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질적 아동발달 위해 노력할 것 ”
지난 6월 한국몬테소리 직원들은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참부모 되기 십계명’을 전달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나섰다. 한국몬테소리가 ‘참부모 되기 운동’을 펼치고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교육의 출발은 가정이고 이를 통해 평화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 이는 김석규(62) 한국몬테소리 회장의 굳은 의지를 대변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몬테소리 교육이 시작된 지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몬테소리가 진행하고 있는 평화운동은 도서 지역 학교와의 자매결연, 정기적인 보육원 봉사활동 등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의 역할을 꾸준히 실천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4년에 걸쳐 전 직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됐던 활동을 올해부터 정례화해 ‘평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본격화한 것이다.
10월10일 서울 강남역 한국몬테소리 빌딩에서 김석규 회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고 하자 김 회장은 손사래부터 치며, 겸손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한국몬테소리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고 그것을 확고히 지키는 게 바로 사회공헌이라는 생각입니다. 교육의 출발지인 가정에서부터 아이의 인격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많은 부모들이 깨닫도록 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저희 회사의 모든 경영활동이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전 직원들이 나서고 있는 평화운동 캠페인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 6월 ‘참부모 되기 가두 캠페인’과 함께 9월에는 한국몬테소리 전국 지역본부에서 고아원과 보호소 등 소외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울산, 경남 지역본부와 홈스쿨 총국에서는 부모교육 교사와 홈스쿨 교사가 협력해 청소년 쉼터와 고아원에 교구, 교재를 지원하고 교사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한글,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 봉사를 실천하기도 했다. 이 역시 정기적인 활동으로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김 회장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말한다. 사업 초기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활동 영역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8월 부산 양정초등학교 황정숙 교감선생님이 편지를 보내셨더라고요. 교감선생님이 하교 후 집에서 아이를 양육할 환경이 안 되는 아이들 40~50명을 직접 돌보고 계시는데, 몬테소리 교육이 효과적이어서 관심이 많다고 하시더군요. 학교 입장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로 교구를 구입하지 못하고 직접 제작해서 어렵게 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에 필요한 교구나 교재를 모두 기증하기로하고 교실 하나를 아예 저희 제품들로 꾸며보았습니다.
몬테소리 교육은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교구와 교재를 가지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방과 후, 보육시설에서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제품과 서비스가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니 가슴이 뿌듯했고요. 전국 각지의 지사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사회공헌 활동의 진정성,
김 회장의 경영 마인드에 녹아 있어
어찌 보면 '사회공헌‘이라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닐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4년 전 직원의 절반이 회사를 떠날 만큼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김 회장의 일화는 이런 오해를 불식시킨다.
1988년에 설립된 한국몬테소리는 1990년대에는 연매출 2000억원 이상을 올리면서 청천가도를 달렸다. 본래 몬테소리라는 유럽의 기관용 교재와 교구를 일반 가정에 보급하겠다는 김 회장의 시도가 한국 엄마들에게 주효해 큰 성공을 거둔 결과였다. 그가 기업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2003년 이후 매출이 하향곡선을 타면서부터였다. 고객 민원이 늘고 수익이 줄어드는 이유를 알기 위해 아동발달과 관련된 학자들에게 모니터링을 실시하게 됐다. 그들로부터 내려진 진단은 당시 김 회장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한국몬테소리가 몬테소리 교재와 교구를 가정에 판매 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핵심인데 정작 그런 것들은 알려주지 않은 채 판매에만 목적을 둔다면서 모진 비판을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제품을 판매하던 현장의 직원들에게는 이미 고객들로부터 하나둘씩 들어온 민원이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인 회사 설립 초기에는 장사를 하겠다는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전 직원을 전문가로 키워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한 ‘중요한 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교재나 교구를 판매하면서 정작 그것들이 어떻게 활용돼야 제대로 된 교육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사내 대학 설립이었다. 김 회장은 전 직원에게 사내 대학 과정을 통해 아동발달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7개월 동안 주말마다 강행군으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외부에서 전문가나 교수를 초빙해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교육 방법을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전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한국몬테소리의 교재를 팔면서 그 활용도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인지시켜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회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선언했다.
