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이익을 내야하고, 이익의 일부는 사회에 꼭 돌려줘야 해요”
천신일(65)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재산 사회 환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천 회장은 지난해 11월7일 자신이 보유한 세중나모여행 주식 50만 주의 매각액을 고려대, 연세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기부한 주식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63억5000만원(1주당 1만2700원). 올해도 60만5000주를 더 기부할 계획이어서 지난해의 주식 매각 대금을 기준으로 하면 천 회장은 총 140여억원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셈이다.

천 회장의 이 같은 기부는 2006년 10월 세중옛돌박물관 음악회에서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천 회장은 당시 자신이 보유한 세중나모여행 지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주식 110만5000주를 대학교, 장학재단, 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고려대에 정경관 건립기금 및 박물관 발전기금으로 16만 주, 고려대 교우회 10만 주, 연세대 동문회 10만 주, 포항공대에 장학금으로 9만 주, 국립중앙박물관회 4만5000주, 한국민속박물관회 3만 주, 청소년레슬링육성지원단 4만 주, 청소년국제여름마을(CISV) 한국협회 4만 주, 세중문화재단 50만 주 등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천 회장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천 회장은 1985년 포항공대에 학교부지 6만3000평을 기증했고, 고려대와 포항공대, 국립중앙박물관회 등에 10억원 이상을 기부한데 이어, 환경과 문화 보호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도 적지 않은 금액을 전달하는 등 20여 년 가까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오고 있다.
천 회장은 이런 이유로 해서 언론의 화제가 됐지만 특히 지난해 이명박 17대 대통령 당선인과의 인연이 부각되면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천 회장은 이 당선인과 절친한 고려대 61학번 동기이자, 고려대 교우회장이다.
기자는 좀체 짬을 내기 힘든 천 회장을 1월4일 오전 차한 잔만 나누자며 서울 중구 태평로 사무실에서 만난데 이어 17일 한차례 전화 통화를 나눴다.
엄청난 재산을 선뜻 사회에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럴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 중에 특히 많은 영향을 끼친 두사람이 있습니다.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입니다. 이 분들은 평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기업 활동을 하면서 적자를 내는 것은 범죄 행위와 같고, 기업이 이익을 냈으면 사회에 꼭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고 늘 실천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경영하고 있는 기업이 그렇게 많은 이익을 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활발하게 사회 환원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라도 할수 있을 만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겁니다. 사실 기업이 기부하면 세금 부분에서 감면을 받죠. 하지만 난 개인이라 소득세를 다 내고 기부를 했어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천 회장과 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인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조카인 박재홍씨(민정당 국회의원 역임)가 맺어 줬다고 한다. 천 회장의 장인이 부도난 동양철관을 인수하면서 이 회사의 사장으로 천 회장의 고려대 동창인 박씨를 영입했는데, 그가 박 전 회장을 소개해줬다는 것.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의 연은 레슬링을 통해 이어졌다. 이 회장이 1982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면서 그를 국제담당이사로 추천했고, 1996년 이 회장이 IOC 위원이 되면서 레슬링협회장에 천 회장이 올랐던 것.
(이번 기부를 두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많은 기업인들이 내게 귀감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생각은 있지만 실천을 못했다고들 하더군요. 또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물어오는 기업인도 꽤 있어 뿌듯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곳에서 (자신들에게) 기부하기를 원해 난감한 적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처음엔 약간 섭섭해 하는 기색도 보였지만, 나중에 주변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자 달라졌습니다. 마누라가 요즘은 더 좋아해요. 졸업 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친구가 미국에서 “참 좋은 일 한다”고 전화가 왔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는 집안 분위기가 더 화목해졌습니다.
기부 내역을 보면 (모교인) 고려대와 함께 연세대와 포항공대에도 같은 액수를 전달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립대학의 명문인 ‘고려대-연세대’ 두 학교가 이제는 영원한 맞수가 아닌 ‘영원한 동반자’로 가자는 의미에서 연세대에도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또 포항공대의 경우는 인연이 깊습니다. 과거 제철화학을 (대우에) 팔면서 주택 사업을 하기위해 포항에 8만3000평 정도의 땅을 사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들어선다고 해 이 땅 중에서 6만3000평을 기증했습니다. 내가 포항제철을 통해 돈을 벌었으니 포항에 그만큼 되돌려 줘야한다는 생각에서였죠. 이후엔 학교부지뿐만 아니라 장학금도 지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1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인연으로 포항공대에 주식 10만 주를 주기로 한 겁니다.
2006년 세중옛돌박물관 음악회에서 기부 약정을 했을 때보다 2007년 기부 당시 주가가 더 올랐지요?
