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능력 없다” VS “재산 빼돌린 것”
(미망인+차남+4녀) (장남)
● 사건일지
1969년 김성수 회장, 오양수산 설립
2000년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 뇌졸중으로 쓰러짐
2002년 말 김 회장 셋째딸 은주씨 남편 문영식씨 사장직 사퇴(가족 불화 시작)
2003년 김 부회장, 주총서 이사 재등재(김 회장 반대)
2003년 김 회장, 장남(김명환 부회장) 대표 선임, 결의취소소송
2003년 이후 김 부회장 대표 선임, 결의취소소송서 1, 2, 3심 모두 김 회장 승소
2006년 7월 김 부회장, 모친 최옥전씨 상대 산업금융채권 반환 청구소송
2007년 3월 김 회장, 법무법인 ‘충정’ 통해 사조산업에 주식 매각 결정 위임
6월1일 오양-사조 간 101만 주(35.4% 지분) 매매 계약(127억원) 체결
6월2일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 사망
6월4일 사조산업, 매각 대금 127억원 납부
6월9일 오양수산 주총, 사조산업과 갈등 표출
6월10일 김성수 회장 장례식
6월12일 사조산업, 오양수산 87만 주 인수
6월12일 김명환 부회장, 법원에 주권 인도 금지 가처분 신청
6월13일 사조산업, 오양수산 계열사 추가 공시
"네. 비대위입니다." 6월19일 오양수산 경영권 다툼 내막을 확인하고자 마케팅팀(홍보라인)에 전화를 걸자 전화는 곧바로 ‘비대위’로 연결됐다. 지난해 발족한 경영안전비상대책본부가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6월초 경영권 사수를 위한 ‘비대위’로 바뀐 셈이다.
실제 오양수산은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 유해가 사망 9일이 지나서야 경기도 파주시 경모공원에 묻히는 ‘봉변’은 약과다. 아예 회사가 통째로 넘어가버렸다. 6월13일 경쟁 업체인 사조산업이 계열사 편입 공시를 냈기 때문이다.
장남 김명환 오양수산 부회장 측은 “6월중 (사조산업의 오양수산) 주식 매매 계약 무효 본안소송을 내겠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고 이에 맞서는 미망인 최옥전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합법적 절차에 의해 이미 끝난 일”이라며 “(법원에 가서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창업주의 장례식마저 파행을 빚은 ‘오양수산의 비극’은 왜 일어났을까. 오양수산 경영안전비상대책본부장인 이동우 이사(김명환 부회장 측)와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충정의 장용국 대표 변호사를 통해 오양수산 경영권 다툼의 내막을 알아봤다.
‘눈 밖에 난 장남’ 대 ‘어머니가 딸들 꾐에 빠져’
오양수산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도화선은 김 회장이 타계하기 바로 전날인 6월1일 불이 붙었다. 미망인 최옥전씨 등 2남4녀 중 장남 김명환 부회장을 제외한 유족 측이 김 회장이 보유한 회사 주식 35.4%(101만2848주)를 경쟁사인 사조산업 측(계열사 사조씨에스)에 매매 계약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김 부회장과 오양수산 임직원 100여 명이 장례식장을 점거하면서 다툼이 촉발됐다.
초상집에서 ‘주식 매각 결사반대’가 적힌 어깨띠를 두른 채 조문객들을 돌려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 부회장 측은 “이번 계약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6월2일 운명하기 하루 전날 의식이 없는 김 회장이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반면 유족들은 “고인이 지난 3월 법무법인 충정을 법정 대리인으로 지정해 지분 매각을 포괄적으로 위임했다”며 “하자가 없다”고 팽팽히 맞섰다. 이런 와중에 사조산업은 매입 대금 127억원을 납부하며 오양수산을 압박했다.
유족들은 특히 6월6일 ‘유족의 입장’이란 글을 통해 “고 김성수 회장이 심사숙고 끝에 법정 대리인을 통해 매각한 것”이라며 “주식 매각 수익금은 전액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김 부회장 측이 “어머니와 사위 등 다른 가족들이 재산을 탐내왔다”는 주장에 쐐기포를 날린 셈이다. 이에 김 부회장 측은 “사회 환원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말”이라며 “대표이사(김 부회장을 지칭)도 내용을 모르는 밀실 계약은 무효”라고 반박했다.
이런 와중에 오양수산 정기주총(6월9일 서울 역삼동 현대해상 사옥)이 진행됐다. 이곳에선 가족간 다툼 외에 오양수산 현 경영진과 사조산업 간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상복을 벗고 의사회 의장 자격으로 진행자로 나선 김 부회장이 2명의 이사 선임안을 내놓자 사조산업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 결과는 오양수산의 승리. 그러나 이번 주총의 의미는 크지 않다. 오양수산 지분을 절반 가까이 보유한 사조산업이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진 교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사조산업이 이길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일단 이날 주총을 계기로 김 부회장 측은 농성을 풀기로 결정, 사망 9일 만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김 부회장의 계산은 소모전 대신 법원에서 결판내자는 것. 장례식 이틀 뒤인 6월12일 김 부회장 측은 “아버지가 보유했던 오양수산 주식 처분을 막아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반면 유족들은 그날 그동안 미뤄왔던 주식 양도를 단행했다. 101만 주 가운데 87만8656주를 사조산업에 넘긴 것. 6월13일 사조산업은 “오양수산을 계열사로 추가한다”는 공시로 사실상 ‘오양수산 인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비극의 출발은 2000년부터
그렇다면 오양수산의 비극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김성수 오양수산 창업자는 출판사인 법문사와 민중서림으로 출발한 뒤 1969년 오양수산을 세워 연간 매출액 1000억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법문사 설립 이듬해인 1954년 부인 최옥전씨와 결혼, 장남 명환씨와 차남 철환씨, 미애, 은미, 은주, 연신씨 등 2남4녀를 뒀다.
