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영화·음악 3대연예산업 14조원대 성장

· 주가조작·조세포탈 등 각종 부작용 속출

· 스타마케팅에 희생당하는 무명·신인들

· 표준계약규정 등 연예매니지먼트 제도화 시급

‘대한민국은 연예공화국이다’라고 할 만큼 ‘연예과잉시대’에 돌입했다. 청소년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장래 희망으로 연예인을 꼽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끌고 연예인을 만들고자 연예 기획사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른바 연예 산업의 규모도 해마다 급성장해 2006년 말 기준 15조원대로 추산된다. 그에 따른 사회 문제도 매년 언론에 보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예 관련,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기업적인 불법 행위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2006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연예 산업의 매출 총액은 14조원에 이른다. 방송이 전체의 62.9%인 8조635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영화 3조2948억원(24.0%), 음악 1조7899억원(13.0%)로 그 뒤를 이었다. 2003~2005년 중 영화는 연평균 18.5%, 방송은 10% 증가된 반면 음악은 0.1% 줄었다. 음악 부문이 줄어든 것은 전체적인 음반 시장의 침체와 불법 음원의 다운로드에 비롯된다는 게 음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규모는 ‘최소’라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견해다. 최소로 잡아 2005년 기준으로 14조원에 가깝다면 2006년에는 최소한 15조원을 가볍게 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잡힌 매출액이 이 정도인 데다 아직까지 일부 대형 업체들을 빼놓고는 사업상 매출 규모를 축소하는 연예 산업계의 속성 때문에 계상되지 않은, 숨어있는 매출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곧 연예 산업이 공식적인 회계 처리보다는 아직까지 주먹구구식 사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연예 산업의 매출액 증가와 함께 관련 업체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됐던 업체들이 10여 개 안팎이었으나 2006년 말 현재 50여 개로 5배나 팽창했다. 같은 기간 영화제작사 수도 715개에서 1714개로, 음반제작사는 568개에서 1300여 개로, 드라마제작사는 10여 개에서 100여 개로 증가했다. 대형이든 소형이든, 등록 업체든 미등록 업체든 이른바 연예인들의 매니지먼트를 주목적으로 하는 연예 기획사의 수는 2000년 300여 개에서 2006년 말 현재 무려 2000개를 훌쩍 넘어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CJ그룹은 물론 SK텔레콤, KT, 롯데 등 대기업들이 영화제작사와 음반사, 드라마제작사 등의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연예 산업의 양적 증가와 질적 변화에 동참하고 있어 앞으로도 연예 산업 관련 기업들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고정민 연구원은 “연예 산업은 앞으로 증가세를 견지할 것”이라며 “연예 산업의 발전은 그에 따르는 업체들의 관리, 기획 등 질적 전환과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엔터 株, 증시 활황 속 ‘속빈 강정(?)’

우리나라에서 연예 산업을 한 부문의 ‘공식 산업’으로 이끈 시기는 2000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증권 시장에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SM엔터테인먼트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명함을 내민 때이다. 그러나 SM을 비롯한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연예 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고는 2001년 이후 별반 재미를 못보고 오히려 손해만 봤다. 상장기업들은 몸집 부풀리기에만 급급한 데다 외형상 매출의 증대를 위해 ‘스타마케팅’에 의존하다 보니 스타들의 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결과, 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실망했고 상장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다시 펀딩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나마 올해 초 외주 100%를 내세운 경인방송의 재출범과 예정된 IPTV의 서비스 시작, DMB방송의 확대 등 제작편수의 증가와 함께 복수유선방송사업자(MSO)들의 자체 제작 확대로 전망이 밝아졌지만 아직까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IHQ, SM, 팬텀 등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대표주들이 증시의 폭발적인 활황에도 불구하고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는 것. 이들은 2005년 유명 연예인들의 후광 효과로 주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했던 종목들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는 물론 검찰 수사로 인해 경영진의 도덕성까지 의심받으며 투자자들조차 외면하고 있다. 소형주도 증권사 추천 리포트만 나오면 주가가 급등했던 최근 상승장에서도 이들은 소외됐다.

