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떠올랐다. 좌파 후보들은 ‘전면적인 변화에 대한 약속’으로 이들을 1차적인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였다.
차베스만 해도 정책이 곧 선거운동이었다. 시민단체 집계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에만 110억달러의 보조금이나 현금을 서민층에게 지원했다. 전국 500만 가구 중에 절반은 차베스 대통령이 가정의 주요 재정 후원자이고, 4분의 1은 아예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서 산다.
또한 차베스 대통령은 매주 일요일 오전 <알로 프레지덴테>란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간제한 없이 ‘국민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TV 출연 시간이 주당 평균 40시간이다. 이곳 유력 일간지 <라 나시오날>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8월부터 차베스의 방송 노출도가 야당 후보 로살레스의 20배라고 보도했다. 그는 방송 도중 즉석에서 좌파 동지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장이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지방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150만 공무원들에게는 모두 합쳐 30억달러에 이르는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선거 전에 앞당겨 나눠줬다. 지난달에는 국영에너지석유기업(PDVSA)의 라파엘 라미레스 사장이 고위 중견 간부들을 모아놓고 차베스를 지지하지 않을 경우 해고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이 녹화된 것이 유출됐다. 불법이고 위헌적인 행동이라고 비판이 일었지만 차베스는 한술 더 떴다. 그의 행동을 치하하면서 다른 고위 공직자들도 그의 본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PDVSA직원들을 향해 ‘붉고도 붉게’라고 외친 라미레스 사장의 표현은 차베스 진영의 선거운동 구호가 됐다.
차베스 차기의 향배
차베스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새 임기가 시작되면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한층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내용을 아는 이는 자신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노선으로 유추해 볼 때 국가의 개입이 한층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본주의가 악의 뿌리라고 말해왔고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가진 자만 배불린다며 비난해 왔다. 민간사업은 더한 규제에 직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일부 상품의 가격과 외환, 은행신용 등을 통제해왔다. 정부가 보조하는 생산단위인 협동센터와 사회적 생산회사가 국영회사와 더불어 경제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혁명의 내용이야 어떻든 차베스는 장기 집권의 논리를 이것과 결부시키고 있다. “사회주의 계혁을 완성하기까지 자신이 권좌에 남아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의 임기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독재 시비에 대해서는 프랑스 대통령들이 과거 장기 집권한 예를 들며 국민이 결정한 이상 민주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개헌은 의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지만 의회는 이미 차베스파로 채워져 있고 인구의 다수가 그를 지지한다.
문제는 차베스 1인의 권력 집중이다. 각 부처는 시행만 할 뿐 지출 통제는 더 어렵다. 대통령 책상 위에 서명을 기다리는 정부 공급 계약 서류가 쌓여있다. 제도가 아니라 특정 인물들에 의존하는 국정운영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고 베네수엘라중앙대학의 후안 카를로스 교수는 지적했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도 차베스의 수중에 들어갔고 사법부와 선관위, 국영석유회사 등 기간산업도 마찬가지다.
“온 나라가 점차 하나의 지도자, 하나의 당, 하나의 이념이라는 모토를 향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베네수엘라 작가 알베르토 가리도 가르시아는 내다봤다.
문제는 경제
마라카이보 지역에서 막대한 석유가 발견된 이래 그전까지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졸지에 남미 부국으로 도약했다. 1960~1970년대 ‘사우디 베네수엘라’ 소리를 듣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 원유 수출 5위에 매장량으로는 세계 1위다. 2003년 이후 고유가에 힘입어 베네수엘라 경제성장률은 남미 최고 수준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차베스 집권 이후 8년간 유가가 6배 뛴 덕이다.
하지만 내용은 악성이다. 여전히 석유 수익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다. 석유 부문이 수출 수익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재정 수입의 약 절반을 이룬다.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는 이번 달 360억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추가로 발전기금 명목으로 150억달러를 적립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고유가로 인한 수입은 투자보다 공공지출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 지출은 2000년 80억달러에서 2006년 500억달러로 증가했고, 지난달 차비스타가 장악한 의회는 2007년 지출을 540억달러로 증액을 승인했다.
정부 지출 덕에 은행과 국민 주머니에 돈이 넘쳐나지만 국민 절반 이상은 제대로 된 직장이 없다. 2003~2005년 동안 차베스 정부는 모두 200억달러를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체의 수는 집권 8년 동안 1만7000여 개에서 8000여 개로 줄었다. 외국 투자는 2006년 1/4분기 동안 2005년 같은 기간에 비해 86%가 하락했다. 인플레는 상승 중이고 2006년에도 17%로 예상한다. 노동 생산성은 1978년에서 2004년 사이 36% 떨어졌다.
더욱이 막대한 석유 수익의 용처에 대해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투명성기구가 올해 펴낸 지수에 따르면 163개국 중 138위다. 남미에서는 세계 최하인 아이티 다음이다. 집권층은 신흥 부유층이 돼가고 있다. 이른바 ‘볼리-부르주아(볼리바르혁명과 부르주아의 합성어)’의 등장이다. 시내 중심에 있는 골프장 회원권도 이제는 상당수 이들 손으로 넘어갔다고 현지 언론은 폭로했다.
‘사우디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유가 하락으로 단번에 무너졌다. 지금도 유가 하락은 정부 지출 능력을 급격히 줄일 것이며 민생은 도탄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차베스의 아킬레스건은 유가라는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차베스 집권 이후 이 나라가 유례없이 양극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조사회사인 ‘다토스’의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중상층이 인구의 28%를 대표했지만 지금은 19%로 줄었다. 차베스 집권 이후 국내 예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정도가 차베스 집권 이전 40년 동안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카라보보대학의 에밀리오 메디나 교수는 “1950~1999년 사이 1120억달러(인플레 반영한 수치)가 빠져나간 데 비해, 1999~2005년 사이 약 660억달러가 유출됐다”고 지적했다.
기업인들은 주저하고 있다. 20만 중소기업체를 대표하는 상공회의소 측은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최근 기업 실태 조사를 보면 판매는 늘고 있지만 대부분 업체들이 고용은 늘리지 않고 사업도 확장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카라카스에서 상파울루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옆 자리의 호세프 케레히안씨(47)는 두 도시를 오가며 사업을 벌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상파울루로 조금씩 사업의 축을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