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교부 3전 전패… 아시아나만 득봤다?

“사고 조사 보고서의 사고 원인 분석 및 결론과 같이 이 사건 항공기의 승무원들이 고도단위의 혼동 등으로 인가고도를 오인하였다거나 의도적으로 급강하를 시도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이고, 그 외에 승무원들의 중과실에 의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서, 이를 전제로 한 이 사건 처분은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위법하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이를 받아들인다.”

지난 1월26일 대법원 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건설교통부(건교부)와 대한항공이 5년여를 끌어온 지루한 법정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건교부의 상고를 기각하고 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한항공 임직원 누구도 대법원 확정판결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분노를 토해내는 격한 대화들이 임직원들 사이에서 오갈 뿐이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이제 와서 법원의 판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조 섞인 그들의 대화는 행정기관의 그릇된 판단과 뒤따른 제재 조치가 한 기업의 경영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항변하고 있었다.

건교부와 대한항공의 법정 공방을 마무리 지은 이날 판결은 8년 전 중국 상해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화물기 사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9년 4월15일 오후 4시4분(한국 시간 오후 5시4분). 중국 상해 홍차오 국제공항을 이륙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6316편 MD-11 화물기가 1500m까지 상승하다 급강하하면서 공항 남동쪽 약 11.6km 지점의 주택가 공사장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항공기는 전파되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조종사를 포함한 탑승자 3명과 현지 주민 5명이 사망하고 현지 주민 40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국제민간항공협약(ICAO)의 규정에 따라 사고 발생국인 중국 정부는 즉시 사고 조사반을 구성,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으며 한국 정부(건교부 항공국)와 미국 정부(국가교통안전위원회, 연방항공청)가 각각 항공기 등록국 및 제작국의 자격으로 사고 조사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2년여가 지난 2001년 6월6일 건교부는 항공국 명의로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민항총국(CAAC)은 사고의 원인을 부기장에 의해 잘못 전달된 인가고도(1500미터를 1500피트로)와 승무원의 과도하고 급격한 조작(조종간 밀음)으로 인해 발생한 비행 승무원들의 고도 상황 인식의 상실이었다고 결정했다.”

당시 건교부는 상해 화물기 사고가 대한항공의 중대한 과실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5개월 뒤 항공법 제129조에 따라 사고 발생 당해 노선인 서울↔상해간 화물기 노선면허를 취소했다.

대한항공은 반발했다. 사고 조사의 핵심이 되는 FDR(Flight Data Recorder: 비행 기록 장치)이 파손되고 CVR(Cockpit Voice Recorder: 음성 기록 장치)이 일부만 회수된 상황에서 극히 제한되고 불완전한 자료만으로 사고 원인을 예단하고 항공사에 대한 징계를 서둘러 확정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조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항공은 곧 행정법원에 ‘면허 취소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 만 5년2개월여 만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건교부 사고 조사 보고서의 부당성과 빗나간 행정이 조목조목 지적돼 있다. 상해 화물기 사고가 항공기 승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항공기의 기계적인 결함 등에 의해 발생했으며, 사고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중요 자료들이 훼손된 상태에서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 조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또 사고 항공기의 비행 분석, CVR의 분석 등에 오류가 있고 횡적 조종 계통을 비롯한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이뤄진 조사 결과라며 건교부의 사고 조사 보고서의 신뢰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대한항공의 해당 노선면허 취소처분은 위법이며 건교부의 재량권에서 벗어나 남용됐다고도 밝혔다. 즉 당시 시행중인 항공법 시행규칙에서는 항공법 제129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처분의 기준과 절차를 규정하지 않아 상해 사고에 대한 제재처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제재처분이 불기피하더라도 1999년 12월17일 항공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신설된 별표 제31의 2에 의하면 사망자 5인 이상 10인 미만의 사고에 대해서는 면허정지만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2000년 9월18일 항공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그 처분 기준을 완화해 시행하고 있으며 건교부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처분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한항공의 서울↔상해간 화물기 노선면허 취소는 “건교부의 처분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공익적 목적에 비해 원고가 입게 될 손해가 현저하게 커서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한 처분으로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 5년2개월간의 지루한 법정다툼

