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V 업계 컨텐츠 확보 비상
문화·미디어 부문 중 충격파가 가장 큰 영역은 방송이다. 특히 1600만 가입 가구를 눈앞에 둔 케이블TV 채널(PP)의 경우 외국인의 간접 투자 지분 한도가 100%로 확대돼 이들의 시장 장악으로 인해 중소업체들의 생존마저 위협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및 애니메이션 편성 쿼터 양보 문제도 심각하다. 협정 타결로 영화의 경우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감소된다. 수입 방송물에 대한 1개 국가 편성 쿼터 제한 또한 현행 60%에서 80%로 상향 조정돼 미국 영상 콘텐츠의 활동 영역을 넓혀준 셈이다. 지상파의 개방은 막았다 하더라도 케이블TV에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차(車)’와 ‘포(砲)’를 떼어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방송위원회는 “미국의 100% 직접 투자 허용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협상 발효 뒤 3년 동안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며 “CNN, 디즈니채널 등 외국 방송 재송신 채널의 우리말 더빙과 국내 광고에 대한 미국 측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선방했다’는 뜻이다.
특히 전체 PP 매출액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홈쇼핑 PP의 외국인 지분 제한을 현행 49%로 유지해 외국인의 홈쇼핑 PP 진출을 막을 수 있도록 관철시켰을 뿐만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등 장르별 쿼터 및 1개 국가 쿼터를 철폐하라는 미국 측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은 “간접 투자 100% 개방은 실질적으로 전면 개방을 뜻한다”며 “미국의 미디어그룹이 한국에 100% 지분을 투자한 법인을 설립한 다음 국내 채널 사업자의 지분을 100% 사들이면 법적으로 손을 쓸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콘텐츠를 제공하고 PP사 지분을 확보하는 현물 투자 방식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식도 늘어나 한국의 영상콘텐츠 시장은 물론 케이블TV 업계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3월 뉴스 전문 채널 CNN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시사주간지 <타임>을 소유한 타임워너그룹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이 한·미 FTA 협상 과정 중 방한, CNN의 한국어 더빙 방송을 거론했다. 이는 곧 미국 측이 방송 부문 직접 투자 100%를 주장한 것처럼 무리한 요구를 내세움으로써 받아낼 것은 최대한 받아내자는 전술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지렛대’로 이용하자는 속셈이다.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협소하기 짝이 없는 한국 시장을 빼앗는 것보다는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한류’를 차단하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거대 아시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전초기지로 삼자는 밑그림이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 3대 공중파 중 하나인 NBC의 경제·금융 채널 자회사인 CNBC의 제레미 핑크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장은 지난 4월10일 방한, 한국 시장에는 케이블 경제 정보 채널 ‘비즈니스앤’과의 제휴를 통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고 향후 이를 발판으로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 모바일 뉴스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방송 부문이 한·미 FTA 타결로 즉각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적용 시점이 협정 발효일로부터 3년 후라고 명시돼 국회의 비준까지 고려한다면 2012년 정도에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정적 영향은 다소 심각하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미국 영화사의 한국 지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 극장에 ‘직배’되는 것과 다름없다”며 “규모와 다양성, 상업성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콘텐츠와 미국 미디어 자본의 한국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곧 타임워너나 디즈니, 비아컴, 뉴스콥 등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이 합작 투자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회적으로 지분 100% 단독 투자 법인을 만들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른바 ‘미드’라 불리는 미국 드라마 붐을 일으키면서 시리즈물, 영화 등 주로 미국 콘텐츠를 수입·공급해 온 CJ미디어, 온미디어 등 대형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들의 ‘카르텔’마저 위협하게 된다. 동시에 겨우 막 싹트기 시작한 제작 인프라인 국내 영상·애니메이션 콘텐츠 산업마저 생존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김영철 콘텐츠사업지원국장은 “미국의 미디어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재유통시켜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며 “미국 드라마들이 실시간으로 밀려들면서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 국장은 또 “미국의 영화·애니메이션 등이 여과 없이 들어오게 되면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미국적인 가치와 사상에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걱정”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케이블TV 시장에서 ‘미국 업체들이 멍석을 깔고 스스로 살판을 벌이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 개방으로 인한 시장의 피해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지난 4월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한·미 FTA 방송 분야 협상 결과 평가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논의된 피해액 전망은 들쑥날쑥했다.
