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진 활동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리히터 규모 6 이상의 강진 중 약 20%가 일본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지진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베 지진과 같은 대형 참사를 부르기도 한다. 만약 미리 지진이 온다는 것을 알고 피할 수 있다면….
“긴급 지진 경보! 지진 강도5. 5초, 4초….” 지난 3월25일 일본 이시카와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인근 노토반도에 도달하기 5초전 지진 경보기가 울렸다. 강진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진경보기 덕분이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속보 서비스를 지난해 8월부터 철도와 병원 등 약 400여 기관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진 속보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일본 기상청의 지진 예보를 민간에 알린 이 시스템과 단말기를 국내 업체인 쓰리소프트가 개발했다. 지진 때문에 수시로 고통 받는 일본인들이 한국 업체의 지진 경보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석배(42) 쓰리소프트 사장은 “일본 기상청으로부터 지진 속보 데이터를 제공받아 이를 민간에 알리는 지진 속보 시스템과 단말기를 개발해 기상청과 시험 가동을 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인터넷 망과 케이블TV 네트워크를 통해 지진 속보를 일반 가정 등에 전달하는 단말기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쓰리소프트가 개발한 지진속보기는 지진파의 종류에 따라 흔들리는 전달 속도가 다른 점을 이용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먼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동의 P파가 오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흔들리는 S파가 온다. 지진에 의한 건물 피해는 S파에 의한 것이다.

P파의 속도는 초속 7Km이고, S파는 초속 4Km다. 따라서 P파를 진원지에서 가까운 관측소에서 최대한 빨리 탐지한 후 수 초 사이에 진원과 진도를 추정, 각지에 속보를 전달하면 S파가 도착하기 전에 예방 조치를 취할 있다는 것이다.

즉 지진의 큰 흔들림이 도달하기 전에 어느 정도 큰 흔들림이 앞으로 몇 초 안에 도달할 것인지 예측해 발신해 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일본 전역의 토지 정보를 정확하게 분석해 탐지에서 속보 전달까지 짧게는 3~5초에서 길게는 수십 초 이내에 끝낼 수 있다.

지난해 발생한 지진의 경우 당시 진원지로부터 380km 떨어져 있는 도쿄의 기상청 직원들은 지진의 진동이 느껴지기 무려 20초 전에 지진 발생 사실과 예상 진도를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쓰리소프트가 개발한 케이블TV 망을 활용한 지진 속보 시스템은 각 케이블TV 방송국의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쓰리소프트는 일본 기상청 산하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와 공동으로 케이블TV 방송을 통한 ‘긴급 지진 속보 실증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2004년 말 양산용 모델 개발을 완료했다.

기상청이 긴급 지진 속보를 발신하면 이는 JEITA 전용 서버를 경유해 케이블TV 방송국의 센터 서버에 수신된다. 전용기기를 설치한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진의 예측 진도, 유예 시간 등을 음성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이 지진 속보 단말기는 협회의 검증을 통과해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전체 직원 58명 가운데 무려 3분의 1인 19명이 연구원인 쓰리소프트가 쏟아 부은 남다른 노력의 결실이다. 이 단말기에는 지진 발생 시 가스 배관 파손이나 누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화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자체 센서를 통해 가스와 전기를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다.

이대형 연구소장은 “케이블TV 망을 통해 방송 전송 형식으로 속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단말기 설치만으로 바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단말기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한 지진 속보 시스템이 모든 지진에 유효한 것은 아니다. 강진의 경우에는 진원지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진 발생 시 ‘10초’라는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지진에 예민한 일본인에게는 이는 심각한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한다. 지진 발생 시 소지품을 챙길 수 있는 여유는 없지만 적어도 밖으로 대피하거나 테이블 아래에 몸을 피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인명 피해만큼은 크게 줄일 수 있다. 매우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지진이란 재난 상황에서의 10초는 인명을 좌우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석배 사장이 지진 속보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은 2003년 초 현재 쓰리소프트재팬 기술총괄이사인 후루야 케이이치씨를 만나고 나서부터. 후루야 소장은 고베 지진에서 가족을 다 잃은 후 지진 속보 시스템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홈 네트워크 비즈니스를 준비하던 이 사장은 우연히 후루야 이사를 만난 후 지진 속보 시스템을 함께 개발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시범 사업 등에 5만 대 정도를 공급했던 쓰리소프트는 올해부터 현지 법인인 쓰리소프트재팬과 OEM 방식으로 공급하는 일본 야기코퍼레이션을 통해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수천분의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산업 등 기업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대만 등 지진 발생이 잦은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쓰리소프트는 이를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100만 대, 15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진속보기 시장은 3~4년 후 홈 네트워크 기술을 응용한 2차 재해 예방 시스템까지 비즈니스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또 일본 기상청은 일본 전역에 순차적으로 시스템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지진속보기 시장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향후 쓰리소프트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