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의 키워드는 ‘분열’과 ‘통합’이다. 각 정파들의 분열과 통합 양상에 따라 대선 결과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서는 분열하는 쪽이 통합하는 세력에 패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지지층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1997년과 2002년 선거에서 양측 후보의 대결은 대략 2% 안팎의 표 차이로 승자가 결정되었다.
올해에도 만약 범여권과 한나라당이 서로 지지층의 분열 없이 맞대결을 한다면, 역시 박빙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대선에서도 분열과 통합의 문제는 판세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이 문제가 유독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것은, 지금의 정치 지형 때문이다. 현 상황은 범여권은 뚜렷한 후보 없이 여러 정파로 분열되어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라는 강력한 후보를 갖고 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두 사람의 지지율 합계는 한때 70%대에 이르기도 했고, 지지율이 일부 하락한 지금에도 여전히 60%대다. 두 사람이 1, 2위를 질주하는 반면, 범여권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만이 5%대를 기록하고 있을 뿐 다른 대선 주자들은 1~2%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범여권의 분열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여당이자 원내(?) 1당의 위치에 있던 열린우리당은 이미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지난 1~2월 탈당한 의원들이 ‘중도개혁통합신당’과 ‘민생정치모임’이란 두 개의 정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열린우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도 당 해체를 주문하면서, 여차하면 당을 뛰쳐나갈 태세다. 지금 추세라면 범여권에서는 최소 3명 이상의 대선 후보가 등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분열과 통합의 문제에서 더 주목을 받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3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탈당했다. 일종의 1차 분열이다. 그러나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1, 2위인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비해 워낙 낮은 상태였던 데다 그를 따라 함께 탈당한 사람들의 규모도 작어 한나라당에 큰 충격을 주진 못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은 주기적으로 당이 쪼개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사생결단식 전투 때문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당 안팎에선 ‘한나라당이 쪼개진다’, ‘아니다, 결국은 하나로 갈 것이다’ 하는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만약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라도 당을 뛰쳐나가면 한나라당 필승 구도가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분열 여부는 올해 대선의 최대 변수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단합을 유지하든, 아니면 쪼개지든 올해 대선은 다자 구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줄잡아 꼽아 봐도 범여권에서만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친노 후보와 민주당 후보까지, 5개 그룹이 어떤 형식으로든 대선 후보를 내거나 후보로 나설 태세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후보까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범여권의 분화에 따른 대선 후보의 난립 현상은 선거 구도를 뒤흔들 만큼 큰 폭발력은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분열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의 선택은 대선 판 자체를 뒤흔들 만큼 파괴력을 갖고 있다. 분열과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한나라당과 범여권의 상황을 짚어본다.
한나라당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갈등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미 올해 초부터 상대편을 가리켜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나라당은 오래 전에 ‘이명박 당(?)’과 ‘박근혜 당(?)’으로 나눠진 상태다. 좀처럼 중립 지대나 완충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지경이다.
또 양측은 계속해서 사사건건 충돌해 왔다. 멀게는 작년 7월 전당대회 때 당 대표를 놓고도 격돌했었다. 결과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의 판정승이었다. 박 전 대표의 지지를 업은 강재섭 당 대표가, 이명박 전 시장의 지원을 받은 이재오 최고위원을 누르고 승리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당을 움직이는 힘에서나 여론조사에서 팽팽한 호각지세를 이뤘다.
이 같은 균형이 깨진 것은 작년 가을 무렵부터다.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균형추가 한번 기울자 여론은 급속한 쏠림 현상을 보였다. 올해 초 한때 이 전 시장은 5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 20% 안팎의 박 전 대표에 비해 무려 30%포인트 가까운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이 전 시장이 앞서 나가자 한나라당 상황도 복잡해졌다.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 때부터 박 전 대표가 재건한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1997년과 2002년 대선 패배, 뒤이은 2003년 불법대선자금 의혹 사건과 이때 붙여진 ‘차떼기 당’이라는 불명예, 여기에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곧바로 불어 닥친 역풍으로 인해 2004년 4월15일 17대 총선을 앞두곤 수습 불능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박 전 대표는 한 달도 안 되어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121석(전체 의석 299석)을 가져다 줬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긴 했지만, 당시 총선의 승자는 박근혜였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맡기 전까지 한나라당의 예상 의석수는 많아야 60~70석 정도였다. 그런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는 31석 모자랐지만 원내 2당으로 일단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하도록 만든 1등 공신이 박 전 대표인 것이다. 이후 박 전 대표가 이끄는 동안 한나라당은 모든 선거에서 연전연승했다. 이른바 한나라당 불패 신화라는 것도 ‘박근혜’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청계천 완공과 성공한 CEO(최고경영자)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전 시장이 서서히 추격하더니 2006년 가을 무렵 역전에 성공했다. 박 전 대표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 분열 여부의 열쇠는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유 있게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을 뛰쳐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프리미엄’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다르다. 지금 같은 추세로 한나라당 경선이 흘러간다면 박 전 대표의 승산이 높다고 하기 어렵다. 