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 선 긋듯이 쭉 뻗은 도로와 정돈된 가로수들 사이로 공장과, 빌딩, 아파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동서로 크게 가로지르는 13.5Km의 대로로 구분되는 도시의 남쪽엔 750만 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고, 북쪽엔 도청과 시청을 중심으로 800만 평의 주거 상업지구가 들어서 있다. 호주의 캔버라시를 모델로 했다는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 창원의 모습이다.
경상남도 창원의 남쪽에 자리 잡은 창원국가산업단지(이하 창원단지)는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창한 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당시 마산시의 일부분이었던 창원에 내려진 임무(?)는 한국 기계산업의 ‘전진기지’였다.
“지금은 자동차, 조선업을 기반으로 기계산업의 매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원단지의 시작은 방위산업이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념이었던 ‘자주국방’에 있었을 테고 다른 하나는 30년 전만해도 국내 산업환경이 그만큼 미약했기 때문이었겠죠.”
강희집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본부 부장은 창원단지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74년 말 개발을 끝마치고 이듬해 첫 입주업체(PK밸브)를 들인 창원단지는 설립 초기 취약한 기계산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방위산업 위주로 꾸려졌다. 지금도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업체들 중 방위산업이 매출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창원은 천주산, 팔용산, 불모산 등 해발 300m에서 800m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하지만 대구 등 내륙 분지와는 다르게 남서쪽으로 마산만이 있어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강 부장은 “전쟁 시 분지는 폭격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아마도 설립 초기 방위산업이 중심이었던 창원의 입지도 이 같은 요인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창원단지의 입지 요건이 ‘군사적 요지’에 비견될 만큼 우수한 편이라는 얘기다.
‘창원의 특산물은 볼트와 너트’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지금의 창원단지에선 기계산업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입주업체 중 60%정도가 기계산업 관련업체며 단지 전체 생산액 가운데 70%도 기계산업에서 나온다. 지금도 국내 기계산업 생산량의 20%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창원단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창원대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대표기업들의 면모만 봐도 ‘창원단지=기계산업’이라는 등식이 곧바로 머리에 들어온다. 가전기기는 LG전자, 오성사, 스타리온 등이, 공작기계는 두산인프라코어, 위아 등이 창원단지를 대표하고, 산업기계에선 두산중공업 STX엔진, 효성 등이 자리한다. 기계산업이 기반이 되는 지엠대우와 쌍용자동차 공장도 위치해 있고 삼성테크윈, 볼보건설기계코리아, 한국철강, 로템 등 굵직한 기계 업종 기업들이 창원단지에 몰려있다.
창원단지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역사
어느덧 30년 역사를 훌쩍 넘어선 창원단지는 대기업 공장을 중심으로 중소협력업체들이 이곳에 제품을 납품하는 수직적 분업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한국의 산업단지다. 총 765만 4000평 규모의 창원단지엔 2006년 12월말 현재 모두 1708개사가 입주해있다. 단지 안엔 43개의 대기업 공장을 중심으로 1662개의 1, 2, 3차 벤더(중소협력업체)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조선 경기가 좋아지면서 선박 부품의 수주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또 현대, 대우 등 완성차업계의 판매가 늘면서 같은 업계는 물론 운송장비 업종의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죠. 또 유가 상승,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건설기계, 플랜트 산업의 해외 수주가 느는 추세입니다.”(이창섭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 본부장)
창원단지의 주력인 기계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기계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임은 물론 고용 창출 효과도 매우 크다. 또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등 주력 수출산업의 설비나 부품을 공급하는 산업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술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로봇이나 메카트로닉스 등 미래형 지식기반 산업을 주도하는 산업으로 기계산업의 경쟁력은 국가산업의 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30여 년간 연평균 20%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기계산업을 이끌어온 창원단지의 분전은 주목할 만하다. 2006년 기준 31조원의 생산 실적을 달성했고 135억달러의 수출 성과를 올렸다. 창원단지에서 일하는 총 고용 인원은 7만6000여 명으로 창원시 전체 인구(50만 명) 중 15%정도를 차지한다. 굵직한 기업의 공장이 몰려있는 경남지역에서만 따져도 총생산의 36%, 수출의 41%, 고용의 26%를 담당하고 있다.
