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성장을 위한
동남아 철강시장 진출 교두보 POSCO Vietnam
그로부터만 15년이 흐른 지난 4월초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도무오이 서기장의 부탁이 실현되고 있는 베트남을 다시 찾았다. 지난해 10월 포스코가 이사회 결의를 통해 확정한 베트남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포스코의 베트남 프로젝트는 베트남 최대 철강 수요 지역이자 경제 중심지인 호치민시 인근의 붕타우성에 열연과 냉연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투자 사업이다. 박 명예회장은 1단계 사업으로 오는 8월1일 착공을 목표로 준비 작업이 한창인 냉연공장 준비 현황을 둘러봤다.
당초 설비 규모를 70만 톤으로 계획했던 붕타우 냉연공장은 올 초 120만 톤으로 건설 규모가 상향 조정됐으며 투자비도 1억3000만달러 증액된 4억9100만달러가 투입된다. 또 압연기 타입도 PCM, 즉 산세압연라인으로 변경함으로써 생산 능력과 원가, 품질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생산 제품은 고급 건자재용 소재인 냉간압연강대(Full Hard)와 오토바이, 상용차 및 드럼용 중고급 냉연 제품(Cold Rolled Coil) 등이다. 생산에 필요한 열연 코일은 우선 포스코에서 자체 공급하거나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하고 향후 인도제철소가 준공되면 직접 공급받을 것이라고 포스코 관계자는 전한다.
포스코는 오는 2009년 붕타우 냉연공장이 완공되면 철강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베트남 국내에 주로 생산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며 여건을 고려해 일부는 인근 동남아 국가로의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
한동희 포스코 베트남 사장은 “오는 2010년 2단계인 연산 300만 톤 규모의 열연공장까지 건설되면 중국과 인도 등 해외 생산과 판매 기지들과의 글로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철광석 산지인 인도에도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강 수입 시장인 동남아의 중심부인 베트남에 하공정인 냉연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쇳물을 만드는 제강은 원료가 있는 광산 근처, 제품 생산은 시장 근처’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트남철강총공사(VSC)의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해 판재류 수요 290만 톤 중 생산 능력은 50만 톤으로 자급률이 17%에 불과하다. 특히 냉연 제품의 경우 현재 가동 중이거나 신증설 계획 중인 설비를 포함해 공급 능력이 122만 톤으로, 2010년 수요 173만 톤, 2015년 254만 톤의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에 포스코는 적기에 냉연공장을 건설함으로써 2010년 이후, 심화되는 현재 냉연 제품의 공급 부족에 대응한 시장 선점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인도, 중국 등 현지법인들과 연계해 생산 및 판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포스코의 베트남 투자는 박 명예회장이 도무오이 서기장을 만났던 1992년 11월보다 7개월 앞선 4월 이미 합작법인 포스비나 설립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또 1년 뒤에는 VSC와 합작한 VPS (VSC-POSCO Steel Corp.)까지 설립해 베트남의 철강 산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여기에 포스코건설이 출자한 법인 IBC가 호치민에 복합건물인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건설해 임대 사업을 하고 있으며 하노이 외곽 고속도로 건설과 인카잉 신도시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연평균 7%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정치·사회가 안정되어 있으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른 내수시장 확대와 수출 여건 개선으로 매력적인 투자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한국은 2006년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베트남 투자 순위 1위를 기록했으며 국내 기업 가운데 포스코는 최대의 투자 규모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말 기자는 호치민시 외곽의 포스비나를 시작으로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하이퐁의 VPS, 그리고 IBC와 하노이신도시사업단을 방문해 포스코의 베트남 투자 현장을 취재했다.
포스코의 개척정신이 낳은 포스비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익숙해진 탓일까. 호치민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포스비나(POSVINA)의 전경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1만 평의 부지에 6개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포스비나는 마치 우리의 1970년대 철공소를 연상시켰다. 호치민 시내를 빠져나와 사이공강을 건너 공단밀집지역인 투득 지구에 들어서자 과거 구로공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포스비나 진입로도 공단이라기보다는 주택과 상점이 즐비해 제대로 찾아가는지 불안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초라한 외형과 달리 포스비나는 포스코의 베트남 진출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베트남에서도 그 역할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절대적 위상을 갖고 있다.