IHQ는 2006년 4월 1만원을 넘었던 주가가 최근 4000원대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영업 손실 22억원, 순손실 47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0억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됐기 때문이다. 주가를 뒷받침할 실적 모멘텀의 부재 때문에 호재를 만나도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SM 상황도 ‘난형난제’. 2년 전 2만원대를 달리던 주가는 최근 5000원대 초반에 머무르며 4분의 1 토막이 났다. 연이은 실적 부진 때문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최대주주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은 경영 투명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며 최근 주가가 큰 낙차를 보이며 무너졌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하며 몸집을 키웠지만 6월19일 종가 3440원은 연초 대비 40%나 하락한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 6월14일 CEO 교체 후 잠시 반등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 1/4분기에도 수익성 적자가 지속된 초록뱀, 에이트픽스, 옐로우엔터테인먼트, 서울음반, 티엔터테인먼트, 실미디어, 키이스트, 라이브코드 등도 주가 상승이 힘에 부친 상태다.

최근의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株의 그로기 상태’에 대해 한 애널리스트는 “증시에서 엔터테인먼트의 고전은 오래갈 가능성이 높다”며 “관련 기업들이 열악한 수익 구조를 해소하고자 스타마케팅이나 M&A 등 외형 성장에 매달려왔고 주가도 이에 반응해 왔지만 향후 실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예 산업, 주식을 통해 옮기는 새로운 ‘질병의 발견’

연예 산업이 엄연히 한 업종으로 많은 기업들이 활동하며 매출을 내고 있어도 아직까지 체계적인 관리나 기업으로서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돈을 좇아, 돈이 몰리면서 각종 부작용이 ‘종합선물세트’식으로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체와 연예인 간 계약 관련 소송, 방송사와 엔터테인먼트 업체 간 뇌물 수수, 조직폭력배의 연예 산업 관여와 같은 ‘고전적’인 문제 이외에 최근 들어서는 조세 포탈, 주가 조작, 방송 출연 독점 등 새로운 양상의 병폐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의 사례는 일부 연예 기획사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총아로 그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팬텀의 대주주는 물론 전·현직 임원들이 대거 구속됐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법원은 조세 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팬텀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인 이모씨에 대해 지난 5월22일 검찰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지난 5월3일 이모씨 등 경영진에 대해 세금 포탈과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법원에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었다. 팬텀은 이밖에도 우회상장 과정에서 방송계 일선의 예능 PD들에게 주식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4월 당시 탤런트 한지혜, 김종수 등이 소속된 음반기획사 이가엔터테인먼트의 이주형 대표가 골프공 제조업체인 팬텀의 지분을 70%에 육박하게 차지하여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면서 팬텀의 주가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팬텀은 곧바로 이가엔터테인먼트와  DVD 관련 회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를 M&A하고 매니지먼트 회사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를 자회사로 편입해 코스닥에 우회상장을 마쳤다. 검찰은 이를 통해 팬텀이 코스닥 상장 시기를 전후해 방송사 PD들에게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팬텀의 주가는 400원대에서 2만800원까지, 무려 48배나 폭등했다. 덕분에 팬텀의 주식을 산 연예 관계자들은 엄청난 시세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팬텀의 성공(?)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우회상장이 주가 상승에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으며 실제로 이후 많은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우회상장을 시도해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게 연예 산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6년에도 팬텀은 M&A를 계속하며 몸짓을 불렸다. 그 때마다 주가는 널뛰기를 했다. 지난해 말에는 영화 제작사인 팝콘필름(현 도너츠미디어)을 인수한 데 이어 2월에는 유재석, 김용만, 노홍철, 송은이 등이 소속돼 있고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활동 중이었던 강수정 전 KBS 아나운서를 영입한 DY엔터테인먼트(개그맨 출신 MC 신동엽 공동대표)와의 M&A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었다. 그러나 이때마다 내놓은 많은 공시 가운데 ‘스타연예인’ 영입의 경우 ‘주가 띄우기용’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업계에서 지적됐다. 사실 공시에 쓰였던 연예인 중 몇 명은 공시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팬텀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팬텀은 말이 없었다. 영화배우 겸 가수 임창정의 경우 2005년 팬텀에 영입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6년 어느 새인지도 모르게 에이스미디어에 몸담더니 바로 이 회사의 지석진, 윤정희, 김제동 등과 함께 뉴보텍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2006년 말 뉴보텍이 소속 연예인을 팬텀에 양도하면서 다시 팬텀 소속이 됐다. 임창정을 비롯한 이들 연예인들은 현재 팬텀이 아닌 신생 매니지먼트사 오라클에 소속돼 있다. 도대체 ‘돌고 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또 이병헌 역시 실질적으로 개인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이정재는 팬텀과 소속 문제를 두고 법정 분쟁 중이다.