방송위원회 최민희 부원장은 이날 “현재 9개인 한·미 합작 채널을 모두 국내 법인화할 경우 80억원 정도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며 “그 다음 이들 9개 PP가 국내 법인화하는 동시에 유사한 사업자가 들어오는 경우 매년 200억원 정도의 잠식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모든 분야에 미국 채널이 진입할 경우 미국 방송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35.3%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데 이와 동일한 비율로 국내 시장을 차지한다면 연간 411억원가량의 잠식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방송위는 피해 규모를 지나치게 적게 산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표적인 MPP인 온미디어의 경우 연간 매출액이 2000억원 정도이고 외국 PP는 이보다 더 큰 규모와 경쟁력을 지니고 있어 이 같은 MPP가 3개 정도만 만들어져도 6000억원의 시장을 잠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위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들에게 제출한 ‘한·미 FTA 방송 분야 예상 피해 및 보완 대책(안)’을 뜯어보면, PP 외국인 간접 투자 지분 제한이 폐지될 경우 연간 2447억~4894억원의 매출 감소와 함께 900~1800명의 고용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피해액 산정이 분분한 것과 관계없이 방송 개방에 대해 전체 케이블TV 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시장 자체의 존립 위협부터 자체 제작 기반의 붕괴에 대한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케이블방송 152개 채널 가운데 CJ미디어, 온미디어와 지상파 3사 계열사 등 상위 5개 MPP의 50여 개 채널이 이미 시장 점유율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이 같은 대형 MPP들은 그래도 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소 PP들은 죽을 맛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미국계 대형 메이저 기업이 자기네 PP를 아예 인수해 주었으면 하는 영세 PP들도 한둘이 아니라는, 케이블TV 업계의 자조(自嘲) 섞인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케이블TV 업계에는 콘텐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A사가 우리나라 케이블TV에 간접 투자 방식으로 진출한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PP들에게 공급해 온 콘텐츠를 자사 방송을 위해 거둬갈 것은 자명하다. 앞에서 적시한 것처럼 작년 국내 PP들의 미국 콘텐츠 편성 비율은 78%. 그중 절반만 콘텐츠의 목줄을 죄기만 해도 PP들은 마땅히 보여줄 게 없어 간판을 내려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미국계 PP들이 자본력과 경쟁력을 발판으로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으로 진출한다면 지금의 열악한 콘텐츠 제작 환경으로는, 그나마 형성되기 시작한 시장을 몽땅 빼앗겨도 속수무책의 상황이 초래된다.
이는 곧 콘텐츠 가격의 인상과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타격이 가장 큰 부문은 드라마, 영화, 스포츠, 다큐멘터리 채널 등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부분 지상파 계열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스포츠 채널의 경우 폭스나 ESPN 등이 독자적으로 국내 PP를 설립할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BL), 프로골프(PGA) 등 인기 프로그램의 중계권을 독점하거나 콘텐츠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 될 만큼 오를 것으로 우려된다. 이렇게 악순환 된다면 자금력에서 열세인 국내 PP의 자체 제작은 더욱 힘들어져 결국 국내 PP들은 미국 메이저 콘텐츠 제작사의 ‘2차 유통 창구’로, 기존 콘텐츠의 ‘재탕’, ‘삼탕’ 채널로 전락할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독립 제작사들의 고사는 자명하다.