창원단지의 대표업체 중 하나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도 2006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2006년 영업이익이 각각 2534억원, 2578억원으로 전망된다. 지난해(2005년) 영업이익은 두산중공업 2212억원, 두산인프라코어 1745억원 등을 기록했었다. 매출은 두산중공업 3조6797억원, 두산인프라코어 3조2317억원 등으로 예상되며 이는 그룹 전체 매출 전망치 13조6000원의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2007년부터는 에이스, 밍스 등 창원공장에서 생산한 공작기계 메이커를 바탕으로 중국과 유럽 진출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2006년 11월 중국 지주회사를 설립했으며 이를 통해 2010년까지 중국 시장에서 연간 3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설기계, 공작기계 등을 생산하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이도학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또 이곳 창원단지 내 공장에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해 벨기에 현지 생산공장에 700억~800억원을 투자해 굴착기 생산량을 현재 1500대에서 5000대로 늘리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지역본부를 설립해 공작기계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다.
“물론 창원단지가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산업단지 설립 후 5년 만에 맞은 석유파동(1979년)으로 조업 중단, 휴업, 체불임금, 부도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면 입주업체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죠. 또 6·29선언(1987년) 이후 노사분규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생산 기능이 마비되고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해 성장세가 둔화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IMF사태로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고, 공단의 큰 축이던 대우가 흔들리면서 단지 전체가 비틀거리기도 했죠.”
이 지역에서 태어나 30년째 창원지역 기업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본 이창섭 본부장의 회상이다. 창원단지가 제 궤도에 올라선 건 1990년에 들어와서부터다. 1990년대 초반 중화학공업의 핵을 이루는 기계산업은 안정적인 내수 증대와 지속적인 수출 신장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기계산업의 비중이 1990년대 GNP 대비 10.1%로 전 제조업 생산 대비 22.5%를 차지해 국내 생산 물량의 20%를 넘어서게 됐다. 특히 전체 수출의 23.9%를 점유해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메카인 창원단지의 입주업체수도 90년 300여 개 사에서 90년대 말 900여 개 사로 증가했다. 가동 실적도 90년대 초엔 각각 6조원, 14억달러에서 불과했지만 노사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정부의 기계 부품 국산화시책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생산 및 수출량이 크게 증가해 1990년대 말 16조5000억원, 56억달러로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한다.
창원단지는 2000년대 들어와서도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공장가동률도 전국 평균 대비 1~2% 높다.
“창원단지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창원시도 시민 1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선 ‘잘사는 도시’가 됐습니다. 창원은 이제 경남지역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수출자유지역 등으로 호황을 누리던 마산이 새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으면서, 창원단지를 기반으로 하는 창원이 지역발전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죠. 최근 흘러나오는 진해, 창원, 마산의 통합 논의도 이 때문이겠죠.”(이창섭 본부장)
“과거 통일중공업하면 적자 기업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만성 노사분규 회사라는 딱지였습니다. 1980년대는 국내 노동운동의 대표기업으로 꼽혔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만성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낙인이 찍힐 정도로 전투적인 노사관계를 지속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1926%에 달하는 부채 비율과 엄청난 임금체불의 고통을 받으며 부도를 맞게 됐죠.”(송주영 S&T중공업 과장)
창원지역은 예전부터 노동운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과거 기업은 노동자에게 ‘희생’만을 강요했고, 노동자는 기업에게 ‘보상’만을 요구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가 계속됐던 것이 창원단지의 발목을 잡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S&T중공업(구 통일중공업)은 노동자와 기업인의 마음이 통할 때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회사다.
지난 1959년 설립돼 1975년 창원단지에 입주한 S&T중공업은 방산제품을 비롯해 자동차 변속기와 차축, 공작기계, 주조품 들을 생산하며 기계공업 분야 한 우물만을 파온 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다 지난 1998년 11월 부도를 맞았다. 4년여의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지금의 S&Tc(옛 삼영)에 M&A됐고 2003년 4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당시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M&A 후 회장님(최평규 S&T그룹 회장)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사내를 둘러보다 노조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몇몇 노조 간부들이 회장님께 이렇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대접을 받고 싶으면 가만히 회장실에 계시지 왜 남의 사무실에 마음대로 들어오느냐’고 말이죠.”
