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유통 형태가 공존하고 발달한 프랑스에서도 인터넷 쇼핑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가 넘쳐나는 파리를 흔히들 ‘쇼핑 천국’이라고 한다. 지난 1월10일부터 프랑스 전역이 겨울 세일에 돌입했다. 지역별로 2월17일~20일까지 한 달 넘게 계속되는 프랑스의 겨울 세일은 프랑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명품족들이 달려오는 대대적인 이벤트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오프라인 매장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프랑스다.

파리에는 갤러리 라파이에트, 봉 마르쉐, 프렝탕 등 파리를 대표하는 백화점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대형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단독 매장이나 작은 가게, 전문점에서 쇼핑하는 걸 훨씬 즐기는 편이다.

파리의 멋쟁이들이 많이 쇼핑하러 오는 파리 16구 파씨거리는 몇 개의 매장이 입점한 쇼핑센터 파씨 플라자, 패션백화점 프랑크 에 피스 등 제법 규모가 있는 쇼핑 공간도 있다. 하지만 거리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단독 매장들이다. 옷가게, 구ENT가게, 가방가게들이다.

파리 외곽으로 나가면 미국처럼 할인점과 각종 브랜드 매장들이 입점한 대형 쇼핑센터와 아울렛몰도 있지만 파리 도심은 소상인 보호를 위해 일정 크기 이상의 대형 매장 진입을 제한한다. 



영국보다 시장 작지만 성장 속도 더 빨라

게다가 남과 다른 개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취향 때문에 파리는 그 어떤 곳보다 상점이 발달했다. 상점마다 한 브랜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셉트에 맞춰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어울리게 전시한 편집 매장이 특히 발달해 있다. 파리 시민들은 쇼핑하러 다니면서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매장 주인들의 감각을 함께 구경한다.

이런 파리에서 편리함으로 대변되는 인터넷 쇼핑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역시 느리지만 디지털 시대에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가 프랑스 원거리판매기업협회(Fevad) 통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에서 인터넷 쇼핑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인터넷으로 거래된 매출 규모는 120억유로(약 15조원)에 달했다. 이는 프랑스 최대, 그리고 세계 2위의 유통업체인 까르푸 매출의 15%에 해당된다.

해외령을 제외한 프랑스 본토 인구 6000여만 명 가운데 사이버 쇼핑족은 1500만 명에 달한다. 인터넷 사용 인구의 57%가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의 천국’ 프랑스에서 인터넷 쇼핑 산업의 붐을 일으키는 주도층은 물론 젊은이들이다. 인터넷 쇼핑족의 46%는 34세 미만의 젊은이들, 그리고 45%는 여성층이다. 인터넷 거래를 한 소비자의 57%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배달 등에 문제가 있었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5% 정도였다.

인터넷 쇼핑은 프랑스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지난 2004년에 매매 규모가 60억유로(약 7조5000억원)이었으나 2년 만에 2배로 성장했다. 인터넷 쇼핑 업체의 수도 2004년의 7500개에서 2006년에는 1만6000개로 급증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인터넷 쇼핑 관계자는 “비슷한 인구 규모와 소득 수준을 가진 영국 등의 이웃 국가에 비하면 아직 인터넷 매출 규모가 작은 편”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5년에 영국의 인터넷 매출 규모는 프랑스의 2배였다.

대신 프랑스의 인터넷 쇼핑의 성장 속도는 무척 빠르다. 프랑스의 인터넷 쇼핑이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통계를 발표하는 콤스코어 네트워크(comscore Networks)에 따르면,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지난해 12월10일까지 전자거래 안전결제를 위한 시큐어 웹 페이지의 방문자 수가 지난여름과 가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프랑스는 90%, 독일은 76%, 영국은 69% 증가했다.

인터넷 쇼핑의 급성장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08년이면 인터넷 매출 규모가 200억유로(약 2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을 특히 자주 이용하는 기간은 친구나 가족들 사이에 선물을 많이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인터넷 쇼핑 급증은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도 바꿔놓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선물이라도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무척이나 반갑고 기쁜 표정을 짓는다. 마음에 안 드는 선물을 받아도 예의상 세상에서 제일 기다리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설이나 추석 지나면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명절 때 받은 선물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바꾸려는 고객들에게 상품권으로 바꿔준다. 프랑스 백화점에도 환불 서비스가 있지만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영수증을 가지고 가야 환불해준다. 그러니까 선물로 받은 제품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거나, 아예 돈으로 환불받기는 쉽지가 않다.

이럴 때 인터넷의 중고품 거래 사이트가 활용되고 있다. 일간지 <르몽드>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물건을 인터넷에서 되파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최근 2~3년 새 등장한 새로운 풍속도다.

여론조사기관 TNS-소프레스가 지난 10월 프랑스의 네티즌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가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을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내놓았다. 2005년(7%)보다 갑절가량 늘었다.



온라인 중개 마켓도 붐

네티즌들은 선물을 되파는 이유에 대해 ▲마음에 안 들어서(47%) ▲쓰지 않는 것이라서(43%) ▲2개 있어서(32%) ▲선물보다 돈이 더 필요해서(3%)라고 중복 응답했다. 프랑스 인터넷사이트 이베이(eBay)나 프라이스미니스터(PriceMinister), 아마존(Amazon) 등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많은 것은 옷이나 액세서리고 그 다음이 CD와 DVD 순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베이나 프라이스미니스터는 ‘마음에 안 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우리 사이트에서 되팔라’는 광고도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되파는 현상 때문에 프라이스미니스터는 연간 매출의 15%가 1월에 집중돼 있다. 이 사이트 마케팅 담당 올리비에 마티오(Mathiot)씨는 “선물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선물 받은 사람이 더 흡족한 물건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그리 충격 받을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인터넷 거래의 확산은 기존 오프라인 매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이 새로운 내수를 창출함에 따라 그동안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던 오프라인 매장들이 매출 증대를 위해 일요일 영업을 해야 한다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요일 영업을 전면 허가해야 한다는 논란이 불붙는 대표적인 장소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파리의 중심가 샹젤리제거리다. 샹젤리제거리에 있는 여성복 매장 안 퐁텐은 일요일에 영업을 하지 못하는 반면, 지방 도시 도빌과 트루빌에 있는 매장은 일요일 영업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일요일 영업은 각 지방의 경찰청이 허가하는 사안이어서 지역별로 이처럼 기준이 다른 것이다.

<르피가로>지는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그동안 일요일에는 문을 닫았던 프랑스 가게들이 점점 일요일 영업을 확대하고 인터넷 쇼핑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