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중소기업 밀집지대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외국인 노동자 인산인해…
친환경 생태단지로 변화중

지금 한국에서 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는 어디일까. 서울 이태원동? 압구정동? 모두 아니다. 바로 경기도 안산시 원곡본동이다. 전체 지역민 4만여 명 중 등록된 외국인만 8700명. 불법체류하고 있는 외국인까지 합하면 2만여 명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거의 1:1이다.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넘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까지 30여 개국의 사람들이 모여 한국 속의 작은 지구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원곡본동이다.
원곡본동 일대엔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를 비롯해 태국어 등 동남아시아 각국 글씨로 표기된 음식점, 노래방, 휴대전화 대리점 등 간판 수십 개가 즐비하게 걸려있다. 휴일에도 쇼핑을 위해 거리로 나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서울의 번화가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출근시간이 되면 대로 건너에 있는 안산역 앞 버스 정류장에선 여러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인근의 반월·시화단지로 가는 통근버스, 시내버스, 마을버스들은 하루 1만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태우고 4000여 개의 공장으로 숨 가쁘게 움직인다.
이들 대부분의 일터는 반월단지와 시화단지다. 반월·시화단지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다. 반월단지는 1979년 3월20일 첫 가동 업체인 대일중공업(주)를 시작으로 현재 2830개 사가 들어서 있으며, 시화단지는 반월단지의 후속 사업으로 1987년 착공해 현재 5833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반월단지 모두와 시화단지의 일부는 안산시, 나머지는 시흥시에 있지만 두 곳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의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IMF 이후 외국 근로자 부쩍 늘어
전체 근로자들중 16.6% 차지
반월·시화단지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곳이다. 지난해 말 현재 약17만4000명의 고용 인원이 연간 43조3000억원의 제품을 생산하며 그중 73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업체 수를 따져보면 반월·시화단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국가산업단지 입주 업체의 36%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생산액 대비 16%를 차지하고 있다.

반월·시화단지의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이 높아지게 된 사연은 이렇다.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아직까지도 반월·시화단지의 8000여 개 입주 기업체 중 80% 이상이 종업원 20명 이하다. 업종 역시 이른바 ‘굴뚝 산업’으로 불리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을 비롯한 전자 전기, 기계, 화학, 섬유 등 다양한 업종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중 기계, 전자 전기, 자동차(운송 장비) 관련 산업이 전체 산업의 61.4%를 차지하고 있다.
업체 규모도 주로 영세한 편이다. 전체 기업들 중 공장을 빌려 쓰는 임차 업체의 비율이 3603개로 약 43.08%에 달한다. 단지 내 대기업(고용인원 300명 이상)은 35개사, 외국인 투자기업은 63개 사로 전체 업체 대비 대기업 및 외국인 투자 기업의 숫자 역시 매우 적다. 중소기업들 중에서도 50명 이상 300명 미만 중기업은 890개사 50명 미만 소기업은 7375개 사로 입주 업체들 중 대기업 및 중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1996년 외환위기 당시 반월·시화단지에 상당수의 공장들이 순식간에 부도를 맞으면서 도산이 속출했다. 중소 규모의 업체가 많아 그만큼 외부의 큰 바람에 약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공장 근로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 외지로 빠져나갔다.
그 무렵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원곡동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건축 공사장이나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하기 위해 안산으로 온 이들은 때마침 한국 노동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중소기업 공장의 대체 인력으로 자리를 메우게 된 것이다.
더불어 반월·시화공단의 상당수의 기업들은 대기업 하청 위주로 자체 기술 혁신 및 글로벌 경영 역량이 부족한 편이다. 하청 업체가 아닌 기업들도 범용·모방 기술 중심의 저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기술력, 인력, 마케팅 능력 등의 부족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관리 계획, 수도권 입지 규제 등으로 인한 대기업 입주 제한으로 단지 내 대기업 및 주력 선도 기업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처럼 반월·시화단지엔 첨단기술집약적 하이테크 분야보다는 단순 노동집약 업종들이 모여 있어 고임금의 내국인을 고용할 경우 타산을 맞추기 힘들어진다. 당연히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 임금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고 작업환경이 열악한 기업이 많아 내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
PCB(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 글로벌써키트 엄재석 대표는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솔직히 말해 요즘처럼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4년제 대학졸업자인 상황에서 누가 기름때 묻히며 일하고 싶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늘여나는 데 대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숙련도’를 지적했다. 단순 제조업은 특히나 일하는 사람의 숙련도에 의해 제품의 품질이 좌지우지 되는데 현재 ‘적법하게’ 외국인 근로자를 쓰기 위해선 3년마다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적법하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선 내국인 근로자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이 경우 원가 절감으로 버텨내는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반월·시화공단 내 업체들은 큰 부담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과 같은 외국인 고용법이 오히려 불법체류자의 불법 고용을 늘리고 있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엄 대표는 이런 한계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통한 인건비 절감보다는 중소기업들이 모여 공동으로 기술개발하고 마케팅 하는 네트워킹의 시너지효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반월·시화단지는 세계 최대의 PCB 산업 집적단지다. 현재 국내 PCB 관련 업체 약 700여 개 가운데 절반 이상인 350여 개 업체가 단지 내에 있다.

