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내 집 마련 꿈을 이뤄주는

        진정한 자원봉사 활동입니다”

31번 국도를 타고 찾아가는 강원도 태백은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했다. 햇볕이 내리쬐다 가랑비가 내리고, 다시 햇빛이 비치다 강한 스콜성폭우가 쏟아지기를 반복하는 4시간30여 분의 여정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태백에 도착해서도 목적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엉뚱한 길로 안내했다. 태백의 유명 관광지인 구문소에 이르러서야 멀리 살갗이 벗겨진 채 뼈대가 훤히 드러난 구조물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30여 명쯤 될까. 하얀 헬멧을 눌러쓴 이들이 신축 중인 건물의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에 매달려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일렬로 늘어선 작업자들이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앙상한 구조물 뒤편으로 외벽 마감재 공사가 한창인 또 다른 건물에서도 한 무리의 작업자들이 매달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국씨티은행 직원 및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대신해 사랑의 집짓기 운동으로 불리는 해비타트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장이다. 

완연한 노가다 행색

 녹색 수건을 두른 채 땅바닥에 쪼그려 1층 창틀을 매달고 있던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잔뜩 손때가 묻은 하얀 목장갑 손을 내밀며 반겨주었다. 정말 하 행장이 맞나 확인이라도 해야 할 만큼 속칭 노가다 행색이 완연했다. 온통 공사판이라 마땅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사람을 붙들고, 인터뷰한다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여간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 행장 옆에 함께 쪼그려 앉았다.

“글쎄, 어제 매달았던 창틀이 불량품이었지 뭡니까. 매달고 보니 볼록 튀어나왔어요. 내가 살게 될 집에 불량품을 달아놓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전부 떼어내 다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작업이 미숙하다 보니 조금 떴네요.”

 내색은 할 수 없었지만 비전문가 눈에도 비전문가의 솜씨는 왠지 어설펐다. 민망했을까. 하 행장도 괜히 일 잘하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여기를 잡아, 그래야 딱 붙

여서 못질을 할 수 있잖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못질하는 하 행장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하 행장뿐 아니라 창틀을 매다는 작업에 매달린 모든 사람의 표정도 한결같았다.

“봉사활동 중에 이처럼 결과가 눈에 보이게 남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또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게 될 사람도 함께 어울리고 뒤섞여 망치질을 합니다. 다른 봉사활동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지않습니까?”

한국씨티은행 직원과 가족들이 땀을 흘리고 있는 태백 현장에는 모두 8가구가 입주하게 될 집이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한 개동에 각각 4가구씩 두 개동이 동시에 지어지고 있었다. 아직 입주할 사람이 결정되지 않아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단다. 통상 집 한 채가 완공되는 데에는 10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 행장은 설명했다. 태백의 경우 하루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연인원 3000여명의 자원 봉사자가 동원되는 셈이다. 그러나 예정했던 시일보다는 대체적으로 더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비전문가들이고, 처음 집짓기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아 작업 후에 건축 전문가들이 들여다보고 다시 뜯어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해비타트라는 운동 자체가 빠른 시일 내에 완성도 높은 집을 지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해비타트 정신을 배우고 나누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의 해비타트 활동이 직원들만의 봉사활동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회적인 책임, 공동체 의식, 나눔의 정신, 배려의 정신 등을 어릴 때부터 키우는게 좋지 않겠냐는 하 행장의 의지가 사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다.

“설사 여기 와서 직접 공사일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들이 일하는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또 새집을 만든다든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하 행장은 올해 함께 참여하려 했던 딸이 입시를 앞둔 고3이라 내년으로 1년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가족 단위로 참여한 직원은 이날 14명으로 6가족이었다.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신입사원들을 제외하면 모두 가족과 함께 참여한 것이다. 작업장 옆에 대형버스가 주차해 있는 이유가 비로소 다가왔다.

 한국씨티은행의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 가운데 해비타트 활동이 최장수 프로그램이라는 데 대한 하 행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씨티의 글로벌한 개념이 그대로 녹아있는 프로그램 입니다. 대개 돈만 기부하거나 연말에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다른 봉사활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봉사활동을 하려면 참여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서로 테마도 맞아야 하고, 참여하면서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지속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해비타트를 비롯해 신나는 조합(마이크로크레디트), 씽크머니(청소년 금융교실) 등과 같이 한국씨티은행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지속성이 그 특징이다. 금전적인 지원보다는 임직원이 참여함으로써 봉사하고 땀을 흘릴 수 있는 사업들을 선정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일회성 이벤트 아닌 지속성 갖는 봉사활동

“일반적으로 외부에 크게 알려지는 것은 큰 금액을 기부했을 때지만 우리는 그보다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게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씨티은행의 해비타트 활동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998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해비타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후원 및 봉사활동을 해온지 꼭 1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또 씨티은행의 한국 진출도 올해 40주년을 맞이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때문에 올해는 ‘씨티 가족이 여러분께 사랑과 희망의 집을 지어 드려요’라는 주제 아래 100여 명 이상의 직원과 가족이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 이어 1억 4000만원의 후원금 전달했다.