대한항공이 주무부처와 5년여 지루한 법정 싸움을 진행시켰던 것은 비단 조종사 실수로 몰고 간 건교부의 부당한 발표에 대한 반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면허 취소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목적 역시 여기에 있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건교부는 무원칙한 행정권 남용과 과잉 제재로 철저하게 대한항공 죽이기를 자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해 사고 이후 건교부가 보여준 각종 조치들은 대한항공으로부터 이 같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먼저 상해 사고에 대한 조사 책임과 주도권을 가진 중국 정부조차도 사고 조사 보고서를 최종 발표하거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하지 않고 중국 내 조종사들의 내부 교훈 사례로만 활용하고 있음에도 건교부는 중국 정부에 사고 조사 보고서를 수차례 요구해 발표하고 이어 법적 근거를 초월한 노선면허 취소라는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건교부가 중국 정부에 수차례 자료 제출과 발표를 요구했던 사실은 본지가 입수한 중국민항총국(CAAC)의 공문서에서 확인되고 있다. 사고 조사가 완료된 시점이었던 2001년 3월5일 CAAC는 건교부의 보고서 요청에 “CAAC는 공식적으로 사고 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 없다”면서 “중국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이번 사고는 교훈 사례로 활용할 것”이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사실상 사고 조사 보고서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그럼에도 건교부는 이를 재차 요구했고 중국 정부는 4월29일 공식 발표 계획이 없음을 다시 확인한 뒤 “한국에서의 공식적인 발표도 권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중국은 “한국의 법과 원칙이 그렇다면 반대하지는 않겠다”며 마지못해 건교부의 요구에 응했다.

국제민간항공조약 26조에 따르면 항공 사고 조사에는 사고 발생국과 사고 항공기 소속국, 사고기 제작사와 해당국 등이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조사의 책임은 사고 발생국에 있고 사고 항공기의 소속국이나 제작 및 설계 당사자의 경우 사고 발생국의 동의 하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상해 사고의 경우 중국 정부가 사고 조사 및 발표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항공기 사고 조사는 원인 규명이 핵심으로, 이를 밝히는 과정에서 해당국과 항공사의 안전과 이미지는 물론 엄청난 액수의 기체 및 사상자 보상 문제와 직결돼 있는 탓에 항공사는 물론 국가 간에도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중국국제항공의 사고는 외국 항공기가 국내에서 추락한 첫 사고로, 한국 정부가 조사 책임과 주도권을 가졌던 지난 2002년 4월 중국 정부가 보여주었던 행동은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은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사고 원인이 조종사 과실이라는 추측들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기상 악화, 기체 결함 등의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등 자국 항공기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태도에서 한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상해 사고와 관련한 조사 및 발표에서 건교부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 건교부는 기체 결함을 주장하는 대한항공의 주장을 무시한 채 조종사 잘못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미발표 사고 조사 보고서를 끈질긴 노력 끝에 입수해 발표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김칠영 항공대학교(항공운항) 교수는 “국제적인 관계에 있어 정부가 국가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전제하며 “항공기 사고의 경우 모든 정부는 자국민 혹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행동을 우선적으로 취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은 국민과 기업이 갖는 권리이기도 하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사고조사결과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사고예방 대책차원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건교부는 불분명한 조종사 실수로 사고 원인을 발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해당 노선면허 취소’라는, 항공사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최악의 조치를 내놓았다.

건교부가 대한항공의 서울↔상해 화물노선면허를 취소한 것은 항공법 제129조에 따른 것이었다. 1999년 4월15일 상해 사고 당시 항공법의 제129조 제1항에는 ‘고의·중대한 과실에 의하거나 항공 종사자의 선임·감독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함으로써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면허를 취소하거나 6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그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특히 건교부는 상해 사고가 발생한 이후인 1999년 12월17일에야 비로소 항공법 시행규칙을 개정, 상해 사고와 같이 사망자가 10인 미만일 때에는 사업 일부 정지(120일) 처분을 부과할 수 있도록 완화시켰다. 또 2000년 9월18일 개정된 조항에는 사망자가 10인 이상(중상자는 사망자 0.5인으로 한다는 단서 추가됨)일 경우 사업 일부 정지(60일)의 제재를 하도록 규정, 더욱 완화시키기까지 했다.