지금까지 국내 PCB 업계 선도 기업이자 세계 5워권에 드는 대덕GDS, 영풍 같은 대기업은 물론 글로벌써키트 같은 중소기업 67개 사가 모였다. 여기에 한양대, 산업기술대, 세종대, 안산공대, 생산기술연구원, 부품산업진흥원, 한국기술거래소,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올해부터 공용 장비 센터, 시제품 제작 지원 시스템, 신기술 이전 지원 체계 및 전문 인력 양성 체계들을 함께 구축할 예정이다. 또 이와 더불어 공공 기술개발 및 글로벌 마케팅도 함께 하기로 했다.
2대 PCB미니클러스터 회장을 맡은 엄 대표는 "회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통해 미니클러스터가 더욱 활성화한다면, 기판·약품·도금·외주 등 분야별로 소그룹을 형성, 심도 있는 교류를 하는 장이 마련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PCB뿐 아니라 다른 업종들도 이처럼 중소기업 간의 공동 개발, 공동 마케팅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만이 살길”이라 강조했다.
환경 기준 못 맞추면 공장문 닫겠다
반월·시화단지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화호’다. 1990년대 말 시화호는 환경오염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안산, 시흥, 화성에 걸친 시화호는 원래는 방조제를 건설하고 바닷물을 빼낸 뒤 담수호로 만들어 인근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방조제 공사 이후 주변 공장의 하수 및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 문제가 생겼고 조성된 지 3년도 못 돼 이른바 '죽음의 호수'로 바뀌었다. 하지만 2002년 시화방조제를 열어 바닷물과 직접 연결시키고 주변 기업들이 시화호의 환경 정화에 동참하면서부터 150여 종의 철새가 날아들고 물고기가 뛰어노는 생태호수로 바뀌었다. 갈대밭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진 ‘생태의 보고’ 습지는 이 같은 시화호의 변화상을 잘 말해준다. 시화호를 끼고 들어선 고잔신도시 아파트들의 높은 가격 역시 시화호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그 유명한 ‘가을 전어’의 대부분이 바로 여기 시화호 인근의 바닷가에서 잡히는 것들이다.
2007년 시화호의 수질 문제는 거의 정상화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반월·시화단지 인근의 대기와 관련해서는 썩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 반월단지와 시화단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음에도 꽤 분위기가 다르다. 반월단지는 개발 당시 그대로 남겨둔 야트막한 야산들과 시화호 인근의 대규모 습지, 인접한 고잔신도시의 정돈된 환경 덕분에 꽤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화단지에 들어서자 악취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본드냄새와 짙은 꽃향기가 합쳐진 듯 독특한 악취는 이 지역의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아직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는 반증이었다. 이로 인해 인근 안산과 시흥 지역 주민들의 민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반월·시화단지는 시작부터 ‘환경’과는 거리가 멀어요. 단지 조성 목적이 수도권 영세 공장과 공해 업종의 이전을 위해서기 때문이죠. 대부분이 폐수나, 악취, 소음을 태생적으로 유발할 수밖에 없는 업체들이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김정진 정우이지텍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정우이지텍은 ‘오염 업종’ 중 하나로 알려진 도금이 주력 사업이다. 하지만 정우이지텍 안에 들어서면 컴컴하고 답답할 듯한 ‘오염 업종’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정우이지텍 공장 건물의 가운데에는 로비 대신 널찍한 실내 정원이 있다. 전통 한옥의 ‘ㅁ’자 구조로 된 이 사옥은 정원을 중심으로 1, 2층이 뚫려 있어 어디서든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건물의 화장실에는 비데가, 휴게실에는 당구대와 탁구대가 마련되어 있는 등 콘도미니엄 수준이다. 직원이 60여 명에 불과한 이 회사가 2003년 사옥을 옮기며 내부를 리모델링 하는데 쓴 돈은 자그마치 15억원이다.
