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국가 경제의 뿌리다. <이코노미플러스>는 그 뿌리의 터전이 되고 있는 전국의 산업단지를 찾아 그 역사와 입주 업체의 애환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모습을 그려본다. 그 일곱 번째로 그간의 부진을 떨치고 최근 조선업의 신 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대불국가산업단지’를 방문했다.

최근 전남 영암군 주민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군내에 있는 삼호면 일대에 들어선 여러 기관들의 명칭에 ‘영암’이 아니라 ‘목포’가 쓰였기 때문이다. 이에 영암군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영암군에는 전남 서남권 최대 규모의 ‘대불국가산업단지(이하 대불단지)’와 세계 5위의 현대삼호중공업 등이 들어선 서남권 최대의 산업 지역인데도 삼호읍에 있는 산업단지를 ‘목포대불단지’ 호텔현대를 ‘호텔현대목포’로, 공항을 ‘목포공항’으로 부르는 등 일부 기관과 업체가 ‘목포’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암군 주민들의 말처럼 대불단지는 정확히 따지면 전남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와 난전리 일원에 걸쳐 들어서 있다. 지금도 대불단지가 전남 영암에 있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100명 중 한 명도 힘들 것이며, 목포 부근이라고만 답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대불단지는 어찌 보면 그동안 ‘잊혀져’ 있던 곳이다. 전라남도가 낙후된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지난 1989년 야심 차게 첫 삽을 떠 1997년 준공했지만, 지난 2004년까지도 분양률이 50%를 밑돌았다. 당연히 예산 낭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비난이 잦아들 무렵에는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깊은 잠이 들어있던 대불단지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언저리다. 세계 조선 업계가 호항을 맞으면서 한 해 동안 전체 기업 중 20%가 넘는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또 현대미포조선 대불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선박기자재 업체인 KS 야나세산업이나 도장 업체 삼강S, 크레인 제조업체 대성호이스트 등 각종 관련 업체들이 속속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2007년 현재 대불단지는 이로부터 불과 2~3년 만에 중소형 조선 산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한때 조용하기만 했던 400만 평의 대지는 망치질 소리가 난무하고, 용접 불꽃이 이리저리 튀고 있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공장용지 분양률이 100%를 달성했다.

대불단지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블록(선박 부품들의 결합체) 제작 공장이다. 대불단지 안에는 이들 회사의 협력 업체들만 수백 개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졌다. 또 현대삼호중공업은 현재 건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장을 확장하고 있으며, 대불단지 입주 업체 286개사 가운데 선체 블록 생산 및 조선 기자재 관련 생산 업체는 70% 이상이다.

이들뿐 아니라 대불단지를 중심으로 전남 서남권에 30여 개의 중소형 조선소들이 집적 되면서 조선 기자재와 블록 조립 업체들이 몰려들고 있다. C&중공업은 대불단지 인근 목포의 삽진단지 내 공장부지에 총 1100억원을 투자, 총 4만3000평 부지에서 연간 8만 톤 규모의 선박 8척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건립하기로 했다. C&중공업은 이 부지에 ‘스키드 레일(Skid Rail)’을 설치했다. 육상에서 선박을 건조한 뒤 부유식 진수 설비를 이용해 바다에 배를 띄울 수 있게 됐다.

대한조선은 인근 해남군 화원면 89만4000여 평에 총 8000억원을 투자, 현재 도크 공사가 한창이다. 대한조선은 오는 2008년까지 길이 540m, 폭 132m 규모의 도크를 잇달아 건설할 예정이다.

고려조선도 진도군 20만7000여 평에 1440억원을 투입, 조선소 건립을 추진 중이다. 신안중공업도 신안군에 2390억원을 들여 29만6000평 규모의 조선소를 건설 중이며 향후 2~3년 동안 블록 생산 후 선박을 건조할 예정이다.

그동안 경제의 변방에 있던 목포를 중심으로 한 전남 서남권은 이들 조선업을 기반으로 국가 경제의 중심으로 성큼 다가섰다. 올 1/4분기 목포 지역의 수출액은 5억2000만달러에 달한다. 그중 대부분이 선박이나 그와 관련한 품목들이다. 수입은 2억3000만달러로 마찬가지로 크레인이나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원자재가 대부분이었다. 지방도시 하나가 3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낼 수 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불단지와 더불어 전남 지역 조선소가 지난해 수출한 물량이 25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우연이 만들어낸 성공

“원래 대불단지는 첨단산업을 유치하고자 만든 단지입니다. 하지만 전라남도의 땅 끝인, 그것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어떤 ‘첨단산업’이 오겠습니까. 애초에 타깃을 잘못 잡았던 건 아닐까요.”

