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판매되는 가장 싼 한국산 차보다 40% 싼 650만원대
‘중국 자동차 업계의 본격적인 저우추취(走出去: 해외 진출), 중국 자동차의 세계 평정 신호탄’
미국 3위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Chrysler)의 톰 라소다 사장이 7월4일 베이징에서 중국 1위 토종 자동차 회사인 치루이(奇瑞: Cherry)의 인퉁야오(尹同耀) 회장과 소형차 공동 개발에 관한 협정문에 서명한 데 대해, 홍콩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평가를 일제히 내렸다.
두 회사가 맺은 계약에 따르면 치루이사가 생산한 소형차는 미국 내에서 크라이슬러 판매망을 통해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등의 브랜드로 판매될 예정이다. 핵심 공급 대상은 대당 600만원대의 초저가 차량이다. 미국 기술과 결합해 품질은 기존 중국산 차량보다 월등히 개선했지만,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값은 더 싼 게 특징이다.
1, 2년 뒤 유럽과 남미까지 동반 진출
크라이슬러 측은 이들 차량이 남미와 동유럽 시장에서는 1년 뒤,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2년 뒤면 각각 판매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자동차 애널리스트들은 치루이산 첫 수출 차종은 1300㏄ 엔진으로 중국에서 5만4000위안(약 650만원)대에 판매되는 ‘A1콤팩트카’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미국 내 판매 차종 가운데 가장 값이 싼 베르나의 기본 가격이 1만415달러(약 958만원)인 것과 단순비교해도 40% 정도 낮은 것으로 가격 경쟁력이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치루이 자동차가 미국 대륙에서 ‘한국 중소형차 킬러(killer)’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음을 발한다.
사실 최근 들어 중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이는 토종 브랜드의 약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영 자동차 회사인 치루이는 올 3월 중국 시장에서 4만4568대의 차량을 판매, 1위에 올랐다. 치루이는 지난 1월 처음으로 월간 판매 2위를 기록했으나 두 달 만에 선두를 차지한 것이다. 중·미 합작사인 상하이GM은 4만570대를 팔아 2위로 밀려났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차를 제치고 중국 승용차 판매 4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치루이의 선두 질주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리(吉利)자동차도 8위에 랭크됐다. 실제 2001년만 해도 중국산 토종 모델은 중국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5% 미만이었지만, 지금은 26%를 돌파했다.
더 주목되는 것은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일취월장 중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외국 자동차를 통째로 인수함으로써 오랜 세월 쌓아온 기술력을 한꺼번에 흡수하는 이른바 ‘축지법’ 전략을 구사한다. 상하이(上海)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난징(南京)자동차가 영국 로버자동차를 각각 매입한 게 대표적이다. 상하이자동차는 작년 초 앞으로 5년간 12억달러를 들여 30개 자체 브랜드 자동차를 개발,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상하이자동차의 행보는 토종 업체들이 ‘외자 의존’ 일변도에서 ‘자립 단계’를 넘어 ‘자주창신(自主創新)’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으로 뻗어 감을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꼽힌다. 저우추취로 압축되는 중국 자동차의 해외 시장 공략은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2002년 2만 대에 그쳤던 중국의 완성차 수출 차량 대수는 2003년 4만8000대, 2004년 7만8000대, 2005년 17만2000대에 이어 2006년 34만2400대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 80%는 저가(低價)의 트럭과 버스가 대부분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이 주 수출 대상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치루이는 지난해에만 5만 대의 승용차를 수출하는 등 해외 승용차 시장에서 위상을 굳혀가고 있다.
한국 중소형 차의 킬러 될까
지리자동차의 경우, 중국 자동차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자체 조립공장을 만들어 2008년부터는 현지에서 소형차를 판매할 방침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 지리자동차가 미국 당국으로부터 안전과 환경 테스트를 받고 있으며, 이를 통과하면 5인승 소형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국영 자동차 메이커인 창펑(長豊)자동차도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보이며 2008년에 미국 시장 판매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국 자동차 시장이 기존의 일본과 한국에 이어 중국까지 가세한, ‘동북아 자동차 3국 전쟁’이 가시화할 조짐이다.
중국 자동차 업계가 뻗어나는 원인은 여럿이지만 첫 번째로는 부단한 국제화와 기술 개발 노력이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 참가한 지리자동차는 지난해 디트로이트모터쇼에도 참가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중국 박람회에서는 이치(一汽), 화천, 치루이, 위퉁 등 5개 중국 자동차 회사가 러시아 수출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
이치는 상업용 차량과 승용차를 중국에서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하기로 하는 동시에 러시아에서 중형과 대형급 트럭을 합작 생산하기로 했다. 또 치루이(奇瑞)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엔진 1만 대를 미국에 수출했고, 상하이자동차는 올봄 열린 상하이모터쇼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이미 선보였다.
또 다른 비결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동차 해외 진출 지원이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8개의 자동차 수출 전진기지를 지정하고 입주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44개 완성차 업체와 116개 부품 업체가 첫 번째 수출 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3월 국무원의 과잉 공급 업종으로 공식 지정됐지만, 당국자들은 무조건 긴축의 칼날만을 대지는 않는다. ‘키울 건 기우고 억제할 건 억제한다’는 실용적 논리에 따라, 잘나가는 회사는 밀어주되, 저가 경쟁을 일삼으며 다른 업체들의 뒷다리를 잡는 회사는 공장 문을 닫도록 유도하고 있다. 양적 통제보다는 질적인 규제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중국의 구조조정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덕분에 1997년에 세워져 1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치루이자동차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작년 한 해 동안에만 약 30만 대를 판매했다.
여기에다 중국 내부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팽창하는 것도 기폭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721만 대의 자동차가 판매돼 일본(573만 대)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소비 대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002년 300만 대를 넘어선 이후 2003년 400만 대, 2004년 500만 대에 이어 지난해 700만 대를 돌파하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베이징시에만 매일 1000대 가량의 새 차가 도로로 쏟아지고 있다.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수입 관세 인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가격 거품 제거 덕이 크다.
특히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3년 1000달러를 넘은데 이어 지난해 2000달러를 돌파했고 대도시는 이미 6000달러를 웃돌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마이카(My car)’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부자들을 겨냥한 고급 자동차 시장도 팽창할 징조가 농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도 급증해, 오는 2010년 중국은 1582만 대의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 될 것이라고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6월 보도했다.
어쨌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있는 중국 자동차 산업은 생산과 판매 규모에서 이미 세계 3위에 드는 정상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연간 30~40%씩 늘어나는 시장은 세계 주요 메이커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여 세계 자동차 시장의 ‘블랙홀’로 변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대륙에서 완성차 메이커만 100개가 넘고, 그 중 80개가 토종 메이커다. 5개에 불과한 한국과 견주어 보면 새삼 중국 자동차 산업의 거대한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세계적인 메이커를 향해 달음박질하며 도약하는 중국과 툭하면 노사 파업 몸살로 좌초하는 한국 자동차 업계를 비교하면 양국간의 격차는 사실상 ‘제로’로 좁혀지고 있다.
치루이자동차의 진이보 판매담당 부사장은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하더라도 바꿔야 한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동차 후발 주자로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야망이 ‘빛’을 발하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