 그동안 한국씨티은행이 해비타트 활동에 건축 후원금으로 전달한 금액만도 8억원 이상에 달한다. 또 10년간 380여 명의 직원들이 자원봉사에 동참해 광양, 삼척, 대구, 천안, 군산 등지에 총 13세대의 사랑의 집을 지었다.“씨티의 로고를 보면 빨간색 반원이 있지 않습니까. 가교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꿈·현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꿈을 현실로 이루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의미죠. 해비타트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와서 살게될 사람들의 꿈이 집을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집 마련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씨티의 전체적인 의지와 추구하는 기업 정신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하 행장은 지난해 군산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워낙 난공사였던 지붕 올리기 작업을 하며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크레인으로 지붕을 올려주면 일정한 간격에 따라 못질을 해야 하는데 간격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작업이 끝났는데도 지붕 중앙이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원봉사자들은 작업 공정에서 쫓겨났고 전문가 한 사람이 자원봉사자들의 잘못된 작업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지붕을 올려야 했다.

“2005년 천안에서의 해비타트 활동이 가장 인상적이 었습니다. 번개건축이라고 해서 8개 단지를 한꺼번에 짓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일시에 투입됐습니다. 이번처럼 우리 직원들하고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지만 다른 회사와 단체들이 함께 작업을 하다보니 서로 경쟁심리가 작용하기도 하고…. 작업 후에는 서로 평가하고 시상도 했습니다.”

 해비타트 행사에 참여하면 하 행장은 항상 느끼는 게 있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해비타트 활동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집이 완공된 후 거주하게 될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라는 것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이루게 해주는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참된 보람을 느끼는 진정한 혜택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최대 수해자는 자원봉사자 자신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해비타트 운동은 빠른 시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소박한 꿈이 바로 내집 마련이기 때문에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원봉사자들 또한 내 집 마련의 꿈이 있기 때문에 이웃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해주는 봉사활동에서도 의미를 찾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 행장은 향후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던 이벤트 하나를 추가할 계획이다. 입주식 때 케이크를 사서 입주자를 축하해주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임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지었던 그 집을 몇 년 뒤 다시 방문하는 등 지속적으로 입주민들과 만나는 프로그램도 마련 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간식시간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빵과 함께 칼로리를 보충할 수 있는 영양 갱이 자원봉사자 들에게 나누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빠져나간 건축물 곳곳에 낙서의 흔적이 보였다.

‘박은 못보다 뺀 못이 더 많다.’

‘이 집 안 무너질 거예요.’

‘예쁜 집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해비타트 운동이란? 

 해비타트(Habitat)는 사전적 의미로 ‘주거 환경’, ‘서식지’, ‘보금자리’를 뜻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과도한 주거비용 때문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전 세계의 모든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해비타트의 꿈이다. 특히 해비타트는 계층이나 연령을 초월한 자원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입주 가정의 땀과 정성으로 지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렇다고 입주 가정이 무상으로 집을 공급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집이 완성될 때까지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입주 후에는 건축비를 15년 이상 장기간 무이자로 상환하게 된다. 때문에 입주 가정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해비타트 운동의 주체이자 동력자이다.

 해비타트 운동은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한 미국인 변호사로 부터 시작됐다. 벤처기업을 일으켜 20대 후반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던 그에게 어느 날 아내는 “돈만 추구하는 의미 없는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별거를 요구했다.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던 그는 가정이 위기를 맞자 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찾아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1973년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 한 것이 시초다. 그리고 1976년 오늘날 국제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를 창설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24분마다 1채의 해비타트 주택이 지어지고 있으며, 2005년에는 미국 테네시주 낙스빌에서 20만 번째 해비타트 주택이 건축 되었다.

 한국에서의 해비타트는 1980년대 후반 대천덕 신부(R.A. Torrey)가 그의 저서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에서 해비타트 운동을 소개했는데, 후에 해비타트의 실행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고왕인 박사가 이 글을 읽고 필요성에 공감해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1992년 1월 과기처장관을 지낸 정근모 박사를 이사장으로 추대해 국제해비타트한국운동본부를 발족했고, 1994년 경기도 의정부에 첫 번째 한국해비타트 주택이 건축되었다. 1995년에 (사)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비타트의 대표적인 활동 가운데 하나가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Jimmy Carter Work Project)이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2006년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 전 세계 30여 개국 2500명의 자원봉사자가 인도 뭄바이에 모여 5일이라는 단기간에 100채의 집을 지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