장남 명환씨는 오양수산 부회장, 철환씨는 법문사와 민중서림 대표를 맡고 있고 딸들은 검사와 변호사, 미국 MBA 출신 경영자, 성형외과 원장 등과 결혼했다. 말하자면 오양수산은 한국의 대표적 상류층 집안인 셈이다.
이런 오양수산 가족간 불화는 김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장남인 김명환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다. 2002년 말 당시 오양수산 사장직을 맡고 있던 문영식씨는 자진 사퇴했다. 문씨는 미국 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김 회장의 셋째딸 은주씨의 남편이다. 김 부회장과는 처남-매제 사이인 셈이다. 이때가 가족간 불화가 싹텄던 최초의 시점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와 그를 대신해 경영에 나선 아들의 사이는 극히 안 좋았다. 법정공방이 벌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최초의 소송은 아버지가 냈다. 아들이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 채 주총을 열어 임원을 임명한 게 단초였다. 회사는 적자였다. 그 때가 2003년이다.
유가족들의 법무법인 충정과의 만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특히 충정의 장용국 대표 변호사와 김 회장 간 인연은 1970년대에 이뤄졌다. 서울대 법대 71학번인 장 변호사는 김 회장이 내놓은 ‘낙산 장학금’의 수혜자였던 것이다.
2003년 김 회장이 처음 소송을 낸 건 오양수산 주총 결의 취소 소송이다. 이는 결국 김 부회장을 퇴진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최종 대법원 승부까지 벌였던 이 소송은 1, 2, 3심 모두 김 회장의 승리. 그러나 최종 대법원 판결이 늦게 나와 김명환 부회장의 대표 자격은 상실되지 않았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김명환 부회장의 대표이사 선임 무효소송을 또다시 냈다”면서 “현재 1심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아버지로부터 퇴진 압박을 당해온 김 부회장도 소송을 냈다. 지난해 7월 모친 최옥전씨를 상대로 산업금융채권 56장(39억원어치)을 돌려달라며 채권반환소송을 냈고 오양수산 일가족은 순식간에 서로 물고 물리는 소송전에 휘말리게 됐다.
김 부회장이 어머니를 상대로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자 다시 부친 김 회장이 참지 않았다. 지난 1월 A4용지 30장 분량의 ‘사실 확인서’를 냈고 이에 대응해 김 부회장은 다시 ‘해명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부모는 장남의 경영 능력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고 장남은 누이, 매제들이 모친을 부추겨 부친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는 의심을 품었던 것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양측의 입장을 살펴보자. 우선 김 회장의 ‘사실 확인서’ 내용이다. “회사를 장남에게 물려주려고 오양수산에 입사시켰다. 그런데 회사 돈과 개인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사위(문영식씨)를 대표로 앉혔다. 나도 인간인지라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창업주의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맡길 순 없었다.”
이에 대한 김 부회장의 ‘해명서’는 이렇다. “경영권과 재산을 노리는 사위의 꾐에 어머니가 넘어가 나는 아버님 문안조차 가지 못할 정도로 따돌림을 받았다. 가족들이 아버지 명의로 돼있던 부동산을 나만 빼놓고 사위, 딸, 외손자, 외손녀 명의로 돌려놓았는가 하면 미국의 합작회사(아크틱스톰)를 몰래 팔려고 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23일 김 회장이 다시 쓰러져 중환자실로 옮긴 지 1주일만인 6월2일 별세했다. 그런데 장남인 김 부회장은 입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여동생들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고 임종도 못 지켰다는 게 김 부회장 측의 말이다. 반면 평소 문병 한번 오지 않았던 장남이 부친이 돌아가시자 경영권 때문에 장례식장을 점거하는 패륜적 행동을 저질렀다고 유족 측은 반박한다. 거듭된 법정소송전 끝에 천륜마저 끊고 지냈던 게 오양수산 비극의 결말이다.
회사도 잃고 가족도 잃은 골육상쟁
최근 사태에 가장 불안해하는 건 오양수산 700여 임직원들이다. 대주주의 집안싸움에 ‘생존권’이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6월20일 현재 서울 태평로에 있는 오양수산 본사 건물엔 장례식 와중에 매단 현수막(‘회장님!! 오양수산은 우리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이 아직도 걸려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대위 측은 “(문제해결 때까지) 내릴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단 임직원들과 노조는 회사 대표인 김 부회장과 행동을 통일하고 있다. 특히 오양수산 임직원들은 인수 회사인 사조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오양수산 측은 ‘임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을 통해 “왜 오양수산을 팔아넘겼느냐, 사조산업이 어떤 회사인지 알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동우 이사는 “지난 2000년 동아제분 인수, 지난해 대림수산 인수에 이어 오양수산 인수도 빚으로 덩치를 키운 회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양수산도 적자 상태다. 2005년과 지난해 각각 114억원과 87억원씩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사조산업 측은 ‘무대응이 최고의 대응’이란 입장이다.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태도다. 다만 매매 계약이 체결된 101만2848주 가운데 미납된 나머지 13만3192주에 대해 최단 시일 내 인도만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차곡차곡 지분을 모아 인수 절차만 밟겠다는 것이다. 6월19일 현재 사조산업은 오양수산 지분율이 41.83%(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자료)로 나오지만 사실상 46.4%를 확보, 김명환 부회장 측과의 지분 싸움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 수세에 몰린 김 부회장 측은 “곧바로 6월 안에 계약무효 본안소송을 내겠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국 오양수산 패밀리들은 지난 7년간 가족간 불화로 회사도 잃고 가족도 잃은 ‘골육상쟁 분쟁사’만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