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서울의 한 대학교가 주최한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강의를 끝내고 나오는데, 청중 중의 한분이 잠시만 시간을 내어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귀를 기울이니 자신을 제조업체의 CEO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꺼냈다. “사업의 성공에 미치는 굿 디자인의 중요성과 역할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굿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요?” 그 사장님은 오랫동안 한 업종에 종사해 시장 상황의 변화에 대한 판단이나 기술적인 혁신에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있지만, 굿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 직면하고 있는 많은 경영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사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굿 디자인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경영 혁신에서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굿 디자인의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굿 디자인의 조건

 굿 디자인의 조건으로는 내재적(內在的)인 조건들과 외재적(外在的)인 조건들 그리고 디자인 경영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내재적인 조건들 중 첫 번째는 오감(五感)을 만족시켜주는 디자인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용자들의 시각은 물론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에 신선하고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해주는 것이다.

 20세기 산업시대에는 디자인이 단지 눈으로 보기에 좋은 시각적인 효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디자인의 근원이 산업혁명 이후 기계로 생산하는 제품들을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미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이른바 ‘장식미술’이나 ‘응용미술’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 좋아서 선택한 제품을 막상 사용해보고 나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오감 만족 디자인이 중요하게 됐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덕분에 21세기 정보 시대에는 오감 만족이 가장 중요한 디자인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오감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의 실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의 소재나 내장재 등에서 나는 냄새가 역겹지 않고, 시동을 걸 때는 물론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상큼하게 해주는것이 바로 후각과 청각의 만족이다. 평소의 승차감은 물론 코너링을 할 때나 고속으로 주행할 때 느껴지는 경쾌한 운전의 맛, 차체를 만지거나 접촉을 할 때 느끼는 감미로운 촉감이 미각과 촉각의 만족이다. 실제로 BMW의 소형차인 미니(Mini)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이 바로 오감을 만족 시키는 디자인이다.

 그 외에도 소비자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첫인상을 갖게 해주는 좋은 느낌, 사용할수록 만족감이 높이지는 좋은 사용성, 그리고 값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져다주는 좋은 가격을 꼽을 수 있다.

 외재적인 조건으로는 최고경영자의 의지, 기술, 생산설비 및 시설, 기업 정체성 전략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최고경영자의 굿 디자인 개발에 대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경쟁력을 높이는 데 관한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CEO의 의지에 따라 디자인 수준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미국의 P&G나 타깃(Target) 등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또 기술력과 생산설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아무리 시대를 앞서가는 굿 디자인일지라도 실제로 그것을 구현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여기에 덧붙여 제품 정체성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제품과 서비스가 일관성이 있는 전략과 원칙에 따라 이뤄 져야하기 때문이다. 흔히 ‘Corporate Identity(CI)’라고 불리는 기업 이미지 통합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업의 정체성을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에 잘 나타내주고 있는 예를 애플(Apple)사를 통해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개발되어 만성적인 적자를 벗어나게 해준 아이맥,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MP3플레이어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해준 아이팟은 물론 최근에 세계적인 화제 속에 출시된 아이폰 등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애플의 제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잘 다듬어진 간결한 형태, 디스플레이와 조작 부위 등에서 사용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한 인터페이스, 여러 제품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독특한 흰색 등 모든 요소들이 일관성 있는 디자인 전략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애플의 매장 또한 굿 디자인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간판이나 네온싸인 등을 사용하지 않고 특유의 사과 형태 로고만 붙이는 아주 절제된 매장의 외관은 오히려 주변의 너저분한 환경과 대비돼 매우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매장의 내부도 금속, 유리, 목재 등만을 사용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제품의 옆에 놓거나 천정에 매달아두는 요란한 형태와 색채의 ‘POP(구매자 시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불필요한 장식이나 군더더기가 없이 절제된 디자인으로 애플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은 바로 기업의 정체성 전략이 잘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CEO인 스티브 잡스가 첨단기술을 가장 손쉽게 작동하도록 해주려는 애플의 정신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디자인 경영을 위한 경영자의 역할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내재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주는것이 주로 디자이너들의 역할인 반면, 외재적인 조건은 경영자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굿 디자인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조건들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바로 그것이 디자인 경영의 역할이다. 아무리 외재적인 조건이 잘 갖추어져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결코 굿 디자인이 창출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디자이너들의 능력이 출중해도 외제적인 조건들의 뒷받침이 미약 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요즘 디자인 경영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지는 이유는 이 두 가지 조건들이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굿 디자인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경영 전략의 산물이므로 ‘굿 디자인은 최고경영자의 책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