포스비나는 붕타우 일관제철소 건설로 대표되는 포스코 베트남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단추를 뀄던 사업장이다. 또 박태준 명예회장의 베트남 첫 투자 사업으로 포스코의 개척정신이 낳은 회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이곳은 건물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습니다. 포스비나가 설립된 이후 하나씩 둘씩 공장과 주택들이 들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죠.” 한성희 포스비나 부사장은 투득 공단 지구의 시초가 사실상 포스비나였다고 말했다.
포스비나가 설립된 1992년 4월은 아직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고 있던 때였다. 1991년 8월 호치민사무소를 개설한 포스코는 8개월 만에 베트남 남부철강공사와 390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현지 업체인 비나톤사를 인수, 포스비나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적자만 면하면 성공’이라는 안팎의 싸늘한 시선에 포스비나는 2005년을 제외하면 단 한 차례의 적자도 기록하지 않고 가동 이후 줄곧 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투자비도 1년5개월 만에 전액을 회수했다.
포스비나의 생산 품목인 아연도금강판(GI)은 건설용 자재로 흔히 함석판이라 부른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지붕에 얹는 양철판이다. 베트남 가구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경제발전과 함께 건축 붐이 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품목이다. 현재 14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경쟁 환경에서 아연도금강판의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
“초기에는 외국 투자 기업이 없었고, 규정도 미비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포스코의 경영 노하우를 활용하고 합작 투자 회사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한 부사장은 포스비나의 성공 요인은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의 노하우에서 선택한 투자 품목이었다고 말했다. 가동 초기 시장 선점 효과를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부 차입이 없어 금융 부담을 가지지 않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역시 설립 이후 흑자 경영의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포스코로부터의 안정적인 소재 공급은 포스비나의 안정적 경영과 조업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따라서 붕타우 냉연공장이 완공되면 한국에서 공급받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획기적인 물류비 절감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포스비나는 설립 이후 10년 동안 97만7000달러의 연평균 순이익을 달성하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은 베트남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수요 증가에 힘입어 최고 156만7000달러까지 순이익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작년 매출은 1961만달러, 순이익은 23만9000달러였다.
현재 포스비나는 고비를 맞고 있다. 아연도금강판의 판매 경쟁 심화로 경영 실적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2002년 7월 현지 수요 증가에 따라 컬러 강판을 생산 품목에 추가함으로써 매출 증대 및 수익 기반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고부가가치 품목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지붕재의 고급화 추세에 따라 시장 환경도 아연도금강판에서 컬러 강판과 갈비륨 강판으로 이동해가고 있거든요.”
아직 생산량에 있어서는 아연도금강판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에서는 2003년부터는 컬러 강판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지난해 포스비나의 생산량 3만3600톤 가운데 아연도금강판이 1만8800톤으로 절반을 넘었지만 매출은 661만달러에 그쳤다. 반면 컬러 강판은 1만4800톤을 생산해 13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따라 컬러 강판 투자비도 2004년 상반기에 전액 회수했다.
포스비나는 앞으로도 아연도금강판의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 중부 지역의 지붕 개량과 단위 공장 지붕 및 벽체 교체 수요가 향후 10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다만 공급 측면에서 과잉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포스비나가 컬러 강판과 함께 알루미늄이 첨가됨으로써 방열, 방음 효과가 우수한 갈비륨 강판 등 신제품 개발 및 생산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수립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아직까지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중국까지 시장 경쟁에 가세할 경우 포스비나의 미래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밖에 없어 자체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한 부사장은 “초기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것과는 달리 시장 환경이 열악해졌다”며 “지금까지는 품질보다 가격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제품 고급화에 주력해 승부를 걸 계획”이라고 밝혔다.
