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태양의서커스 ‘퀴담’
현대의 테크놀로지, 영감 넘치는 음악, 드라마틱한 줄거리의 조화

3월29일부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대형 빅탑에서 공연되는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 <퀴담>의 첫 장면이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 착각을 하게 하는 이 장면에 <퀴담>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퀴담(Quidam)은 ‘익명의 행인’이란 뜻의 라틴어.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신사로 상징되고 있다.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이 개발되고 사용되는 가운데에서도 현대인이 느끼는 익명성의 외로움과 무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퀴담>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익명성의 사회, 소외된 세상을 희망과 따뜻한 결합이 있는 곳으로 바꾸어 놓는 삶에 대한 찬사가 스토리를 지배한다.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좌절과 환멸에 찬 소녀의 여정이 그것이다.
얼굴 없는 신사가 퇴장하고 그가 남긴 모자가 소녀의 머리에 씌어지는 순간부터 소녀의 여정을 따라 강력하고 상상력 넘치는 본격적인 서커스가 선을 보인다. 소녀의 부모님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소녀는 낯선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 세계는 소녀가 꾸었던 꿈 그 자체다.

<퀴담>은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화려한 디자인, 영감 넘치는 음악이 드라마틱한 줄거리와 결합되면서 서커스의 절묘한 기술과 조화를 이뤄나간다. 광대가 선사하는 웃음도 빼놓을 수 없다.
또 현대의 기술과 미술이 결합해 완성된 상상을 초월한 무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의상과 소품, 그리고 어느 미술작품보다도 아름답다는 분장, 영감을 자극하는 음악 등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퀴담>에 등장하는 곡예는 독일식 바퀴(German Wheel)를 시작으로 매달린 고리(Aerial Hoops), 비단 속의 대기(Aerial Contortion in Silk), 뱅퀸(Banquine), 구름 그네(Cloud Swing), 공중 팽이(Diabolos), 손으로 균형 잡기(Hand Balancing), 줄넘기(Skipping Ropes), 스페인 거미줄(Spanish Webs), 동상(Vis Versa) 등 10가지가 대표적이다.
<퀴담>은 태양의서커스가 세 번째로 제작한 작품으로 199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에서 50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공연을 10여 일 앞둔 지난 3월17일 잠실종합운동장 광장에 그랑 샤피또라 불리는 빅탑이 설치됐다. 4.8m 길이의 120여 개의 철제 기둥과 60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작업이었다. 빅탑은 높이 17m, 지름 50m의 대형 천막으로 23m 높이의 메인 기둥 4개가 지탱하는 구조다. 수용 가능 인원은 2600명 이상이다. 설치에서부터 공연이 가능하기까지 셋업을 완료하는 데에만 8일이 소요되며 철거에도 3일이 소요된다. 움직이는 마을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750톤이 넘는 빅탑 장비는 50대 이상의 트럭을 동원하여 운반했다.
<퀴담>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곡예들
에어리얼 후프(Aerial Hoops)
연기자들이 무대 위의 고리에 매달려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여러 명이 함께 허공에서 돌거나 그밖에 여러 가지 동작을 보여준다.
에어리얼 컨토션 인 실크(Aerial Contortion in Silk)
아티스트는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여러 가닥의 붉은색 천에 에워싸인 채 강렬함과 우아함을 함께 결합한 연기를 선보인다. 인상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연기자와 천은 서로 얽혔다가 떨어지고 또다시 얽힌다. 반투명한 붉은 천이 이따금 연기자의 몸에 밀착할 때마다 아찔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뱅퀸(Banquine)
뱅퀸은 인간의 몸이 얼마나 민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작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연기자들이 인간 피라미드나 그 밖의 화려한 곡예를 완벽하게 일치된 동작으로 쉴 새 없이 보여준다. 이 곡예는 1999년에 열린 몬테카를로 서커스 페스티벌에서 ‘황금 어릿광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클라우드 스윙(Cloud Swing)

