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살롱은 속칭이다. 지성인들이 모여 철학과 예술을 논하던 ‘살롱’이라는 나름대로 고급스런 뜻을 가진 프랑스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뒷거래’와 ‘성매매’가 이뤄지는 저급한 말로 변질돼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룸살롱은 법률적으로 ‘유흥주점’을 갈음한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7조(영업의 종류)의 규정에 따르면 유흥주점은 ‘제8호 식품접객업 중 라목 유흥주점영업’에서 ‘주로 주류를 조리·판매하는 영업으로써 유흥 종사자를 두거나 유흥 시설을 설치할 수 있고 손님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영업’을 하는 업소를 뜻한다. 간단히 얘기해서 ‘접대부’를 끼고 앉아 ‘가무(歌舞)’를 곁들여 술 마시고 노는 곳이다. 이 시행령을 엄밀히 적용시키자면 ‘단란주점’은 손님에게 접대부를 앉혀서 술을 따르게 할 수 없으며 단순히 ‘노래만 부를 수 있게’ 규정돼 있어 차이가 난다. 당연히 규모와 세금 면에서 유흥주점인 룸살롱이 단란주점보다 더 ‘웃질’이다.
최근 통계와는 달리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룸살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룸살롱, 요정으로 대표되는 전국 유흥주점의 수는 2001년 2만5168개, 2002년 2만7757개, 2003년 2만9552개, 2004년 2만9857개를 정점으로 2005년 2만9660개, 2006년 9월말 현재 2만9403개로 3만 개에 육박하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대표적인 성매매의 본거지인 룸살롱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룸살롱이 ‘성업 중’이라는 근거는 2005년, 2006년 술 소비량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대한주류공업협회가 밝힌 2005년 전체 술 소비량인 주류 출고량이 7년 만에 처음 줄어든 반면 위스키는 전년 대비 7.2%나 늘어났다. 2006년에도 위스키 시장의 판매량은 1.9% 증가했으며, 특히 12년산 프리미엄급의 성장은 1%에 그친 데 비해 17년산 이상 슈퍼프리미엄급은 4.8%나 늘었다. 2001년 슈퍼프리미엄급의 위스키 시장점유율은 9.9%에서 지난해에는 24.5%로 급성장했다는 얘기다. 이렇듯 술의 고급화는 주로 룸살롱에서 이뤄졌다는 것.
최근 룸살롱의 변화를 축약한다면 대형화와 특성화라고 할 수 있다. 룸이 50~100개에 이르고 웨이터, 마담, 접대부 등 상주 인원만 250~300명 가까운 대형 룸살롱도 서울 강남 삼성동에서 서초동의 강남라인에 100여 개에 달한다는 게 ‘이 바닥’에서 20여 년간 잔뼈가 굵은 J실장(43)의 얘기다. 그만큼 한 건물 전체가 룸살롱이거나 관련 업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3월 중순 한 월요일 오후 4시 서울 역삼동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뒤의 어느 사무실. 40~50개의 책상에 각각 20인치 LCD 모니터를 통해 30여 명의 부장, 상무, 전무 등 각 직급의 웨이터들이 고객관리에 한창이다.
“이곳 사무실은 웨이터들이 각각 회비를 걷어서 빌려 쓰고 있다. 업소 사장이 전세보증금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회비로 충당한다. 전체 업무를 보조하는 사무원 1명을 두고 웨이터들이 모여 업무와 영업에 관해 정보도 나누고 전날 영업과 관련, 협의할 뿐만 아니라 일괄적으로 고객들에게 SMS 등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는 곳이다.”
이렇게 대형 업소 사이에서는 웨이터들의 공간이 기업의 사무실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업소의 등장으로 당연히 인력 확보가 용이하고 대형화로 인한 경비 절감을 꾀할 수 있다.
룸살롱 대형화의 진전과 함께 업계에도 철저하게 분업화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처럼 한 업소에 실제 업주와 ‘바지사장(고용 사장)’, 그리고 마담 한둘에 웨이터 몇몇으로 구성됐던 단출한 룸살롱도 간혹 보이지만 드문 케이스다. 요즘은 주로 업소 사장, 웨이터군(群)의 대표 혹은 총무, 마담과 새끼마담 등 접대부 공급책 등 3대 당사자들로 이뤄진 룸살롱이 대세다. 이들은 각각 자기의 지분참여식으로 업소 사장은 장소 제공 및 매출의 일부(10~25%)를 가져간다. 세금 및 여러 가지 조건 등 업소 사장이 다른 당사자들과 맺는 계약 조건에 따라 차지하는 매출의 비율이 결정된다. 경력에 따라 전무, 상무, 실장 등으로 불리는 웨이터들은 주로 고객을 관리하면서 매출 중 술값의 마진을 결정하면서 사장과 마담, 고객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보다 이들 웨이터와 마담들의 ‘권한(?)’이 세진 것은 웨이터들과 마담들이 고객관리를 통해 업소의 매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클럽에서 잘 나가는 간부급 웨이터들은 하루 매출로 수천만원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할 만큼 옛날에 비해 웨이터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웬만한 웨이터 월수입 1000만원
마담이나 ‘호스티스’로 불리는 접대부 측이 받는 액수는 각 룸살롱마다 일괄적으로 정해진다. 기본적으로 봉사료 10만원, 2차비(1타임당) 25만~30만원. 데리고 있는 접대부의 ‘수질(水質)’에 따라 마담의 몸값은 천양지차다. 특히 물이 좋다는 ‘텐프로’에서는 봉사료와 2차비가 그때그때 달라진다. 그래서 좋은 아가씨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마담이나 ‘새끼마담’들은 길거리에서나 미용실, 심지어 휘트니스클럽 등에서 늘 ‘안테나’를 세우고 좋은 조건을 갖춘 접대부 후보자들을 물색한다.
