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간 국내 금융 산업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단군 이래 최고 히트 상품이라 불리는 적립식 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펀드 투자의 대중화가 이뤄지고 있다. 6월 말 현재 총펀드 계좌 수는 1588만 계좌로 전국 1599만 가구(2005년 기준)의 99%에 이른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1가구 1펀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지난 2년간 은행권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예금에서 증권사의 CMA(어음관리계좌)로 대략 30조원 정도가 넘어 올 정도로 수시입출금식 상품 시장도 크게 변하고 있다. 규모나 투자자들의 숫자 측면에서 이렇게 급속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국내 자본시장 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그것도 불과 5~6년 사이의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선진국의 경험과 최근 금융 환경을 보면, 변화는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연금 시장의 확대다. 40~50대 중장년층이 사회의 주류가 되면 자산 축적 욕구가 높아진다. 20~30대는 투자를 하고 싶어도 주택 대출금 상환 등으로 인해 장기 투자 자금을 확보 하기 어렵다. 반면 40~50대는 이미 주택을 마련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높다.

미국 베이비부머들 중장년층 되자 주식시장 호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이 중장년층에 접어든 시점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이들이 노후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주식 자산을 자신의 포트폴리오로 편입하기 시작한 1982년부터 미국 증시는 2000년까지 역사상 최대 호황장을 구가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자산운용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연기금은 8500억 달러에서 4조5700억달러로 증가했고, 뮤추얼 펀드는 1180억달러에서 1조8000억달러 수준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미국판 퇴직연금인 401k제도가 도입되면서 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해 노후를 준비한다는 개념이 주가 상승과 맞물리면서 ‘펀드 투자의 일상화’라는 현상

이 자본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40~50대의 베이비부머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연금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그것이 증시 수급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도 베이비붐세대들이 40~50대가 되어 사회의 주류층으로 등장했고, 정부는 2005년 말부터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퇴직연금은 도입

초창기인 탓에 활성화되고 있지 않지만 정부는 2009년부터 현행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완전히 바꾼다는 방침이어서 연금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 시장의 제1차 수혜자는 다름 아닌 자산운용업이다.

두 번째로 금융 시장의 개혁 방향도 자산운용업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해 자본시

장의 발전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현재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등 회사 유형별로 금융 투자업을 구분해 서로 겸영할 수 없도록

한 것을 없애 자본시장 관련 회사들이 겸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상품 개발에 있어서도 판매가 금지된것 이외에는 모든 상품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된

다. 또한 증권사의 CMA와 같은 수시입출금식 상품이 공과금 자동이체 등의 결제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의 방향이 의미하는 바는 대형화를 통해 경쟁

력을 높이고, 또 금융 회사들 간의 경쟁을 적극 유도해 그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미국의 1970년 말과 1980년대 초와 매우 흡사하다. 1978년 CMA가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증권사들은 기존 주식 투자 고객에 더해 더 많은 수의 강력한 고객 기반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CMA로의 자금 이동은 미국에서는 1970년 말부터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M&A(기업 인수 및 합병)를 통해 금융 회사들의 대형화가 이뤄졌다. 초창기 금융 회사들 간의 M&A는 수수료 자유화로 촉발됐다. 수수료 자유화로 수입이 줄어들자 금융 회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법을 통해 수수료 인하에 대응했다. 증권 수수료든 펀드 수수료든 1970년대 이후 미국 금융 회사들의 수수료가 다시 인상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거듭된 M&A를 통해 금융의 복합화·대형화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회사들은 도태되거나 다른 회사로 흡수 합병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하지만 금융 소비자들에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 경쟁을 통해 수수료가 인하됐고, 다양한 금융 상품이 개발돼 종합 금융 서비스를 받게 됐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 길에 들어선 것이다.

지식 기반 금융 보험업 비중 높아져

 끝으로 산업 구조의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 말 이후 금융시장의 발전은 산업 구조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1970년대 말 일본 기업들에게 밀리기 시작하고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홍역을 크게 앓았던 미국 경제는 기존의 자동차, 컬러TV 등 소위 ‘포디즘(Fordism)’에 기반을 둔 대량 생산 경제에서 금융, 소프트웨어 등 지식 기반산업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지식 기반 비즈니스인 금융 보험업의 경우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7.2%에서 1990년 9.4%로 늘어 났다. 우리나라도 금융업 등 지식 기반 비즈니스가 점차 그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자산운용업은 성장 산업이다. 그 자산운용업의 성장은 자본시장을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수출 산업으로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해외 진출은 금융 수출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준 뼈아픈 교훈 중 하나는 국내 자산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경우,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업을 성장 산업·수출 산업이란 시각에서 보면,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