팬텀의 이 같은 경영 방식과 이를 통한 주가 띄우기 깜냥은 금세 ‘냄새’를 피웠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는 것. 이 때문에 팬텀은 2005년 11월부터 주가 조작 및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검찰로부터 주가 조작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이에 대한 의혹은 일단 벗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팝콘필름-DY엔터테인먼트 인수 등 호재성 공시를 전후해 내부자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월에는 강남세무서로부터 146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기까지 했다. 이렇듯 끊임없이 주식 거래 관련 문제의 중심에서 파행을 일삼아오다가 급기야 대표이사에 이어 대주주까지 구속되는 치욕을 겪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6월8일 서울중앙지검은 횡령과 배임,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팬텀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 이모씨를 구속기소하고 이 회사 전 대표 김모씨 등 회사 대주주 4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 이씨와 또 다른 대주주 이씨는 2005년 4월 골프용품 제조업체인 팬텀 지분 70%를 함께 매입했으나 35%만 인수했다고 허위 공시하고 차명으로 갖고 있던 35% 지분을 몰래 주식 시장에 내다 팔아 각각 181억원, 61억원의 차익을 거둔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검찰 조사 결과, 이씨 등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이가와 우성을 팬텀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상장해 팬텀 주가가 급등하자 차명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점은 이들이 차명 주식을 이용했다는 것.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대주주 지분 매각 사실을 숨기기 위한 꼼수였다. 특히 최대주주 이씨는 차명 계좌 지분 비율을 1.69~2.99%로 치밀하게 맞춰 조세까지 포탈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해당 법인 주식을 3% 이상 소유한 대주주는 양도 차익 10%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최대주주 이씨는 주요 주주 등 내부자가 업무와 관련한 정보를 이용해 회사 주식을 거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데도 2005년 3월 한 연예 기획사 사장 이모씨에게 팬텀 우회상장 등 정보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어 향후 이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검찰의 이번 수사에 대해 방송가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팬텀의 예능 PD들에 대한 주식 로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팬텀으로부터 주식을 받은 방송사 PD는 방송 3사의 간부급을 포함해 적게는 10명, 많게는 2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 여부를 공식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 발표가 뜸들이고 있는 것을 볼 때 2002년 PD 10여 명이 구속됐던 악몽이 되살아날만한 ‘A급 태풍’이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팬텀사건에 대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팬텀 이후 우회상장을 통한 시장 진입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기존 연예 산업 종사자들 대부분이 증권 관련 룰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일단 주가 상승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졌다”며 “안정적인 매출 구조나 명확한 비용 구조가 갖춰지지 않아 스타들의 이동에 따라 변동이 큰 연예 산업의 특성상 내부의 사전정보를 이용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내부자들의 주식 거래나 조세 포탈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하윤금 박사도 “연예 기획사들이 금융화, 대형화하면서 내실 없이 몸집만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문제”라며 “일부 연예 기획사의 독점 문제, 수익 모델의 왜곡, 불합리한 계약 관행 등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 기획사의 낫지 않는 ‘지병(持病)’

일부 연예 기획사들 사이에서 보이듯 팬텀사건이 최근에야 새로 발견된 ‘질병’이라면 불공정 계약, 계약 불이행 등 계약 관련 문제는 오래전부터 앓아온 ‘만성병’이다. 이 병은 신인의 ‘노예 계약’과 함께 스타들의 ‘황제 계약’이라는 동전의 양면에서 비롯된다.