결국 박 전 대표나 그 캠프 주변에서는 경선 불참 후 독자 출마의 유혹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거꾸로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끌어안는 모양으로 한나라당의 단합을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도 높아 보이진 않는다. 지난 2월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법률 특보였던 정인봉 전 의원의 이 전 시장 비리 관련 폭로, 뒤이은 이 전 시장의 과거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씨의 폭로, 최근 강재섭 당 대표의 경선 중재안을 둘러싼 전투가 이어지면서 양측 사이를 가로지르는 깊은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양측은 8월20일쯤으로 예상되는 한나라당 전국 동시 대선 후보 경선에 맞춰 앞으로 3개월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일단 6월 중 한나라당 후보 등록이 이뤄지면 탈당이나 분당 가능성은 없어진다. 현행 선거법이 한 정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한 사람이 그 결과에 불복해 다른 당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이 한나라당을 떠나는 상황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름다운 경선’이나 ‘깨끗한 승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 하루에 결정되는 승부 방식 때문에 양측은 죽기살기식 전쟁을 벌일 것으로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더욱이 두 후보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양쪽이 ‘후보 검증’을 앞세운 네거티브(비방음해) 공방이라도 벌일 경우, 한나라당은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명목상 당이 하나로 유지되어도 사실상 당은 쪼개져 있는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에는 구조적 갈등도 도사리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에는 주로 1990년대 초중반부터 정치를 시작해 그간 한나라당을 이끌어 온 이른바 당내 주류 세력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에 비하면 이 전 시장 측의 주요 인사들은 그간 한나라당의 비주류였거나, 새로 정치를 시작하려는 신예들이 많다. 인적 구성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도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두 진영은 대한민국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 한나라당의 진로 등에 대해서도 적잖은 인식 차이를 드러내곤 한다.
한나라당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큰 힘은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지지층의 여론이다. 현재의 여론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10년의 집권에 식상한 국민들이 그 대안으로 한나라당을 지원하는 구도다. 지난 4·25 재보선에서 이 구도가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론조사 등을 볼 때 한나라당 필승 구도는 건재하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는 심리적으로는 상대방을 받아들이거나, 용납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와 맞물려 한나라당 분열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경고와 압박은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결국 어떤 힘이 막판 우위를 점하게 될 지가 한나라당 후보 경선 양상을 결정할 전망이다.
범여권은 후보 난립
범여권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분열을 거듭할 전망이다. 원심력이 여전히 강한 탓이다. 그 한복판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최근 여권에선 정동영, 김근태 두 전직 열린우리당 의장과 노 대통령 사이의 대형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지금껏 이끌어온 인물들로 당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들 세 명이 열린우리당, 더 나아가서 범여권의 진로를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내며 공개적으로 다투고 있는 게 최근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올해의 대선보다는, 자신의 퇴임 이후 두 달여 만에 치르게 될 내년 4월 총선을 통한 ‘노무현 표 정치 세력의 존속’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열린우리당 내 다수가 믿고 있다. 물론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대선보다는 총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제대로 겨루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상당수 여권 의원들의 생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대부분의 여권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으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는 점이다. 지난 4년간 여권을 대표해 온 대선 주자인 정동영, 김근태 두 전 의장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다르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다운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당을 없애려 한다며, 여권 대선 주자와 의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여기가 여권 빅뱅이 발화되는 지점이다.
여권의 2차 분열은 지난 1~2월의 2차 때보다 훨씬 규모가 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차 분열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정세균 의장 등 현 지도부와 당 중진들이 ‘질서 있는 통합’을 외치며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현실성은 크게 떨어진다. 열린우리당 전체가 옮겨가는 방식의 새 정당 창당은, 당 간판 바꿔달기, 달리 말하면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들과 힘을 합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린우리당 분화는 사분오열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 탈당해 만들어진 김한길 의원이 이끄는 중도개혁통합신당,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민생정치모임에, 2~3개의 새로운 정파가 추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친노 중심의 정당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여권에서는 대선 후보 난립 현상이 불가피해진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대선 후보만 해도,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 천정배 의원, 김원웅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친노 그룹의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유시민 장관 등이 있다. 이들만 해도 10명이다. 여기에다 민주당에서도 조순형 의원과 최근 복당한 이인제 의원, 김영환 전 의원 등이 대선 후보로 얘기된다. 범여권 후보만 13명에 이르는데 추가될 가능성도 꽤 있다.
당초 여권의 구상은 이들을 모두 오픈프라이머리(100% 완전국민경선)에 참여시켜, 여권 단일 후보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추세라면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만들어낼 주체도 없고, 여기에 대선 후보들을 끌어들일 명분도 ‘한나라당 집권 저지’ 외에는 마땅하지 않다. 범여권 안팎에서는 결국 지지율 위주로 후보군이 압축되어 가고, 그 과정에 의원과 정치 세력도 따라가다 막판에 오픈프라이머리 등 여러 방안을 통해 단일 후보를 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범여권의 상황은 ‘분열’ 모드이며, 통합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