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30년간 23조원 생산 유발 효과… 상권 부활 통해 강북 경제 활성화 기대
디자인이 뛰어난 하나의 건축물은 그 도시의 성격을 바꾸고,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를 일명 ‘빌바오 효과’라고 부른다. 스페인이 쇠퇴한 공업도시 빌바오에 구겐하임미술관을 건립,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해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들인 데서 유래됐다. 실제 구겐하임미술관의 지난 6년간 경제적 효과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을 월드디자인플라자로 변신시켜 빌바오 효과를 얻어낸다는 전략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월21일 한국패션협회가 주최한 패션 경영 특강에서 “동대문에 월드디자인플라자를 건설하고 패션 산업을 활성화해 서울을 패션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의 경제는 1인당 소득 수준으로 볼 때 전국 16개 시·도 중 5위에 불과하다. 제조업은 13%에 불과하고, 87%가 서비스업이다. 일본 동경, 중국 북경과 비교하더라도 규제는 많고 새로운 성장 동력은 미약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이들 경쟁 도시들이 앞서 디자인 산업 지원에 도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서울도 디자인 산업 지원의 중추가 될 디자인 인프라 건립이 시급하다.
서울시가 디자인 산업 지원에 주력하기로 한 것은 디자인이 시장 경쟁력 확보의 핵심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재래의 산업기술이 보편화하고 새로운 원천기술의 개발 속도가 서서히 둔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 산업에 대한 투자는 기술개발 투자에 비해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크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디자인혁신기술개발사업’ 결과 분석에 따르면 디자인을 혁신할 경우 전체 매출의 41.3배의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디자인 개선을 통해 고급화된 제품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도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그래서 디자인 산업의 육성은 전 세계 공통 관심사다. 디자인 산업 육성을 위해 해외 주요도시들 대부분이 전시관, 도서관, 정보센터 등 위주의 디자인센터를 건립하고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시책들을 추진 중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중국의 노력은 괄목할만하다. 상하이에 100만㎡ 규모의 창의산업단지를 조성해 올해 말까지 4000개 이상의 디자인 관련 기업을 유치하는 계획을 2004년부터 추진 중이다. 2010년에는 세계적인 디자인센터인 퐁피두센터 상하이 분관이 들어선다.
서울시의 지원은 다소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디자인 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디자인 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난 4월 제1회 세계 디자인 수도(WDC; 2010~2011년) 지정을 신청했다. WDC에 선정되면 서울시의 디자인 성과에 대해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데다 서울 브랜드를 세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도시 경관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도시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시장 직속으로 설치·발족했다. 공공 디자인 정책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전면적인 도시 디자인 개조 사업을 통해 서울을 세계적인 고품격 디자인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디자인서울총괄본부는 도시 디자인 분야를 총괄하며, 건축·주택 분야의 외관 등 도시 경관 관리, 문화 분야의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건축물에 대한 미술 장식 업무 등 그동안 여러 조직으로 분산돼 있던 디자인 관련 기능을 통합 조정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디자인력은 중위권 수준이다. 2005년 핀란드디자인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4위권의 디자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도 산업 전

반의 디자인력 상승보다는 최근 5년 사이에 대기업 IT상품 디자인의 우수성이 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자인 산업 육성 통해 도심 상권 부활
서울시는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이 향후 5년 내에 전 세계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인프라가 바로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들어설 월드디자인플라자다.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부지를 디자인 지원을 위한 요충지로 보는 것은 이 지역이 디자인 분야의 집적지이자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와 중구는 서울의 디자인 산업 전체 종사자의 27.6%가 분포하고 있어서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동대문 지역이 디자인 산업 육성을 통해 도심 상권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 전체적으로는 디자인 분야와 패션 분야를 포괄할 경우 전국 디자인 전문 인력의 49.5%인 25만8000명, 디자인 사업체의 38.5%인 7만여 개가 집중돼 있다. 특히 산업 디자인 부문에서는 전문 인력과 기업체가 각각 전국의 73.1%, 58.2%가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시는 동대문 상권의 심장부인 동대문운동장 터를 디자인·패션의 중심지이자 쇼핑타운의 메카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동대문운동장에 대한 기능 대체 논란은 1990년 후반부터 시작됐다.
