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하면 할수록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봉사도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을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자기만족’이라는 차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시간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죠.”

 황우진(52) 푸르덴셜생명 대표는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이 높은 이유에 대해 짤막하게 대답했다. 난치병 어린이 지원, 미아 찾기, 장학 사업,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 대회 등등…. 인터뷰에 앞서 활발한 푸르덴셜생명의 사회공헌활동 자료를 받아본 터라 때깔 좋은 답변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9월10일 서울 강남 푸르덴셜빌딩에서 진행된 황 대표와의 인터뷰는 당초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한국지부 재단이사장으로서 마련된 자리였다.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 성취 재단인 메이크어위시는 황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2002년 한국에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1980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여 개국에 지부가 설립돼, 17만여 명의 아픈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당이 쌓여 근육이 굳어가는 희귀병에 걸린 남자 형제 어린이였습니다. ‘뮤코다당증’이라는 병이었는데, 이 병은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는 불치병이었죠. 이 어린 형제는 ‘비행기를 타고 따뜻한 바다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재단에서 이를 도와주게 됐죠. 이 형제 중 둘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실어증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말문이 트였던 겁니다.” 

5년 동안 난치병 어린이 250명 소원 이뤄줘

황 대표는 단지 이 일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뜻 깊은 일일수록 이행하기에는 어려운 법이다. 한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인당 평균 3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지금까지 어린이 250명의 소원을 성취해준 샘이니 7억5000만원의 지원금이 소요된 셈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총 37팀인데 한 팀에 적어도 6~7명이 호흡을 맞춘다. 아픈 어린이들은 마음의 상처가 깊을 뿐만 아니라 몸도 불편해 봉사자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활동할 수 있다. 6시간 이상 압축된 교육프로그램을 거치는 것은 물론 병에 대한 기본지식과 봉사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만 한다. 재단이사장인 황 대표도 직접 봉사에 참여한다. 8월11일 황 대표는 푸르덴셜생명 임원들과 팀을 이뤄 난치성 간질병에 걸린 여자 어린이의 집을 방문했다. 지능도 낮고, 몸도 뜻대로 말을 듣지 못하는 어린이 였는데, 피아노를 갖고 싶어 했다. 부모는 피아노도 하나 사주지 못할 만큼 경제적인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황 대표가 아침 일찍 임원들과 그 집에 찾아가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도배였다. 그때 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던지 파노라마처럼 말을 이어갔다.

“준비시간을 벌기 위해 한 자원봉사자에게 두 시간 정도 애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에서 놀게 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칼라 도배를 끝내고 풍선도 매달고, 사진도 준비해서 문패도 달았죠. 마술사도 데려가 쇼도 준비했어요.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들여놓고 나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소원을 이룬 아이는 뛸 듯 기뻐하면서 피아노 선생님과 함께 어설픈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아이와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역시 비슷한 크기의 희열을 느꼈다고. 잠시 그 상황으로 되돌아간 황 대표는 그 어린이가 좋아했던 노래가 참으로 의외였다며 웃음을 지으며 흥얼거렸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희망 얻은 어린이에 감동받아 한국에 들여와

 한국 메이크어위시재단이 창립되기 전 한 한국 여자아이가 미국 메이크어위시재단에 소원을 들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린 이 아이는 디즈니랜드에 꼭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이다. 메이크어위시는 지부가 설립된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의 소원을 먼저 접수하

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으로 한국지부가 생겨나게됐다.

“사실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 성취 재단이 있다는것을 안 건 1990년대였습니다. 당시는 푸르덴셜생명의 한국 진출 초반기였기 때문에 일본 푸르덴셜 생명에서 마케팅 전수를 위해 연락관이 왔었죠. 일본지부의 재단이 사장이기도 했던 이 사람이 비디오를 한편 보여줬어요. 일본의 난치병 어린이가 마이클 잭슨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고 기뻐했던 모습이었습니다. 비디오였지만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그 어린이는 6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었다고 한다. 2년 후 황 대표가 대만의 메이크어위시 행사에 갔을 때 그 어린이와 우연히 마주쳤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메이크어위시로부터 희망을 얻게 된 그 어린이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너무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이후 황 대표는 메이크어위시재단을 한국에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마음만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었다.

“처음 재단을 설립한다고 하니 인가를 내주는 심사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초기에 기업이 어떻게 지원할 건지, 재단이 특정 기업의 이익 수단으로 사용될 여지는 없는지 등을 굉장히 엄정하게 따지더군요. 그도그럴 것이 당시 프랑스에서도 재단을 설립했었는데 지원하는 기업이  재단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고 절세 목적으로 활용하는 등 기업 윤리적인 선을 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선례들 탓이었는지, 인가 신청을 내고 1년 후에야 허가가 났다고 한다. 재단 설립 후 사업을 진행하면서 오해도 많았다. 보험사에 대한 불신이 워낙 뿌리 깊었던 터라 단지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참여와 지원이 필요했지만 이 때문에 초기에는 마음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황 대표는 재단 설립 초기부터 지원금 외에 일체의 사무경비를 푸르덴셜생명에서 지원 하도록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많은 지원과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일 년에 2억원 정도 소요되는 사무경비는 계속 푸르덴셜생명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메이크어위시재단뿐만 아니라 푸르덴셜생명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식적인 봉사단체도 10개 정도나 되고, 직원들 자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팀만도 무려 100여 개에 달한다.