최근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 출연했던 탤런트 유민호의 경우 전자의 경우다. 그는 지난해 5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의 법적 분쟁 끝에 1심에서 겨우 승소했다. 이 계약을 보면 어처구니없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유민호의 계약 기간은 ‘첫 번째 음반 발매 후 10년’으로 돼 있었다. 연기자를 지망했던 유민호가 소속사와의 계약을 끝내려면 억지로 음반을 내고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SM은 유민호의 계약 해지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 위반의 경우 발생하는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하며 배상액은 원고에 대한 총 투자액의 5배, 잔여 계약 기간 동안 예상되는 이익금의 3배와 3억원을 지급하라’는 등 무리한 손해배상 조건을 내걸었다. 지난해 10월 유민호는 이 같은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노비문서’를 태울 수 있게 됐다. 이에 앞서 2005년에는 SBS 코미디 <웃찾사> 출연진 윤택, 김형인 등 개그맨들이 스마일매니아와 맺은 ‘15년 계약’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일부 연예 기획사들의 스타들에 대한 대우는 극진하다 못해 비굴하기까지 하다. ‘스타마케팅’을 동원하기 위해 ‘11대0’이라는 괴상한 수익 배분구조가 등장했다. 보통 인기 스타의 경우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상 수익을 7(연예인):3(기획사)으로 나눈다. 그러나 ‘특급’의 경우 11:0의 계약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연예인 자신이 활동해서 벌어들인 수입을 모두 가져가고 기획사는 매출에 따른 10%의 부가세만 갖는 구조다. 그러면 연예 기획사는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연예 기획사들은 특급 스타를 앞세워 투자를 유치한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코스닥 우회상장을 통해 다른 계약이나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톱스타에 대한 투자 공시를 통해 급등한 주식을 팔아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M&A나 ‘끼워 팔기’를 통해 신인을 공짜로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계약에 따라 특급 스타 1명은 수억원대의 계약금에 매니지먼트도 공짜로 제공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 기획사는 톱스타를 앞세워 ‘죽어라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톱 브랜드’의 이름만으로도 ‘뇌에 보톡스 맞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가 손쉽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특급 스타들은 기존 계약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이리 저리 소속사를 옮기면서 ‘거금’을 챙긴다. 그러니 기획사들이 이름 없는 신인 유망주들을 ‘노예 계약’으로 묶어두고 한동안 수익의 배분은커녕 재능을 키워줄 여력마저 없다는 게 한 신인 연예인의 푸념이다.

이렇듯 ‘코스닥 대박’을 좇는 연예 산업의 ‘신병(新病)’은 어쩌면 ‘지병(持病)’이 전이 혹은 변종돼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그 발생 과정을 정리해 보자. 먼저 ‘참 나쁜’ 연예 기획사(A)는 특급 스타를 영입한다. 수억원의 계약금과 공짜 매니지먼트를 제공하고 대신 그의 ‘이름’을 따낸다. 그 와중에 신인이나 무명 연예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기 ‘노예 계약’에 묶이게 된다. 스타급의 이름을 팔아 연예 기획사는 투자자를 모집한다. 그리고 코스닥에 우회상장을 한다. 코스닥 상장을 전후해서 기획사는 방송사에게 금품을 제공한다. 그 대가로 방송사는 독점적 출연이나 기획사 연예인의 홍보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다른 연예 기획사(A')는 A기획사와 내부정보를 공유해 주식을 매집하거나 매도한다. 이때 참여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큰돈을 벌기도 한다. 대부분 연예 산업 업계 관계자들이다. 간혹 일부 ‘조폭’의 자금이 흘러들었다는 소문도 들을 수 있다. 이후 A기획사는 다른 특급 스타의 영입 공시나 M&A 공시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며 또다시 투자자를 모집한다. 이때 뒤늦게 참여한 투자자들은 ‘무한 위험’에 노출될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되는 동안 A기획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른다. 실적과는 무관하다. 비용도 한없이 쓰인다. 그러다가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주가는 폭락한다. 먼저 참여했던 연예 산업 관련 투자자들은 이미 ‘치고 빠진’ 뒤다. 뒤늦게 ‘상투’를 잡았던 개미 투자자들은 ‘깡통’ 찬다. 이것이 현재 일부 연예 기획사들의 ‘머니게임’ 현주소다.