VPS는 전후 베트남 정부의 최대 프로젝트
포스비나가 베트남 진출의 가능성 타진과 시장 개척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면 이를 발판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포스코의 투자회사는 VPS다. 베트남 선재 및 철근을 생산하는 최초의 공장으로 1만8000평 부지에 연간 20만 톤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최대 27만 톤까지 생산이 가능하다. 지난 1994년 1월 설립돼 이듬해 준공, 상업 생산에 들어간 VPS는 1999년 누계 흑자 전환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써이 증 뜨엉 라이 푹 부 덧 느억(XAY DUNG TUONG LAI PHUC VU DAT NUOC)’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북쪽 하롱베이 방향으로 약 70km 떨어진 베트남 제일의 항구도시 하이퐁에 위치한 VPS의 정문에 걸려있는 문구다. ‘미래를 건설하고 국가에 봉사하자’는 뜻의 이 문구는 ‘철을 만들어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포스코의 슬로건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연상케 했다.
도무오이 서기장과 반 케에트 수상이 직접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사업의 진척을 독려했을 만큼 VPS는 베트남 전후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알려져 이 문구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VPS는 북부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베트남 정부의 균형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건설됐다. 사회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남부에 해외 투자 기업이 집중되고 있던 당시 베트남 정부의 요청을 포스코가 받아들여 설립됐다. 때문에 건설 당시 전폭적인 지원은 물론 이후 포스코의 베트남 투자 사업에서도 베트남 정부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베트남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적 생산 기반 건설에 필요한 건설용 강재를 생산함으로써 전후 베트남 건설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VPS는 1995년 조업 초기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 저가 제품의 유입으로 인한 판매 부진이 적자로 이어졌고 아시아 금융위기까지 겹쳐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판매 촉진 및 품질 관리 강화 등 제품 인지도 향상에 힘입어 공급 과잉 시장에서 누계 흑자로 전환하고 지속적인 흑자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VPS의 흑자 전환과 이후 지속적인 흑자 경영의 비결은 초기부터 품질을 앞세운 경영과 높은 공장 가동률이 꼽힌다. 백진호 법인장은 “설립 초기부터 기업 활동의 목표가 품질과 고객이었다”고 말했다. 수준 높은 제품과 완벽한 서비스 그리고 고객 신뢰의 경영 철학에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생산성이 더해져 흑자 경영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시장 진출 최초 업체로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가 높다는 점도 성공의 이유다.
특히 200여 명의 임직원들에게 동일 업종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고 3조3교대 시스템의 최초 도입 등으로 숙련된 현지 기술 인력의 이직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높은 생산성과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VPS가 지속적인 흑자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이 된다. 1999년 12월 베트남 품질대상 수상, 2001년 10월 누계 생산 100만 톤 달성과 베트남 정부 노동훈장 수훈, 2002년 국제품질경영인증(ISO 9001) 취득, 2003년 이후 4년 연속 베트남 우수품질상 수상, 2004년 하이퐁 무역박람회 품질대상 수상 등의 성과는 이 같은 우수 인력을 경쟁 업체에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VPS의 지난해 매출은 7504만6000달러로 214만9000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최대 호황기였던 2001년과 2002년에 비하면 생산량과 순이익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2000년 이후 건설용 강재 수요가 매년 10% 정도 신장되는 등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2002년부터 중국 철강 업체의 진출과 현지 봉강 업체의 신증설로 공급 과잉이 심화되어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시장 환경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특성과 신규 업체 진입과 확장에 정부 규제가 없다는 게 현재 20여 개 업체가 난립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업체별 생산 규모도 수천 톤에서 50만 톤까지 천차만별이다.
