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럭비 모드’로 변신… 경제 유발 효과 10조원 이상?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독일 경제에 축복을 불어 넣어준 것처럼, ‘2007 프랑스 럭비 월드컵’도 프랑스 경제가 다시 뛰어오르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줄까.

지난 9월7일부터 10월20일까지 프랑스 전역에서는 ‘2007 프랑스 럭비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럭비 월드컵을 계기로, 프랑스 전체가 스포츠·문화·관광·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럭비 월드컵 특수가 가져다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럭비 마케팅’에 나섰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부터 ‘럭비 모드’로 변신했다. 럭비 월드컵의 개막과 함께 에펠탑 조명은 상단에 노란색, 하단에 초록색을 밝히고 중간에는 럭비공을 매달았다. 럭비공을 손에 들고, 유니폼을 입은 선수 같은 모습이다. 

독일 월드컵 같은 ‘경제 약발’ 기대… 맥도널드 등 미국 기업들도 발벗고 나서

파리 시내 곳곳도 ‘럭비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고 스포르’,  ‘데카틀롱’ 같은 스포츠 전문 매장은 물론, 생제르맹 데 프레의 좁은 골목길에도 커다란 럭비 셔츠 모양의 조명등이 공중에 내걸렸다. 샹젤리제에 있는 프로축구팀 파리 생제르맹의 팀 매장에도 생제르맹 유니폼을 제치고 럭비 셔츠가 문 앞에 걸렸다.

프랑스국영철도(SNCF)가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어, 파리 시내 주요 역에도 럭비 선수 모형이 나붙고 기차에도 럭비 그림이 그려졌다. 스포츠용품, 자동차, 패션, 심지어 치즈 광고까지 온통 럭비가 주인공이다.

신문과 잡지들은 앞 다퉈 월드컵 특집 섹션이나 잡지를 펴내고, 서점에는 럭비 관련 책도 쫙 깔렸다. 심지어 철학 잡지인 <필로소피> 같은 곳에서도 럭비를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등 가히 나라 전체가 럭비 붐이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가져다주는 경제 유발 효과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다. 이번 럭비 월드컵도 축구 월드컵 못지않게 프랑스와 유럽을 달구고 있다.

럭비 월드컵의 관전 인원은 250만 명에 이른다. 중계권료만 1019억원, 결승전 광고료가 2억6117만원에 달한다. 프랑스에 가져다줄 경제 효과는 10조2000억원. 유럽 전역은 41조~51조원으로 예상된다.

럭비 월드컵은 소비를 촉진하고, 관광객을 대거 오게 만드는 등 프랑스 경제에 긍정적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에섹(ESSEC)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 럭비 월드컵으로 당장 프랑스에 떨어지는 돈만 33억유로(약 4조1910억원)에 달한다. 파리에만 10억유로(약 1조2740억원)가 들어온다. 이 밖에 간접적인 광고 효과까지 합하면 80억유로(약 10조2000억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월드컵이 특히 돈벌이가 되는 이유는 프랑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프랑스 인구보다 더 많은, 80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 대국이다. 프랑스에서 럭비 월드컵이 열리면 유럽 전역에서 버스로, 기차로 쉽게 관람하러 올 수 있고, 관광객도 끌어 모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프랑스에 이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유럽 각국으로 여행할 수도 있다. 프랑스 효과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섰다. 패스트푸드 전문 업체 맥도널드는 럭비 월드컵을 기념해 ‘프랑스식 버거’라는 신상품을 내놓았다. 코카콜라는 스포츠 음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식 공급 업체라는 이점을 살려 그동안 유럽에서 매출이 부진했던 스포츠 음료, 파워에이드의 매출이 20% 이상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스포츠 용품 전문 업체 나이키와 아디다스도 장외에서 맞붙었다. 두 회사는 이번 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인 프랑스(나이키)와 뉴질랜드(아디다스)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다. 양국 대표 선수의 행사 비용 등으로 대회 내내 1000만유로(약 1274억원)를 쏟아 부을 계획이다.

그만큼의 매출 증가도 기대하고 있다. 이번 대회 동안 양국 대표 팀 유니폼 셔츠를 40만~50만 장 판매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정도면 한 해에 팔아야 할 물량을 한 달 반 남짓한 기간 동안 모두 판매하는 셈이다. 프랑스와 뉴질랜드가 결승전에서 맞붙을 경우 이 회사들이 얻게 될 수입은 투자금의 10배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럭비 월드컵이 특히 프랑스 경제에 중요한 이유는 이번 대형 스포츠 경기를 계기로 주춤해질 것으로 우려되는 하반기 경제의 불꽃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6 독일 월드컵은 나라 전체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긍정적 기대를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오랜 구조조정을 마치고 막 회복 국면에 접어든 독일 경제에, 이 같은 긍정적 기대 심리는 경제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 역할을 했다.

비슷한 동기 부여를 프랑스도 기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살려 성장을 향해 경제가 달릴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럭비 월드컵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부터 나서서 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붐조성에 앞장… 올 경제성장 목표 2.25% 달성 노력

평소 조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포츠에 관심 많은 대통령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온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9월7일 개막 경기에도 달려가고, 럭비 팬들에게도 어필하는 정치적 발언을 했다. 장관들도 럭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등 ‘럭비 내각’이 됐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들을 마티뇽(프랑스 총리 관저)의 만찬에 초대했고, 이 자리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경부 장관은 선수들을 만나 아들이 얼마나 럭비를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 법무부 장관, 인권 담당 장관 등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장관들도 줄줄이 선수단 캠프를 방문했다.

지난 5월 취임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저 성장, 고 실업’의 프랑스병을 고치고 프랑스에 일자리와 성장을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 각종 세금을 깎아주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시발점으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각종 제도를 개혁하겠다며 좌파 지식인 자크 아탈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을 검토하는 위원회’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OECD는 세계 경제의 둔화를 예상하면서 당초 2.2%로 예상했던 올해의 프랑스 경제성장 전망치를 1.8%로 하향 조정했다. 사르코지 정부는 올해 2.25%의 성장을 목표로, 각종 세금을 깎아주는 등 값비싼 개혁을 밀어 부쳐왔다. 성장률이 낮아지는 만큼, 세수도 줄고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지며, 개혁을 기대하던 국민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막대한 경제 효과가 예상되는 이번 럭비 월드컵을 계기로, 경제 심리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꿔놓는 물꼬를 트겠다는 기대가 트다.

또 사르코지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도 무척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1998년 축구 월드컵에 프랑스가 우승하자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의 인기가 59%까지 치솟았다는 것이 단적인 예. 스포츠와 경제의 결합뿐 아니라, 스포츠와 정치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10월20일 프랑스 팀이 우승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