이 때문일까. 우선 취업을 꺼리던 도금업에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회사의 외국인 노동자는 산업연수생 1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국내 근로자들이고 연령대도 30대 이하가 40명으로 60%에 달한다.
또 반환경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체 환경 기준을 마련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이들을 신고하면 5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사내 환경 위반 신고 및 포상제`를 실시했고, 폐수 정화로 추출한 99.9%의 순금덩어리 17개 830돈쭝(시가 5000만원 상당)을 시흥시를 통해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금 업체=반환경 기업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나 자신도 대놓고 도금업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제가 30년 동안 일해 온 이 업종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요. 정말로 도금 산업은 공해를 내뿜는 기피 업종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을 위해 빚을 내서 새 사옥을 마련했고 환경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을 들였습니다. 기준이 지켜지지 않으면 차라리 공장 라인을 스톱시키라고 했습니다.”

‘친환경’ 요구 높아지고 지원도 는다
경기도는 최근 대기관리권역 내 사업장별로 배출량을 할당하는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를 7월1일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업장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는 수도권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먼지를 농도 기준이 아닌 배출 총량을 기준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반월단지와 시화단지 일부가 들어서 있는 안산시도 고질적인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지 내 악취 배출 업소에 대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악취 감량 여부를 연중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할 계획이다. 또 악취방지법 시행에 따라 반월·시화단지는 특별악취발생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반드시 악취방지시설을 해야 한다.
더불어 체계적인 자금 및 기술 지원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재정이 어려운 업체에 대해서는 악취방지시설 설치 자금을 업체당 5억원 이내에서 무이자 융자 지원하는 한편 연간 11억5000만원을 투자해 업체당 3000~5000만원의 시설 설치 및 개선 자금을 무상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또 2010년까지 93억원을 들여 시내버스 3502대를 천연버스로 교체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생태산업단지 시범사업이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통합 소각 시설 건립, 악취 감시 시스템 구축 등 일부 대기환경 개선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생태단지 사업은 기업들이 배출한 오폐수 및 폐기물과 부산물을 다른 기업의 원료나 에너지로 사용하는 순환 네트워크를 형성,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사업이다.
제이텍은 이처럼 환경에 대해 까다로워지고 있는 요구와 많아지고 있는 지원에 활짝 웃고 있는 기업이다. 바로 제이텍이 생산하는 제품이 대기 오염 방지 장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기 오염 방지 장비는 고가의 설치비는 물론 장비를 운용하기 위해서도 유지비가 발생했다. 또 설치도 매우 까다로워 각 작업장의 특성에 꼭 맞는 방지 장비를 설치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HTO(하이브리드 열적 산화 방식)을 개발한 제이텍의 방지 장비는 유지비가 들지 않고 기존 제품의 30% 정도의 비용이면 충분히 설치할 수 있다. 성능 역시 기존 장비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좋다는 평가다. 이 획기적인 제품의 개발로 불과 직원 수 11명의 제이텍은 2005년 매출 34억원 규모에서 작년 100억원 규모로 훌쩍 뛰어올라다. 제이텍의 장두훈 사장은 올해는 200억원 정도로 매출을 예상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중국 기업들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산업화의 이면을 보기 시작한 거죠. 저희 회사에 오간 바이어들만 해도 벌써 몇 팀이나 됩니다. 의심 많은 그들답게 꼼꼼히 제품이 설치된 모든 공장들을 둘러보더군요. 당연하죠. 가격도 싸고 성능이 좋으니 의심할 만합니다. 하지만 3일 일정 중 하루 반나절 만에 계약한 바이어도 있어요. 더 볼 필요도 없다면서요.”
물론 제이텍이 승승장구해온 것만은 아니다. 환경공학과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일하던 장 대표가 독립한 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정부와 기업의 환경에 대한 무관심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매출이 거의 전무했다. 그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환경 사업’의 비전과 직원들이 장 대표에게 보여주는 믿음이었다. 11명의 직원들 중 창립 멤버가 7명인 것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석박사급 연구 인력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TIP’
‘산학협력’이란 말이 나온 지도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동안 형식적인 면에 치중했던 이 ‘산학협력’이 최근 들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해 내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시화단지 내에 위치한 한국산업기술대학교가 제시한 ‘기술 혁신 파크(TIP Techno Innovation Park)'도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 중 하나다. TIP는 교육, 생활문화, R&D 기능을 한 데 모은 공간이다. 가상의 산업기술대학교 학생 K군의 일과를 통해 TIP를 소개한다.