대법원 판결문도 이같은 완화규정을 지적하고 있다. 판결문에는 “항공법 시행 규칙의 개정으로 그 처분 기준을 완화해 시행하고 있으므로 피고(건교부)로서는 선택 가능한 처분 중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처분을 해야 함에도 항공법 시행규칙에 정해진 처분 기준을 초과해 노선면허를 취소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적시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자국 항공사 보호 차원에서 끈질긴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서기보다는 자국 항공사에 불리하게 작성된 사고 조사 보고서를 앞장서서 발표하고 뒤이어 과도한 제재를 함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현저히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상으로도 엄청난 손해를 입히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상해 화물노선은 한·중 무역의 근간이 되는 주요 노선으로 수익 규모는 연간 5700만달러에 달한다.

건교부 관계자는 “상해사고만으로 면허취소를 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괌, 스텐스테드 사고 등 당시 대형사고가 이어졌던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충분히 취할 수 있었던 조치였다”고 말했다.

# '고양이'에게 대든 '쥐'

건교부가 과도한 행정권 남용으로 대한항공으로부터 망신을 당한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건교부는 2002년 이후 부당한 노선 배분과 과징금 부과로 대한항공에 두 차례나 패소한 과거가 있다. 결국 이번까지 대한항공과의 소송에서 건교부는 3전 전패한 것이다.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던 대한항공이 과거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주무부처를 향해 대항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항공 산업의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건교부는 항공사에게 ‘하늘’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건교부의 행정권에 반기를 들며 소송을 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곧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2000년 3월 건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불사했다. 1999년 12월 건교부가 인천↔무한, 인천↔곤명, 인천↔천진(화물), 인천↔우룸치, 부산↔청도, 대구↔청도, 인천↔계림 등 7개 중국 노선권을 몰수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건교부는 노선 배분 후 1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이들 노선권을 몰수 조치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외환위기로 인한 항공 수요 침체 등 중국 측 상무협정 파트너 사정으로 1년이 넘도록 취항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며 건교부 처분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누적된 적자로 벼랑 끝에 몰려있었던 대한항공으로선 궁여지책이나 다름없었다.

4년7개월 동안 설전을 주고받은 끝에 대한항공은 1, 2심에 이어 최종심인 대법원에서도 승소했다. 당시 대법원은 대한항공이 7개 노선을 받고도 취항하지 않은 것은 대한항공의 귀책사유로 돌릴 수 없고, 노선 배정 뒤 1년 내에 취항하지 않으면 노선권을 반려해야 한다는 규정도 사무 처리 준칙에 불과해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두 번째 소송은 첫 번째 소송보다 판결이 빨랐다. 첫 번째 소송보다 1년4개월이나 뒤에 제기했지만 판결은 5개월 뒤 역시 대한항공의 승리로 끝났다.

2001년 1월13일 부산 김해공항을 이륙한 1154편이 엔진 고장으로 회항하자 대한항공은 승객 수송을 위해 교체 항공기를 투입, 재운항을 했다. 그러나 김포공항의 야간운항제한(23:00~06:00)에 따라 착륙이 금지돼 청주지역 상공에서 김해공항으로 재차 회항했다. 이에 건교부는 2001년 4월18일 대한항공 운항 관리사가 김포공항의 야간운항제한 시간 내에 착륙할 수 없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항공기를 출발시켰다는 이유로 과징금 4000만원을 부과했고 대한항공은 폭설 때문에 운항 지연이 불가피했던 사유를 무시한 일방적 행정조치라며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 때에도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건교부의 잇단 행정소송 패소는 행정권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행정 신뢰에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은 후발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밀어주기 위한 건교부의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무리한 법 적용에 의한 제재 이후 아시아나항공이 취했던 각종 특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999년 11월 건교부는 사고 항공사에 대해 면허 취소, 사업 정지, 과징금 처분 등을 가할 수 있는 항공법과는 별도로 ‘사고 항공사에 대한 노선 배분 및 면허 등 제한 방침’을 새로 마련해 시행했다.

