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그레이 시장이 뜨고 있다. 지난 9월말까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등록된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3만8508대로 이는 전년 동기(2만9998대) 대비 28.4% 증가한 것이다.
수입차 시장은 1996년에 최초로 1만 대를 넘어섰고, 그레이 시장도 활발하게 성장했으나 1997년 IMF 경제체제 이후 수년간 침체기에 들어갔다. 이후 2001년까지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1% 점유율을 밑돌던 수입차는 2002년 1.3%, 2003년 1.9%, 2004년 2.6%, 2005년 3.3%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수입차 개방 이래 최초로 4만 대를 넘어서면서 4.2% 점유율을 달성했다.

수입차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일부 인기 차종들은 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계약 후 고객에게 차량을 인도하는 기간도 길어졌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형 배기량 차량 가격 역시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러한 고가 수입차 시장 때문에 그레이 시장이 존재한다. 그레이 시장이란 국내에 공식 진출한 외국 자동차 한국현지 법인 및 공식 딜러들을 통하지 않고, 해외 딜러들을 통해 현지에서 차를 구입,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수입차 시장을 말한다.
한국 수입차 그레이 시장은 천우무역(현 렉서스 강북 딜러) 등 주한 미8군을 상대로 사업을 해왔던 업체들이 주한 군속들이 귀국하면서 중고로 나온 미국 차들을 내국인에게 판매한 것이 시초다. 이들 업체들은 중고 외국차에 공식 업체가 수입하지 않는 밴 등 신차를 수입하면서 그레이 임포터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1987년 한성자동차가 벤츠 공식 딜러 자격 취득 전까지는 이러한 형태의 그레이 임포터가 수입차 시장의 대세를 이루었다. 이후, 엘바상사, 진세무역 등 오퍼상들이 해외 현지 생산차들을 소량 수입하는 과정이 있었다.
1994년 이후 국산 신차 판매 시장이 100만 대를 넘어서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에 대한 미국 정부 중심의 통상 압력이 거세졌다. 1995년 자동차 관세를 8%로 인하시켰고, 고가 차의 취득세를 15%에서 2%로 낮추었다. 그러나 만성적인 대일 무역 역조가 시정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에 도요타는 북미 현지 생산차인 아발론 등을 국내로 들여와 시장을 테스트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 초부터 다시 늘기 시작한 그레이 업체들은 람보르기니나 벤츠의 스마트 같은 국내에 공식 수입 업체가 없는 차량이나, 유럽의 전문 튜닝 업체에서 튜닝 된차량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유학의 일반화로 해외 현지 자동차 문화에 젖어 차 마니아가 되었고 외국어가 능통한 유학생들이 개인 필요로 국내에 차를 유입하여 연간 5~6대 정도로 소규모 사업화한 형태부터 SK네트웍스와 같은 대기업이 참여한 형태까지 다양하다. 또한 그레이 차의 수요 층 역시,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면서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20~30대 직장인 및 소규모 자영업자들로부터 유럽 현지 지사에서 직접 독일인 고문의 자문을 받아 벤츠의 마이바흐를 개별 구입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입차 업체들의 고가 전략이 그레이 시장 형성
최근 2~3년 동안 공식 수입차 시장 볼륨이 커지면서 그레이 사업(병행 수입업)도 확대되고는 있으나 소규모 사업자가 많아져 경쟁이 극심하다. 양재동 ‘서울 오토 갤러리’에서 그레이 사업을 하는 B모터스 우 사장은 “업체 수가 늘어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하다. 따라서 차량 판매마진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벤츠 S500 1대 팔면 2000만원 남았는데 요즘은 1000만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레이 임포터업이 정부의 인허가 사항이 아니고 업무가 분화되어 있어 차량 인증 등 전문 분야는 전문 업체들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사업 진입 장벽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그레이 시장에서 국내 수요가 가장 많은 벤츠 S5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 현지 판매가는 8000만~1억원(옵션 차이)이지만 한국에서는 특소세, 교육세,