어쩌면 이 같은 상황은 자승자박의 결과라는 게 PP 업계의 자성론이다. 그간 자체 제작을 통한 콘텐츠 축적 및 개발은 뒷전이었고 외국에서 흥행 면에서 검증된 수입 콘텐츠를 들여오거나 자체 제작하더라도 선정성에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으로 돈벌이에 급급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있는 대표적인 MPP인 온미디어의 경우 작년 ‘온게임넷’과 ‘바둑TV’를 제외하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TV영화 <코마>, <썸데이> 등 6개에 불과했다. CJ미디어 또한 오락 채널인 ‘tvN’을 개국하면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렸지만 ‘현장 르포 스캔들’이나 ‘아찔한 소개팅’ 등 선정성으로 지탄을 받는 프로그램 일색이었다. 이처럼 대형 MPP들이 앞장서서 그간 콘텐츠 시장을 어지럽혔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콘텐츠 시장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방송 개방을 기화로 일부 영세 PP들은 콘텐츠 가격 상승과 경쟁력 약화를 모면하기 위해 미국 자본의 투자 유치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되는 등 업계의 어두운 단면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PP들을 주무르며 채널 편성권을 가진 대형 복수 케이블TV 사업자(MSO)들도 한·미 FTA 타결과 함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 대형 자본과의 제휴를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이해타산을 한꺼번에 맞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콘텐츠 채널 확대를 추진해 온 티브로드(태광), C&M 등 대형 MSO들은 이번 방송 개방으로 콘텐츠 보유 미국 업체들의 현물 출자 형식으로 손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미국 업체들은 현금 투자 없이도 콘텐츠라는 현물 출자로 손쉽게 한국 진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콘텐츠를 무기로 종합유선방송업자(MSO)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영세 PP들의 채널을 회수해 미국계 PP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케이블TV의 강자인 온미디어, CJ미디어와 같은 MPP들은 시장개방에도 어떤 식으로든 수익을 보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그렇잖아도 PP들의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양상이 심화될 것으로 분석됐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4월초 내놓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방송 시장개방의 진전으로 대형 MPP와 MSO의 성장 가능성을 전망했다. 미래에셋의 최영석 연구원은 “온미디어는 가장 경쟁력 있는 12개 핵심 콘텐츠 채널을 확보한 데다 핵심 수익원인 광고와 수신료 부문의 매출 성장세도 두드러진다”며 “유료 동영상 콘텐츠도 새로운 미래 수익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 미디어 환경 변화의 최대 수혜주”라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아울러 큐릭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도봉·강북 지역에서 54만 명의 지역 가입자를 확보한 큐릭스는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재빨리 도입하는 등 MSO의 모범 사례”라며 “사용자당 평균 매출액(ARPU) 증가 호재와 더불어 IPTV 도입 과정에서 가치 있는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CNN 등 해외 방송사의 한국 진출 역시 기존 업체와 합작할 가능성이 높아 온미디어, CJ미디어 등 케이블 방송사가 부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방송 개방으로 각각의 입장은 다르지만 PP, MPP, SO 등 케이블TV 업계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동시에 대규모 구조조정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 위기는 내부적 단결을 낳는다. MPP가 중심이 된 ‘한·미 FTA 방송 시장개방 저지를 위한 케이블TV 비상대책위원회’는 방송 개방의 소식이 전해진 지난 4월2일 ‘방송 시장개방을 통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비대위는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해 방송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에 대해 더 할 수 없는 실망을 했다”며 “국내 케이블 TV 방송에 대한 외국 자본의 100% 참여를 허용하고 외국 프로그램 편성 쿼터를 완화하면서 국내 방송 주도권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국에 내주게 됐다”고 주장했다. 간접적이라지만 소유 지분을 100% 내준다면 국내 방송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방송 시장개방을 저지하고 방송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대위는 곧 입장을 바꾸고 현실을 수용했다.
우선 비대위는 시장개방이라는 비킬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4월말까지 가장 민감한 이해 당사자인 PP들의 의견을 수렴, 이를 바탕으로 정부 측에 구체적인 대응 방안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비대위가 검토하고 있는 사항은 ▲업계 공동 협의체 공식화 ▲방송 시장개방에 따른 영향 분석 연구 용역 발주 ▲콘텐츠 품질 향상을 위한 PP 평가제 도입 등 세 가지로 축약된다. 먼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계 공동 협의체 설립이다. 이를 위해 케이블TV업계는 한·미 FTA 협상에서 방송 개방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비대위 체제를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생존 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조직으로 전환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FTA 반대를 위해 싸우던 비대위의 역할은 끝났으나 향후 FTA 방송 개방이 국내 방송 시장에 미칠 영향 분석, 각계 의견 수렴, 법·제도 연구 및 건의 등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계속 유지해나갈 계획”이라며 “지난 4월10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이사회를 열어 비대위를 ‘케이블TV 콘텐츠육성위원회’라는 상시 조직으로 출범시켰다”고 밝혔다.