백 법인장은 “소재인 빌릿 구입비용이 제조원가의 64%에 달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빌릿 구입 능력이 곧 경영 능력이고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에 VPS는 빌릿을 직접 생산하는 상공정 공장을 건설해 소재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조달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와 포스코 간 신뢰의 상징 건물

지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최대의 경제 중심지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호치민에 베트남 최초의 철골조 주상복합 빌딩으로 건설한 다이아몬드 플라자(Diamond Plaza)가 우뚝 솟아있는 곳이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개발 사업으로 포스코건설이 해외에서 처음 도전한 일반 건물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가 진행될 당시 국내 건설 업계는 동아건설 퇴출과 현대건설 위기 등 깊은 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때문에 신생 업체에 불과했던 포스코건설이 공격적인 투자 전략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1993년 1월 포스코 경영진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중공업성 장관의 제의에 따라 양국간 철강 산업 협력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포스코건설이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베트남 정부와 포스코 간 신뢰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95년 10월 착공된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부지 면적 1838평에 건축 연면적 1만7249평의 지하 2층, 지상 20층 규모로 1~4층은 백화점, 5층~12층은 사무실, 13층은 식당과 최신시설의 헬스클럽, 수영장, 영화관 등의 부대시설, 14~20층은 아파트로 구성된 복합건물이다. 건물 전체를 철골조로 제작함으로써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청록색 유리로 건물 전체를 장식했으며 백화점이 들어선 1~4층은 흰색 바탕의 바로크 양식으로 건너편의 노트르담 성당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아파트(97%)를 제외한 사무실과 상가 등 모든 시설의 임대율이 100%에 달할 만큼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코트라를 비롯해 기업은행, 외환은행, 대한항공, 삼성물산, 삼성화재, SK텔레콤 베트남 법인 등의 한국 기업들과 미국 총영사관, IBM, P&G, 아디다스 등 다국적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는 포스코건설의 현지 법인 IBC(International Business Center Corp.) 이왕걸 사장은 “1989년 박태준 명예회장의 지시로 중국 상해의 오피스 빌딩과 함께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진출에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다이아몬드 플라자 백화점은 호치민 최고의 명품 백화점으로 호치민 시민은 물론 관광객과 외국인들의 쇼핑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고 이 사장은 덧붙였다. 이에 5월 정기 점포 개편 때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유치해 명품 존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 2호점과 할인마트 등으로 사업 확장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사장은 “눈여겨보고 있는 부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다이아몬드 플라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1480만달러. 준공 이후 계속된 적자에 시달렸으나 지난해 760만달러의 영업 이익과 20만달러의 누적 이익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는 1570만달러의 매출과 8백만달러의 영업 이익을 목표로 첫 배당도 계획하고 있다.
공사비 6400만달러를 포함해 총 9200만달러가 투자된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포스코건설이 40년간(1995~2034년)임대 운영한 뒤 베트남 철강공사 측에 지분을 무상으로 양도할 예정이다.
최초의 현대식 자립형 신도시
호치민에 다이아몬드 플라자가 있다면 하노이에는 북(北) 인카잉 신도시 개발 사업이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하노이 컨벤션센터에서 서쪽으로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넓은 땅이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노이와 경계한 하떠이성에 속해 있지만 머지않아 최첨단 주거단지와 업무시설, 상업시설, 교육·문화시설 등이 함께 갖춰지는 베트남 최초의 현대식 자립형 신도시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북 인카잉 신도시는 부지 면적 80만 평, 사업 기간은 2020년까지 15년, 사업비 6530억원, 총 건축 연면적 81만 평인 초대형 프로젝트다. 완공되면 7600여 가구의 주택과 베트남 최고층인 75층 빌딩 등이 들어설 예정으로 베트남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포스코건설 하노이신도시사업단 손주권 실장은 “하노이 도심까지 불과 6.4km로 상주인구만도 2만5000명에서 3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재 토지 수용과 인접 지역민의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문제가 마무리돼 4월25일 기공식을 가졌다.
손 실장은 “한국의 송도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과 더샵 스타시티, 더샵 아델리스, 더샵 센텀파크 등 초고층 복합단지 개발의 경험을 살려 베트남 국민들이 꿈꾸는 최고의 신도시를 건설해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 인카잉 신도시 개발 사업은 포스코건설이 하노이와 하떠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그 대가로 현금 및 토지를 받아 신도시를 개발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이다. 랑-호아락 고속도로로 불리는 이 고속도로 건설은 당초 베트남 교통부가 추진한 사업으로 기존의 21번 국도의 확장 공사다. 2005년 3월부터 베트남 최대 건설회사인 비나코넥스가 공사를 시작했지만 내부적인 어려움으로 지연되다 포스코건설이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총 공사비 3510억원이 투입돼 27.8km 공사 구간에 자동차 6차로, 이륜차 왕복 4차로 등 10차로로 건설된다.