부가세, 농특세 등 제세 요금 33.5%가 붙여져 2억원에 시판된다”며, “제세 요금을 감안하더라도 1억4000만~1억5000만원이 국내 적정 판매 가격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는 특히 “수입차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국내 공식 딜러를 통해 구입한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들도 A/S를 받는데 길면 1달씩 기다려야 한다"며, “A/S 등에서 차별화는 되지 않으면서 가격은 비싼데 알만한 사람들 같으면 공식 딜러를 통해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판매 대수 3000대당 1개 직영 정비 공장이 필요하지만, 수입차 업계에는 딜러가 직영하는 A/S 공장이 판매 차량 대비 절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수입차는 중저가 차와 비교, 대당 가격과 마진이 높으므로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판매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매출 볼륨과 이익이 급증하는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진출한 공식 임포터들은 A/S 부문 등 사업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직접 하지 않는다. A/S 부문에 대한 투자를 국내 딜러들이 담당하게 한다. 국내 진출한 외국계 브랜드들은 A/S 부문에 대한 투자 여부를 딜러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외국계 브랜드들의 한국 진출 시 딜러 선정 기준은 엄격하다. 프리미엄급은 전국에서 점포 임대료가 제일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 도산대로에 대형 전시장 투자를 요구 조건으로 내건다. 외국 업체들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기대한다.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 회사들은 국내 진출 이후 조기에 투자비 회수 및 이익을 챙겨 간다.
이와 관련, 벤츠 유력 딜러사의 모 임원은 “프리미엄카들은 경기 변동의 영향을 직접 받는 데, 지금은 경기 및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수요가 많아지고 있지만 언제든 판매가 급락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실제로 IMF시절 프리미엄 브랜드 수입차 업체들이 파산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어 시장의 특성이 대규모 투자를 못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불투명한 그레이 시장 전망
그레이 사업자들은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사업에 대규모 투자도 하지 않는다. 전시장도 사업자끼리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단기 임차를 하며, 아예 전시장 없이 사무실만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레이 사업자들이 그레이 시장의 지속 성장에 회의를 품고 있는 이유는 이 부분이다. 초기 신차 수요 및 해외 시장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시장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요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사업 참여자들의 증가, 공식 수입 업체들의 가격 전략에 좌우될 수 있다고 본다. 2008년에 BMW가 뉴650i등 신차를 출시한다. 그레이 사업자들은 내년 신차 발표 후 BMW 코리아가 벤츠 코리아처럼 고가 전략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자신하지 못한다. 그레이 모 업체 사장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가격 정책에 관한한 암묵적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왔고, 그정책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지 않았다”면서, “BMW 코리아라도 이러한 틀을 깨고 나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가격 정책이 어디로 갈지 몰라 그레이 사업자들은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공식 수입 업체들의 폭리로 인해 그레이 시장은 한국에만 있다”고 언급하고,“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레이 시장은 언제든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수입차 그레이 임포터 업계에서는 100여 개 업체가 난립해 있으며 그 중 50여 개 업체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력이 되는 업체는 신차, 자본력이 약한 업체는 중고차를 취급한다. 또한 주문을 미리 받고 외국에서 직접 차를 들여와 소매 판매를 하는 경우가 있고, 별도로 수 개의 딜러를 두고 대량으로 물량을 들여와 도매 위주로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 도매 위주의 업체들은 세

금 부문에서 우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SK의 그레이 시장 참여 기대 및 비판
국산차 판매 딜러 및 일부 사업자들은 수입차 시장 성장 속도를 주목하는 가운데 비교적 소자본으로 사업 참여가 가능한 그레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 시금석이 SK네트웍스의 그레이 시장 참여 선언이다. SK의 시장 참여가 본격화하면 그레이 시장에 대한 신뢰 및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물꼬가 트인다는 것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SK가 병행 수입차업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명분이 국내 공식 수입차 업계의 고가격 제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나 SK라는 대기업의 관리비용 등을 감안할 때는 해외에서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한다 해도 가격 할인에 