대형화와 함께 업소 주인과 웨이터, 마담의 분화가 전체적인 룸살롱의 변화라면 개개의 업소에 따른 특화도 ‘진행 중’이다. 업소 자체의 관행에 따라 마담이 이른바 ‘테이블 차지(table charge)’라는 마담이 떼어가는 비율에 따라 ‘텐프로(10%)’, ‘점오(15%)’, ‘클럽(20%)’으로 대별된다. 대체로 텐프로가 가장 괜찮은 아가씨가 나오는 곳, 다시 말해 ‘상위 미모 10% 이내’의 접대부가 있는 곳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스스로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아가씨들은 자신의 몫이 많은 텐프로를 선호한다. 텐프로는 기본적으로 ‘2차’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전통’은 깨지고 있다고 한다. 한때 2001년, 2002년 초반 벤처들의 붐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자리 잡았던 텐프로 업소들이 ‘눈먼 돈’이 사라진 다음 최근 들어 그 업소들의 특성이 변해갔다는 것이다.
“텐프로는 일반 클럽에 비해 주로 마담의 역할이 크다. 마담이 술값을 관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아가씨들이 두세 테이블을 뛰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텐프로 업소를 꺼려하는 고객들도 제법 있다. 그런가 하면 몸을 더듬거나 자극적으로 만지려 하는 ‘손기술’을 가진 고객들은 텐프로 업소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텐프로 업소에서는 뛰어난 미모의 아가씨들이 때때로 고객을 가려가며 2차에 응하는 게 요즘 추세다. 과거처럼 연예인 뺨치는 아가씨들이 많지는 않아도 가끔 새로운 아가씨가 인기를 끌게 되면 아가씨를 보기 위해 몇 주 동안 예약이 밀리는 경우도 있다.”(서울 강남 역삼동 한 텐프로 업소 S(33)마담의 설명)
S마담의 말마따나 이 텐프로 업소도 미로와 함께 2차의 집결지인 모텔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텐프로 업소의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대형 업소보다는 소형이나 중형이 대부분이다. 대형 업소에는 접대부들의 대량 공급이 가능한 일반 클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비슷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룸살롱에도 니치마케팅은 존재한다. 최근 문제가 됐던 ‘이미지 클럽’의 형태처럼 특수한 복장이나 역할을 하는 접대부들을 고용하는 업소들이다. 이른바 ‘하드코어(hard core)’라고 불리는 이 업소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서울 북창동에서 이뤄졌던 좀 더 자극적인, 질펀한 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곳들은 주로 회원제로 운영하면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안나(37)’라고 알려진 마담은 이같이 다양한 업소들의 등장에 대해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가씨들의 취향이나 ‘수준’과 손님들의 ‘니즈’가 만나서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1990년대 중반이나 요즘이나 술값과 차지에는 차이가 없다. 오히려 손님들은 더 알뜰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아가씨들 또한 까다로운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됐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텐프로나 일반 클럽, 아니면 하드코어 룸살롱에서 술을 많이 마신다면 총액은 서로 비슷하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룸살롱의 술값은 만만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두 명이 간단하게 마셔도 접대비 한도인 50만원 이상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인카드를 이용할 때 접대비 한도가 넘었을 경우에 카드는 다양한 일반 카드 가맹점의 전표로 나뉘어 계산된다. 업소 측의 ‘세심한 배려’로 실제 접대비 총액은 밝혀지지 않게 된다. 심지어 계산의 시점도 평일 낮, 다른 업소 여러 곳으로 나눠 찍히게 돼 접대비 한도를 만들어 놓은 당국을 따돌린다.
“손님에게 최소한 그 정도도 못해주면 업소에서 일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주 고객들에게는 10회에 1회 정도씩 공짜로 술을 대접하는 것은 다반사다. 명절 때는 약소하지만 선물도 돌릴 뿐만 아니라 고정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논현동 R주점 C부장의 말)
고객 유치 차원에서 룸살롱에 자주 가는 단골 고객들에게는 알아서 술값을 싸게 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법인카드의 술값을 일부러 비싸게 받아 일부 되돌려 주는 탈법적 행태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이렇게 ‘화려하지만 구린’ 룸살롱의 시장 규모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실제로 이에 대해 정확히 분석하고 집계한 자료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2003년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 산업 규모와 성매매 실태에 관한 전국 조사’에는 성매매 산업의 매출 총액은 24조원에 이르고 그 중 룸살롱 등 주점 형태 업소의 성매매 관련 매출액은 무려 16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 환산해 본다면 룸살롱의 수가 더 증가한 것만 봐도 최소한 이보다 많은 액수가 룸살롱에서 성매매와 연결돼 쓰이고 있다는 것을 미뤄 알 수 있다.