이 방침에 따라 대한항공은 2년 전 발행했던 1997년 8월 미국 괌공항 사고에 대한 소급 적용으로 1년, 1999년 12월 영국 스텐스테드공항 사고로 6개월 등 1999년 11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총 1년6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신규 노선권도 배분받지 못했다. 대신 아시아나항공이 모든 신규 노선권을 독점했다. 이 기간 동안 아시아나항공이 확보한 노선권은 주간 운항 횟수 기준으로 약 100회에 달한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총 운항 횟수는 286회. 따라서 3분의 1이 넘는 노선을 1년6개월 만에 추가로 확보한 것이다. 특히 이때 배분된 신규 노선은 대부분이 대표적인 흑자 노선인 중국과 일본의 단거리 노선이었다.

제재가 풀린 뒤에도 첫 노선 배분에서 대한항공은 배제됐다. 2001년 8월 일본 동경 노선 배분 때 주 21회 전량이 아시아나항공의 몫으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 대한항공은 “주 21회는 하루에 3번 도쿄를 왕복하는 꼴”이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배분 사례에서도 찾을 수 없는 편파 배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은 건교부가 상해 사고와 관련해 무리한 발표와 제재 조치를 취했던 근본적인 배경도 이같은 이유에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1년 4월까지였던 신규 노선 배분 제한 조치를 6개월간 연장시킴으로써 이후에 발생하는 추가 노선 배분을 아시아나항공에 전량 밀어주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데에는 아시아나항공의 행동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건교부가 대한항공의 서울↔상해 화물기 노선면허 취소 방침을 발표했던 2001년 6월 건교부 기자실을 방문해 ‘상해 사고 발표에 대한 아시아나항공의 입장’이란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보도 자료는 “왜 법의 정신 및 지침에 위배되는 일관성 없는 행정 조치인 ‘해당 노선면허 취소’라는 경미한 조치를 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있다”며 “정부의 안전에 대한 정책의지의 퇴색, 정책의 일관성 결여에 대해 심한 우려를 금할 수 없으며 절대 납득할 수 없다”고 대한항공에 대한 건교부의 경미한 처벌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했다.

항공기 안전을 강조한 아시아나항공의 보도 자료는 그 의도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 맨 형국이었다. 그러나 갓끈만 고쳐 매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음은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행동에서 곧 드러났다. 아시아나항공은 보도자료 배포 며칠 후 건교부를 상대로 대한항공에 대한 보다 더 강한 제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한편 2001년 8월 소송이 각하되자 건교부와 대한항공의 법정 분쟁에 건교부의 보조 참가인으로 대법원 상고인 자격을 갖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건교부의 행정조치가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며 대한항공 제재기간 동안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잇따라 대형사고를 일으킨 항공사가 그로 인한 불이익과 책임을 경쟁사 특혜로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대한항공 노선면허취소 확정 장관 아시아나서 사외 이사로 활약

물론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정부의 특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대한항공에 대한 건교부의 제재가 아시아나항공에 특혜를 줄 목적이었는지의 여부 역시 알 수 없다. 세 번의 행정소송에서도 법원은 건교부의 대한항공에 대한 행정권 남용만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행정권 남용에 앞장선 당시 건교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에 대한 책임 규명이 뒤따르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해 사고가 발생했던 1999년 4월 당시 건교부 장관은 이정무 현 한라대학교 총장. 그러나 이 전 장관은 상해 사고 발행 한 달 만에 물러나고 후임으로 이건춘 현 국세공무원교육원 명예교수가 부임했다. 또 2001년 6월 상해 사고를 조종사 중대 과실로 발표할 당시의 장관은 국회의원을 지낸 오장섭 현 화랑도협회 고문이었다. 그리고 대한항공의 상해 노선면허 취소를 확정했던 2001년 11월 당시 건교부 장관이었던 임인택씨는 현재 아시아나항공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