곡예용 그네와 ‘스페인 거미줄’ 기술을 결합해 독특하고도 놀라운 ‘클라우드 스윙’을 만들어낸다.
디아볼로(Diabolos)
공중 팽이 혹은 중국식 요요로 불리는 이 곡예는 원래 아이들의 놀이였으나 중국인들이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4명의 어린아이가 각각 줄로 연결된 막대를 잡고, 나무로 된 실패를 그 줄로 받았다 튕겼다 하면서 서로 더 세심하고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경쟁한다. 이 공연은 1995년에 파리에서 열린 ‘서크 드 드멩 페스티발(Festival du Cirque de Demain)’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저먼 휠(German Wheel)
독일에서는 육체 단련을 위한 체조가 널리 행해져 왔는데 그 수단 중 하나인 독일식 바퀴는 <퀴담>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공연된다. 바퀴를 돌리고, 방향을 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등 중력에 도전하는 공중제비와 여러 곡예가 선보여진다.
핸드 밸런싱(Hand balancing)
무대 위에 내려서는 연기자의 우아한 실루엣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상상을 하게 한다. 목마에 의지해 균형을 잡는 연기자는 점점 복잡한 형태의 위태로운 동작들을 우아한 자태로 보여준다.
스키핑 로프(Skipping Ropes)
친숙한 아이들의 놀이에 무용과 곡예에서 이끌어낸 착상을 덧붙여 놀라운 곡예의 향연을 보여준다. 줄이 박자를 맞추며 돌아가는 가운데 20명의 연기자들은 엄청난 협동심과 리듬 감각을 발휘해 혼자 또는 둘이서, 혹은 단체로 서로 다른 동작을 선보인다.
스패니쉬 웹(Spanish Webs)
<퀴담>에서는 ‘스페인 거미줄’이 단체로 연기되는데, 이는 이 공연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다. 연기자들은 ‘텔레페릭’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치에 매달린 채로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 둘씩 혹은 단체로 허공 아래로 떨어지는데, 이 때 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그들의 허리 또는 발목에 매달린 줄뿐이다.
스태츄(Statue)
강건하고도 유연한 몸을 지닌 두 연기자가 서로의 몸을 접촉하면서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완벽한 균형감각 없이는 취할 수 없는 동작을 보여준다. 인간 육체의 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들의 연기는 2000년에 열린 몬테카를로 국제 서커스 페스티벌에서 ‘은 어릿광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둡지만 섬세한 뮤지컬판 ‘느와르’
<쓰릴 미>
흔히 ‘뮤지컬’하면 왁자지껄하고 흥겨운 난장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뮤지컬 <쓰릴 미>는 이 같은 뮤지컬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는 작품이다.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쓰릴 미>는 단 두 명에 불과한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게임과 공연 내내 흐르는 단 한 대의 피아노로만 이뤄지는 소름끼칠 듯 아름다운 음악이 극을 이끈다. 보다 진지하고 여운이 남는 뮤지컬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국내 초연인 <쓰릴 미>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chosun.com

숲 속에 버려진 14살 어린이의 시체. 손발이 뒤로 묶여 잘려있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그러져 있다. 현장에 떨어져 있는 안경이 단 하나의 단서. 이 단서를 통해 용의자로 지목된 자들은 19세의 유복한 법대 졸업생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처드 롭이다. 1920년대 이들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범죄는 ‘과연 왜 그들은 살인을 저질렀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이제 막 미국의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라디오와 TV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잔혹한 범죄의 용의자들은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바로 당시의 대변호사인 찰스 대로우의 최종 변론 때문이다. 그 유명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변론이 바로 그 것.
2005년 뉴욕에서 공연이 시작된 후 세 차례나 앙코르 공연을 기록한 <쓰릴 미>는 극의 배경이 충격적인 유괴사건을 다룬 실화라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시간을 넘나들며 극단적이고 복잡한 인간 내면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 점이 화제가 됐다. 현재 미국의 오렌지카운티, 시카고, 보스턴, 올란도, 달라스와 호주의 멜버른 등의 극장에서 주요 레퍼토리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쓰릴 미>의 무대엔 단 두 명의 출연자 외에 무대를 떠나지 않고 극을 이끌어가 가는 ‘제 3의 배우’가 있다. 최면적이고 몽환적인 피아노 연주가 바로 그것. <쓰릴 미>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박수를 치며 한숨 돌릴 수 있는 뮤지컬이다. 공연이 계속되는 90분 동안은 계속해서 몰려드는 ‘긴장감’에 쌓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극 중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때로는 나지막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연주는 배우들의 연기와 맞물려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쓰릴 미>의 한국 초연에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노래를 잘한다는 배우 류정한이 다시 한 번 소극장 뮤지컬에 도전하고, ‘천상의 목소리’란 평을 듣는 배우 최재웅이 네이슨 레오폴드 역을 번갈아 맡는다. 또 친숙한 외모와 파워풀한 열정으로 뮤지컬계의 신성으로 거듭난 김무열과 신인배우 이율이 리처드 롭 역으로 더블 캐스팅됐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달중 감독은 “뮤지컬 <쓰릴 미>는 배우가 두 명만 나오는 작품이니 만큼 무엇보다 배우가 돋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무대 위의 유일한 색감은 오로지 배우뿐이며 어떤 작품보다도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살인자와 피아노가 이끌어가는 <쓰릴 미>의 음습하고 가슴 졸이는 매력은 충무아트홀에서 5월13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일 시 : 3월17일 ~ 5월13일
▶장 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예 매 : 티켓링크 1599-7890, 인터파크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