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최근 만나 본 기업인들은 요즘 기업하기가 점차 힘들어진다고 하소연한다. 기술과 같은 시장 차별적 요소가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만 하면 팔리던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이 모든 것을 소비자가 결정하는 시장(buyer's market)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매출 창출을 위한 기업간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 기술, 디자인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정도의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수익을 많이 내려면 비용 증가 폭보다 매출 증가 폭이 월등히 높아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신수종 사업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업 특히 한국이 강하다고 하는 전자나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 기업의 가치 흐름은 대개 R&D, 기획, 구매, 제조, 생산, 물류, 서비스 등으로 진행된다. 이런 가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무엇일까. 브랜드의 중요성으로 본다면 디자인이나 서비스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비용 측면에서 본다면 구매 단계가 가장 핵심이다. 특히 전체 매출 원가의 60%를 구매가 차지하고 있으며 좀 더 확장하면 구매에 따른 물류와 R&D(인건비 포함) 등의 공급 사슬 관리 부분이 기업 활동 원가의 90%에 달한다. 당연히 비용 절감을 얘기하려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품 생산 전과정의 원가 파악해야
구매 비용을 원천적으로 줄이려면 구매를 발생하게 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많은 기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다. 대당 평균 100유로 제품을 팔아 3유로를 남기는 A기업이 있었다. 이 기업은 글로벌 매출이 늘어나면서 품질 보증을 위한 워런티(warranty) 비용이 덩달아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심한 경우는 나사 하나 갈아주는 데 1.25유로가 들어간 적도 있다. 매출이 늘어나다 보니 영업부서에 힘이 실렸고 고객을 중시한다는 명분에 따라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한 결과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회사 전체의 비용은 커졌다. 결국 이 기업은 고민 끝에 후속 제품에서 나사를 없애는 디자인을 도입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비용을 발생하게 하는 제품 디자인과 이에 따른 구매 구조를 원천적으로 뜯어 고친 것이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제품 개발자의 영역이지만 이는 제품의 개발이 후속 구매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비용 합리화 측면에서 전사적으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선진 기업들이 모듈(module; 몇 개의 작은 부품을 한 데 모아 큰 단위로 묶어 조립하는 것) 조립 방식을 택하거나 제품의 설계와 제조에 아웃소싱을 활용하는 것은 첨단 기술에 뒤쳐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구매원가를 낮추기 위한 전략적 검토 결과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품의 설계에서 제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해 제품 한 대당 투입되는 전체 비용 개념인 총 소유 비용(TCO: Total Cost of Ownership)의 관점에서 원가를 파악하고 줄일 수 있는 여지를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아웃소싱 해도 상대적 임금 비용이 낮은 곳에서 조달되고 있는지, 신제품의 출시 기간은 단축되고 있는지, 협력업체의 원가 구조는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있는지 등 제품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모든 영역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한 기업에서 구매가 매출의 5%를 차지한다고 치자. 그런데 구매 과정에서 낭비 요소를 제거해 5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면 이는 1000억원의 매출 증가를 이룩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단순화이기도 하지만 이는 비용 절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모든 기업이 똑같지는 않지만 구매 프로세스는 기업이 원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대상이다.
비용 절감은 기업이 재무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원자재 값이 너무 올랐을 때나 고려하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다. 비용 절감은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이자 동시에 기업 운영의 일부로써 그 중요성을 모든 조직원들이 인지하고 체질화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도요타 연간 1조원 비용절감
도요타는 이런 점에서 모범적인 기업의 사례로 회자된다. 기업 운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수십 년간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해 온 도요타는 매년 절감되는 비용만 1조원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도요타 경쟁력의 핵심인 지속적인 카이젠(개선)은 생산성 증가와 함께 낭비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좀 심하다 싶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도요타는 비용 절감을 위한 프로젝트의 내용을 A3 용지(297×420㎜) 한 장에 모두 표현하도록 관리자들을 훈련시킨다. A3는 팩시밀리를 통해 송신할 수 있는 최대의 종이 크기로, 이 한 장의 종이에 문제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현재 상황을 분석하며,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비용 편익 분석까지 담는다.
비용 줄이기를 연구하면서 연구에 따른 불필요한 종이 소비도 줄이자는 훈련으로 비용에 대한 도요타의 인식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도요타는 지난 몇 년간 A3 보고서도 크다며 이제 A4(210×297㎜) 한 장에 모든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또 다른 비용 절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매우 세부적인 영역으로까지 비용 절감 인식이 침투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도요타의 비용 절감은 생산에 따른 모든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단순히 생산 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을 넘어 전체 비즈니스 시스템 자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에서 비용 절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제조, 마케팅까지 가치사슬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도요타의 프로세스 혁신은 하이브리드카와 같은 신수종 사업을 그 어떤 업체보다도 경쟁력 있게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도요타는 비용 절감 목표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포장비 47%, 운송비 25%, 재고 50% 감소와 같은 식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비용 절감 목표를 현실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자사의 비용 메커니즘을 관리자가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용 절감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사활을 결정할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관리자가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의 조건 등의 변화에 따른 목표의 하향 수정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조직 내부에서 비용 구조를 줄이는 것은 순전히 관리자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