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택시비 줄줄이 인상 … 정책 당국 ‘환영’ VS 일반 국민 ‘우울’

말을 맞는 일본인들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다. 과자나 즉석면, 파스타, 빵 등 식품 제조 회사들이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기 때문이다.

 도쿄에서는 12월부터 택시 기본요금이 10년 만에 660엔에서 700엔으로 올랐다. 다른 지역도 슬그머니 몇 십 엔씩 올렸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휘발유는 리터당 150엔대로 들어섰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상당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랜 디플레로 가격 인상 저항감 심해

 식료품 가격 상승은 원재료인 밀가루, 옥수수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밀가루를 재료로 하는 식품뿐 아니라 다른 식품과 서비스 분야도 함께 값이 오른다는 데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가격 인상이 이뤄진다는 데 있다. 상품 가격 자체는 올리지 않으면서도 내용물의 양을 줄이는 방법으로 사실상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도쿄 등 간토(關東) 지방의 한 생선 식품 판매 업체는 생선살 제품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격을 올렸다. 세계적인 생선 수요 증가와 가공 연료비 상승의 부담을 소매가격 인상으로 충당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햄 제조업체는 소시지나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의 양을 10%가량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 회사 측은 “한 봉지에 들어가는 소시지의 개수를 줄이면 소비자들이 금방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사이즈를 줄이는 방법을 썼다”고 밝혔다. 가격은 인상하되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최소화 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원유나 밀가루 가격 급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 제조업체로서는 상당한 원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각 업체들이 이처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 경제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경제가 오랜 시간 디플레 상태를 이어온 만큼 소비자들은 값싼 상품에 익숙해져 있어서 가격 인상에 저항감이 크다는 것이다.

 과자 업체인 에자키(江崎)글리코가 주력 상품으로서 오랜 기간 호평을 받아 온 ‘포키’의 내용량을 10% 줄였다. 메이지(明治)제과도 대표적인 스낵 제품인 ‘칼’의 용량을 6% 줄였다. 내용량을 줄이는 것은 본격적인 가격 인상의 전단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컵라면 등 즉석면, 햄, 마요네즈 등은 이미 가격 인상이 이뤄졌다. 밀가루는 물론 콩이나 옥수수의 가격도 급등하고 있어서 일본 식품이나 과자 업계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상당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랜 디플레로 가격 인상 저항감 심해 식료품 가격 상승은 원재료인 밀가루, 옥수수 등 원재료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밀가루를 재료로 하는 식품뿐 아니라 다른 식품과 서비스 분야도 함께 값이 오른다는 데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가격 인상이 이뤄진다는 데 있다. 상품 가격 자체는 올리지 않으면서도 내의 가격 인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야마사키(山崎)제빵은 식빵 가격을 8%가량 올렸다. 1983년 이후 24년 만의 인상이다. 회사 측은 “기술 혁신과 인건비 절감만으로는 더 이상 현재의 가격으로 채산성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가격 인상 이유를 설명했다. 티슈 값도 올 들어 10% 이상 올랐고, 일부 식용유류는 40%까지 오른 것도 있다.

 그러나 서민들의 이런 근심과는 반대로 정책 당국 자들은 일련의 물가 인상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1998년부터 거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물가가 하락해 각종 부작용이 있어 왔던 만큼 정책 당국자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에서 확실하게 탈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물가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물가가 잠깐 오르자 “디플레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제로 금리를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소비자 물가지수가 7개월 연속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공산품 이어 서비스 가격도 ‘인상 도미노’

 일본은행의 디플레 탈피 선언이 착오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본 재무상은 최근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국자들은 물가 인상이 이뤄져야 현재 2%가량인 경제성장률이 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당국자들의 희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가격 인상은 전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고객 확보를 위해 가격 인하 전쟁을 벌여 온 외식 업계도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카페라테의 가격을 20~40엔씩 올렸다. 맥도널드도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이는 서비스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29년 만에 전기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올 여름 니가타(新潟)현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 한 곳의 가동이 중단되고 원유 가격이 급등한 것이 인상 불가피론의 근거다. 일본항공이나 전일본공수 등 항공 업계도 가격 인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고유가로 인해 가격 인상 없이는 현재 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인한 충격은 소비자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고 있다. 식용유 제조 업계의 경우는 업체 간 제휴 합병 현상도 나타났다. 식용유 업계 2위인 후지제유(不二製油)와 3위인 제이 오일밀스는 지난 9월 업무 제휴 및 주식 상호 보유에 합의했다. 제휴를 통해 경영 효율화를 달성, 원료 가격 급등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잇따르고 있는 가격 인상은 크게 ▲원재료인 밀가루, 옥수수, 콩 가격 상승 ▲원유가 급등에 따른 포장재, 종이 가격 상승 ▲조리 시 필요한 연료 가격 상승 ▲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운송비용 증가 ▲엔저 현상에 따른 수입 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물론 정책 당국자들은 디플레 탈피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지만 그 원인이 원재료 가격 상승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경제구조 개선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일본 근로자들의 소득 향상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만큼 각 가정의 구매력만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업체들을 제외한 소규모 식당 등에서는 비용 압박 속에서도 손님을 잃을 것을 우려해 가격 인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결국은 정책 당국자들의 기대와 달리 물가 인상 부담이 소비자와 소규모 개인 사업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말을 맞아 잇따르고 있는 물가 인상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거시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 11월1일부터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50엔대로 인상된 이후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더욱 한산해진 주유소가 많았다.

 미쓰비시(三菱)종합연구소 모리시게 아키히로(森重彰浩) 연구원은 “식품 등의 잇따른 가격 상승에 의한 개인 소비에의 영향이 현재는 적은 수준”이라면서도 “그러나 소비심리 악화로 인해 전반적인 수요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책 당국자들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