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아니라 체질 바꾸는 성장통”

조남홍 사장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도 이 같은 위기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며 동유럽 출장 중이었던 4월말 “그런 소문이 왜 도는지 모르겠다”며 “지난해 손실을 보긴 했지만 점차 좋아지고 있으며 수지 균형도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언짢아했다. 또 “귀국하는 대로 누가 그런 얘기를 퍼트리는지 자세히 알아보겠다”며 위기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증권가에 나돌았던 기아자동차 유동성 위기설의 실체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연결 기준 부채가 지난해에만 2조원 이상 증가해 6조원에 달했다는 것과 해외 판매 법인의 적자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추정 등이다. 요약하면 지속되는 적자로 인해 차입금 상환 능력이 떨어져 대규모 자금 수혈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8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 실적까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함으로써 이 같은 위기설을 증폭시켰다.
기아자동차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9.0% 증가한 17조4399억원. 그러나 영업 이익은 1253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경상 이익도 전년 대비 89.4% 감소한 732억원에 그쳤고, 당기 순이익은 94.2%나 줄어든 393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에도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7.4% 감소했으며 영업 이익도 74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 규모는 3월말 현재 6조8880억으로 지난해 말보다 290억원이 더 늘었다.
조 사장은 1분기 경영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 몇 가지가 있다며 단기적 영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조 사장은 SUV인 쏘렌토 라인 셧다운, 환율, 수출 부진에 의한 재고 증가 등을 꼽았다. “쏘렌토 라인에 HM(신차 프로젝트명)을 넣기 위해 2개월 셧다운을 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800억원 정도의 손익 악화 원인입니다.”

동석한 안희봉 전무는 시중의 유동성 위기에 대해 “한마디로 터무니없다”면서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현금 보유고가 5000억원 이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3분기와 4분기 영업 이익에서 적자를 기록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시장에서 확대 해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업 운영에 의한 자금 부족으로 말하는데 단기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 규모나 가용 가능한 단기 자산을 가지고 재무제표를 보면 답은 확실하게 나옵니다.”
오히려 조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까지 경영을 악화시켰던 요인들이 해소되거나 점차 해소되고 있어 2분기 흑자를 자신했다. 해외 재고 조정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수출이 가동될 것이고, 작년 하반기부터 추진하고 있는 ‘원가 혁신(TCI) 320플랜’으로 올 연말 생산되는 HM부터 환율 900원대 원가 구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TCI 320플랜은 기아자동차가 연구소, 자재개발본부, 협력사가 하나가 되어 추진하고 있는 태스크포스다. 원가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을 목표로 각종 원가 절감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있다. 양산차의 경우 연구소와 개발 협력사들로부터 4만 건에 달하는 아이디어를 접수받아 각종 테스트를 통해 피드백 함으로써 적용 여부를 판단해 가고 있다. 또 HM의 경우 TCI 320플랜으로 환율 900원대에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는 게 조 사장의 의지다. 조 사장은 2분기부터 TCI 320플랜의 효과가 나타나 연말에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순철 기획실장에 따르면 현재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공장도가의 79%. 그러나 TCI 320플랜으로 2008년에는 74.5%, 2010년에는 72.5%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비용 절감 계획은 올해 흑자 전환 기조 속에서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다. TCI 320플랜을 통한 자재비 절감 노력과 함께 남양연구소의 설계팀들이 신차 출시를 두 달이나 유예시키고 기존 양산차의 원가 절감 요소를 파악해 시행하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생산성도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다. 차량 1대를 생산하는 시간을 2005년 38.5시간에서 2006년 37.5시간 그리고 올해 35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1분기에는 34.9시간을 기록했다. 가동률은 작년 평균 89%였지만 1분기에 94.9%로 향상되었다.
시장에서 우려하고 있는 해외 투자에 대해 안 전무는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그로 인한 판매가 위축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투자와 현금에 대한 위험성은 올해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기아자동차는 중국과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옌청1공장이 가동 중에 있으며 지난 2~3년간 영업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2공장은 오는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슬로바키아 공장은 지난 2년여 건설공사를 통해 올 초 가동을 시작했다. 또 아직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조지아 공장 투자 계획도 갖고 있다.
특히 올 1월 양산을 시작한 슬로바키아 공장의 경우 3개월 만에 소폭 흑자를 기록한 한편 생산 가동률도 95%로 조 사장은 생산기지 원년에 투자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지아 공장 건설로 2008년까지는 해외 투자가 조금씩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감소합니다. 가동 시점을 보면 슬로바키아 공장이 가동된 이후 2년 뒤입니다. 순차적으로 투자 금액을 회수하게 됩니다.”
현지 판매 법인의 적자에 대해서도 수익성 개선을 위한 FOB(지정선적항 본선 인도 조건) 6% 인하 이후 나타난 수치로 2~3분기 내수 증가로 인한 수익성 향상을 자신하고 있다.
조 사장의 말처럼 지금의 기아자동차 위기설이 체질을 바꾸는 ‘성장통(痛)’에 불과한 것일까. 2분기 실적에 애널리스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