‘신뢰’ 회복과 연예 매니지먼트 관련 제도화 시급

일부 연예 기획사나 연예인에게 해당되겠지만 이렇게 살벌한 세상이라서인지 요즘 ‘뻑’하면 연예 관련 소송이 빗발친다. 의기투합했던 연예인과 기획사 간 전속계약 분쟁은 물론 초상권, 저작권 침해, 사생활 침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거 ‘의리’나 ‘친분’을 중요시했던 연예 산업계가 이제는 본격적인 ‘쩐의 전쟁’에 돌입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일부 기획사들의 ‘돈질’과 연예인들의 천정부지 ‘호가(呼價)’가 겁나 사업을 접고 현재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불과 3~4년 전부터 일부 연예인들이 일에 대한 열정이나 지원, 믿음보다는 돈만 조금 더 주면 기획사들을 수없이 옮겨 다니는 풍조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일부 기획사들 역시 정상적인 매니지먼트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보다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한탕’을 하려고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연예인만 있으면 돈을 싸들고 데려다 최대한 이용하려는 관계 때문에 신뢰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앞설 수밖에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일부 대형 연예인이나 기획사들이 아예 계약부터 변호사를 통한 법적 자문을 얻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변호사 자문 비용을 댈만한 연예인이나 기획사들에게만 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불우’한 시스템을 깨기 위해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하윤금 박사는 “우리나라 연예 산업의 문제점은 매니지먼트사 관련 법제의 부재, 양성(교육·아카데미) 업무와 매니지먼트 업무의 겸업, 연예 기획사와 제작사의 겸업, 전속계약금 및 불합리한 수익 분배 계약 등에 있다”며 “이런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지속적인 연예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공신력 있는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박사는 또 “공인 에이전트 입법안을 통해 매니지먼트 업무(발굴 관리)와 에이전시 업무(계약 협상)를 분리해 각각의 영역에서 수수료율이 정해져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결국 계약을 연예 산업계의 ‘관행’에 맡기지 말고 연예인이나 기획사 등 계약 당사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표준계약규정이나 정관을 도입하고 궁극적으로 매니지먼트 사업을 공인된 사람에게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공청회 개최 등 절차가 한참 남아있지만 정치권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안 발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은 “대중문화산업을 위한 공인 에이전시법(가칭) 발의를 추진할 것”이라며  “공인 에이전시법은 에이전시의 국가자격증 제도화, 전속금 폐지, 수수료율 규정, 패키지 마케팅 금지, 세계 문화 교류 활성화 조항, 연예인 기초생활 지원 대책 등을 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예 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연예 기획사들의 자체적인 노력도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다. 연예 기획사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가 지난 5월 정식 출범됐기 때문이다. 협회는 IHQ, 팬텀, 나무액터스, 스타제이 등 44개 회원사와 총 45명의 연예 매니지먼트 기획사 대표 및 이사진들로 구성됐다. 협회는 “매니지먼트 산업에 보다 합리적이고 조직화한 시스템을 제공, 산재돼 있는 문제점과 현안들을 하나씩 해결하고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을 보다 건전하고 투명한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발족했다”고 협회의 출범 취지를 의욕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협회가 생긴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를 통해 특정 업체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익만 꾀하려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만 살아남는 더욱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이왕 협회를 만들었으면 보다 회원사를 확대하고 협회 운영을 투명하게 해 협회 내, 회원사 간의 공정성과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치 정신연령은 ‘아동’이지만 몸집은 이미 ‘성인’이 돼 버려 스스로 행동을 제어하기 힘든 우리나라 연예 산업에 하루빨리 나름대로의 규율과 그것을 강제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된다는 점이다.

 팬텀엔터테인먼트는?

팬텀(전 대표이사 조수봉, 현 대표이사 정경문)은 1990년 골프용품 전문업체로 출발했다. 2005년 음반기획사 이가엔터테인먼트와 DVD 회사 우성엔터테인먼트를 M&A하고 매니지먼트회사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연예 산업에 진출했다. 2006년 11월에는 회사명을 팬텀에서 팬텀엔터테인먼트로 바꾸고 대대적인 M&A을 추진했다. 중앙일보 자회사인 일간스포츠와 공동으로 JMB(중앙모바일앤브로드캐스팅)를 설립했고 영화 판권 해외 판매업체인 인터클릭과도 합병했다. 여기에 지난 3월2일 자회사인 도너츠미디어(옛 팝콘필름)를 통해 DY엔터테인먼트까지 M&A하면서 팬텀은 연예 기획사의 ‘거대 권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의 MC 군단을 거느리면서 방송사 PD들의 ‘권한 위’에서 오히려 방송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수 아이비를 비롯해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등 스타 MC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강수정 전 KBS 아나운서와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도 팬텀 소속이다. 최근에 팬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PD 등 제작 역량을 확보, 연예오락 프로그램 제작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MBC <황금어장>, SBS <헤이 헤이 헤이2> 등을 이미 제작중이다.

팬텀의 2006년 매출은 전년보다 8.8% 늘어난 407억1400만원, 영업 손실은 전년보다 35% 늘어난 92억2600만원, 순손실은 전년 73억5100만원에서 417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