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2003년 초에 한국 4대 그룹 가운데 하나인 SK그룹이 큰 위기를 맞았다. 비록 오랜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그룹의 대외 무역 창구인 종합상사의 분식회계 사건은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됐으며 SK그룹 전체가 중대한 시련과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그해 말, SK그룹 계열에 편입된 59개 회사 중 단 한 곳도 부도난 회사가 없었으며 총매출도 해외 부문 구조조정으로 3조원이 줄어든 50조원을 달성했으며 그룹 전체적으로 1조5000억원의 이익을 달성했다.
문제의 진원지가 됐던 종합상사는 채권단이 구성돼 청산 가치보다는 지속 가치가 높다는 상업적 판단에 따라 새로이 출자 전환돼 비록 채권단의 감리 하에 놓이게 됐지만 클린 컴퍼니(Clean Company)로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실제 1주당 5000원에 출자 됐던 이 회사는 불과 6개월 만인 2004년 3월에 시장 가치가 3배 증가된 1주당 1만5000원에 거래됐으며 지난해 말 현재 3만원에 거래돼 3년 만에 6배로 시장 가치를 높였다.
SK그룹은 미증유의 위기를 당해 총수가 구속되고 구조조정 본부가 해체되는 등 기업 이미지나 신뢰도가 상당히 저하됐으나 시장 가치 면에서는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2004년부터 SK그룹은 신뢰 회복과 투명 경영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내 놓았으며 CEO와 그룹 임직원들이 사회봉사단을 구성해 사회봉사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결국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2003년 말 50조원이던 그룹 매출액은 지난해 말 70조원으로 크게 신장했으며 1조5000억원이었던 세전 이익도 6조원을 상회하는 실적을 올리게 됐다.
그러면 한국 기업의 현실에서 SK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으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필자는 기업 평판(Corporate Reputation)에서 찾고자 한다.
기업의 좋은 평판이 정말로 위기 시에 그 기업을 살릴 수 있는가? 경영자들이나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나 마케팅이나 재정 전문가들, 투자자문 회사나 애널리스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답을 원한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심증은 가지만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과제다. 만일 회사의 좋은 평판이 시장 가치에 영향을 주고 위기 시에도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나 주식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의 신뢰도 역시 손상 받지 않는다면 모든 경영자들이 기업의 평판 가치(Reputation Value)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 제품의 질이 비슷한 다양한 디자인과 브랜드의 제품이 있을 때 어떤 회사의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이미지가 좋거나 기업 평판이 좋은 회사의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슈퍼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 마케팅 이론이다.
좋은 평판은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브랜드 파워(Brand Power)를 높여서 글로벌 슈퍼 브랜드를 창출하는 것이다. 현대 경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고객 중심 경영, 고객 만족 경영, 고객 감동 경영은 바로 좋은 평판이 마케팅 효율을 높이며 기업의 존속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전무를 최고 고객경영자 (CCO: Chief Consumer Officer)로 임명한 사례는 기업들이 고객 평판과 브랜드 파워를 얼마나 중시하는 지 보여준다.
사우스 웨스트 항공사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 규모의 항공사지만 26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미국 내 유일한 항공사다. 그리고 <포천>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항공사 중 가장 평판이 좋은 회사다. 이 회사는 존경과 위엄으로 사람을 대하는 인간 존중의 문화를 갖고 있었고 재미있고 신나는 직장 문화 조성을 통해 종업원을 만족시키고 나아가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뒀다.
이 회사는 월급이나 복리후생은 다른 회사보다 못했지만 노사가 한 마음이 됐고 직원을 가족(Family)처럼 대했다. 구조조정이 필요해도 종업원 해고 같은 방법을 쓰지 않았다. 입소문에 의해 동종업계에서 평판이 좋아지자 우수한 인재가 모여 들었고 고객들도 한번 타보고 싶은 항공사 1위로 꼽았다.
이러한 좋은 평판에 힘입어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항공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이 회사는 시장 가치가 상승했으며 전 미국 항공 업계의 불황에도 순이익이 증가했다.
아울러 이 회사의 회장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는 존경받는 CEO로 선정되고 그의 카리스마와 명성은 세계적인 평판을 얻게 됐다.
코네티컷에 본부를 둔 짐 고레그리(Jim Goregry) 컨설팅 회사가 약 700개의 상장회사들의 브랜드 파워를 측정, 가장 비정상적으로 주식 변동이 심했던 3일간을 설정해 조사한 결과는 심한 충격에 의해 주식이 폭락 했을 때 기업 평판이 이 충격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즉 좋은 평판을 가진 기업은 나쁜 평판을 가진 기업보다 주식 변동 폭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첫날인 월요일에 모든 주식이 상당 폭 떨어졌지만 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평판이 좋은 기업은 전날의 손실을 만회했지만 평판이 나쁜 기업은 만회하지 못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보면 평판과 시장 가치 사이에 일치되는 연결 관계가 성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평판이 10% 좋아지면 회사의 시장 가치는 1~5% 포인트 정도 상승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평판을 기업 자산으로 평가하지 않고 기업의 비용(Social Cost)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기업 광고, PR 활동, 스폰서십, 기업의 자선 활동, 사회 공헌 활동 등을 투자 개념으로 보지 않고 직접적인 비용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 가치는 네 가지로 분류된다. 즉 물적자본(Physical Capital),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 평판자본(Reputation Capital) 등이다. 이중에서 물적자본, 금융자본 등의 시장 가치는 쉽게 측정된다. 그러나 지적자본과 평판자본의 측정은 사려 깊은 평가를 요구한다. 평판과 지적 가치를 합한 가치로서의 자산을 무형 자산(Intangible Asset)이라 하며 이들은 지식, 브랜드, 평판 경영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질레트의 경우 8%의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있다. 47억달러의 판매 수익을 적용해 보면 기업 브랜드에 대한 특허권 사용료는 375만달러에 이른다. 또 다른 예로 2002년에 200억달러의 판매를 달성한 코카콜라는 Coke 브랜드에 대해 14%의 높은 로열티로 전 세계에서 24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기업의 평판 가치를 측정하는 한 방법은 임의의 생산 기간을 20년으로 하고 기대되는 로열티의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다. 만일 Coke 브랜드가 임의의 20년 동안 이러한 로열티를 축적하면서 8%의 성장을 하고 5%를 로열티 사용료로 계산해보면 699억달러의 코카콜라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이나 LG, SK, 현대 등의 브랜드 로열티를 이러한 방법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평판 자본의 중요성을 기업들이 깨닫고 코스트 개념이 아닌 투자 개념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