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구매라고 하면 어떻게든 싸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여겨져 왔다. 덕분에 기업에서 구매부서의 역할은 일상적인 일의 반복이고 기업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진정한 혁신의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선진 제조업체는 매출 성장 둔화와 신규 시장 한계에 따라 외형 위주 성장에서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 패러다임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에게도 구매에 대한 혁신의 비중 및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구매 원가 경쟁력 확보가 핵심

이러한 선진 제조업체들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구매 부문의 주요 혁신 활동은 첫 번째로는 체계적인 구매 내·외부환경 분석을 통한 총 소유 비용(TCO) 관점의 구매 전략 수립, 두 번째로 공급사 관리 체계 강화로 최적의 공급사를 관리하고 육성하는 전략 구매로의 전환을 통한 공급사와 상생(相生)관계 형성이 꼽힌다. 세 번째로 제품 원가의 70~80%가 결정되는 제품 개발 단계 및 핵심 전략 자재가 결정되는 선행 개발 단계의 구매 조기 참여를 통한 원가 절감 활동, 네 번째로 가격 대비 품질·납기의 중요성이 낮은 부품에 대한 저비용 국가(Low Cost Country) 소싱을 통한 재료비 절감 활동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표-1 참조).

이러한 공급사 관리 체계 정립을 통한 전략 구매로의 혁신은 가격뿐만 아닌 납기와 서비스, 품질 등 비가격적 요소의 총 비용의 절감을 가져 올 수 있으며, 제품 개발 단계의 조기 참여는 원가 절감 기회를 극대화하고, 신제품 개발 기간의 단축 및 안정적인 수급을 확보할 수 있다(표-2 참조). 따라서 기존의 거래 관행에 따른 조달 중심의 구매 활동이 아닌 기업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 주체로써의 구매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아직 국내 기업에서 시도되지 않고 있는 구매 혁신 사례 중 LCCS(Low Cost Country Sourcing) 사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기존 기업들이 저비용 국가에 구매법인을 설립하고, 본사 인력과 현지 체용 인력을 활용해 품질 문제가 비교적 적은 소모품 위주의 현지 소싱(Sourcing)을 수행했던 반면, 글로벌 선진 기업의 15~20%가 중국, 남미, 동유럽 등 저비용 국가의 시장 상황 및 공급자(Supplier)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현지 전문가를 통한 전략적 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또 구매 품목도 소모품 위주에서 직접 원자재로 확대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소싱 구매 품목이 늘어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요구됐던 현지 구매 인력 대신, 현지 전문업체를 통한 구매를 통해 구매비용과 더불어 현지 법인 운영비용까지 절감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기, 전자, 통신 업체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고, 국내 기업들도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해외 기업에 3년 이상 뒤쳐지게 될 것이다.

사례1

P사는 광학공업 분야의 콤팩트 카메라(36mm 카메라) 산업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일류 기업이다. P사는 광학 제품·소비자 제품과 관련 부품 등을 제조·조립·판매하며, 중국에 50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P사의 경우, 주요 자재 부품과 관련한 소싱 전략의 부재로 원가 절감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구매 운영·조정 및 모니터링의 효율성이 요구됐다. 연구 개발 부문과 구매 부문 간의 의사 전달의 부재로 인한 제품 요구 사항과 각 부품의 스펙 사이의 불일치도 문제로 부각됐다. LCCS 도입 후, P사는 약 10%의 비용 절감을 이뤘으며, 구매 프로세스상의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15개 이상의 협력업체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기준으로 가시성, 객관적 평가 및 선정 기준을 보유하게 됐다.

사례2

B항공사는 84개 국, 165개 도시에 걸쳐 366기의 비행기를 운영하며, 6만40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익은 연 147억달러에 달한다. 3만여 협력업체와 연 구매 예산 65억달러인 B항공사는 구매 프로세스의 관리와 효율성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B항공사는 구매 프로세스의 최적화, 협력업체 관리, 전략적 소싱 역량 도출, 전자 조달(e-Procurement) 측면의 일류 기업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LCCS 도입을 결정했다. LCCS 도입 후, B항공사는 협력업체 합리화, 전자 입찰(e-Bidding) 프로세스 도입, 미가공품 비용 절감 등을 실현하며, 연 2억6000만달러의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사례3

L사는 자동차, 기차의 객차, 모터사이클 등의 OEM에 대한 전기 관련 모터 제조업체로, 그 규모가 대략 10억달러에 이른다. L사의 비즈니스 상황은 원가 절감에 따른 수익성 향상, 가격 경쟁력과 시장 성공의 연관성, 그리고 급변하는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의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을 달성하기 위해 구매 혁신이 절실했다. LCCS를 도입한 후, L사는 모든 자재에 대해 12~15%의 절감을 이뤘으며, 어떤 자재에 대해서는 25% 이상의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현지에 구매센터 별도 설립해야

국내 기업의 경우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현지 국가 전문가의 도움 없이 부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공적인 LCCS를 위해서는 LCCS 대상 부품에 대한 명확한 설정과 해당 저비용 국가의 법적 제도, 시장 환경, 업체의 기술 수준이나 신뢰성 등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울이 아닌 현지에 별도의 구매센터를 설립해 시장 분석 및 현지 업체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급사와의 상호 혁신을 통한 구매 원가 경쟁력 향상도 눈여겨봐야 할 구매 혁신 사례다. A사는 세계적인 무선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빠른 기술 발전과 고객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수렴해 최고 품질의 휴대전화를 적기에 출시하는 것을 핵심 경쟁력으로 꼽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부품을 공급사에 의지해야 하는 휴대전화 제조업의 특성상 공급사와의 상생 경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구매원가 개선을 위해 기술·품질·대응·납기·가격 요소에 대한 공급사와 공동 혁신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A사는 자체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협력업체 지도팀’을 중심으로 공급사의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상호 혁신 활동을 지원하고 공급사와의 상생관계를 도모해 구매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또 제품 원가의 대부분이 확정되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의 구매 참여를 목적으로 주요 부품 제안 등을 통한 개발 리드타임 감소와 원가 절감 달성 프로세스도 구축했다.

제조업체에서 구매는 비용 요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료비(선진 제조기업 평균: 매출 대비 68%)를 관장하는 부서로서 구매 혁신은 다른 어떤 혁신 활동보다 기업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한국 기업도 더 이상 단순 구매 업무로서 구매를 이해하기 보다는 진정한 기업의 수익성 개선으로서의 전략적 구매, 글로벌 구매로서의 혁신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