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M&A ‘공격’에 토종들 ‘리노베이션’으로 수성 맞대응

요즘 일본 도쿄 도심에서는 토종 호텔과 외국계 호텔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2년 개업한 ‘포시즌스호텔 마루노우치 도쿄’를 필두로 속속 진출한 외국계 호텔들이 공격적 경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자 위기감을 느낀 토종 업체들이 리노베이션 등을 통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데이코쿠(帝國)호텔(834실)과 호텔 뉴오타니(1019실), 호텔 오쿠라(1600실) 등 일본의 이른바 3대 토종 호텔이다. 이들은 객실 리노베이션을 통한 고급화와 해외 진출 을 통한 호텔 홍보 강화라는 방식 으로 외국계 호텔에 정면대응하고 있다.

다국적 호텔 ‘공격’ 나서자 일본 호텔들 해외 진출로 ‘맞불’

 호텔 뉴오타니(도쿄 지요다구)는 2007년 10월13일 본관 2층을 리노베이션해 ‘이그제큐티브 하우스'로 만들었다. 전용 프런트 너머로는 신주쿠(新宿) 고층 빌딩과 아카사카 일대가 조망 된다. 호텔 측은 '호텔 중의 새 호텔'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전용 스태프까지 배치하며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내부는 대나무와 재래식 일본 종이 등을 인테리어에 사용, 일본 전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외관에서는 일본풍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을 불식시키는데 주력했다. 호텔 측은 이번 리노베이션으로 외국계 호텔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데이코쿠호텔(도쿄 지요다구)은 현재 진행 중인 본관 리노베이션을 2008년말에 마친다. 전 객실과 연회장, 로비 등을 새롭게 해 한층 고급화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2007년 9월에 미쓰이(三井)부동산의 자회사로 들어간다고 발표한 바 있는 이 호텔은 향후 호텔 전체를 재건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일본 호텔들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중단했던 해외 진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호텔 오쿠라는 2010년에는 대만의 타이베이와 휴양지인 르웨탄(日月潭)에 고급 호텔을 건설,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대만을 방문하는 일본인이나 아시아와 유럽, 미국 관광객들이 주된 타깃이다. 대만에서 지명도를 올려 일본을 방문하는 대만인들의 숙박을 유치하는 것도 호텔 오쿠라 복안이다.

 호텔 오쿠라는 인도의 대형 재벌인 타타그룹이 운영하는 고급 호텔인 타지호텔과 호텔 공동예약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업무 제휴에 들어갔다. 양측의 고객이 상대국 호텔을 찾을 경우 쉽게 예약할 수 있는 것을 내세워 서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또 일본항공 계열인 JAL호텔은 2007년 4월 중국 톈진(天津)시에 이어 2008년에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 2009년에는 중국 우시(無錫)시에 고급 호텔을 오픈할 예정이다. 해외여행, 출장 등을 갔을 경우 일본기업 계열의 호텔이 있으면 더욱 안심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일본 여행객을 유치하는 동시에 역시 현지인의 일본 여행 시 자사 호텔에 유치하기 위한 전략도 담긴 것이다.

외국계 호텔, ‘고가전략’으로 차별화

 이처럼 일본 토종 호텔의 고급화, 해외 진출 강화는 도쿄 도심에 외국계 호텔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개업한 ‘포시즌스호텔 마루노우치 도쿄’를 필두로 2003년에는 롯폰기힐스에 ‘그랜드 하얏트 도쿄’, 2005년에는 도쿄만

인근의 재개발 지역인 시오도메에 ‘콘래드 도쿄’, 니혼바시의 ‘만다린 오리엔탈’이 들어섰다. 2007년 들어서도 3월에는 롯폰기의 신축 초고층 건물인 도쿄미드타운 타워에 ‘리츠칼튼 도쿄’가 문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9월에는 히비야에 ‘페닌슐라 도쿄’가 개업했다. 도쿄역 인근에는 2009년 3월을 목표로 ‘샹그릴라호텔 도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 호텔의 특징은 하루 평균 숙박비가 4만~5만엔 이상의 고가 호텔이란 점이다. 외국계 특급 호텔이 단시간 내에 속속 도쿄로 진출하는 것은 일본 호텔 업계 초유의 일이다. 도쿄미드타운에 들어선 리츠칼튼 도쿄 호텔은 도쿄에서 가장 높은 미드타운 타워(248m)의 47~53층을 쓴다. 일부객실에서는 후지산도 보인다. 최상층인 53층에 들어선 스위트룸은 90평에, 하루 객실료가 210만엔이다. 가장 싼 16평형 디럭스룸도 하루 객실료가 6만8000엔 선이다. 콘래드 도쿄는 객실 요금이 4만~50만엔대로 고급화했다. 외국인 고객 확보를 위한 전략이다.

 외국계 호텔이 도쿄 진출을 서두르는 이유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호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화로 인해 일본 시장 진출 및 인수합병(M&A) 등 일본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많은 외국인 비즈니스맨들이 도쿄를 찾게 됐지만 일본 내에는 이들이 묵을 만한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춘 호텔이 다른 선진국 주요 도시에 비해 적은 상태다.

 두 번째로는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가 다수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만다린 오리엔탈 도쿄 호텔 이후 외국계 호텔모두 개발업자들로부터 호텔 입주 공간을 임차해 직영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종전에는 경영 리스크에서 회피하기 위해 운영 수탁이나 프랜차이즈 방식이 일본 내 외국계 호텔의 일반적이 사업 방식이었지만 직영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출점 할만한 입지와 시장성을 갖춘 빌딩 군들이 속속 나왔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일본인 해외여행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측면이다. 지금까지 일본에 진출한 외국계 호텔은 모두 미국계였지만 이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고급 호텔의 참가가 눈에 띄고 있다. 만다린이나 페닌슐라, 샹그릴라 모두 홍콩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구축한 회사들이다. 일본에 모델하우스 성격의 자사 호텔을 개업함으로써 일본인들 사이에 자사 호텔의 인지도를 높여 외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을 투숙객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것이다.

 최근 도쿄에 신규 진출한 외국계 호텔의 특징은 페닌슐라도쿄 이외에는 모두 300실 이하의 소규모라는 점이다. 포시즌호텔 마루노우치의 경우는 객실 수가 57실밖에 되지 않는다. 레스토랑이나 연회시설 등 부대시설도 꼭 필요한 것을 빼고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작지만 고급화해 고가에 판매한다는 것이 외국계 호텔의 전략이다.

 외국계 호텔의 도쿄 진출과 더불어 해외 투자 펀드들의 호텔 매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거대 증권그룹인 모건스탠리는 일본 2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가 도쿄와 가나자와, 도야마, 오사카 등 국내 각지에 보유하고 있는 13개 호텔을 매수하기로 했다. 인수 금액은 2813억엔으로 일본 부동산 거래 사상 최고 액수였다.

 모건스탠리는 일본과 외국의 50여 개 투자사들과의 경쟁 입찰을 거쳐 인수자로 결정됐다. 앞서 같은 해 3월에는 론스타가 오키나와현 나하에 있는 일본항공(JAL) 계열의 호텔 닛코나하와 그랜드 캐슬호텔 등 3개 호텔을 인수한 바 있다.

 몸집을 최대한 줄이고 고가 전략을 채택, 비대하고 노후화된 토종 업체에 도전장을 내민 외국계 호텔 업체들과 이들에 맞서 대대적인 리뉴얼과 일본 특유의 문화를 내세우며 반격에 나선 토종 업체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들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