최 회장이 S&T중공업을 인수할 때만 해도 만류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주위에선 “적자도 적자지만 끊임없는 노사 갈등을 무슨 수로 해결할 것이냐”고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기계공학도 출신인 그는 S&T중공업의 기술력에 주목했다. 어떻게든 S&T중공업이 가진 기술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낼 수 있으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2006년 S&T중공업은 2005년보다 31.2% 증가한 365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고, 영업이익은 61.3% 올라간 250억원을 기록했다. 부채 비율도 53.7%로 줄어들었다. M&A 이후 최근 경영 실적만 살펴봐도 S&T중공업의 뛰어난 경영 실적은 잘 드러난다. 1926%에 달하던 부채 비율은 2003년 107.1%, 2004년 94.9%, 2005년 58.7%로 같은 업계 최고 수준의 재무 개선을 이뤄냈다. 매출 역시 2003년 2232억원에서 2004년 2638억원으로 18.2%, 2005년엔 2782억원으로 5.5%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004년 82억원, 2005년 155억원으로 2006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이 같은 경영 실적은 경영진과 직원들의 ‘회사를 살리자’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최 회장은 M&A 후 단 한 명의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또 투자자는 물론 직원들 모두에게 현시점의 경영 상태를 알리고자 경영설명회를 실시했다. 또 엔지니어 출신답게 365일 작업복 차림으로 회사를 챙겼다.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법인카드도 잘라버렸다. 또 2004년부턴 직원 자녀 중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캠프도 실시하는 등 직원들의 복지에 힘썼다.
직원들은 그 같은 경영진의 의지에 생산성 향상으로 답했다. 이렇게 높아진 생산성에 경영진은 성과급으로 답했다. 2004년 설에는 최 회장의 사재 4억2000만원을 털어 전 사원에게 나눠줬고, 2004년 말에는 390만원의 성과급을 노조원들에게 지급했다. 또 2004년에는 희망 직원을 대상으로 액면가 500원에 7800주씩 스톡옵션을 줬고, 2005년에는 1200명 전 사원에게 1인당 1만 주씩의 스톡옵션을 줬다. 이는 상장기업 중 2005년 한 해 최고 많은 스톡옵션을 준 기업으로 기록됐다.
S&T중공업이 노사화합을 통해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일깨워낸 기업이라면 아메코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중견기업으로 향해가고 있는 기업이다. 아메코는 창원단지 ‘특산물’인 차량부품, 공작기계를 주력품목으로 2006년 매출액 420억원을 바라보고 있으며 작년 연말 산업포장을 받은 견실한 기업이다.
아메코 사내에 들어서면 아늑한 한국식 인테리어가 방문자를 반긴다. 직원 휴게실엔 작은 분수대와 물길을 만든 것도 눈에 띈다. 직원들의 표정도 ‘군대’를 방불하게 하는 타 업체와는 달리 미소를 띠고 있다. 딱딱한 기계업종과 부드러운 사내 분위기의 이 오묘한 조화(?)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기업인 김경순 아메코 대표의 힘이 크다.
김 대표는 아메코의 전신 제일산업을 이끌었던 남편이 죽자 그의 뜻을 이어 제일산업의 대표로 취임했다. 1987년부터 10여 년간 제일산업은 많은 부침을 겪었다. ‘단순 조립’이라는 업종의 한계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기술개발’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1995년 드디어 그 결실을 맺는다. 일본 미츠비시에 공작기계용 컨베이어 수출 계약을 맺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 지금의 아메코를 있게 한 또 다른 축인 엔지니어 출신의 김익진 부사장을 영입하고 2001년엔 R&D 강화를 위해 부설연구소를 설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92년 매출액 7억원 직원 30명에 불과했던 아메코는 매출액이 2004년 45억원, 2002년 50억원, 2004년 214억원, 2005년 35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모두 김 대표의 ‘기술개발’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지금도 아메코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을 보면 저 역시도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새로운 제품,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하는 욕심이 자꾸만 생깁니다.”
지난 2005년 LG필립스 공장부지 1만2400평을 매입해 대기업 수준의 공장을 가진 아메코 본사 마당에서 선적을 기다리며 높이 쌓인 제품들을 바라보며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창원단지의 미래는?
국내 산업 전반에서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기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서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OECD 가입국의 기계산업 비중을 살펴보면 독일 41.4%, 일본 34.6%, 미국 34.4%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6.9%로 OECD 국가 평균인 29.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일례로 ‘수출 대국’ 한국이 기계산업에서 첫 흑자를 기록한 것이 불과 2년 전인 2005년의 일이다. 여기에 최근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맹추격도 한국 기계산업의 위협 요소 중 하나다.
또 이 같은 업계 전반의 움직임과 더불어 한국 기계산업의 메카인 창원단지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직까지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노사갈등이나, 창원지역 인구 증가로 인한 지가 상승, 업체수 증가로 인한 인프라 부족 등이 그것이다.