“K군은 TIP센터 안 학생 기숙사에서 잠을 깬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영어 카페에서 원어민 강사와의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영어 카페는 바로 K군의 기숙사와 같은 층에 있기 때문이다. 원어민 강사와 커피 한잔을 마시고 6층에 마련된 스포츠 플라자에서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지하 1층의 푸드코트에서 허기를 채우고 9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마친 K군은 가방을 둘러매고 TIP 내 디지털 융합 기술 엔지니어링 하우스를 찾아간다. K군의 명패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으니 벌써 회사 사람들은 근무 중이다. 엔지니어링 하우스는 기업의 R&D 시설을 학교 안에 마련한 것으로 벌써 38개 회사가 입주해 있다. 엔지니어링 하우스에서 K군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산불 방재 시스템 자동 SMS 문자 발신 기술’이다. 담당교수, 동료들 그리고 기업 연구원들과 함께 새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배우는 재미도 있지만 여기서 잘만하면 기업에 바로 취업도 되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7시. ‘회사 형님’들이 오랜만에 ‘연극 한편 때리자’며 K군과 함께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지하에 마련된 전문 공연장에서 연극 ‘한단고기’를 봤다. 305석 규모의 아트센터에 가보니 점퍼 차림으로 공연을 보러온 공단 근로자들도 꽤 많이 보인다. 회사 형님들과의 작별인사를 한 후 친구들과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TIP 내 생맥주집에서 시원하게 한잔 하고 싶어서다.“
한국산업기술대학교가 580억원의 공사비와 2년여의 기간을 들여 건립한 TIP는 지하 1층, 지상 18층, 연면적 1만4300평의 규모로 국내 대학교 중 단일 건물로는 최대 규모다.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관계자는 “TIP는 한마디로 교육 + 연구개발 + 생활을 한 공간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대학과 중소기업 간 윈-윈 모델’이다”면서 “중소기업에게는 부족한 연구개발 역량을, 대학에게는 기업 기반의 현장교육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와 함께 중소기업은 현지에서 근무 능력이 우수한 학생을 바로 채용할 수 있고 학생은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덧붙였다.
INTERVIEW | 조규혁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장
“MTV 사업으로 시화, 반월 업그레이드 이루겠다”
조규혁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장은 구로공단 시절부터 40여 년간 기업 지원 임무를 맡아온 베테랑이다. 발로 뛰어다니는 철저한 ‘필드형’ 인물이라는 게 주변의 평이다. 반월·시화단지의 발전을 이끄는 사람들 중 하나인 그와 이야기 나눴다.

반월·시화단지의 특·장점은?
반월·시화단지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남동공단, 상암DMC 등과 인접해 연계체계 구축에 용이하다. 광역 교통 체계와 철도 및 고속도로를 통해 수도권 전역에 1시간 이내의 접근이 가능하다. 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이 공단과 맞닿아 있고 경기테크노파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자부품연구원 등이 공단 내에 있어 중소기업의 신기술 개발 및 육성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반월·시화단지의 문제점은?
반월·시화단지는 대부분의 기업이 소규모의 하청업체다. 지역을 선도할 수 있는 대기업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전체 1000만 평 규모의 공단 규모에 800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각종 인프라도 포화상태다. 최근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환경문제도 남아있다.
서부지역본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가?
산업단지의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문화 복지시설, 인프라 확충, 지원시설 등을 대폭 확충하는 구조 고도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혁신 클러스터를 추진해 산학연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업의 연구 역량, 경영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생태산업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단지 내 중소기업들의 물류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공동물류센터를 건립, 운영 중에 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 사업이다. 시화 MTV는 2016년까지 1조6500억원을 투입하여 시화·반월공단 남쪽 간석지 280만 평에 조성 예정인 첨단산업단지다. 건교부·산자부·환경부 등 중앙정부와 경기도·안산시·시흥시 등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시화지역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체가 된다. 제조업 중심 반월공단의 산업구조를 첨단화함으로써 공단 환경 개선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곳 간석지를 매립해 기업을 유치하면 총 4500억원의 개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