룸살롱 종사자들의 소득도 천차만별이다. 잘 되는 업소의 주인들은 하루에 매출 1억원 이상 올리고 한달에 최고 2억~3억원 가깝게 버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한다.
역삼동에 50여 개 룸을 가진 업소의 주인 K씨(48)는 금리조달비용과 부대비용을 포함해 월 1000만~2000만원 정도 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를 비롯 총 4인의 공동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배분해야 하고 건물을 담보로 잡힌 대출액이 한 달에 원금과 합쳐 2000만원 이상 나간다. 그리고 가끔 지인들이 찾아와 마시는 술값과 2차비 등을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비용 처리 된다. 게다가 건물의 감가상각비용, 때때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 등을 무마하다 보면 관리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웨이터들과 마담들이 가끔 단체로 가게를 옮긴다고 ‘엄포’를 놓으면 그에 대해 적절히 대응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웨이터들은 큰돈을 벌까. 개인적으로 편차가 크다고 한다.
“솔직히 번 돈을 악착같이 모으면 웬만한 웨이터들은 월수입 1000만원 이상까지 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달에 고객관리용 SMS 요금만 해도 100만원대가 나오고 집이 멀어서 오가는 교통비, 가끔 못 받는 술값 등 비용도 만만치 않다.”(J실장)
룸살롱 대상 인터넷 비즈 사이트 봇물
마담이나 아가씨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안나씨는 “요즘은 돈을 번만큼 쓰지 않으면 아가씨들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예쁜 아가씨들은 이른바 ‘마이킹’으로 선불을 주고 적게는 1000만~2000만원, 많게는 5000만원 이상 주고 일반 클럽이나 텐프로 업소로 데려오지만 그 돈을 떼이는 경우는 물론, 떼이지 않는다 해도 경쟁 업소나 경쟁 마담들이 그 돈보다 많이 지급하고 바로 옮기도록 종용하는 외부 유혹도 많다. 거기에 웨이터들과의 관계, 고객관리 등도 모두 돈 들어가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마담이나 아가씨들이 후줄근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라 몸치장을 하고 체형이나 피부를 관리하는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서울 역삼동, 논현동, 삼성동, 서초동 등 강남지역의 원룸과 전셋값이 비싼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 마담과 아가씨들이 교통이 편리해서 다른 곳보다 두 배나 비싼 전세금이나 월세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일반 클럽에서 일하는 ‘가영’씨(가명, 24)는 지금 텐프로 업소로의 진출을 꿈꾼다.
“턱 선을 예쁘게 하는 수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현재 눈과 코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 오는 추석 때까지 돈을 모으면 일본에 가서 좋은 성형외과 의사에게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일반 클럽에서 일하는 것보다 깨끗한 손님들을 만날 것이고 좀더 ‘빡세게’ 돈을 벌어서 압구정동이나 이화여대 앞에서 옷가게를 하고 싶다.”
그래도 가영씨는 돈을 착실히 모아 선불금도 다 갚고 전세금 1억5000만원짜리 투룸의 주인이 됐다. 울산 집에다 한달에 100만원 이상 돈을 부쳐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곳이나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로 돈은 안 써야 모은다. 명품에 한눈을 팔게 되면 이 ‘아가씨’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가끔 마담 언니나 아가씨들 중에서 ‘호빠(호스트바)’에서 힘들여 번 돈을 날려버렸다는 얘기가 들린다. 어디나 돈 벌기 쉬운 곳은 없는 것 같다.”
이렇듯 룸살롱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돈을 쉽게 벌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룸살롱 업계 주변에는 다양한 업태가 생겨나고 사라져간다. 그 첫째가 아가씨 소개 업종. 과거에는 직업소개소, 요즘은 각종 정보지에 구인과 구직 소식이 오가고는 있지만 블로그나 싸이월드와 같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한 정보 교류가 눈에 띄고 있다. 아직까지 크게 통합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 ‘나가요’, ‘룸살롱’ 등의 단어를 입력해 보면 각각의 구인 블로그나 사이트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알바’ 형태의 직업 소개 뿐만 아니라 업소의 특징이나 문화, 심지어 내부구조까지 보여준다. 웨이터들의 구직을 지원하는 사이트도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가씨들의 ‘작업복’인 드레스나 그 밖의 옷을 대여해주는 사이트, 체형관리를 할 수 있는 휘트니스클럽, 성형외과 등 아가씨와 룸살롱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봇물처럼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룸살롱 업계도 엄연한 현실적인 경제 공간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변화에 적응해 살길을 찾아가는 것 또한 다른 업계와 다름없다. 그곳 또한 경쟁과 도태를 통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