방재성 한국산업단지공단 대불지사 부장은 이렇게 당시를 회상했다. 대불단지가 첫 기업을 맞아들인 1997년은 국민의 정부 시절이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IT 산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지목하고 정책적으로 육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인근의 대불단지에 IT 산업을 키운다는 정책은 어찌 보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 부장의 말대로 가뜩이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해야하는 IT 산업이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이른바 ‘낙후 지역’, 전라남도의 땅 끝에 들어서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 국내 상위 조선사 7개사가 수주한 물량은 전 세계 수주 잔량 1억153GGT(표준화물선 환산 톤 수) 중 35.4%를 차지한다. 적어도 앞으로 5년 정도는 ‘먹고살 거리’를 벌어놨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또 휴대전화, 자동차와 함께 이른바 한국 경제를 이끄는 3대 수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조선업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0년까지 조선 산업 생산 증가 규모는 1559억원, 고용 창출 효과는 2136명에 달하고, 2025년까지 각각 1조5692억원, 2만1868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 왜 ‘첨단산업’이 아닌 ‘조선업’이 대불단지의 주력 산업이 되었을까. 조선업이 대불단지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땅값’이다.

“저 밖에 있는 블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선박 공장을 차리려면 엄청난 부지가 필요합니다. 저희 회사는 총매출액 83억원, 직원 수 154명의 중소기업이지만 공장부지는 1만여 평에 달합니다. 보통의 제조업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죠.”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인 경인엔지니어링 박인수 대표는 요란한 망치 소리에 머리가 얼얼할 정도인 공장 앞마당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4년 경인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 대표는 광주은행 여의도 지점장을 지낸 금융권 출신이다. 그 스스로도 “투자에 있어서는 깐깐하다”고 할 만큼 자금의 흐름에 민감하다. 그랬기에 그는 타 지역에 비해 지가가 저렴한 이곳을 사업 부지로 골랐다.

현재 대불단지의 공장용지 분양가는 평당 22만9000원이다. 웬만한 수도권 지역 공장용지 가격이 200만~300만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10분의 1수준도 안 된다. 외국인 투자 지역 같은 경우에는 거의 ‘파격세일’이다. 임대 가격이 평당 99원에 불과하고, 500만달러 이상 투자한 일반 제조업(조선업 포함)의 경우 임대료의 75%를 감면해준다. 100만달러 이상 투자한 고도 기술 사업이라면 임대료가 아예 ‘공짜’다.

지리적 이점도 조선업이 이곳의 주력 산업으로 거듭나게 된 한 요인이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조선업은 유래 없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조선업의 중심지인 울산, 거제에는 추가 생산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새 공장부지로 쓸 넓은 땅을 찾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설령 그만한 부지를 찾는다 해도, 지역 경제가 좋아지면서 덩달아 뛰어오른 지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흘러간 가요에서처럼 ‘목포는 항구다.’ 이곳은 다도해로 많은 섬들이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태풍 피해를 최소화해준다. 조선 산업에 필수적인 평균 10~15m 정도의 충분한 수심을 확보해 중형 조선 산업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평균 기온이 13.7℃로 연중 선반 작업이 가능하다. 안개 일수도 연평균 23일에 불과하다.

또 대불단지 주변의 목포항은 물론 대불단지 내에는 2만 톤급 규모의 배 세 척이 정박할 수 있는 전용 부두도 있다. 덩치 큰 원자재나 제작품들이 수시로 움직여야 하는 조선업에서 항만 시설을 거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대불단지의 ‘지가’, ‘자연 환경’, ‘항만 시설’, 새 기반을 찾던 국내 조선 업계는 이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던 대불단지가 2~3년 새 ‘조선업’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건 이런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우연을 지탱한 건 필연

