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를 잡아라.”

올해 일본 경제의 포커스는 만 60세를 맞아 정년퇴직하기 시작하는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에 조준돼 있다.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 <단카이 세대>에서 유래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인구의 5.4%인 691만 명. 고도 경제성장기의 주역으로 기업 전사로 불리며 오늘날 ‘일본 주식회사’를 일궈낸 주인공들이다.

실력 있고 주머니도 두툼한 이들의 퇴직에 일본 산업계가 군침을 흘리는 것은 예정됐던 일이다. 2005년 이들의 개인당 연간 평균소득은 세대별 소득 가운데 가장 높은 244만엔이었으며 평균 저축액도 1843만엔에 이른 데다 이들이 챙길 퇴직금이 총 50~80조엔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700만 명 일시 퇴직에 ‘돈’ 풀려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이 최근 수도권과 서부 긴키(近畿)권에 사는 단카이 세대 남성 4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 생활양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지금은 연평균 92만6000엔을 취미활동에 쓰고 있으나 은퇴하면 70%가량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구입할 예정인 내구소비재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가장 많았으며 대형 박막TV와 홈시어터 등도 많았다. 평균 예산은 대형 박막TV가 41만5000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231만엔 등으로 나타났다.

또 정초 <아사히(朝日)신문>이 단카이 세대 4만 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30.8%가 퇴직 후 가장하고 싶은 일로 취미 생활을 꼽아 높은 소비성향을 반영했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로는 건강과 스포츠(39.3%), 여행과 맛집 기행(36.2%) 등의 순서였다.

단카이 세대의 특징은 금융 자산이 두둑하다는 것이다. 산업계와 금융기관,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손을 잡고 이들의 현금을 공략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철도회사인 히가시니혼(東日本)과 금융그룹인 미즈호 및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 음료회사인 산토리 등 4개사가 올 초부터 단카이 세대의 퇴직금 공략을 위해 손을 잡았다.

대개 단카이 세대인 히가시니혼 '중장년층 회원 조직'이 주된 타깃이다. 이들만 40만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즈호는 이들 회원에게 정기예금 금리를 우대하고 상속에 따른 유산 정리 시 수수료를 할인해준다. 미쓰비시UFJ도 정기예금 금리를 우대하며 유언 신탁 수수료를 낮춰준다. 산토리는 고급 위스키를 한정판매하거나 증류소 견학여행 등의 여행상품을 회원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히가시니혼은 이러한 서비스를 매개함으로써 회원 조직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철도. 금융. 식품 등 전혀 이종의 업체가 ‘단카이 공략’의 슬로건 아래 뭉친 것이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단카이 세대의 귀향이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지역 부동산 정보 제공 사이트를 열거나 귀농생활 체험 상품을 내놓는 등 이른바 귀향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국토교통성이 지난해 단카이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 살고 있는 단카이 세대 가운데 40%가 은퇴 후 귀향 등 지방으로 가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70세까지로 정년 연장이 추진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실제 귀향률이 설문조사만큼 높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나 이들이 귀향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노년의 향락을 만끽할 것은 불문가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 1명이 귀향할 경우 주택 구입비나 관광비용 등을 포함해 최대 1억엔의 경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福島)현은 지난해 9월 이와키에 ‘고향유치센터’를 설치, 지역 출신 단카이 세대들을 손짓하는 창구를 마련하고 현 안의 빈 농가를 전원주택이나 별장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으며 고치(高知)현도 단카이 세대 전용 홈페이지를 열었다. 또 많은 지자체들이 귀농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유통업체들도 단카이 세대의 구매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1월2일 일제히 시작된 대형 백화점들의 ‘복주머니’ 판매 행사에서는 유통업계의 타깃이 선명이 드러났다. 복주머니는 인기 품목 서너 가지를 한 쇼핑백에 미리 담아 놓았다가 싸게 한정 판매하는 상품. 복주머니에 들어가는 상품을 보면 한해 유통업체의 전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형 백화점인 다카시마야는 ‘청춘 시절의 정열을 다시 한번’이라는 감성적인 주제로 유명 가수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CD를 제작할 수 있는 복주머니를  준비하는 등 단카이 세대 소비자를 직접 겨냥했다. 이세탄 다치카와(立川)점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방이 딸린 2700만엔짜리 거액의 단독주택을 내걸었고 소고 요코하마(橫濱)점은 닛산자동차의 신형 승용차와 여성용 고급시계를 한 묶음으로 한 300만엔짜리 복주머니를 판매했다.

백색가전 시장의 ‘큰 손’

단카이 세대의 구매력은 이미 지난해부터 입증되기 시작했다. 특히 백색가전 시장에서 이들은 큰 손으로 통한다. 오디오 메이커들은 단카이 세대를 겨냥해 1970~1980년대 히트했던 브랜드를 되살려내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고급 스피커 브랜드인 ‘다이아톤(DIATONE)’을 6년 만에 다시 내놓았다. 피아노에 사용되는 고급 목재를 이용해 만든 대당 105만엔짜리 스피커로 소문이 퍼지면서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켄우드도 지난해 하반기 ‘트리오’ 오디오를 20년 만에 다시 들고 나왔다. 스테레오 세트 가격은 60만엔 정도로 만만치 않다. 파이오니아도 대당 63만엔짜리 S-1 EX LTD 스피커 판매를 시작하는 등 단카이 세대 주머니를 겨냥하고 나섰다.

“20만엔짜리 인간 펌프식 드럼세탁건조기의 판매가 호조입니다. 2005년에는 전체의 몇%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0%를 넘어섰습니다.”

전자상가인 도쿄 아키하바라 요도바시카메라 백색가전 코너의 한 판매원의 전언은 이렇다. 세탁기뿐이 아니다. 냉장고, 에어컨, 밥솥, 청소기, 레인지 등 고가격대의 주요 가전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이는 종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트렌드이다. 예를 들면 냉장고는 450~500리터급 대용량이, 에어컨은 거실용 입식 대형이 인기다. 오븐레인지도 과열수증기로 조리 가능한 8만~9만엔의 고가 제품을 찾는 비율이 높아졌다. 일본공업협회에 따르면 2000년 일본 생산평균단가를 100으로 할 경우 2006년 세탁기의 생산평균단가는 139, 밥솥은 113, 전자레인지는 138로 각각 상승했다.

이런 소비 현상에 대해 일본 경제주간지 <에코노미스트>는 자녀를 모두 키워내고 생활에 여유가 생긴 단카이 세대가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품이라면 고액이라도 구입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