한계가 있어 공식 업체와 그레이 업체간 가격 차별화에 실패할 것”이라며, “SK 자체적으로도 사업 경쟁력의 저하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병행 수입 업체들이 공식 업체들보다 25~30% 싸게 판매하는데 비해 SK네트웍스는 15%가량 싸게 책정, 공식 업체들이 가격 전략을 하향 조정했을 때는 SK가 타격을 입게 되어있다. SK의 병행 수입업 참여 선언은 기존 SK에 딜러권을 준 브랜드들에게 SK에 대한 견제 심리를 높였고, 향후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SK간 사업 제휴에 한계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저가 브랜드인 푸조의 임포터인 한불모터스는 SK네트웍스와의 딜러 계약을 해지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2008년 하반기 이후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도요다, 닛산 등 일본의 볼륨카들의 딜러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성자동차, 효성자동차 등 벤츠의 딜러들은, SK네트웍스가 공언대로 병행 수입업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 경우 실망한 소비자들이 공식 딜러로 대거 몰려 자신들 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레이 사업의 방향 전환
벤츠 코리아는 금년도 약 5000대 이상의 판매를 기대 하고 있는데, 벤츠의 공식 튜닝 업체인 AMG가 현지에서 튜닝한 차량이 약 200대 정도 판매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다른 벤츠의 독일 현지 튜닝 브랜드인 브라버스 브랜드로도 국내에 판매된다. 이와 같이 벤츠의 튜닝 브랜

드인 AMG 및 브라버스는 그레이 임포터를 통해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 벤츠 코리아가 관여하지 못하는 또다른 상위 벤츠 브랜드인 것이다. 사업자들이 정상적으로 딜러권을 획득하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메가 딜러인 아주모터스는 최근 브라버스 판매에 참여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레이 시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종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지방 소규모 그레이 업체를 통합하는 브랜드 통합 및 넥트워크화도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를위해서는 A/S 부문에 대한 공용화 등 투자가 선결 과제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 국내 공식 수입차 업계의 시조 회사, 한성자동차 ::
1985년 한성자동차 및 한성자동차서비스(주)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국내 딜러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 420여 명의 직원, 서울 3개 지점, 지방에 3개의 직영 딜러, A/S 공장 3군데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 직접 진출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MBK)의 지분 49%와 자동차 할부 금융 회사인 다이믈러 크라이슬러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DCFSK)의 지분 20%도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인 스포츠카 전문 메이커인 포르쉐의 한국 내 독점 딜러십 확보(별도법인화) 등 안정적인 사업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영업 부문인 한성자동차㈜와 자산운영 부문인 한성 인베스트먼트로 계열화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딜러인 한성자동차가 현지 법인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보다 사실상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메르세데스-벤츠가 본격적인 세계화 전략을 전개(Made in Germany(독일 내 생산) ->Made by M Benz(벤츠에 의한 생산))한 1990년대 초 이전에 국내에 전용 A/S 공장 설립 등에 사전 투자했기 때문이다.
한성자동차는 IMF 시절, 지방 딜러들의 붕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성자동차의 흑자 경영 기조의 배경은 A/S 부문의 강점에 있다는 평가다. 사업 초창기부터 국내 벤츠차의 A/S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 비결로 평가받는다.
한성자동차의 대주주는 홍콩의 레이싱그룹으로 사주는 말레이시아 국적이다. 30여 년 전 국내 목재 및 합판 회사의 동남아 현지 주재 바이어로서 레이싱 그룹과 인연을 맺었던 김성기 한성자동차 명예회장이 서울로 돌아와 설립했다.
김 명예회장이 원자재를 사들였던 벌목 회사였던 레이싱그룹은 벤츠가 생산한 대형 트럭의 세계 최대 고객이었다. 이러한 김 명예회장과 레이싱그룹과의 인연이 화교 자본이 국내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배경으로 작용한다. 20여 년 동안 김 명예회장과 같은 전문경영인과 외국계 자본의 신뢰 및 꾸준한 투자가 오늘의 한성자동차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김 명예회장은 아쉽게도 IMF 때 보유 중이던 소량의 자기 주식마저 레이싱 측에 매각하고 한성자동차의 경영에서는 사실상 물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