“사실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공헌은 경영을 잘해서 세금을 많이 내는 일일 겁니다.

기업에 속한 직원들이 잘 살고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고 하는, 기업 본연의 역할만 잘해도 엄청난 공헌이라고 봐요. 그 이후에 플러스알파로 사회공헌까지 활발하다면야 좋겠지만요. 다만 생명보험사는 일반 기업보다 공익을 위한 활동에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험의 본질은 ‘공익’

생명보험사가 일반 기업보다 공익 활동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황 대표는 보험의 본래 취지를 되새겨보면 자신의 생각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보험의 본질은 이렇다. 특정한 날 10만 명을 무작위로 집합시킨 다음 1년 후, 바로 그날 그 장소로 다시 모이도록 한다. 그럼 적어도 3명은 세상을 떠나서 참석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3명의 가족을 위해 10만 명이 일정하게 모아놓은 돈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바로 보험이라는 것이다. ‘일 인은 만 인을 위해서, 만 인은 일 인을 위해서’라고 하는 말은 보험의 본래 취지를 가장 잘 함축한 말이다. 그는 이 한 마디를 통해 보험사는 사회사업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나누는 삶에 유독 관심이 많은 그가 보험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보험은 참 아름다운 제도입니다. 좀더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공익을 위한 정신이 합리적으로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국내에서 보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입니다.”

 그가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약속’이다. 황 대표가 평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보험은 약속을 파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한 사람의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회사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라는 것 이다. 나아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보는 기준도 결국 이것으로 판가름 난다고 그는 말한다.

“약속은 지켜야하고, 지키지 못할 것이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한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인품을 부모와 사회로부터 물려받는 것인데 이에 대한 책임의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사회봉사활동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가고 있는 보험사의 사장. 그가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다음 사업은 바로‘골수 기증 캠페인’이다. 의료계에서 난제들 중 난제로 꼽히고 있어,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친 후 올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다.

가까운 친구 때문에 젊었을 때 골수를 기증한 경험이 있었던 그는 골수를 구하지 못하는 절실함에 대해 너무도 잘알고 있다. 골수 기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들이 안타깝다면서 금방 홍보활동을 펼쳤다.

“1년에 골수를 구하지 못해 죽는 사람이 3000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5만~30만 명이 골수를 기증한다면 이 사람들을 충분히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등록한 사람 10명 중 실제 기증하는 사람은 2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오해 때문이지요. 골수 채취 때 출산만

큼 아프다거나, 디스크에 걸릴 수 있다는 등 잘못된 정보가 많이 퍼져있습니다. 골수가 필요한 사람들은 생명이 걸린 일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골수 기증 시 필요한 15만원의 혈액 검사비 보조를 40세까지로 제한하고 있어, 사람들이 그보다 나이가 많으면 골수 기증을 못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도 그에게는 답답한 부분이다. 정부에서 혈액검사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푸르덴셜생명이 지원을 해서라도 기증자를 늘리는 데 적극 나서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회사의 라이프플래너들에게도 보험 영업 때 만난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부탁했다. 몰라서 못하거나 오해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만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Make a Wish란?

미국 아리조나주에 백혈병을 앓고 있던 일곱 살짜리 남자 어린이가 있었다. 크리스 그레시어스라는 이름의 이 어린이는 경찰관으로 활동해보는 게 평생소원이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가족들과 친지들은 아리조나주 경찰국에 특별한 도움을 청했다. 크리스가 일일경찰로 활동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이 부탁이 받아들여져 크리스는 하루 동안 경찰 제복을 입을 수 있었다. 경찰관과 함께 오토바이와 헬기를 타고 순찰을 돌면서 범인 체포 현장에도 나섰다. 소원을 이룬 지 삼일 만에 크리스는 세상을 떠났고, 비록 하루였지만 아이는 그 날을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했다. 1980년의 일이다. 이 일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자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었다. 이렇게 설립된 게 세계 최대의 소원 성취 기관인‘메이크어위시(MAW: Make a Wish)재단’이다. 설립 후 27년이 지난 지금 무려 17만 명에 가까운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이뤄줬다.

난치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3~18세 아동과 청소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MAW의 한국지부는 2002년 12월 세계에서 26번째로 설립됐다. 푸르덴셜생명이 설립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현재도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뤄가는 이 사업으로 아동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감동이 넘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