가장 큰 것은 산업구조상의 문제다. 상대적으로 낮은 범용제품의 조립생산에 치중돼 있어 가공 조립 기술은 뛰어나지만 설계 기술이 뒤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생산 판매중인 제품 관련 기술 및 노하우는 풍부하지만 앞으로 갖춰야할 첨단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한 연구기술 노하우는 미약하다. 특히 기술력 있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단순 부품·소재 하청업체라는 점에서 더 이상 기술 축적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때 한해 20%를 넘나들던 매출 증가액이 최근 들어선 9%로 감소했다.
“창원은 각 지자체들이 펼치고 있는 ‘기업 사랑 운동’이 최초로 시작된 지역입니다. 기업 사랑 운동이 처음 시작된 2003년 당시만 해도 전국적으로 반기업 정서가 매우 높던 때였습니다. 때문에 시민의 60%가 단지 내 기업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창원에서도 입주 기업들의 해외 이탈 움직임과 투자가 위축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정해혁 한국산업단지공단 남동지역본부 대리)
창원시와 한국산업단지공단, 창원상공회의소가 나서 이 같은 ‘반기업 정서’의 물길을 돌리고자 시작한 것이 기업 사랑 운동이다. 먼저 2003년 4월에 기업 사랑 시민축제를 시작으로 기업의 날 운영, 기업 가족 예우 표준 매뉴얼, 기업 사랑 시립예술단 방문 공연 등 7대 분야 78개 사업에 달하는 세부 운동을 펼쳤다. 특히, 매년 기업인과 근로인 각 1명을 선정해 창원컨벤션센터 내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기업 사랑 운동 사례로 꼽힌다.
기업 사랑 운동을 통한 지역 기업 ‘기 살리기’ 활동 외에도 창원단지는 단지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전통산업과 IT산업의 결합을 꾀하는 E-클러스터 사업, 물류정보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한 산업단지 공동물류사업, 아파트형 공장의 건설 등을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사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사업을 통해 창원단지의 특성화 된 기계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생산체계, 지원기관이 순환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클러스터 정착에 노력하고 있다.
창원단지의 혁신클러스터 사업은 2006년 정부 평가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세균 산자부장관 주재로 지난 2006년 12월 열린 혁신클러스터 사업 성과 보고회가 다른 곳이 아닌 창원에서 열렸다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이 같은 노력이 과연 창원단지를 세계적인 기계산업 클러스터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창원단지의 ‘특산물’인 볼트와 너트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하는 ‘기초’다. 창원단지의 미래에 한국 기계산업의 미래 아니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 Plus·Interview ::
이창섭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본부장
“기업 간 네트워크 강화하고 새 성장 동력 찾는 데 주력할 것”
창원단지가 타 산업단지와 비교되는 특징이나 장점이 있다면?
창원단지는 대표적인 기계산업단지로 최근 자동차와 조선이 호황을 누리면서 함께 성장세를 타고 있는 단지다. 또 창원은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창원단지의 조성과 함께 공업 및 생활용수, 전력, 통신, 항만, 도로와 유통단지의 조성 등으로 산업단지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다 하겠다.
입주업체들을 위해 동남지역본부는 어떤 지원을 하는가
크게 산업단지 관리와 분양, 공장 설립 지원, 자금 및 인력 지원, 혁신클러스터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동남지역본부만의 특별한 활동으론 C2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C2(한국은행 총액한도자금)는 우수 기업에게 대출한 금융기관에게 한국은행이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공단본부가 우수 기업을 추천하면 우수 기업은 C2자금을 연 1.375% 할인된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
현재 창원단지의 문제점이 있다면?
인구 30만 명 규모로 계획된 창원의 인구가 어느덧 50만 명을 넘어섰다. 잘 마련된 인프라도 최근 인구가 늘면서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다”고 하면 대외신인도가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 외부에서 볼 때 그 만큼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기업들이 창원단지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동남지역본부가 앞으로 역점을 둘 활동은 무엇인가
새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이다. 창원은 기계산업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기계산업 만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다. 현재 세계 수위권인 기계산업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활용해 IT, BT, NT 등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이곳을 떠나 사천으로 옮겨가는 7만 평 규모의 한국항공우주산업 부지를 분할해 첨단 업종의 입주를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을 본거지로 점차 첨단산업을 공단 전체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30여 년간 이곳을 지키면서 본부장 개인적으로 역점을 둔 사업이 있다면
기업과 기업의 네트워크 활동이다. 주력산업의 특성상 창원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긴밀한 협조가 특히나 요구되는 곳이다. 때문에 본부장으로 부임 이후 대기업공장장협의회, 경영자협의회, 여성기업인협의회 등을 구성해 기업인들 간의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애썼다. 또 창원시청이나 경남도청과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노력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혁신클러스터 사업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