사실 이곳엔 지역 경제와 더불어 대불단지를 살리기 위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던 SOC 확장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 중이었다. 차로 9시간 걸리던 서울-목포간이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6시간으로 단축됐다. 국도2호선이 2004년 말 준공되었고 같은 해 호남선철도 고속전철화가 이뤄졌다. 2003년엔 서남권신산업철도가 깔렸고 호남선철도가 복선화했다. 또 올해에만 해도 기존 목포공항의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무안국제공한이 준공 예정이고, 광주-무안간 고속도로도 함께 개통된다. 더불어 2010년 목포-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 예정이며, 2011년에는 현재 건설 중인 2만~3만 톤 선박 12척이 정박할 수 있는 목포신항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같이 확충되는 지역의 SOC와 조건이 맞물려 기업들이 하나둘씩 몰려오자 지자체와 정부도 발 빠르게 나섰다. 정부는 2003년 7월 이곳에 조선 산업 클러스터 구축 방안을 마련했고, 전라남도는 전남 발전 10대 핵심 산업으로 조선업을 육성했다.

특히 올해 초 이곳을 찾은 한명숙 국무총리는 목포공항 주변 일대 군용공항기지법상 고도제한 규제를 완화시켰다. 현재 목포공항 일대 반경 3300m까지 높이 45m 이상 건축물이나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반경 1000m 이내로 줄인 것. 이 같은 규제 완화를 통해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001년부터 7년여를 끌어온 크레인 증설 문제를 해결했다.

또 현대삼호중공업을 비롯한 대불단지 기업들은 이번 규제 완화로 향후 5년 동안 1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어서 5조135억원의 매출 증대와 1만8550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잘 나가고 있는’ 대불단지임에도 몇 가지 문제점은 가지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중소형 조선 업체의 증가로 기능 인력이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대 계열사를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이 중소기업이어서 인력난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박인수 경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일감은 넘치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면서 “대한조선 등 중형 조선소가 가동되는 오는 8월경이면 이 지역 기능 인력이 연쇄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또 부족한 기능 인력을 여기저기서 찾다보니 임금이 크게 오른 것(5년 이상 숙련 용접공 평균연봉 7000만원)도 중소형 조선 업체 경영자들의 애를 끓게 만들고 있다.

또 애초에 대불단지의 조성이 첨단산업에 맞춰져 있어 단지 환경 자체가 조선업에 잘 맞지 않는 것도 있다. 이를 테면 일반상업용지처럼 단지 내에 전선들이 지상으로 나와 있어 대형 블록을 움직일 때 전선을 끊고 다시 잇는 작업이 반복되어야 한다든지,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아스팔트가 가라앉아 버린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더불어 ‘과연 한국의 조선업이 미래에도 잘 나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도 지역 업체들 사이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퍼져가고 있었다. 지역 한 중소기업 대표는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설비 투자를 계속 진행하고는 있지만 별다른 보장도 없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해서 불안하다”고 털어왔다. 또 지금이야 대기업들이 잘 나가고 있어 협력 업체들도 좋은 대우를 받고는 있지만, 잘 나가고 있는 만큼이나 혹시 모를 불황에 훨씬 크게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칠 줄 모르는 중국의 추격도 중소 조선 업체의 고민이다.

물론 이 같은 고민들에 대해 대불단지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기능 인력 부족과 관련해서는 인근의 대학들이 장단기 조선 기능 양성 과정을 통해 기능 인력들을 쏟아내고 있고, 공업고등학교들은 조선업 기능공 과정을 고3 교과에 추가했다. 전라남도에서도 3개월 과정의 기능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벌써 5기째를 맞은 이 과정을 통해 전라남도는 1350명의 기능 인력을 길러내려 한다. 또 산업 환경 개선과 관련해서는 10억원을 들여 일단 전선 지중화 작업부터 빠르게 진행할 예정이다. 목포와 대불단지를 잇는 나불교 하중 보강 공사도 추진 중이다.

조선업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각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귀결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고급 스틸형 요트를 개발한 푸른중공업의 김봉철 대표는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중국에 따라잡힐지도 모른다”며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으로 장거리 순항이 가능한 ‘고급 요트’를 선택한 것이다”고 말했다.

버려졌던 땅에 조선업의 뿌리가 싹 텄던 것은 우연이었다. 뿌리가 자라 싹을 낸 것은 필연이었다. 조선업이란 나무가 대불단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혼자 잘 크겠지’ 하고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말라 죽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