육성위원회는 시장개방이 가시화할 오는 2012년까지 활동할 계획이며, 해외 콘텐츠와 경쟁할 만한 국내 콘텐츠의 발굴, 일시적 금전 지원이 아닌 인프라 구축 등 콘텐츠의 제작-육성-유통-진흥을 총괄적으로 포함하는 중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데 주안점을 두게 된다.
중장기 전략은 협회가 지난 3월13일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에 제출한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 건의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조직과 일정, 전략을 담은 것이다. 과거 제출된 건의서에는 ▲공동 HD 제작 및 송출 센터 설립 지원 ▲유료 방송 콘텐츠 진흥기금 설립 ▲방송 산업 육성 위한 콘텐츠 분류 체계 개선 ▲PP 등록 요건 강화 및 퇴출제도 도입 ▲콘텐츠 산업 진흥 체계 일원화 ▲시청률 공증제도 법제화 ▲콘텐츠 유통 전담 기구 설립 ▲특화된 콘텐츠 마켓 육성 등의 내용이 담겨졌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품질 향상을 위해 PP들의 경쟁력 평가를 위해 ‘PP 평가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는 앞서 3월 건의서에 담겨졌던 ‘PP 등록 요건 강화 및 퇴출제도 도입’과 일맥상통한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나 협회가 PP를 지원한다고 해도 형평성을 고려하다 보면 유명무실한 지원이 될 수 있다”며 “PP 평가제를 실시해 옥석(玉石)을 가려 기준 없는 지원을 중단하고 제대로 지원을 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 측은 “국회나 정부에 이대로 방송 시장이 개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계속 건의하는 한편, PP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데 업계 전체가 동감하고 있다”고 최근 시장개방의 파고를 넘고자 하는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방송 부문 한·미 FTA 협상을 이끌어 낸 방송위도 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우선 국내 PP 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연간 500억원씩 10년간 총 5000억원을 지원하고, 이 가운데 2007년도에 757억원을 공익성 방송 콘텐츠 제작 지원 등에 집중시키기로 했다. 아울러 방송위 대책에는 ▲프로그램 제작 지원을 위한 약 5000억원 규모의 ‘PP 전용 디지털방송제작센터’ 건립 ▲효율적인 유통 시스템 구축을 위한 ‘PP 콘텐츠 유통지원공사(가칭)’ 설립 등 인프라 구축도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방송위는 ▲공익성 채널 지정 확대, 제작비 쿼터 ▲시간대별 쿼터 등 신규 제도 도입 추진 ▲외국계 PP의 시장 지배력 견제 및 이를 위한 국내 PP 규모의 경제 실현 조치 마련 등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실성을 비난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민노당 천영세 의원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안이하고 막연한 대책만을 열거할 것이 아니라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충분한 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 시장의 비효율성을 걷어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이번 정부의 지원 과정에서는 콘텐츠 제작에 지원되는 것인지 채널 사업자에 대한 지원인지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향후 5년이 방송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미 FTA 타결로 인해 방송 개방은 현실화 됐고 이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케이블TV 업계는 모든 부문에서 전면적인 구조 개선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출판계 “경제성 추구, 내실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이번 한·미 FTA의 저작권 분야의 합의 내용은 크게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사후 50년→70년) ▲일시적 저장의 복제권 인정 및 예외 규정 설정 ▲접근 통제 기술적 보호 조치 보호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OSP: On-line Service Provider)의 책임 강화 등 4가지다. 여기서 가장 민감한 부문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과 OSP의 책임 강화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유예기간을 2년 뒀지만, 그중 직접적인 손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이 출판계와 캐릭터 업계다. 저작권 계약은 출판사·저작자, 출판사·출판사 간 협의에 달려있어 추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기간이 20년 늘어나면서 책값이 상대적으로 비싸지고 그에 따라 가뜩이나 영세한 중소 출판사 운영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61년 작고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경우, 현행 2011년까지 규정된 보호기간이 2031년으로 연장된다. 책값의 6∼10% 수준인 저작권료를 독자가 20년 동안 더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곰돌이 푸’라는 캐릭터의 경우, 원작자 앨런 알렉산더 밀른이 1956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현행 저작권은 2006년에 만료됐다. 하지만 이와는 관계없이 저작권 보호기간이 2026년까지 연장되고 거기에 따르는 저작권료가 지불된다.