포스코건설은 하노이 구간 6.4km에 대해서는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받지만 하떠이 구간 21.4km는 두 차례에 걸쳐 토지로 지급받기로 했다. 그 중 1차 토지가 인카잉 신도시 부지다. 2차분 토지 180만 평은 북 인카잉 신도시 서쪽의 궉아이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손 실장은 “랑-호아락 고속도로는 베트남 최초의 이륜차 분리 고속도로로 고질적인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고속도로 건설 경험과 선진 교통 시스템을 전수할 기회”라고 말했다.
1994년 8월 호치민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 포스코건설은 12년 동안 호치민, 하노이, 하이퐁, 중부 퀴년 등지에 철강 공장, 초등학교, 병원 등의 인프라 건설에 참여해 베트남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쌓았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랑-호아락 고속도로와 북 인카잉 신도시 개발 사업에 포스코건설이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같은 인프라 건설 참여가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INTERVIEW | 한동희 포스코 베트남 법인 사장
“베트남 프로젝트는 포스코 기업가 정신과
베트남 지도층간 공감대 형성의 결과물”
포스코와 베트남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포스코가 동남아 진출 기회를 다각도로 모색하던 중 1992년 포스비나를 통해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설립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포스비나 설립 이후 한·베트남 국교가 수립됐죠. 지금 보면 규모는 작지만 의미가 컸습니다. 냉연·열연 공장이라든가 일관제철소를 시작할 수 있는 신뢰와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죠. 이미 한국과 수교하고 있었던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의 투자 대상 지역이 있었음에도 베트남의 장래 판재류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예측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베트남이었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제조업은 수요가 있느냐 없느냐, 전망이 어떠냐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지 않습니까. 또 투자 후 정치적 문화적 투자 리스크가 어떠냐 하는 것을 고려할 때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국민 성향도 근면해 한국 사람과 비슷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좋은 조건이지 않은가 판단한 거죠. 특히 투자는 종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주변국들은 종교 분쟁이 심하지 않습니까. 기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인도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인도와 같은 계급 사회에서는 기업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반면 베트남은 민주적이고, 규율을 중요시하는 의식이 강해 투자의 매력지로 고려됐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도 체계가 잡히고 지난해에는 WTO 가입도 했습니다. 이는 베트남의 정치, 경제,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할 제도적 준비가 돼 있다는 거거든요. 무역 교류에 대한 개방 정책을 기본으로 수출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정비를 했기 때문에 포스코의 베트남 프로젝트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베트남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포스코가 원료를 제외하고, 해외 투자 대상지로 가장 애정을 가지고 착수한 곳이 베트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무오이 서기장을 비롯해 전후 지도자들과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죠. 일관제철소 건설의 필요성에 뜻이 통한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원천으로서 포스코의 태동과 성장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베트남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또 다른 공감대도 형성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도 명예회장이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스코의 글로벌 전략에서 베트남은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요.
글로벌 성장이라든가 투자를 위한 각 지역마다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열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베트남은 동남아 시장 역내 국가들 간의 무역 관세 장벽들이 없어지고 있어 중국 인접 지역이라는 투자처로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철강사에 비해 진출이 빨라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얻고 있고, 정부와의 관계도 돈독하기 때문에 경쟁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베트남 프로젝트에 대해 베트남 정부와 어떤 교감이 오갔습니까.
포스코 최고 경영진과 베트남 최고 지도층의 교류를 통해 일관제철소 건설에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이구택 회장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포스코가 장기적 관점에서 베트남의 기간산업인 철강 사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를 검토, 제안해 달라고 총리가 요청했고, 이를 수락했다는 것은 다른 철강사에 비해 기술, 자금력, 특히 기업가 정신이 국가발전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신뢰를 줄 수 있었다고 판단합니다.
외국 철강회사들과의 경쟁력은 어떻습니까.
내수시장은 우리의 기본 수요가 있으니까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동남아 수출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베트남 내부에서의 경쟁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장 선점이 중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