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사비네는 북경에 사업차 방문했다. 만리장성의 중국을 처음 방문한 사비네는 일도 일이지만 중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공항에 마중 나온 중국 측 파트너들과의 간단한 상견례를 마치고 그는 자신이 묵을 호텔로 바로 이동했다.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중국 측 파트너는 사비네에게 붉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무어냐고 물어봐도 그 중국인은 그냥 열어보라고만 한다. 그 봉투안에는 중국 돈 500위안(한국 돈 7만5000원 정도)이들어 있었다. 사비네는 중국인의 음흉함-“나하고 한번 할래요?”-에 불쾌해하며 그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돈을 받아 든 그 중국인의 표정이 황망하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아니드는 이란 친구인 로힐라의 어머니에게 노란 꽃을 들고 찾아갔다. 로힐라의 어머니는 딸의 친구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아니드는 정성들여 준비한 꽃을 인사의 표현과 함께 전달했다. 하지만 꽃을 받아 든 그녀는 감사하다고 말하기는커녕 안색을 바꾸면서 차를 끓이겠다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아니드는 그녀를 도와주러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이 사 가지고 온 꽃이 부엌한 귀퉁이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옆에서 있는 로힐라의 어머니는 아니드에게 퉁명스럽게, “네가 날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라고 쏘아붙였다.
캐나다로 어학연수 온 일본 학생 교코는 캐나다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캐나다인 부부는 교코를 딸 같이 생각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어느 날 일본에서 교코의 부모가 방문했다. 교코의 부모는 그 동안 딸을 잘 돌봐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캐나다인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캐나다인 부부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을 교코의 부모에게 전달했다. 그 선물을 받아 든 교코의 부모의 표정이 심상찮다. 선물을 싼 흰색 포장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색즉통(色卽通). 색으로도 말이 통한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색으로 다 표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예술가가 색채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듯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색을 통해 자신을 표출한다. 어느 색을 주로 사용하고 어느 색을 기피하는가에 따라 개인과 기업 나아가 나라의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 나라마다 인종마다 색을 보는 렌즈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는 길조의 의미가 다른 곳에서는 흉조의 의미로, 한곳에서는 축복의 의미가 다른 곳에서는 저주의 의미로 반전될 수도 있다.
문화에 따라 색의 의미 달라
한국인들, 그 중에서도 불교도인 사람들은 붉은색을 죽음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사람의 이름을 붉은색으로 쓴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교권 아시아 사람들도 붉은색으로 이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붉은색에 죽고 못사는 중국인이라 할지라도 이름만은 붉은색으로 쓰지 않는다. 한국 아이들의 성적표에 붉은색으로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그들의 한국 부모들이 미국 학교로 찾아가 유럽계 백인 선생에게 집단 항의한 것은 대단히 한국적이다. 반면 유럽이나 북미는 붉은색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 특히 개성의 유럽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색이 붉은색이다. 한국인들의 붉은색 기피 증세는 일반화돼 있다. 일단 거리의 차들 색만 보라. 간판들을 보라. 심지어 자연의 색을 보라. 튀는 붉은색과 한국은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중국에서는 붉은색이 길조다. 붉은색은 복과번영을 염원한다. 장이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붉은색’은 문화혁명의 핏빛보다는 원초적 풍요에 대한 갈구다. 중국은 새해가 되면 붉은색의 봉투에 돈을 넣어 선물한다. 새해뿐만 아니라 각종 경사에도 반드시 붉은색의 봉투를 사용한다. 이런 중국 풍습에 무지했던 미국의 사비네는 한 번의 경험으로 중국들의 붉은색 선호사상을 알게 됐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때 사비네는 붉은색 명주로 짠 중국의 치파우(靑布: 청나라시절부터 유래된 중국인들의 전통복장)를 선물로 가져오게 됐다.
노란색 역시 전반적으로 느낌이 좋지 않다. 노란색 꽃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을 표현하는 아르메니아 문화권과는 달리 이란 문화권에서는 노란색 꽃이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다. 상대방이 죽기까지 바란다는 의미로 확대해석 되기도 한다. 남미의 페루인도 노란색 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는다. 멕시코인들도 노란색 꽃은 죽음과 관련된 의미로 받아들여 장례나 죽은 사람을 제사지낼 때 빠지지 않고 사용한다. 예전의 프랑스인들은 반역자의 집 문에 노란 페인트로 줄을 그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노란색으로 그린다. 독일 나치는 유태인들에게 노란 별표를 달게 했다. 스페인의 사형집행인의 옷 색깔도 노란색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교권 아시아에서는 흰색이 죽음의 상징이다.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검은색까지 죽음의 상징으로 확대되고 있긴 하나 여전히 흰색은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결혼식에 흰색 옷을 입지 않는다. 흰색 옷을 입으면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액운이 닥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장례식 전야에 고인의 가족들은 조객들에게 ‘단 것을 사먹으라’는 뜻으로 흰 봉투에 동전을 넣어준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 데 대한 감사의 뜻과 더불어 행운을 비는 마음에서 전하는 것이다. 특히 선물을 주고받을때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흰색 손수건이 눈물과 이별을 상징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된다.
색의 기호는 변해

이렇듯 세상의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색의 기호를 아는 것만으로는 왠지 2% 부족하다. 21세기를 선도할 글로벌 리더라면 색깔에 대한 문화적 감수성과 더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색의 기호 역시 변한다’는 것이다. 색을 잘쓰는 사람은 색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색의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색 잘못 밝히다간 큰코다치는 세상인 줄 알기때문이다. 문화가 흐르듯 색 역시 세월과 더불어 호기가 금기되고, 금기가 호기되는 이변을 겪기도 한다.
19세기 캘리포니아의 스페인 신부들은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 서약을 했다. 1990년대 들어 검은색은 몇몇 대담한 신부들이 선택하는 패션이 됐다. 할로윈데이에 거행된 어느 결혼식에는 모든 하객들이 검은색의 옷을 입도록 요청되기도 했다.
2002년 한국 월드컵 개최 전의 색깔 분쟁은 잊혀지지 않는다. 정부는 길가의 붉은색 입간판들이 선혈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를 조장한다며 철거를 명령했다. 뜬금없는 색 규제에 가장 피해를 본 회사가 정유회사인 유공(오늘의 SK정유)이었다. 한 기업의 CI를 바꾸는데 드는 돈은 의외로 천문학적이다. 정부의 이런 황당한 발표에 그 누구도 반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월드컵이 드디어 개최됐다. 고래로 백의의 나라 한국이 히딩크의 손끝 연출 하나하나에 흥분하며 전국을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Be the Reds.’ 피와 같이 선명하고 자극적인 분기탱천이 없었다면 한국이 4강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 적색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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