현재 국내 출판업계는 3조5000억원 시장(2006년)에 세계 7위 수준(2004년 기준)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학습지 등 교육 관련 서적의 출판 비중은 기형적으로 높은 데 비해 인문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시장 규모와 자국내 출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라 ‘기초 체력’은 형편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번역 도서가 전체 출판 종수의 약 30%, 전체 시장 규모의 절반에 가까운 현실이다. 이는 곧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으로 인해 다수의 출판 업체들이 가외로 부담을 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방증 한다.
한국저작권법학회가 추산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20년 연장에 따른 추가 부담액은 2111억원에 이른다. 이 중 출판 분야의 추가 부담은 679억원 정도로 연간 34억원 수준이며 미국 저작자에게 돌아가는 저작권료 비중이 12%가량이므로 연간 4억원 정도라고 문화관광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추가 로열티 지불액을 최대 연간 200억원으로 산정했고, 반(反)FTA 시민단체인 정보공유연대는 연간 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문광부는 이 같은 분석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으나 지난해 국내 출판계가 해외에 지급한 저작권료가 215억원으로 집계돼 결국 저작권료 부담이 2~4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이처럼 출판 업계에 위기의식을 가져온 저작권 연장 결정과 함께 문광부는 지난 4월4일 ‘출판 지식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고 출판 업계를 달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날 김명곤 문광부 장관은 “출판 산업은 지식 기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지식과 콘텐츠를 창출하는 원천이고 감성과 창조성이 중시되는 문화의 시대를 선도해 나갈 핵심적인 기간 문화 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 및 우리 출판 지식 산업의 현황에 대한 정밀 진단을 바탕으로 출판 지식 산업 육성을 위한 4대 추진 전략과 10대 과제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세계 5대 출판 지식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올해부터 2011년까지 5년간 1600억원을 투입, 2020년까지 출판 시장 규모를 현재 3조8000억원 수준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고 연간 4만5000종인 출판 저작물 발행 종수도 15만 종으로 늘리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정부의 육성 방안에 대해 출판계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있다는 분위기이지만 케이블TV 방송 업계에 비해 훨씬 우호적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국내 작가를 발굴하고 휴대전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늘리는 등 번역서에 대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출판은 책 한 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문화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인 기초 자산”이라며 “문화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원 소스 멀티 유스(OSMU)’의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 기간 연장을 한국의 저작권 성장의 모티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 있게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작품의 해외 번역 활동을 강화해 우리 문학계의 숙원(·)인 ‘노벨 문학상’ 수상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동시에 산업적 측면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윤부한 교류협력팀장은 “지금까지 문학성에 중심을 두고 작품을 선정, 번역해 왔지만 여기에 한·미 FTA의 경제적 의미를 활용해 현지 시장에서 읽힐 수 있는 작품의 번역에도 중점을 둬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현존하는, 작고한 작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함께 미국 대형 출판사와의 네트워크 강화, 우수 번역 인력의 육성 등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라는 게 출판 업계의 중론이다.