김 회장이 이렇게 강력하게 밀고나가자, “기업이 돈만 많이 벌면 되지 무엇이 문제냐”며 직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반발한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면서 2005년에는 남아있는 직원이 절반도 안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방문 판매가 곧 매출이었던 회사에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동종 업계에서는 한국몬테소리가 곧 부도날 것이라는 루머도 떠돌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일시적인 출혈을 감당하기로 했다. 판매 실적이 높았던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가뜩이나 하향세를 타던 회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런 기간이 생각보다 길진 않았다. 1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정상을 되찾은 회사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직원들의 자긍심이 높아졌고, 그간 제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던 직원들의 마인드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돼 전 직원의 봉사활동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난 달 부산 지역에서 봉사활동에 대한 소감 발표가 있었습니다. 어느 부모교육 교사가 그동안 제품을 판매하는 데만 전전긍긍했는데 봉사활동 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찾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발표를 들으면서 김 회장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직원들과 자신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한번 희망을 갖게 됐다. 특히 김 회장 본인의 개인적인 활동을 넘어서 회사 구성원 전체가 뛰어들었다는 점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그 역시 지역별 각종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회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극히 적다.

향후 복지재단 설립해 전인교육 확산시킬 것
봉사활동은 이에 필요한 물품이나 비용은 본사 측에서 지원하고 홈스쿨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일반 직원들은 교육 지원을 하는 방식이며 지역별로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경남 홈스쿨 총국에서는 김해시에 있는 방주원이란 고아원을 매주 수요일마다 방문해 한글 교육을 해주고 있다. 요즘은 초등학교 취학 전에 한글을 깨우치는 게 일반적인데 고아원 어린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착안했다.
울산에서는 100여 명의 총국 교사가 물품을 모아서 바자회를 열고 이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회사에서는 바자회를 여는데 들어가는 경비를 지원했다. 올해는 이 수익금으로 신부님이 운영하는 ‘그루터기’라는 어린이 쉼터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엔 초등학교 1~5학년 아이들이 있는데, 특히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뒤쳐져 있어, 한글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이 모든 활동이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동부본부에서는 갱생원이라는 고아원을 방문하고 있는데, 이곳은 전쟁고아를 보살피는 것 부터 시작했던 오래된 고아원입니다. 지금은 서너 살부터 대학생까지 57명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가서보니 정부 지원금과 여러 후원 때문인지 먹고 자는 것이나 생활하는 환경은 괜찮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이 없으니 아이들의 감성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갱생원 원장님도 가장 필요한 것은 물품이 아니라 지속적 관심과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처음엔 교육 봉사를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원장님이 싫다고 하시더군요. 교육을 하려면 6개월에서 1년은 해야 할 텐데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도 말라’면서 한두 달 오다말면 아이들이 더 상처받는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매달 화요일에 방문해서 청소나 빨래, 밑반찬 준비 등을 돕고 있습니다.”
봉사활동과 관련된 아이템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김 회장은 좀더 체계적인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 각종 단체나 기관과 연계하는 방식을 찾고 시도를 해봤지만 단순하게 관심과 사랑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절감했다고 한다. 서로의 관심사와 스케줄 등 조건이 딱 들어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직접 진행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전사적으로 봉사활동을 의무화하다시피하고 있지만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현재 김 회장은 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준비 단계에 있다. 직접 현장에서 활동하다보니 어떤 게 필요한지를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됐고, 기회를 더욱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몬테소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적과 가깝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인교육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올바른 아동발달을 돕는다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윤 창출을 위해 모르는 것을 말하고 고객에게 듣기 좋은 얘기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요. 단순히 시대의 흐름이 아닌 본질적인 면에서 아동발달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 1907년 최초의 어린이집(Casa dei Bambini: 까사 데이 밤비니)을 개원했고 어린이의 존재 자체를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을 펼치는 노력을 했다. 그녀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교육은 어린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어린이 스스로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나아가서는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며,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위치를 자각하게 이끌어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우주의 질서안에서 올바른 인간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자 했던 그녀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곳곳에서 몬테소리 운동(Montessori Movement)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