기부 약정을 할 당시 기부액을 산정한 기준은 10만 주를 약 10억원으로 계산했었는데 다행히 주가가 올라 더 많아졌습니다. 보호예수가 돼 있어서 팔 수가 없었는데 그 때 3개월 평균 주가가 1만310원이었고, 발표 당일에는 9970원이었습니다. 1년 후 우선적으로 보호예수가 풀린 주식 50만 주를 매각할 때는 23%가 올라 63억5000만원 (1주당 1만2700원)이나 되더군요. 사실 기부하기로 한 날 주가가 떨어지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나머지 60만 주도 올해 안에 매각해 기부하려면 주가가 좋아야 할 텐데…. 내가 기업 경영을 잘해서 회사를 잘 키워내야 하겠죠.
회사 주식을 그만큼 내놓아도 경영권에는 이상이 없습니까?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이 많아요. 그래서 경영권에는 별지장이 없습니다.
천 회장은 지난해 기부한 50만 주를 제외하고 세중나모여행의 주식 295만여 주(15.17%)를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족들이 3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천 회장이 나머지 60여만 주를 더 기부하더라도 경영권에는 특별한 지장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전에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얘기했습니다. 천 회장께서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조언을 해주셨나요?
이명박 당선인은 (나보다) 오래전부터 늘 (사회 환원에대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살 집 한 채만있으면 된다”는 말을 항상 해왔으니까요. 특히 이 당선인이 (내가 재산 기부를 밝혔던) 2006년 박물관 음악회에 왔을 때 내게 좋은 일을 한다면서 자신도 곧 그럴 생각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당선인은 대선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해 12월7일 “대통령이 되든지 안 되든지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며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선언했다. 대선후보 등록 당시 신고한 재산은 서울 논현동 주택 51억3000만원, 서초동 빌딩 2채 209억여원, 양재동 빌딩 68억여원 등 353억여원이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 당선인 얘기가 나오자 말을 아끼면서도 “친구 이전에 대선후보들 중 어느 후보보다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일 잘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열심히 도와줬던 것이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이어 “인수위원회에 고려대 출신이 적자 고대 동문들 사이에서 역차별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나라 경영을 위해서 오히려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 당선인을 추켜세웠다.

지난해 세중나모여행 경영 실적은 어땠습니까?
지난해 실적이 조금 안 좋아요. 올해부터는 좀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천 회장의 기업은 상장된 세중나모여행 등 9개의 관계사(표 참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전체 매출은 1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세중나모여행은 지난해 601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533억원) 대비 12.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1억2700만원으로 전년(40억원) 대비 50%가 감소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물류 사업 계약을 맺었던데 어떤 시너지를 원하는 것입니까?
세중에는 여행사도 있지만 물류사업부도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의 물류를 우리가 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설 등의 자재 운반을 비롯해 전자제품 운반도 하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이 포스코나 외국서 철판을 들여오면 야드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이를 보관하고 필요한 양을 운반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계약했지만 사실 1년 전부터 준비해오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물류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에 지분을 참여하셨던데 관심이 많으십니까?
미술품 경매 회사인 서울경매가 처음 설립될 때부터 주주였습니다. 원래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었던 데다 지금의 성북동 박물관을 곧 미술관으로 바꾸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 구입도 해야 하고 소액주주지만 관계를 해야 미술계 흐름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앞으로 문화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천 회장은 문인석, 고서화 등 우리 문화재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천 회장은 2000년 7월 용인에 세중옛돌박물관을 세우고 일본에 유출됐거나, 전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나라 옛 석물 6000여 점을 전시했다. 현재는 1만여 점에 달하는데 그럴듯한 것만 고른다면 3000여 점 정도라는 게 천 회장의 설명이다. 천 회장은 1978년 서울 인사동에서 단골 골동품 가게의 주인이 일본인과 문인석을 놓고 흥정하는 것을 보고 그 가게에 있던 석물을 통째로 산 것이 옛돌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천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면 장학금을 주어 우리나라의 석물을 체계적으로 전공한 전문가를 양성하겠다고 한다.
●약 력
1943년 부산 출생.
1958 경남고 졸업.
1965 고려대 정외과 졸업.
1974 제철화학 대표이사 사장.
2003년~ 세중나모 대표이사 회장.
2002년~ 제26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2007년~ 고려대 교우회 제28대 회장.
2004년 대한민국 체육상 공로상.
제42회 대한민국 체육상 수상.
2004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한국관광인협회 올해의 관광인 상.
2002년 국민훈장 석류장.