포털 업계 “OSP 책임 너무 커 위축 우려”
이번 저작권 분야의 타결을 ‘뜨거운 감자’로 여기는 곳이 포털 업계다. 한·미 FTA 타결로 온라인상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OSP의 책임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저작권 피해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미국 내 저작권자가 국내 관계 당국의 명령 없이 국내 저작권 침해자의 개인정보를 OSP에게 직접 요청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상태다.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업체들은 검찰 등의 개입 없이도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이와 관련된 민사소송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울러 미국의 저작권자 및 그 대리인이 개인정보에 대해 수시로 정보 제공을 요청하게 된다면 또 다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한 포털 업계 관계자는 “해외, 즉 미국의 저작권자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할 경우 포털의 법적 책임이 지금보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업체로서 이에 대한 과도한 업무 부담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법원의 명령서 발부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한편 개인정보 제공에 따른 OSP의 책임에 대한 면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털 업계는 또한 FTA 협상 결과가 적용될 경우 저작권 침해 시 ‘상업적 규모’라는 모호한 내용으로 에둘러 규정돼 인터넷 이용자가 금전적 이득을 얻지 않더라도 비친고제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점도 우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6월부터 발효될 예정인 개정 저작권법에는 ‘영리·상습적으로 저작권 침해 시’에 한해 비친고제가 적용된다. 다시 말해서 국내 저작권법을 적용시킬 경우 네티즌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콘텐츠를 이용하더라도 영리적 목적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이 어려웠지만 이번 FTA 타결로 다른 네티즌이 대량으로 ‘퍼가거나’ 이용해 상업적 영향이 큰 것만 입증되면 처벌받게 된다는 것이다. 포털 업계는 이처럼 비친고제의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경우 앞으로 이용자의 활동이나 이용자 제작 콘텐츠(UCC) 서비스 등 인터넷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지워지는 메모리인 램(RAM)에 일시 저장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복제권을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인터넷 콘텐츠의 ‘일시적 복제’에 대한 과도한 제재도 불만이다. 정당한 저작물 이용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공정 이용(fair use)’을 도입한다 할지라도 하다못해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용자나 업체가 불법 콘텐츠, 예를 들어 불법 음원이나 복제 영화 등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보거나 제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소될 수 있다는 것은 포털 업계는 물론 이용자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시키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미국 기업들이 국내로 대거 진출하게 되면 미국 기업을 대행해 불법 복제 영화를 단속하는 ‘영파라치’와 같은 ‘저작권 파파라치’가 폭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멋모르고 인터넷 상의 콘텐츠를 무단 도용하다 거액의 저작권료는 물론 소송에 휘말리는 네티즌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이호흥 책임연구원은 “현재까지 외국 기업에 의해 저작권 심의 조정이나 소송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하지만 향후 미국 기업의 저작권료나 합의금을 요구하는 저작권 파파라치 시장이 대규모로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한·미 FTA 타결을 기화로 국내에서 불법인 것은 명백하지만 온라인상에서 통용돼 온 영화나 음악의 불법 복제나 이용에 대해서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불법복제방지를 위한 영화인협회’ 관계자는 “2004년 기준으로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를 통한 피해 규모는 2816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2006년에는 최소한 4000억원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들 중 78% 정도가 불법 행위임을 알고 있어 저작권 침해의 개념이 없다는 반증이며 이 같은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도 저작권 보호와 침해 시 처벌이라는 법적 인식을 높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번 한·미 FTA 저작권 부문 타결로 전통적으로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는 속담처럼 우리나라의 희박한 저작권 인식에 일대 전환이 일어날 것은 틀림없다. 정부는 ▲저작권 보호와 개인의 정보 보호 등 국내법과 협정과의 법률적 정리 ▲이로 인한 인터넷 산업의 위축 우려를 불식시켜줄 조치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포털 업계는 자체적으로 저작권 피해 부문에 대해 심도 있는 조치를 고려해야 할 것이고 이용자 개인도 돈 안내고 듣거나 보는 행태를 버리고 저작권 및 그 콘텐츠에 상응하는 반드시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화계 “홍콩 전철 밟지 않으려면 자구책만이 탈출구”
지난해 7월부터 73일로 줄어든 스크린쿼터가 ‘현행 유보’로 결정됐다. 영화 업계는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향후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의무상영일 수를 146일까지 확대할 수 있는 ‘미래 유보’를 주장했지만 ‘현재 유보’의 최종 타결로 더 이상 스크린쿼터를 늘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문화침략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양기환 대변인은 “이번 현행 유보 결정으로 우리나라 영화가 차지할 수 있는 최대 점유율을 스스로 제한한 것”이라며 “앞으로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우리나라 영화 점유율은 20%대로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특히 비상업적, 작품성 있는 예술 영화의 쇠락이 우려된다. 제작사나 투자자들이 흥행성이 보장된 코미디, 액션물에만 집중하는 결과, 실험적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제작 기회를 못 얻거나, 기회를 얻더라도 상영관을 잡지 못하거나, 상영관을 얻더라도 금세 영화를 내려 소리 없이 묻혀버릴 것이라는 걱정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가 1980년대 화려했던 홍콩 영화가 지금은 옛 영광을 잃게 된 것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게 위해서는 이미 잃게 된 스크린쿼터에 연연하지 말고 이 기회에 영화계의 고질적 문제를 자체적,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의 수익률 하락과 투자 위축이라는 반복되는 악순환 고리를 끊는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미 일부에서는 제작비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 배우들의 터무니없는 고액 개런티가 흥행 결과에 따라 개런티가 보장되는 러닝 개런티로 옮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촬영 횟수도 효과적으로 줄여나가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최대 영화 투자·배급사인 CJ엔터네인먼트와 쇼박스도 불요불급한 마케팅 비용 감축, 투자 및 배급 작품 엄선 등 거품 걷어내기에 적극적이다.