동대문 상권은 상가가 3만 개가 넘게 밀집해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타운이다. 1일 60만 명이 넘는 유동인구와 연간 210만 명의 외국 쇼핑·관광객이 찾는 디자인·패션의 중심지다. 그러나 동대문 상권의 심장부인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밀집한 노점, 혼잡한 교통, 슬럼의 이미지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쇼핑타운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동대문 상권은 한때 세계 최대의 패션몰이었으나, 현재 점포의 공실률이 20%에 가까워지고 있다. 외국인 구매도 작년보다 6.6% 감소했으며, 특히 중국인 구매 건수는 45%가 감소해 위기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과밀한 이 지역에 녹지·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도시 공간 구조 개편을 주요 방향으로 잡고 설계자를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지난 8월13일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설계’에 대한 국제 현상 공모 결과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 ‘환유의 풍경’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자하 하디드는 1951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생한 세계적인 건축가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2004년 건축계의 노벨상 격인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환유의 풍경’은 조선시대 성벽이 전체 구성의 중심 역할을 한다. 바닥 조경면이 연속적으로 공원과 월드디자인플라자를 연결해 마치 액체의 흐름과 같은 유연한 모습을 띤다. 동대문운동장 주변 건축물이 모두 고층인 점을 감안해 저층인 2층 높이로 계획하고 그 상부까지 공원으로 확장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시는 자하 하디드의 이 같은 설계를 기초로 내년 3월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착공에 들어가 2010년 상반기까지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기존 운동장 시설물은 오는 11월께 철거해 내년 4월 본 공사 착공에 지장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확정된 자하 하디드의 설계대로 공원화 사업을 진행하면 사업비는 총 2274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은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 벼룩시장이 예정대로 내년 3월 철거되기로 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풍물 벼룩시장 철거는 이번 사업의 최대 난제였다.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풍물시장은 내년 3월까지 청계천변 숭인여중 부지로 이전된다. 청계천에서 약 100m,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에서 120m 정도 거리에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청계천 관광코스와 연계돼 있어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입점 상가는 수용 능력을 감안해 동대문 풍물시장 상인, 시내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 등이 대상이다.
시는 벼룩시장을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 벼룩시장의 홍보와 마케팅, 상인 조직 육성, 시설 현대화 사업 등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또 중소기업 육성 자금 지원 계획의 일환으로 창업 자금이 부족한 상인에게는 소액 창업 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동대문 상권 5조원 증가
월드디자인플라자는 산업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을 포함하는 디자인 산업 전반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정보센터와 전시·컨벤션시설, 업무시설을 집적한 디자인 산업 지원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디자인 창조 역량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월드디자인플라자를 해외 디자인센터들과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대부분의 디자인 지원센터가 전시시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만 월드디자인플라자는 다양한 디자인 행사 개최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디자인 테마샵을 비롯, 수시로 신제품 발표회와 이벤트가 개최되는 디자인 스트리트는 디자인과 문화 이벤트가 융합된 복합문화시설로 특별한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신제품 발표를 원하는 중소기업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제품의 디자인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특별한 기회로 정착될 것이다.
또 해외 디자인 유관기관들과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도 구축된다. 업무시설에는 해외 유수 디자인 기관들을 유치하고, 세계 최신의 디자인 트렌드 정보를 수입하고 전파하기 위한 정보센터 추진에도 역점을 둘 방침이다.
월드디자인플라자 건립은 산업적 효과에서 보면 동대문 지역의 중저가 이미지 개선과 주변상가의 매출 증대에도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개발의 경제 효과에 대해 향후 30년간 생산 유발 효과는 23조원, 총 고용 유발 효과는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대문 상권 매출 역시 10조원에서 15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이 이러한 인프라를 활용해 세계 5대 패션도시에 진입할 경우 연간 30조원의 매출이 기대되며, 그 중 동대문이 50%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디자인 산업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 유동인구는 현재 1일 60만 명에서 7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도 21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월드디자인플라자의 건립은 디자인을 매개로 서울의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서울이 장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또 이를 통해 월드디자인플라자는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 극복의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TERVIEW 이덕수 서울특별시 균형발전추진본부장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너지 효과 내겠다”

“월드디자인플라자는 한마디로 경제다.”
이덕수 본부장은 월드디자인플라자가 지역 상권의 활성화를 이끌면서 디자인을 활용하는 모든 산업에 성장과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도심 상권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 등 지식기반 산업에 대한 개발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월드디자인플라자는 2000년 이후 쇠락하고 있는 동대문 지역의 상권을 부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 강북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될 것이다.”
그는 디자인·패션 관련 우수 인력의 양성과 전시 컨벤션의 확대를 통해 디자인의 질적 수준을 개선해 ‘중저가’ 이미지를 ‘중고가’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원 사업의 효율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외형적 시설과 하드웨어보다는 전문성 있는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도 했다.
“해외 대부분의 디자인센터가 도서관 형식의 정보 제공자 중심 서비스를 하지만, 월드디자인플라자의 주문형 정보 플랫폼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수요자 중심의 정보센터가 될 것이다.”
시설 인프라와 독창적인 운영 프로그램을 결합해 산업과 문화 측면 모두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월드디자인플라자는 도시 한 가운데 이질적으로 우뚝 선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마치 생물과 같은 모습으로 공원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초현대식 예술작품이다.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편 그는 “동대문운동장의 철거 반대 목소리에 대해서는 문화유산 보전과 경제개발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