정부에서도 한·미 FTA 타결에 따른 영화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진흥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보완 대책을 내놨다. 먼저 문광부는 ▲향후 5년간 30개의 투자조합 결성, 총 300여 편의 한국 영화 제작에 투자하고 ▲세계 시장 진출용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을 위한 ‘성공불 융자’ 및 투자 위험을 담보하는 ‘완성보증보험’제도 도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문광부가 주관하고 제작자·투자자·극장 업계가 참여하는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칭)를 조직,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의 부율(극장 대 투자 배급사의 이익 분배 비율) 조정을 통한 합리적인 수익 배분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문광부는 아울러 ▲문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영화계가 함께 참여하는 공정경쟁환경 조성 지원센터를 설립, 영화 시장의 불공정 사례에 대응하는 한편 ▲향후 5년간 총 200억원을 투자하여 120편의 예술·독립·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지원하는 다양성 영화전문투자조합을 설립할 계획이고 ▲현재 18개인 예술 영화 전용관을 2011년까지 70개로 확대하고 2007년 하반기에는 독립 영화 전용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영화계의 해외 시장 개척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문광부는 우선 올 하반기 영진위 내에 해외진출전략센터를 설립하여 한국 영화 수출을 지원한다. 2011년까지 총 120억원을 투입하여 150편의 해외 마케팅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현재 프랑스와 체결된 공동제작협정을 중국, 캐나다와도 체결하여 해외 시장 확대에도 힘쓰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에 대해 영화계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영화계 안팎에선 “이미 스크린쿼터 축소 당시 정부가 서둘러 발표했던 내용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민노당 천영세 의원도 지난 4월12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가 내놓은 영화 분야 대책은 작년 10월에 발표된 계획과 다르지 않다”며 “이번 스크린쿼터 ‘현행 유보’ 결정으로 향후 한국 영화의 중요한 정책 수단이 사라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책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문광부의 중장기 계획은 ‘식중독 걸린 환자에게 무좀약을 주는 격’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유통·배급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제작을 지원해 봐야 실효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몇 가지 제도 보완으로는 메이저 투자·배급사를 견제할 수 없는 데다 의무상영일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우월적 지위가 공고해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중장기 계획을 이행하는 데에는 5000억원에 이르는 재원이 필요하지만 ‘관람료 인상’ 외에는 뚜렷한 재원 마련 방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은 영화계 자체의 주머닛돈(약 2000억원)을 꺼내 써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계와 정부의 지원책에 대한 미세 조정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어차피 문화·미디어 부문 한·미 FTA가 타결된 이상 정부와 업계, 국민 전체가 협정에 영향을 받게 됐을 뿐만 아니라 협정의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문화 환경이라는 것은 경제적·산업적인 것 이외의 그 무엇이다. 금전적 피해는 둘째치고서라도 소극적으로는 정신을 지배하는 문화적 콘텐츠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적극적으로는 세계적 문화 콘텐츠의 생산자로서 저마다의 자구책이 절실한 때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그 국가 문화의 존립은 물론 그 국가 문화의 자연적 확산이 담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